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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44화 (44/150)

# 044. 능력자의 진화형 (5)

막내의 기습적인 화염 공격으로 싸움이 개시됐다. 타깃은 놈의 하얗고 긴 목.

퍼펑, 놈의 정면에서 요란한 폭발이 일었다.

“간다!”

동시에 한수호의 그림자가 사령의 뒤에서 나타났다.

콰콰쾅, 잠잠하던 호수가 사령을 향해 비스듬히 솟아올랐다.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계단처럼.

“좋았어!”

그는 물기둥을 차례대로 밟으며 높이 솟아올랐다. 타깃은 비늘로 덮인 목덜미.

그의 양손에 들린 단검이 춤을 추듯 빠르게 움직였다.

까깡, 단검과 놈의 비늘 사이에서 수십 개의 불똥이 튀었다.

부웅, 사령의 긴 꼬리가 옆에서 채찍처럼 휘어져 날아왔다. 한수호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 피할 수 없었다.

“위험해!”

막내가 놈의 정면으로 돌아가며 양손을 교차시켰다.

콰쾅, 시뻘건 화염이 놈의 눈동자를 뒤덮었다.

“끄악!”

사령의 거대한 상체가 살짝 비틀거렸다. 별다른 타격은 없지만, 순간적으로 눈이 먼 것 같았다.

덕분에 한수호를 노리던 꼬리도 방향을 잃고 빗나갔다.

“타앗!”

한수호는 놈의 목덜미를 발로 차고 물러났다. 물기둥은 아래로 스르르 움직여 쿠션처럼 변했다.

녀석은 공중에서 몸을 돌려 무사히 착지한 뒤, 곧장 다시 놈의 좌측으로 움직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수호는 작은 체구를 활용해 빠르게 치고 빠졌다.

동시에 막내는 거리를 두고 놈의 약점을 화염으로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놈들이!”

사령은 꼬리로 바닥을 쓸듯 그들을 공격했다. 타격은 없었지만, 상당히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마침 한수호는 정면에서 놈의 복부를 공격하던 중이었다. 한수호가 꼬리를 피해 위로 솟구친 순간, 놈은 한수호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콰콰쾅, 역한 돌풍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앗!”

한수호는 급히 물의 방패를 펼쳤다. 문제는 독기.

“물러서!”

막내가 놈의 오른쪽에서 달려오며 화염을 발사했다.

콰쾅, 독기와 화염이 한수호의 정면에서 충돌했다.

파지직, 대번 메케한 녹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의 장막 덕분에 입김이 다소 약해졌다.

한수호는 물기둥을 타고 물러서며 물의 장막으로 나머지를 막았다.

“무리할 필요 없다. 혜성이 형이 곧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막내는 공격 준비를 하려다가 돌연 비틀거렸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진 것이다. 한수호도 옆으로 움직이려다가 멈칫했다.

놈의 독기는 화염과 물의 방패에 막힌 게 아니었다. 오히려 수증기의 형태로 자욱하게 퍼진 상태였다.

‘안티 포이즈닝도 한계인가?’

막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놈의 거대한 꼬리가 둘을 수평으로 쓸었다.

콰쾅, 둘은 우측의 나무로 멀리 날아갔다. 혜성이 들어간 곳과는 반대편, 연못의 바로 옆이었다. 둘은 아름드리나무 세 그루를 연달아 뚫고 지나간 뒤 겨우 멈췄다.

사령은 ‘죽었나?’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컥!”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고 막내와 한수호의 모습이 나타났다. 피를 한 모금씩 토한 상태. 상체에는 피와 흙먼지가 엉겨 붙어있었다.

“크하하!”

사령은 크게 웃으며 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발소리를 크게 쿵쾅거리며.

“제길. 조금도 타격을 주지 못한 건가?”

한수호는 침통한 표정으로 놈을 노려봤다.

“놈은 그야말로 괴물. 일단 체급의 차이가 너무 크다.”

막내가 나무에 기대앉으며 쓰게 웃었다. 단 한 번 맞았을 뿐인데,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잘 가라!”

이윽고 놈이 오른발을 높이 들었다.

막내와 한수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놈에게 이렇게 허망하게 당한 게 분했다.

그렇게 놈의 거대한 그림자가 둘의 머리를 덮은 찰나였다.

파팟, 놈의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는 나무를 밟고 빠르게 날아와 놈의 눈앞에 떠올랐다.

“형!”

“선배님!”

막내와 한수호는 동시에 반갑게 외쳤다. 그림자의 정체는 검은 정장을 입은 혜성이었다.

***

‘형이 원래 저랬나?’

막내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의문이 들었다. 혜성의 기본 능력은 C급. 하지만 지금 달려오는 몸놀림을 보니 최소 B급은 돼 보였다.

‘형의 스킬은 단순히 카피만 하는 게 아닌가? 혹시 데미지의 일부를 근원 에너지로 전환하는 건가?’

그는 혜성의 최초 2차 각성을 떠올렸다. 아이템이 추가되고 경험이 쌓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지금은 처음보다 강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사이 혜성은 공중에 뜬 상태에서 나무를 박차고 방향을 바꿨다. 방어 따윈 무시.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진득한 독액이 긴 이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놈의 거대한 오른손이 혜성을 허공에서 후려쳤다.

쾅, 혜성은 허무하게 튕겨 나가 10m 떨어진 나무에 처박혔다.

보통 아군이 데미지를 받으면 걱정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혜성은 그 반대.

“그렇지!”

막내와 한수호는 주먹을 움켜쥐고 환호했다.

퉤, 혜성은 피가 섞인 침을 뱉고 일어났다. 은은한 서기와 황금빛 눈동자로 대표되는 2차 각성이었다. 검은 정장도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갑옷으로 변해 그를 감쌌다.

“역시 덩치에 맞게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높군. 기본 스킬은 독인가?”

혜성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막내와 한수호가 너무 가까웠다. 자칫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남은 시간은 15분 남짓.

그는 곧장 사령을 향해 돌진했다.

부웅, 놈이 큰 꼬리를 수평으로 휘두르려는 찰나, 그는 발을 멈추고 두 손으로 꼬리를 잡았다.

“이 새끼가!”

사령이 당황하며 꼬리에 힘을 줬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응!”

혜성은 이를 악물고 몸을 들어 올렸다. 양손으로는 기둥처럼 굵은 놈의 꼬리를 잡은 채. 그는 제자리에서 몇 바퀴 돈 뒤, 원심력을 이용해 놈을 멀리 호수 반대편으로 던졌다.

콰쾅, 놈은 혜성보다 더 볼썽사납게 호수 옆 공터에 처박혔다. 땅이 흔들리며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제기랄!”

사령은 허우적거리며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놈이 몸을 반도 일으키기 전.

파팟, 혜성이 바로 앞까지 돌진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타깃은 놈의 긴 턱. 그는 관성에 힘을 가득 실어서 펀치를 날렸다.

쾅, 놈은 머리가 꺾이며 뒤로 넘어갔다.

‘틈을 주면 안 된다.’

혜성은 놈의 가슴에 올라타 턱을 향해 마구 주먹을 날렸다.

퍼퍼퍽,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놈의 턱이 움푹 들어갔다.

쾅, 마지막으로 오른발로 놈의 턱을 걷어찼다.

“크아!”

놈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 왼쪽, 꼬리!

대수영의 경고가 들렸다.

부웅, 왼쪽에서 묵직한 파공음이 감지됐다.

“쳇!”

혜성은 일단 놈의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놈의 거대한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죽어!”

그 순간, 놈은 머리를 들고 혜성에게 입김을 쏘았다.

혜성은 놈의 독기마저 카피한 상태. 독기는 문제없었지만, 강풍까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두 손을 교차해 정면을 보호하고 뒤로 미끄러졌다.

그사이 사령도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 개새끼!”

놈은 이를 갈며 혜성을 매섭게 노려봤다. 짓이기듯 부서진 턱이 스르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재생?”

혜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2차 각성의 단점인 체력 페널티를 안고 싸움을 시작한 상태.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그가 불리했다.

삐빅, 손목시계의 알람도 급해졌다. 남은 시간은 10분.

“왜? 바쁜 모양이지?”

사령은 얄밉게 웃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혜성이 다시 달려들려는 찰나.

“크아아아!”

놈은 동굴 입구를 힐끔 쳐다보곤 긴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의 포효와는 달랐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

놈의 울음에 호응하듯 비슷한 울음이 메아리쳤다.

숫자는 최소 수백. 어쩌면 천 마리가 넘을 수도 있었다.

두두두.

곧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원은 그들이 들어갔던 호수 지하의 동굴. 진동은 점점 크고 강렬해졌다.

“몬스터 웨이브?”

혜성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남은 시간은 10분.

놈은 끝없는 체력과 마법 같은 회복 능력을 지녔다. 게다가 숫자를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몬스터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마음이 급해졌다.

사령은 인간과 뱀 몬스터의 합성체. 따라서 뱀의 장점인 독기를 지녔지만, 반대로 뱀의 단점도 지녔을 것이다. 그렇다면 뱀의 약점은?

그는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엉망이 된 수풀, 서로를 부축하고 있는 막내와 한수호, 맑은 호수…… 잠깐.

“저거다!”

혜성의 시선이 호수에 고정됐다. 생각보다 깊고 차가워 보였다.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봤다. 남은 시간은 정확히 8분 30초.

“젠장. 이판사판이다!”

그는 놈을 향해 돌진했다.

부웅, 머리 위에서 놈의 주먹이 내리꽂혔지만, 그는 몸을 슬쩍 틀어 피했다. 놈이 다음 공격을 하려는 순간, 그는 놈의 발을 잡고 그대로 호수로 몸을 날렸다.

뭐라고 크게 외치며.

펑,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르며 둘의 모습을 삼켰다.

***

“형!”

“대협!”

막내와 한수호는 허겁지겁 호수로 달려갔다.

물거품이 심했다. 물속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공간 전이를 하려는 사령과 그걸 막으려는 혜성 사이에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형이 한 말 들었어?”

“네. 분명 ‘냉기’라고 말했어요.”

막내와 한수호는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혜성의 행동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두두두.

새끼 몬스터들의 진동이 거세졌다. 금방이라도 동굴 안쪽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너, 물을 차갑게 할 수 있어?”

막내가 호수와 동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급하게 물었다.

“네. 빙계 능력자가 아니라 얼릴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온도조절은 가능합니다.”

한수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빨리해. 웨이브는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막내는 부러진 나무를 지팡이 삼아 홀로 섰다. 그리곤 검지를 들고 동굴을 향해 화염을 날릴 준비를 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상황.

“이게 마지막 불꽃이군. 형은 항상 이런 기분이었나?”

문득 웃음이 터졌다. 의외로 마음이 편안했다.

막내는 왼쪽을 힐끔 돌아봤다. 한수호는 무릎을 꿇은 채 연못에 양손을 담그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손바닥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으아아!”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에너지를 쥐어짰다. 그의 손을 중심으로 냉기를 머금은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처음엔 작았지만, 이내 호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새끼 몬스터들도 동굴에서 쏟아졌다.

“받아라!”

막내는 손을 수평으로 크게 휘둘렀다. 마지막 한 방.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한 불꽃이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

“이제 끝인가?”

막내는 정면을 응시한 채 입술을 달싹거렸다. 소리 낼 힘도 없었다.

정면에는 검은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화염이 몬스터들을 쓸고 간 상황.

수백 마리가 타 죽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놈이 달려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옆에서 한수호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상태도 막내와 비슷했다.

혜성이 놈과 들어간 지도 5분이 넘었다. 둘은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호수 표면에는 엷은 서리가 깔려 있었다.

여전히 안에서 물거품이 솟아올랐지만, 처음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형도 실패인……”

막내가 쓰게 웃으며 중얼거리던 도중이었다.

펑, 호수에서 돌연 거대한 물기둥이 솟았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령이었다.

쾅, 놈은 막내와 몬스터들 사이에 떨어졌다.

“형?”

“대협?”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호수를 향해 소리쳤다.

잠시 후, 물에 흠뻑 젖은 혜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얼굴이 빨개진 채.

“하아, 하아.”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뭔가를 내밀었다. 빛나는 보라색 수정. 몬스터의 핵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령의 왼쪽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잊었어? 뱀의 약점은 저온이라는 거.”

혜성은 씨익 웃으며 핵을 든 손을 오므렸다.

파직, 핵은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동시에 핵의 파편을 삼키며 시커먼 회오리가 나타났다.

남은 시간은 2분. 밖으로 돌아가는 웜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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