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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40화 (40/150)

# 040. 능력자의 진화형 (1)

그들은 혜성을 선두로 계속 전진했다. 뚜벅거리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릴 뿐. 셋 다 아무 말이 없었다.

간간이 몬스터 십여 마리를 마주쳤지만, 놈들은 막내의 화염에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여긴 미쳤어. 빨리 도망쳐.’

살쾡이의 길드원이 남긴 말이 아직도 혜성의 귓가를 맴돌았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 때문에 반미치광이가 됐을까? 혜성은 머리가 복잡했다.

“어?”

막내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혜성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불량인가? 특수 코팅한 게 왜 끊어지지?”

막내는 혜성을 향해 백팩을 들어 보였다. 오른쪽 어깨끈이 끊어져 있었다.

“그럴 리가.”

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절단면을 살폈다. 날카로운 것에 잘린 게 아니었다. 오래 돼 삭은 느낌이었다.

막내는 쪼그려 앉아 끈을 대충 묶고 다시 등에 짊어졌다.

“빨리 가……”

혜성은 걸음을 재촉하려다가 멈칫했다.

약 40m 전방.

바닥에 떨어진 야광 아이템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벽 쪽에는 불에 타 죽은 몬스터들의 시체와 주인을 잃은 가죽 갑옷이 있었다.

“뭐야? 우리가 왜 도로……”

“설마 길을 잃은 건가요?”

막내와 한수호도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가 여기를 떠난 지 얼마나 됐지?”

혜성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막내는 시계를 힐끔 내려다봤다. 남은 시간은 2:50.

“20분이 좀 넘은 것 같은데요?”

“맞아. 갈림길이 나올 때면 계속 큰길만 따라 전진했지.”

혜성은 주위를 둘러봤다. 어두컴컴한 동굴. 거기가 거기 같았다. 다만 자세히 보니 빈 갑옷의 반대쪽에 어두운 샛길이 언뜻 보였다.

“여긴 생각보다 넓은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법에 들어온 게 아닐까요?”

한수호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강해도 아직 애는 애였다. 녀석은 처음과 달리 어깨를 조금 움츠리고 있었다.

“이번엔 다른 길로 가……”

혜성이 샛길 쪽으로 발을 떼려는 찰나였다.

“크아아아!”

어둠 저편에서 음산한 괴성이 들렸다. 악에 받친 몬스터들의 고함이었다.

“젠장!”

그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숫자는 최소 수백. 놈들의 고함과 쿵쾅거리는 발소리 때문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몬스터 웨이브.

잠시 후 정면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졌다. 어둠이 몬스터들을 꾸역꾸역 뱉어내는 것처럼.

특별히 무기를 든 건 아니었지만, 독이 묻어 있는 녹색의 긴 손톱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이 새끼들이!”

막내가 앞으로 나서며 두 손을 크게 교차시켰다.

콰쾅!

거대한 화염이 몬스터들의 앞을 가득 메웠다.

“끄아아아!”

몬스터들의 절규. 살이 타는 냄새. 살아 있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이번엔 놈들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앞에서 몸으로 불길을 막으면 그 뒤에 놈이, 그 뒤가 불에 타면 또 뒤에 있는 놈이.

놈들은 죽은 동료들을 방패 삼아 우직하게 돌진했다.

“제길. 이거 끝이 없잖아? 물량으로 해보자는 건가?”

막내는 욕을 퍼부으며 좌우를 돌아봤다. 혜성과 한수호도 틈을 봐서 놈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요. 여긴 제가 맡을 테니 빨리 다른 길로 가세요!”

막내는 샛길을 턱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그사이 화염이 잠깐 끊겼다. 그는 크게 심호흡한 뒤 더 큰 화염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수호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혜성이 어깨를 잡고 말렸다.

“막내 말이 옳아. 지금은 임무가 우선이야.”

혜성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수호는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혜성과 막내는 숱한 위기를 함께 넘긴 사이. 지금 제일 화가 나고 불안한 건 혜성 본인이었다.

“알겠습니다.”

한수호는 어금니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성은 막내와 몬스터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몬스터들이 엄청난 숫자를 앞세워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반대로 막내는 뒤로 한두 걸음씩 물러나며 화염을 만들었다.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건 막내. 그러나 불안해 보이는 것도 막내였다.

“조금만 버텨! 보스를 죽이고 던전의 핵을 깨버릴 테니까.”

혜성은 막내를 향해 크게 외친 후 샛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수호가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

콰쾅!

뒤에서 맹렬한 폭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혜성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폭발이 채찍이 된 것처럼 속도를 높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백팩 주머니에서 야광 구슬을 꺼내 던지는 건 잊지 않았다.

“막내 형은 괜찮을까요?”

한수호가 바싹 뒤따르며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을 거다. 우리보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녀석이니까.”

혜성은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불안감을 애써 누르려는 듯 짐짓 목소리가 커졌다.

3분쯤 달렸을까? 오른쪽으로 꺾어지려는 찰나, 둘은 동시에 발을 멈췄다.

“으으으.”

한 사내가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강철 갑옷을 입고 곰처럼 덩치가 큰 사내. 초승달 팀의 탱커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혜성은 슬라이딩하듯 옆으로 가 그를 부축했다.

만신창이였다. 전신은 온통 피 칠갑이었고, 왼팔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복부.

그의 복부에는 날이 부러진 검이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벌어진 상처로 잘린 내장 일부가 언뜻 보였다.

“누가 이렇게 한 거지?”

혜성은 신음처럼 중얼거리며 검을 주목했다. 부러진 면이 거칠었다. 복부에 박힌 순간, 탱커가 주먹으로 사력을 다해 내려친 것 같았다.

“몬스터의 것이 아닙니다.”

뒤에서 한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안, 의문, 안타까움 등이 섞인 무거운 목소리였다.

“맞다. 초승달 팀장, 박훈의 검이다.”

혜성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백팩에서 드링크 형태의 힐링 팩터를 꺼냈다.

중독 증세는 없는 것 같았지만, 부상과 출혈이 너무 심했다. 힐링 팩터를 억지로 그의 입에 가져갔지만, 그는 피가 섞인 기침과 함께 약을 토해냈다.

“팀장이 이렇게 한 건가? 대체 팀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다른 팀원들은?”

혜성은 탱커의 뺨을 거칠게 치며 물었다. 마음이 급했다. 탱커는 앞서 죽은 살쾡이 길드의 능력자처럼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미쳤어. 다들 미쳤어.”

탱커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앞서 죽은 자와 같은 대답. 그의 말은 여기까지였다.

“뭐? 그게 무슨 뜻이야?”

혜성이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는 고개를 옆으로 꺾고 축 늘어졌다.

“다들 미쳤다고? 설마 박훈이 탱커를 죽인 건가?”

혜성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홀쭉이와 뚱뚱이.

이인조 최면술사가 떠올랐다.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면술은 어디까지나 지성을 지닌 자들끼리 통하는 것.

몬스터가 인간에게 최면을 거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상합니다. 여긴 쌍두 살모사의 던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쌍두 살모사는 안 보이고, 대신 뱀 인간 같은 조무래기들만 잔뜩 있는 겁니까?”

한수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겁에 질린 표정.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혹시 데이터가 잘못된 걸까요?”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인데…… 여긴 쌍두 살모사의 던전이 맞는 것 같다.”

“네? 그럼 쌍두 살모사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우린 이미 쌍두 살모사를 봤다.”

혜성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제자리를 빙빙 돈 미로. 삭아서 끊어진 백팩. 정황 증거들은 하나의 가설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터무니없는 가설을.

“쌍두 살모사는 언제 만난 겁니까?”

“그건……”

혜성이 다소 자신 없는 표정으로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번쩍, 순간적으로 정면에서 눈부신 섬광이 쏟아졌다. 혜성은 아직 2차 각성 전. 반응이나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뭐야?”

한수호가 대신 움직였다.

녀석은 혜성을 옆으로 밀침과 동시에 양팔을 저어 크게 원을 그렸다.

부웅, 바닥의 물들이 허공에 솟아올라 반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었다.

콰쾅!

보호막은 빛의 화살을 막아내고 산산조각 났다.

“빛 속성 공격?”

혜성과 한수호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며 비명처럼 외쳤다. 몬스터의 기습이 아니었다.

그건 초승달 팀의 원거리 딜러가 날린 공격이었다.

***

던전 밖, 임시 통제실.

“뭐? 서울 한복판에 변종 던전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장진우는 고함을 지르며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집에서 쉬다가 허겁지겁 달려온 탓에 평소와 달리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통제실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어떤 놈이야? 외부인은 함부로 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흰 갑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인상을 쓰며 그에게 다가왔다. 체구는 보통이었지만, 등에 거대한 도끼를 메고 있었다.

‘CIC?’

장진우는 사내의 목에 걸린 신분증을 확인했다.

CIC 강철호. 소속은 달랐지만, 그도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CIC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특수팀의 팀장이었고, 실력만큼 자존심도 강하다고 했다.

“NSA 장진우다. 이제부터 여긴 우리가 맡겠다.”

장진우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NSA는 요즘 한가한가 보지?”

강철호는 그에게 바싹 다가와 차갑게 비아냥거렸다.

“흥! 잘난 CIC가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하니까 나서겠다는 거다.”

장진우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상대가 제법 유명했지만, 그도 NSA 내에서 빠지지 않는 편이었다.

“저기, 이러실 게 아니라 일단은……”

중령이 가운데서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지만, 둘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개소리. 여긴 던전이다. CIC 관할이니까 너흰 옆에서 구경이나 해라.”

“안에는 우리 NSA의 요원도 있다. 너희 CIC를 구하기 위해 나선 영웅이지.”

“장진우라고 했나? 말귀가 참 어둡군. 던전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한다니까.”

“그래. 그건 너희가 해. 우린 우리대로 요원들만 구출할 테니까.”

장진우와 강철호. 둘 다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다. 둘 사이에 서늘한 냉기가 풀풀 풍겼다.

“긴급! 긴급 보고입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둘은 잠시 냉전을 멈추고 입구를 쳐다봤다. 흰 갑옷을 입은 CIC 말단 요원이 서 있었다. 녀석은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춤거렸다.

“던전 분석은 끝났나?”

강철호는 시선을 장진우에게 둔 채 요원에게 물었다.

“일반 B급 던전이 아닙니다. 다차원 정밀 분석 결과, AA급 대형 몬스터가 감지됐습니다.”

“그래? 초기 조사에선 그게 왜 안 나온 거지?”

“몬스터의 활동력이 매우 약합니다. 마치 동면에 빠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문에 B급으로 측정된 것 같습니다.”

“AA급 던전이라.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강철호는 장진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른 요원에게 명령했다.

“붉은 바람 대기하고 있지? 준비가 끝나는 대로……”

그때였다. 이번엔 검은 갑옷을 입은 요원 하나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던전 분석은 끝났나?”

장진우는 강철호를 힐끔 쳐다본 뒤, 녀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NSA 요원도 앞선 CIC의 요원처럼 한 박자 늦게 분위기를 깨닫고 더듬거렸다.

“이건 자연발생적인 던전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인위적으로 만든 던전입니다.”

“뭐?”

장진우를 비롯한 모두는 높이 고함쳤다.

차성진의 사건이 떠올랐다.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연 것과 비슷했다.

“하긴. 게이트를 열었다면 던전을 만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장진우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문제가 또 있습니다. 락 다운. 누군가가 안에서 던전을 봉쇄한 것 같습니다. 요원들이 강제로 열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NSA 요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장진우는 굳은 얼굴로 강철호를 쳐다봤다. 강철호도 같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혜성에게 남은 시간은 2:3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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