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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50화 (50/150)

# 050. 넌 누구냐? (2)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김연우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콰쾅, 방에서는 때아닌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호 대 가짜 혜성의 격전. 둘은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방을 벌였다.

“네가 나서야 하는 거 아냐?”

그녀는 옆에 있는 막내를 힐끔 돌아봤다. 밖에는 변종 게이트, 안에는 가짜 이혜성. 마음이 급해졌다. 가게의 종업원이나 다른 손님들은 어디론가 달아난 지 오래였다.

“글쎄. 당연히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막내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의 사이즈는 가로, 세로 각각 4m 남짓이었다. 게다가 바닥엔 상과 불판, 음식들이 어지럽게 널려 난장판이었다.

그까지 합류해 셋이 어울려 싸우기엔 무리. 그가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근데 태호 형이 저렇게 강했나? 그냥 샌님 치료사가 아니잖아?”

막내는 이내 눈을 크게 뜨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짜 혜성은 B급 상위권에서 A급 사이. 하지만 걱정과 달리 싸움은 태호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양상이었다.

가짜 혜성이 오른발로 바닥을 쓸며 태호의 발목을 공격했다.

“흥!”

태호는 왼발을 슬쩍 들어 공격을 흘린 뒤, 그대로 가짜 혜성의 복부를 걷어찼다.

“컥!”

가짜 혜성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태호는 상대의 품을 파고들며 오른 주먹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타깃은 가짜 혜성의 턱. 가짜 혜성이 급히 양팔로 턱을 방어했지만, 주먹은 가짜 혜성의 팔뚝을 강타했다.

쾅, 가짜 혜성은 상체가 위로 살짝 들렸다가 벽까지 뒷걸음질 쳤다. 이어서 가짜 혜성이 벽을 등지고 가드를 올린 가운데, 그 위로 태호의 주먹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저 사람 뭐야? 너보다 잘 싸우는 것 같은데?”

김연우도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동생은 유명한 능력자. 그리고 인터넷에는 능력자들에 관한 영상이 넘쳐났다. 능력자는 아니었지만, 그녀도 능력자를 보는 눈은 있었다.

“하루 이틀 단련한 솜씨가 아니야.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처럼 스킬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근접전은 나보다도 위야.”

막내도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태호가 좀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3분쯤 지났을 무렵.

“헉! 헉!”

태호의 호흡이 급속도로 거칠어졌다. 움직임도 느려졌고, 주먹에 실린 힘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기진맥진. 가짜 혜성의 반격을 받아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뭐지? 몸에 이상이 있는 건가?”

막내가 누나를 한쪽으로 밀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비켜!”

파팟, 누군가가 그를 스치고 먼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진짜 혜성이었다. 그는 달려오던 관성을 이용해 붕 떠서 가짜의 머리를 걷어찼다.

“뭐야?”

가짜의 입장에서 보면 태호의 등 뒤에서 갑자기 진짜가 나타난 셈이었다.

쾅, 놈은 혜성의 오른발에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비틀거렸다.

“잡았다!”

진짜 혜성은 가짜의 멱살을 잡고 방 밖으로 던졌다. 그동안 가짜 때문에 쌓인 울분을 담아서.

콰쾅, 놈은 막내와 김연우의 사이를 지나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괜찮냐?”

혜성은 태호를 돌아보며 급하게 물었다.

태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창백한 안색. 거친 호흡.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인마, 왜 이렇게 늦었냐?”

태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입술이 갈라진 탓에 얇은 핏물이 흘렀다.

“미안하다. 오늘따라 인기가 많아서. 아무튼 오랜만에 나왔구나, 3분 무적.”

“그래. 난 여기까지. 3분 지났으니까 바통 터치다.”

둘은 시선을 교환하며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다.

“오케이. 이제 슬슬 2라운드를 시작해 볼까?”

혜성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가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

“간닷!”

혜성은 가짜의 좌측을 파고들었다. 아직 2차 각성 전.

가짜는 그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왼쪽으로 카운터펀치를 날리려고 했다. 그때였다. 퍼펑, 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막내. 놈이 혜성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막내가 오른쪽으로 돌아가 기습한 것이다. 단, 식당이기 때문에 화염을 작게 만들어 가짜의 급소를 노렸다.

“이 새끼들이! 치사하게 협공이냐?”

가짜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지만, 둘은 이를 간단히 무시했다.

혜성과 막내는 이미 숱한 위기를 함께한 사이. 눈빛만으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혜성이 근거리에서 가짜를 교란하면, 막내가 원거리에서 빈틈을 찔렀다.

그사이 김연우는 태호를 부축해 식당 구석으로 데려갔다.

태호의 상태는 최악.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는 가운데, 켁켁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짜 혜성에게 한 대도 맞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도 발을 동동 굴렀다.

“세상에 이 땀 좀 봐. 괜찮아요?”

“물 좀……”

태호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왼쪽을 가리켰다.

냉장고에 시원한 물병들이 있었다. 그녀가 컵에 물을 따라 건네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단모금에 들이켰다. 세 컵을 연달아 마신 다음에야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왜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요?”

그녀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태호의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

“아까 혜성이가 한 말 못 들었습니까? 3분 무적이라는 거.”

태호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다가 팔을 내리고 쓰게 웃었다.

“아니, 3분 카레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단전과 심장 쪽에 문제가 생겼죠. 그 후 생긴 별명이 3분 무적. 3분이 지나면 보신 것처럼 일반인보다도 약해지거든요.”

태호는 피곤한 듯 눈을 감고 대답했다.

“그래서 현장을 접고 치료사로 전업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다행히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평소 치료 쪽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아!”

김연우는 안타까움과 연민의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태호는 의외로 남의 얘기를 하듯 덤덤했다.

콰직, 요란한 타격음이 울렸다. 둘은 가게 중앙을 바라봤다.

“크윽! 이 새끼들이!”

가짜 혜성이 비틀거리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방금 혜성에게 한 방 먹은 탓에 눈두덩이가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때였다.

쾅, 누군가가 가게 입구를 박차고 등장했다. 동시에 사방의 유리창을 깨고 특수 연막탄들이 쏟아졌다. 뿌연 연기, 메케한 냄새. 눈과 코가 따가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뭐야?”

“어떤 놈이야?”

어스름한 연기 속에서 혜성과 막내의 당황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김연우도 태호와 함께 벽에 바싹 기대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몇 분 후, 깨진 창문을 통해 연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여전히 시야가 제한적인 가운데, 주위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씨……”

막내는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멈칫했다.

가게 중앙.

혜성이 4명 서 있었다. 정장, 구두, 짧은 헤어스타일, 심지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까지.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았다.

“이건 아니지. 대체 누가 진짜야?”

막내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골목 어귀.

“까다롭군. 미스터리 새끼, 사이코닉 배리어를 치고 숨은 건가?”

강지영은 50m 전방의 삼겹살집을 응시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미스터리의 현재 위치는 삼겹살집 근처라는 것만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혜성이 전에 상대했던 자기 복제 능력자, 황석구라는 상이용사를 떠올렸다.

본체는 멀지 않은 곳에서 복제를 조종하고 있을 터. 능력에 따라 복제할 수 있는 개수가 다르지만, 미스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최대 세 명인 것 같았다.

‘현재 놈의 위치를 잡을 방법은 단 하나. 본체와 복제 사이의 정신적 유대감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녀는 삼겹살집 내부의 상황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복제에게 한계치를 뛰어넘는 데미지를 주면, 이는 본체에게도 일부가 전이될 것이다. 따라서 복제들을 알아내 압박하면, 놈은 어쩔 수 없이 배리어를 해제하고 가짜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을 터.

강지영이 노리는 건 바로 그 틈이었다.

“서둘러요, 혜성 씨.”

그녀는 초조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이 어슴푸레한 가운데 핏빛 게이트가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

“이게 무슨 난리야?”

막내는 멍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가게 중앙에서 3라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혜성끼리의 싸움이었다.

“시간이 없어. 빨리!”

김연우가 깨진 창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변종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경보 시스템이 마비돼 정확한 등급은 파악이 어려웠다. 다만 게이트의 크기나 선명도로 봤을 때 잔챙이는 아닐 것 같았다. 최소 A급, 어쩌면 AA급 이상의 몬스터가 쏟아질 수도 있었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생각인지 이제 대충 알겠군.”

태호가 혜성들을 응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적은 변신과 복제 스킬을 가진 능력자.

우선 혜성으로 변신해서 막내와 한수호 등의 조력자들을 제거한다. 그다음 혜성을 약한 등급으로 2차 각성시킨다. 끝으로 AA급 이상의 강한 몬스터를 소환해서 마무리한다.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계획이었다.

콰쾅, 혜성 하나가 막내의 곁으로 날아왔다.

“형이야?”

막내는 혜성을 도와주기 위해 다가갔다.

파팟, 뭔가 번쩍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해서 피했다.

“뭐야?”

그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 나무로 만든 장식장에는 서늘한 단검이 꽂혀 있었다. 쓰러진 혜성이 단검을 날린 것이다.

‘만약 조금만 늦게 피했다면?’

막내는 절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김연우도 하얗게 질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쳇!”

쓰러졌던 혜성은 막내를 힐끔 노려보곤 다시 싸움에 합류했다.

혜성 넷은 원을 그리듯 빠르게 움직이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홀에는 아직도 연막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언뜻 보면 뿌연 안개 속에서 혜성이 혼자 잔상을 만들며 생쇼를 하는 것 같았다.

“젠장, 분명 3 대 1의 싸움 같은데. 어느 쪽이 1이야? 내가 공격해서 강제로 2차 각성을 시킬까?”

막내는 2차 각성의 고유한 징조를 떠올렸다. 좀 위험하긴 해도 가게 전체를 화염으로 뒤덮으면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게이트에서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 게다가 힐러인 태호는 혜성의 치료는 고사하고 당장 본인의 치료가 급한 상태였다. 혜성의 2차 각성은 아껴둘 필요가 있었다.

“아!”

뒤늦게 좋은 생각이 났다.

“형! NSA 인식번호가 뭐야?”

막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크게 외쳤다.

“M877900!”

네 명의 혜성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제길! 그럼 내 여자친구 이름은?”

이번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 모쏠 아니었어?”

“너 여자친구 없잖아?”

다시 넷이 동시에 대답했다.

“에이, 씨발. 안 통하네.”

막내의 표정이 구겨졌다. 혜성들은 진지하게 대답했지만, 그가 듣기엔 어쩐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구석에 앉아 있던 태호가 막내를 손짓해서 불렀다.

“내게 진짜 혜성을 가릴 방법이 있다.”

태호는 입가를 씰룩거리며 혜성들을 쳐다봤다. 뭔가 재미난 게 생각난 눈치였다.

“그게 뭔데요?”

김연우가 혜성 쪽을 살피며 막내 대신 물었다.

“잊었어? 진짜 혜성이에게는 죽고 싶어 안달하는 또라이 기질이 있다는 거. 그러니까……”

태호는 막내와 김연우를 차례로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 과연 그런 방법이 있네요.”

잠시 후, 막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연우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지금은 죽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 웃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터졌다.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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