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33화 (33/150)

# 033. 청문회 (2)

- 각성자의 청문회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 오후 2시 50분 현재 이곳 NSA 본부는…….

- 지하 마켓을 없애고 수많은 범죄자를 잡은 영웅인가, 공명심에 사로잡힌 파렴치한인가.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취재에 열을 올렸다. 정식으로 취재 허가증을 받은 기자만 100명. 해외 주요 언론사들도 보였다.

“왔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기자들은 멘트를 멈추고 우르르 달려갔다.

검은 세단이 본관 입구에 도착하고, 검은 정장을 입은 혜성이 천천히 내렸다. 아직도 외상의 일부가 남아있었다. 걸을 때마다 오른발을 조금 절뚝거렸다. 금테 안경을 쓴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들고 뒤따랐다.

“많이도 오셨군.”

혜성은 쓰게 웃으며 사전에 준비된 포토라인에 섰다. 착잡했다.

-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 지하 마켓에서…….

예상대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질문이 쏟아진 통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은 뒤,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구체적인 것은 청문회에서 밝히겠습니다. 다만 이혜성 씨의 공식적인 입장은……”

변호사가 뒤에 남아 기자들에게 대신 설명했다.

혜성은 대리석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직원들이 좌우에 길게 늘어서서 그를 지켜봤다. 안타까움 반, 불안함 반의 표정으로.

“혜성 씨…….”

낯익은 얼굴도 여럿 보였다.

아는 척하며 인사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짧은 묵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윽고 그는 3층 중앙에 도착했다.

C-302호.

혜성은 한 차례 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플래시 세례 때문에 잠깐 눈을 뜰 수 없었다. 예상대로 만원. 그는 입구에 서서 청문회장을 둘러봤다.

TV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고위직 5명이 상석에 나란히 앉았고, 그 아래에는 감찰관 3명이 일렬로 앉았다. 안경을 쓴 깐깐한 사내도 보였다.

“언제 이렇게 소식이 퍼진 거지?”

그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자리에 앉은 방청객만 300명. 좌석이 부족해 좌우에 서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언론의 관심이 예상보다 커서 청문회 관계자도 놀라는 눈치였다.

혜성은 애써 담담한 척했다.

3시 정각.

그는 위원들의 맞은편에 변호사와 나란히 앉았다. 시작에 앞서 소개, 인사, 선서, 사건 개요 설명 등 절차가 있었다. 길고 복잡했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다음으로 정부 측 관계자가 일어났다. 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명 교수님, 수석 감찰관 박성호였다.

“……이상입니다. 이혜성이 지하 마켓을 없애는 데 큰 공을 세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허가 없이 독단적으로 지하 마켓에 침입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본 청문회는 이혜성의 공과를 가리고자 합니다.”

그는 청문회의 취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다만 혜성의 공보다 독단적인 행위에 포커스를 맞춰 사건을 풀이했다.

‘감찰 쪽에서 단단히 별렀군.’

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가 너무 뻔했다. 방청객들도 인상을 찌푸리고 수군거렸다.

“각성자 행위에 관한 법률 제7조3항에 따라……”

“동법 제24조6항의 예외에 따르면……”

“그러나 과거 판례에……”

감찰관들과 변호사 사이에 열띤 공방전이 벌어졌다.

혜성은 법에 문외한이었다. 치료실을 나온 것도 불과 2시간 전. 지금 무슨 말이 오가는 건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변호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는 걸 볼 때, 자신이 불리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준비 부족. 감찰국이 청문회를 이렇게 급하게 잡은 것도 이걸 노린 거였다.

“이혜성 씨 사건의 이해를 돕고자 참고인을 신청하는 바입니다.”

잠시 후, 변호사가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위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곧 중앙의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참고인?’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좌측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목에 걸린 신분증을 확인했다.

“김유진?”

아, 혜성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기 전 막내에게서 들은 기자였다.

그녀도 혜성을 힐끔 돌아봤다. 그녀 또한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위원들의 맞은편, 청문회장의 중앙에 섰다.

***

“K-NSA의 이념이 뭡니까?”

김유진이 방청객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처음부터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젠 이혜성 하면 떠오르는 카피 문구죠.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해.”

그녀는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사실 전 지금의 청문회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때 제가 본 이혜성 씨는 K-NSA의 이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준비한 USB 메모리를 위원에게 제출했다. 위원들은 잠시 속삭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청객들도 웅성거렸다.

천장에서 대형 스크린이 내려오고, 빔 프로젝터에서 영상을 쐈다. 초반엔 지하 마켓을 찍은 단편적인 영상 몇 개가 흘러나왔다. 몰래 촬영한 듯 흔들림이 심했지만, 화질은 선명했다.

이내 화면이 바뀌었다. 지하 마켓의 통제실 모니터. 혜성이 일인극처럼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장면이었다.

“아!”

여기저기서 방청객들의 탄식이 터졌다.

혜성은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의식이 반쯤 나간 상태. 그때였다.

- 형! 일어나! 지금…….

막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 후, 혜성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전의를 불태우며 다시 일어났다.

“너.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 그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헛되게 죽는 거야.”

퉤, 혜성은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고 놈을 노려봤다.

“반대로 내 목표는 누군가를 지키다가 장렬하고 명예롭게 죽는 거지. 지금처럼 말이야.”

혜성은 놈을 향해 한발 다가갔다. 미친놈처럼 히죽 웃으며. 이후에는 그의 통쾌한 반격이 펼쳐졌다.

김유진의 증언은 여기까지.

“혜성 씨의 말은 음성 전문가가 입 모양을 통해 복원했습니다. 인사동에 있던 수만 명의 시민을 구한 영웅.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나이. 이것이 그날 제가 본 이혜성이란 사람입니다.”

그녀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발언을 마쳤다.

- 와! 이혜성!

방청객들은 혜성의 이름을 연호했다. 처음에는 혜성 주위의 몇몇 사람만 이름을 외쳤지만, 이내 방청객 전원이 함성을 질렀다. 촬영하던 카메라맨도 박수에 합류했다.

“진정하십시오!”

위원들의 목소리는 함성에 묻혔다.

그 후에도 감찰관과 혜성의 변호사 사이에서 공방이 오갔다. 위원장이 청문회를 잠깐 쉬려는 찰나, 박성호가 참고인 발언을 요청했다.

‘이번엔 또 누구지?’

혜성은 왼쪽을 돌아봤다. 회색 정장을 입은 중년 사내가 옆에서 등장했다.

“아!”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박성호가 준비한 반격의 카드, 능력자 협회의 대변인이었다. 협회장은 보수적인 원칙주의자. 그에게 호의적인 발언은 하지 않을 게 뻔했다.

혜성의 시선이 문득 좌측으로 향했다. 서 있는 방청객 중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였다. 눈매만 보였지만, 그는 그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강지영?’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혜성과 대변인을 번갈아 눈짓했다.

그사이 협회의 대변인이 발언했다. 강지영에 정신이 팔려 앞부분은 듣지 못했지만, 혜성도 중요한 부분은 똑똑히 들었다.

“……따라서 본 협회는 이혜성 씨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바입니다.”

“뭐?”

박성호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건 얘기된 것과 다르잖아!’라는 고함이 나올 뻔했다. 협회의 대변인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협회가 날 지지하는 거지?’

혜성 본인도 이해가 안 됐다.

마지막으로 혜성의 변론 차례였다.

그는 변호사가 준비한 원고를 들고 일어났다. 굳은 표정으로. 방청객들도 긴장하며 그의 입을 주목했다.

“저는…… 저는……”

혜성은 돌연 말을 더듬었다.

“원고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방청객들은 시끄럽게 웅성거렸다. 위원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원고에는 혜성의 동생 얘기가 담겨 있었다. 규정을 어겼지만 피치 못 할 사연이 있었다. 이게 변호사 측이 준비한 마지막 변론이었다.

“어?”

곧 방청객들은 놀라 고함쳤다. 혜성이 원고를 반으로 찢은 것이다.

혜성은 마이크를 잡고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C급 보조 요원입니다. 각성자이지만 고유 스킬은 무(無). 그래도 운 좋게 국가 요원이 되어,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다가 월급을 받아갔습니다.”

친구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몇 번이나 소개된 내용이었지만, 모두는 홀린 것처럼 경청했다.

“……우연히 공을 세우고 주목을 받게 된 후, 솔직히 전 기뻤습니다.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연일 이어지는 인터뷰와 선물……”

그의 표정이 점점 상기됐다. 목소리도 들뜬 것처럼 높아졌다.

“……블랙이 내세우는 논리. 사회의 고상한 정의. 솔직히 전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느꼈던 기쁨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전 제 모든 걸 바치고 싶습니다.”

그는 조용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곧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함성이 터졌다.

- 이혜성! 이혜성! 이혜성!

방청객들이 모두 주먹을 움켜쥐고 이혜성을 외쳤다. 위원장이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이번엔 소용없었다.

더 이상의 청문회는 무의미했다. NSA의 이미지만 나빠질 게 분명했다.

결국 위원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청문회를 종료했다.

“이혜성!”

모두가 혜성을 에워싸고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박성호만 독기 어린 눈으로 혜성을 쏘아봤다.

***

청문회 종료 후.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언제 이렇게 준비했어요?”

막내가 사람들을 헤치고 웃으며 다가와 물었다.

“법과 규정대로 따지면 감찰국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각 언론사에 있는 선후배들을 총동원해서 언론 플레이를 했죠.”

김유진은 오른쪽을 힐끔 돌아봤다. 혜성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 중이었다.

“그럼 형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감찰국에서도 부담이 클 거예요. 자칫하면 NSA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기껏해야 근신 며칠 정도?”

그녀는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보여줬다.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인터넷 여론 또한 혜성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

- 감히 이혜성을 청문회에 불러? 씨X, NSA 국장 누구야? 당장 국민소환에 붙여!

- 이혜성이 다른 능력자들처럼 돈 때문에 싸우는 줄 알아?

- 박성호? 너, 얼굴 기억했다. 밤길 조심해라.

…….

NSA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였다. 최단기간 국민청원 100만 돌파는 기본. 이혜성의 전투 동영상, 관련 기사로 실시간 검색 순위가 도배됐다.

“근데 협회가 왜 혜성 씨를 지지했을까요? 제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감찰 편이었는데.”

“흠. 여론이 부담돼서?”

막내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얼핏 보였다. 곰처럼 큰 사내와 평범한 여자였다. 둘 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지만, 어쩐지 눈에 띄었다.

여자도 막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긴 어떻게……”

막내가 외치려는 찰나, 그녀는 검지를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곤 한쪽 눈을 찡긋한 뒤, 사람들에 묻혀 사라졌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김유진은 뒤늦게 막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하 마켓에서 봤던 형의 일행들인 것 같아서요.”

막내는 말끝을 흐리며 간단히 설명했다. 솔직히 그도 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김유진은 달리기가 느렸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종료된 후. 따라서 혜성의 일행을 보지 못했다.

“혹시 저들이 협회를 움직인 건가요? 대체 어떤 거물과 연줄이 닿았길래.”

김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취재 대상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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