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46화 (46/150)

# 046. 미스터리 (1)

“역대 최연소 팀장이라.”

혜성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뭐?”

태호가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병원 진료실. 그가 상의를 벗고 침대에 엎드린 가운데, 태호는 등에 특수 영약을 바른 침을 하나씩 꽂고 있었다.

외상이야 대부분 나았지만, 내상과 누적된 데미지가 아직 남았기 때문이었다.

“너 아까부터 왜 그러냐.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처럼. 커피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거 아냐.”

“아무튼 조심해. 골병든다는 말 알지? 지금 네 상태가 딱 그러니까. 앞으로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도 와라.”

“알았다.”

혜성은 쓰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5개월 남짓. 둘 다 그의 병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 축하한다. 이제 C급은 졸업이구나.”

태호는 구석에 있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어제 혜성을 치료하며 했던 능력치 테스트 결과였다.

“뭐? 1,000이라고?”

혜성은 각종 수치 중에서 EF에 주목했다.

내공이나 마나와 비슷한 개념의 에너지 수치. 하급 전투원 정도는 됐다.

“하아.”

그는 웃음과 울음이 섞인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치가 올라갔으니 2차 각성 후의 체력도 향상될 터. 강해지는 건 좋았지만, 그만큼 순직에서는 멀어진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연달아 강적들을 만났잖아? 어설픈 C급은 2차 각성이나 대수영이 없어도 네가 갖고 놀걸?”

태호가 그의 속도 모르고 웃으며 덧붙였다.

“아참. 내일 저녁에 뭐 하냐?”

혜성은 쓰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뭐하긴. 모쏠이 별거 있나. 집에서 혼자 드라마나 봐야지.”

“그래? 잘됐네. 너도 와라.”

“어딜?”

“너도 알지? 한수호라고 날 따라다니는 꼬맹이. 녀석이 곧 아카데미에 돌아가기로 했거든. 그래서 아는 사람끼리 모여서 삼겹살이라도 먹기로 했어. 너도 이제 반은 NSA 요원이니까 와서 인사나 해라.”

혜성은 몇몇 이름을 언급했다.

막내. 한수호. 자신의 팬클럽 회장이라는 막내의 누나. 김유진이라는 기자.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태호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글쎄. 내가 거기에 껴도 되나?”

태호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당연하지. 그리고 어쩌면 강지영이 올 수도 있다던데.”

혜성은 짓궂게 웃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강지영?”

태호는 눈을 번쩍 떴다.

“온다는 게 아니고 올 수도 있다고. 스케줄 조율해 보고 연락해 준댔어.”

혜성이 웃으며 덧붙였지만, 녀석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자식! 넌 진정한 친구다. 오늘 진료비는 이걸로 퉁 치마.”

태호는 벌써 손바닥을 비비며 흥분했다.

***

SJ 기획, 소회의실.

오늘도 박무영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다만 이번엔 혜성의 영상이 아니었다.

능력자와 몬스터의 합성체. 사령의 부검 자료였다.

똑똑, 안경을 쓴 사무적인 여자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한수은이었다. 손에는 두툼한 서류 뭉치와 보고서를 한 아름 들고 있었다.

“그래, 결과는?”

박무영은 리모컨으로 영상을 천천히 넘기며 물었다.

“정부 기관의 작품은 아닙니다. 지하 마켓 산하의 연구소에서 생체 실험을 한 것 같습니다.”

한수은은 서류 하나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그럴 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는 건 지하 능력자들의 방식. 정부 기관에는 최소한의 윤리 지침이라는 게 있으니까.”

박무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서류를 넘겼다.

지하 연구소와 클리닉의 자료였다. 정확히 누가, 어느 연구소에서 사령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최근 일부 마켓에서 몬스터의 핵이 고가에 거래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거래된 핵이 일부 연구소에 흘러들어 갔다는 것만 나와 있었다.

“지하 마켓의 거물이라. 이거 좀 골치 아파졌군.”

박무영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이건 자네에게 맡기지. 지하 연구소 쪽을 좀 더 파 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령을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걸 발견했습니다.”

한수은은 다른 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사령의 행적을 쫓던 중에 CCTV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박무영이 받아서 열어보니 흑백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배경은 시끄러운 클럽.

한껏 멋을 부린 사령이 누군가와 반갑게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사령이 자료를 건네받는 사진도 있었다.

박무영은 사령의 옆에 앉은 사내를 주목했다.

“윤진성?”

박무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뚱뚱이와 홀쭉이를 죽이고 홀연히 증발한 NSA의 실장이었다. 사진이 찍힌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던전이 생성되기 전이었다.

“편의상 놈의 코드명은 미스터리라고 했습니다.”

“미스터리라. 미스터리가 사령에게 NSA의 자료를 넘겼다. 자료의 주인공은 이혜성. 그리고 사령은 그 자료를 이용해 이혜성의 거처를 파악, 던전을 생성하고 이혜성을 끌어들였다. 이런 건가?”

박무영은 팔짱을 끼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실 사령의 타깃이 혜성이었다는 심증은 있었다. 혜성은 남의 위험을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닌 터. 혜성을 던전으로 유인하는 건 쉬웠다.

“사령은 지하 마켓의 인물. 그리고 미스터리는 블랙의 인물. 그럼 지하 마켓과 블랙이 이혜성이라는 공동의 적을 노리고 손을 잡은 건가?”

이윽고 그가 한수은을 돌아보며 물었다.

“동기는 충분합니다. 양쪽 모두 이혜성에게 크게 당했으니까요. 게다가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수은은 다른 사진들을 내밀었다.

미스터리가 강남의 R 호텔에 체크인하는 장면이었다. 시간은 그저께 밤. 복장을 보니 사령에게 자료를 넘기고 돌아온 것 같았다.

“윤진성의 모습을 한 미스터리의 흔적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 쪽 요원들이 뒤늦게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이상하군. CCTV도 일부 사각지대가 있겠지만, 그걸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맞습니다. 하나 더. 호텔의 투숙객 명단을 전수조사 하던 중에 이상한 게 나왔습니다.”

한수은은 다른 여자의 사진을 내밀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늘씬하지만 어쩐지 좀 싸구려 티가 났다.

“누군가?”

“투숙객 명단에 없던 사람입니다. CCTV에도 체크인하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들어간 건 있는데 나간 게 없고. 다른 한 사람은 들어간 게 없는데 나간 게 있다?”

박무영은 둘의 사진을 나란히 들고 중얼거렸다. 아무리 뛰어난 변장술이라도 성별과 얼굴형, 키를 완전히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변장 계통의 스킬을 지닌 놈이군. 그거라면 진짜 윤진성이 죽은 것도 설명되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미스터리. 놈이 정말 사령을 움직여서 이혜성을 공격했다면, 사령은 전초전이 되겠군. 사령이 실패했으니 아마 놈이 직접 움직일 거다.”

박무영은 미스터리라는 이름을 되뇌다가 물었다.

“이혜성은 뭘 하고 있나?”

“일단 근신하며 친구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CIC가 이혜성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일차 접촉을 했습니다만, 아직 확답을 주진 않았습니다.”

한수은은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이혜성이 커피숍에서 강철호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CIC에서도 잔뜩 달아올랐겠군. 아마 대단한 아이템으로 유혹할 테지.”

박무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송도의 연구소에서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이혜성의 다음 스케줄은?”

“특별한 건 없습니다. 언론 인터뷰는 물론, 병원 주위를 NSA에서 통제하고 있으니까요. 내일 저녁에 동료들과 신촌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강지영도 참석하고 말입니다.”

한수은은 혜성의 일과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마치 그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잘 됐군. 미스터리는 내일이라도 당장 행동을 개시하겠지. 놈을 이용해 블랙의 꼬리를 잡는다.”

박무영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

- 401B 폭행 사건 발생. 장소는 신촌역…….

금요일 저녁, 오늘도 경찰의 무전은 숨 가쁘게 울려댔다. 홍대 근처의 술집에선 취객들의 소동이 일상이었다.

- 32C, 수신 완료.

김 순경은 졸린 눈을 비비며 무전기를 들어 응답했다.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수석의 박 순경은 아예 팔짱을 끼고 반쯤 드러누워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 용의자는 이혜성이다. 반복한다. 용의자는 이혜성…….

폭행 가해자의 이름을 듣자 둘은 찬물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뭐? 이혜성?”

둘은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이혜성이 왜 술집에서 폭행을 해?”

“아니, 그보다 우리가 이혜성을 막을 수 있을까?”

둘은 동시에 말했다.

만약 이혜성을 정말 막아야 한다면? 인근의 경찰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부족했다.

“씨발. 새 됐다.”

김 순경은 괜히 무전을 받았다고 자책하며 현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지금이라도 무전을 못 들은 척할까? 짧은 순간이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복층 구조의 술집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다들 까치발을 들고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꺄악!”

조금 짧은 치마를 입은 여대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잔뜩 취한 사내가 실실 웃으며 여대생들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이혜성과 비슷한 외모였다. 그 옆에는 매니저로 보이는 사내도 있었다. 혜성과 매니저, 둘 다 잔뜩 취한 것 같았다.

“야, 나 이혜성이야. 이혜성. 너도 좋으면서 왜 그래?”

혜성은 그녀들을 끌어안으려 했다.

“혜성 씨, 많이 취하셨습니다.”

근처에 있던 남자 손님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막았다.

“너 뭐야?”

혜성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상대가 미처 반응하기 전,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강하게 따귀를 날렸다.

쾅, 말리려던 손님은 비명도 못 지르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꺄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혜성은 쓰러진 손님을 마구 밟아댔다. 다른 손님들은 그를 차마 말리지 못했다.

“어이, 그만하지.”

누군가가 혜성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넌 또 뭐야?”

혜성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가 서 있었다. 운동이라도 했는지 체격이 단단해 보였다.

“꼴에 사람들 앞이라고 무게 잡는 거냐?”

혜성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술에 취했어도 능력자는 능력자였다. 그가 손을 살짝 떨자, 오른 주먹에 화염의 기운이 맺혔다.

혜성은 야구 모자의 사내에게 스트레이트로 주먹을 뻗었다.

펑, 화염의 탄환이 발사됐다.

사내는 고개만 슬쩍 옆으로 움직여 주먹을 피했다. 화염은 뒤에 있던 벽을 강타.

콰쾅, 나무로 만든 장식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어쭈? 피했어?”

혜성은 사내에게 다시 화염 주먹을 날렸다. 사내의 가벼운 몸놀림을 본 터. 이번엔 관자놀이를 직접 가격하려 했다.

사내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피했다. 헛손질한 혜성은 균형을 잃고 주춤했다.

퍽, 사내가 오른발로 혜성의 발목을 걷어찼다. 혜성은 중심을 잃은 상태.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이어서 사내는 오른발을 살짝 들었다가 혜성의 얼굴을 그대로 밟았다.

끄륵, 혜성은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이 개새끼가!”

혜성의 매니저가 빈 술병을 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매니저가 병을 날리기도 전, 사내의 오른발이 먼저 매니저의 복부에 꽂혔다.

“커헉.”

매니저의 허리가 구십 도로 꺾였다. 입에는 게거품이 잔뜩 흘렀다.

쾅, 이어서 사내는 오른 발꿈치로 사내의 등을 내려찍었다.

와,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쳐다봤다. 사내가 발길질 몇 번으로 혜성과 매니저를 차례로 제압한 것이다.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혜성의 왼손을 잡은 상태였다.

“무슨 일입니까?”

그제야 김 순경은 야구 모자를 쓴 사내에게 다가왔다. 그사이 박 순경은 바닥에 쓰러진 혜성의 상태를 살폈다.

사내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앞에 K-NSA 마크가 선명했다.

“요원이십니까?”

김 순경은 깜짝 놀라며 부동자세로 경례를 올렸다.

그제야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TV에서 많이 본 얼굴.

“수고 많으십니다. NSA 이혜성입니다.”

진짜 이혜성이었다.

김 순경은 깜짝 놀라 쓰러진 혜성을 쳐다봤다. 박 순경이 쓰러진 혜성의 재킷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황우열.

생김새는 조금 닮았지만, 전혀 다른 놈이었다.

“어제는 제주도에서 무전취식을 하더니. 오늘은 홍대에서 취객 폭행인가? 대체 내가 몇 명이야?”

혜성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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