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8. 미스터리 (3)
SJ 기획, 소회의실.
박무영은 팔짱을 끼고 벽에 걸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술집의 CCTV. 혜성이 자신을 사칭한 취객을 제압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그는 리모컨으로 영상을 정지시키고 옆을 돌아봤다. 한수은이었다.
“미스터리가 움직인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통신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녀는 보고서를 건네며 말했다. 언제나처럼 사무적이고 딱딱했다.
“통신사라고?”
박무영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천천히 넘겼다.
그녀는 어려운 전산 용어들을 덧붙였다. 쉽게 말해 이동통신사의 네트워크가 해킹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상은 혜성과 그의 지인들. 특히 혜성의 핸드폰은 유심카드를 여럿 복제하고 본체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요원들이 쓰는 통신망은 다른 통신보다 보안이 더 철저하지 않나? 어떻게 뚫었지?”
“내부 직원의 소행입니다. 물론 그 직원은 조금 전에 자택에서 발견됐습니다.”
한수은은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심장 부위가 뚫린 시체. 미스터리에게 당한 다른 자들과 수법이 동일했다.
“놈은 네트워크를 해킹하고 몇 겹으로 암호를 걸어놨습니다. 전산 요원들이 전부 나섰습니다만, 놈의 침입을 바로잡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혜성의 핸드폰이 복제됐다고 했지? 그럼 현재 위치를 추적할 수 있나?”
박무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진들을 테이블에 던졌다.
“물론입니다.”
한수은은 짧게 대답하고 태블릿을 모니터에 연결했다.
모니터에 신촌역 인근의 지도가 나왔다. 역을 중심으로 붉은 점 3개가 깜빡이고 있었다. 막내와 그의 누나, 태호, 한수호, 김유진 등은 푸른 점으로 표시돼 흩어져 있었다.
“붉은 점이 복제된 핸드폰 신호입니다.”
“이혜성이 최소 셋이라는 뜻이군. 그럼 미스터리는 단순한 변신 능력자가 아닌, 분신술처럼 복제도 가능한 능력자인가?”
박무영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까다롭다는 말을 반복하며.
“어쩔까요? 이 정보를 NSA에 흘리시겠습니까?”
한수은이 다시 넌지시 물었다.
“아니. NSA나 CIC에 알리는 건 보류하지. 내부의 블랙이 미스터리 하나라는 법은 없으니까. 블랙의 꼬리는 우리가 직접 잡아야 한다.”
박무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레이저 포인터를 들었다.
“복제 능력은 거리와 시간 제약이 있지. 미스터리는 아마 이 구역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다.”
그는 포인터를 움직여 붉은 점들을 원형으로 연결했다. 반경 약 1km. 신촌역을 중심으로 구역이 만들어졌다.
“수색 범위가 너무 넓군. 강지영은?”
그는 한수은을 돌아보며 물었다.
“현재 신촌에서 대기 중입니다. 원래 계획은 혜성의 저녁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가짜 혜성의 신호가 잡혀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잘했다. 일단 우리 쪽 요원들을 보내서 신촌역 근처의 주요 길목을 차단해. 강지영에겐 계속 대기하며 혜성의 뒤를 밟으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사람을 복제하는 능력이라. 미스터리 녀석. 강지영을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박무영은 강지영의 스킬을 떠올렸다.
진위를 판별하는 능력. 미스터리의 천적인 셈이었다. 물론 미스터리는 아직 그녀의 존재를 모를 테지만.
그들과 블랙이 술래잡기처럼 서로의 꼬리를 잡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건 일종의 카드 게임. 먼저 패를 보이는 쪽이 불리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블랙도 우리가 그들을 추격하고 있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미스터리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움직이다니. 이혜성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닙니까?”
한수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조직의 위상 때문일 거다. 차성진이나 최면술사들이 블랙에서 어떤 위치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혜성이라는 말단 요원이 나타나 그들을 막았다는 거지.”
“……”
“앞을 막는 건 전부 제거한다. 블랙은 이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이혜성을 제거하려 들 거다. 우리가 파고들 것은 바로 그런 집착이고.”
설명은 여기까지. 박무영은 히죽 웃으며 말을 맺었다.
“자, 미스터리 사냥을 시작해볼까?”
***
신촌역 근처 S 커피숍.
한 사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길을 가다 하루에도 몇 명은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시간이 됐군.”
그는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커피숍의 광경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화면 분할된 모니터처럼 각기 다른 3곳의 상황이 떠다니고 있었다.
한수호와 걷고 있는 혜성, 김유진과 커피숍에서 나오려는 혜성, 그리고 막내 등과 삼겹살을 먹고 있는 혜성이었다.
“사령 녀석. 이혜성의 공략 포인트를 반만 맞혔어. 이혜성을 공략하기 전에 그 주변인들을 정리하는 건 맞아. 하지만 문제는 이혜성과 주변인들의 굳건한 신뢰. 이혜성을 잡으려면 먼저 그 신뢰를 깨뜨려야 한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히죽 웃었다.
이혜성을 동료들에게서 떼어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혜성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도 깨뜨려야 했다.
“슬슬 이혜성 사냥을 시작해볼까?”
그는 양손을 모아 기묘한 수인을 맺었다. 잠시 후, 수인을 중심으로 은은한 빛이 뿜어졌다.
***
난장판이 된 술집.
“어라? 핸드폰이 왜 이러지? 막내나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 텐데.”
혜성은 핸드폰을 재부팅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재부팅만 벌써 다섯 번째였다. 통신사의 신호 강도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메신저와 전화, 인터넷 등은 전부 먹통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찰이 혜성에게 다가와 웃으며 거수경례했다.
술집에서의 가벼운 해프닝이었지만, 끝났다고 바로 몸을 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의례적인 신원 확인, 간단한 서류 작성, 이후의 상황 정리 등.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시간을 지체했다.
“죄송한데 잠깐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경찰이 웃으며 핸드폰을 건네려는 찰나였다.
삐-익, 사방에서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게이트의 출현을 알리는 긴급재난 문자였다.
“재난 문자가 오는 거 보면 완전히 고장 난 건 아닌 것 같고. 뭐지?”
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장소는 신촌역 부근. C급이지만 오픈이 빠른 변종 게이트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혜성은 경찰에게 꾸벅 묵례한 뒤 허겁지겁 술집을 나갔다.
일대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게이트에서 반대 방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게이트 방향으로 역주행하는 건 혜성 혼자뿐. 직선으로 500m였지만, 한 걸음을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30여 분 후.
혜성은 땀에 흠뻑 젖어 겨우 게이트 아래에 도착했다. 대로변에서 약 4m 상공,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검은 균열이 가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상황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아무리 변종이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빨리 열린 거 아냐? 그리고 안개는 뭐야? 기후를 조종하는 몬스터라도 나타난 건가?”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게이트. 차성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툭, 발에 뭔가가 걸렸다. 덩치도 작고 무기도 조악한 트롤의 시체였다. 혜성이 2차 각성을 하지 않아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트롤이 안개를 불렀다? 말이 안 되는군. 누가 처리한 거지?”
잠시 후, 안개가 바람에 날려 옅어졌다. 창문이 깨지고 벽에 균열이 간 건물들, 갈라진 도로, 폭삭 주저앉은 자동차. 익숙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 작은 승합차 지붕 위에 트롤의 시체 세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시체 세 구의 상처를 유심히 살폈다. 심장의 핵이 깔끔하게 도려져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단검을 쓴 것처럼.
“동일인의 솜씨인가? 길드나 NSA는 아닌 것 같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답답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핸드폰으로 주위 상황을 촬영하고 있는 김유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은요?”
혜성은 반색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야 당연히 괜찮죠. 옆에 누가 있었는데요.”
그녀도 혜성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것 같았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혜성은 그녀에게 다음 말을 건네려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어조는 끝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혜성을 바라보는 눈에도 착잡함과 분노,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서려 있었다.
“개자식. 저런 놈을 영웅이라고 믿고 있었다니.”
“와, 모른 척하네. 저 뻔뻔한 것 좀 봐.”
“퉤. 슈퍼 히어로 이혜성이라고? 오늘부터 팬클럽 탈퇴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다들 게이트를 피해 도망갔지만, 몇몇은 근처의 건물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늦게 왔다고 화가 난 건가?’
혜성도 표정이 굳어졌다.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가 다시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삐이잉, 다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2번째 변종 게이트가 열렸다는 문자였다.
“하루에 변종이 둘이라고? 그것도 전부 신촌에만?”
혜성은 게이트가 생성된 곳을 힐끔 돌아봤다. 이번엔 H 백화점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
“자연발생적인 게이트가 아니다. 이건 분명…… 나를 노린 함정이다.”
***
혜성과 김유진이 있던 반대 방향 대로변.
“나타나자마자 욕부터 먹다니. 혜성 씨가 많이 당황했겠군.”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쓰게 웃었다.
아마 이혜성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트롤들이 날뛰는 짙은 안개 속, 자신의 형태를 한 놈이 무슨 짓을 하고 사라졌는지.
‘그건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 우리가 알던 이혜성이 아니었어.’
그녀는 몸을 살짝 떨었다. 안개 속에 갇힌 사람들의 비명과 절규, 혼란과 공포. 그 끔찍했던 광경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웅.”
곰처럼 커다란 남자가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김유진도 순간적으로 놀라서 그렇게 말했을 뿐, 본심은 아니었을 테니까. 이혜성의 멘탈이 이 정도에 흔들릴 만큼 약하지도 않고.”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사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들은 천면 여우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강지영과 웅이었다. 인사동에서 사용했던 가면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된 상태. 둘은 평범하지만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다.
삐이잉, 긴급재난 문자가 요란하게 울렸다. 둘은 알람을 끈 뒤 다시 도로 건너편을 바라봤다.
상황이 다시 긴박해졌다. 혜성은 김유진에게 뭐라고 말한 뒤 게이트가 생성된 곳으로 달려갔다. 김유진도 잠깐 망설이다가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미스터리라고 했나? 이혜성과 그 동료들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군. 불신은 잠깐. 이혜성과 그 동료들의 신뢰는 외부에서 깨뜨릴 수 있을 만큼 약하지 않지.”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H 백화점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