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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23화 (23/150)

# 023. 넘어서는 안 되는 선 (3)

저녁 무렵, 좁은 주택가.

주위는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평소라면 학생과 직장인으로 한창 붐빌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주택가 어귀.

언제부턴가 검은 승합차 두 대가 길 한쪽에 서 있었다. 장진우와 막내 등이 탑승한 작전 차량이었다. 그 외에도 승용차 몇 대가 있었지만, 승합차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겼다.

“저긴가?”

승합차 뒷좌석, 막내는 20m 전방의 건물 지하를 주목했다. 1층에 ‘임대문의’가 크게 붙은 4층짜리 건물이었다.

“주민들 대피 완료. 반경 200m는 전부 비워뒀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요원이 무전기를 내려놓고 보고했다.

“저기가 맞나?”

옆에서 장진우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에 나온 십자가와 버스 정류장.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98%의 확률로 일치합니다.”

건물 뒤쪽. 막내는 십자가를 힐끔 쳐다본 뒤, 무릎 위에 놓인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위 지도가 3D로 나와 있었다. 그는 눈앞의 건물을 중심으로 해서 화면을 바꿨다.

“빙고.”

십자가가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크기와 각도로 나타났다.

“장현수는 전투팀장 출신입니다. 아지트에 결계나 진법, 부비트랩 등을 잔뜩 설치했을 겁니다.”

막내는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장진우를 돌아봤다.

“그건 내가 맡지.”

장진우는 소리 죽여 웃으며 건물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손바닥이 스캔하는 것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공간 탐지술?’

막내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공간 계통의 능력 중에서도 최상위의 고급 기술이었다.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군. 결계나 진법이 있으면, 주위에서 공간의 일그러짐이 감지되거든.”

잠시 후, 장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렸다.

“내부에 폭탄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막내도 장진우를 향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사분할 된 화면에는 곤충형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주위 이상 무. 건물 내부와 계단, 지하 등에도 특별한 건 없었다.

막내는 화면 하단의 패드로 드론을 움직였다. 곧 환풍구로 잠입한 드론이 지하의 구석을 비췄다.

“이분이 혜성이 형의 동생인 것 같습니다.”

낡은 소파 위. 혜성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손발은 묶이지 않았지만, 단발머리를 앞으로 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무슨 약물에 취한 건가?”

장진우는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막내는 태블릿 영상을 바꿨다. 혜성의 대전이 실시간으로 나왔다. 혜성은 아직 2차 각성 전. 장현수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형은 동생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겁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막내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화면을 껐다. 위험에 빠진 혜성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장진우도 같은 생각이었다.

“여기는 어미 독수리. 전 대원은 D2 포메이션을 유지하고 대기. 어미와 막내가 진입하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을 날렸다. 곧 알았다는 응답이 왔다.

“작전 개시.”

장진우와 막내는 눈빛을 짧게 교환한 뒤, 심호흡하며 승합차에서 내렸다.

***

“와아!”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이혜성’을 연호하는 목소리뿐이었지만, 이젠 ‘장현수’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도 제법 있었다.

“겨우 이 정도였나?”

장현수는 전광석화처럼 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른손의 검은 검, 왼손의 하얀 검에 섬뜩한 서리를 맺은 상태였다.

“크윽.”

혜성은 이를 악물고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부웅, 묵직한 풍압이 상대를 압박했다.

“그걸로는 안 된다니까.”

장현수는 상체를 낮추고 대검을 머리 위로 흘렸다.

혜성이 반사적으로 물러서려는 찰나, 녀석의 쌍검이 다시 혜성의 양쪽 팔뚝을 베었다. 파앗, 핏물이 튀었다.

‘크윽! 역시 장현수. 이게 NSA 팀장급의 솜씨인가?’

혜성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슬라임 거인을 상대할 때와는 달랐다. 정신은 좀 이상한 것 같았지만, 흑백쌍두를 드니 한빙 계통의 AA급 능력이 발휘됐다.

게다가 전투 경험도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터. 굳이 동생 때문이 아니더라도 실력 차가 컸다.

“왜 2차 각성이 안 나오는 거지? 그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거냐?”

장현수는 조소를 흘리며 공격을 퍼부었다.

“제길!”

혜성은 놈을 쳐다보며 뒤로 물러났다. 철그렁. 물러서다 보니 어느새 철망이 등에 닿았다.

10m 앞, 장현수는 검을 거두고 잠시 멈춰 섰다.

“이제 끝이냐?”

놈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광기로 눈을 빛냈다. 승자의 여유를 뽐내며.

‘천천히 갖고 놀다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건가?’

혜성은 자조적인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를 이대로 단숨에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큰 무대. 수많은 관객과 열렬한 환호, 그리고 전국 생중계. 놈이 좋아하는 판이 깔린 상태였다.

“벌써 지쳤어? 난 아직 멀었는데 말이지!”

장현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달려들었다.

놈이 더 빨라졌다. 대검을 들 틈도 없었다. 놈이 움직였다고 느낀 순간, 옆구리에서 화끈하면서도 차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몸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 출혈이 상당했다.

“치잇!”

그는 대검을 아무렇게나 휘두르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걸렸다!”

놈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의 흐름이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놈은 혜성을 내려다보며 쌍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부웅, 검신에 거대한 얼음의 기운이 맺혔다.

“끝이다!”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서리 폭풍이 혜성을 향해 날아왔다.

“젠장!”

혜성은 이를 악물었다.

분했다. 순직, 장렬한 전사 등은 둘째 문제였다. 지금 생각나는 건 단 한 명. 혜진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아무거나 좋았다. 놈의 얼음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때였다.

콰콰쾅!

무대 위에서 뭔가가 솟구쳤다. 거대한 얼음의 장벽. 퍼퍼펑, 놈의 얼음 공격은 장벽에 막혀 허무하게 사라졌다.

- 크크크. 드디어 제대로 해볼 마음이 생긴 거냐?

머릿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인 투쟁심. 상대보다 뛰어난 능력과 스킬. 은은한 서기와 황금빛 눈동자로 대표되는 혜성의 2차 각성이었다.

***

쾅!

장진우의 발길질에 철문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동시에 막내가 연막탄과 아이템을 지하실 안으로 던졌다. 밖에서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혹시 몰랐다.

일명 그림자 무사.

자욱한 연막 속,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났다가 환영처럼 사라졌다. 결계나 함정이 있을 때 그것을 먼저 발동시키는 아이템이었다. 속으로 열을 셌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상 무. 딱히 위험이 될 만한 건 없습니다.”

막내는 어깨를 으쓱하며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막 발을 내딛는 찰나였다.

“잠깐.”

밖에 있던 장진우가 얼른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날카로운 느낌.

아마추어처럼 어설펐지만, 살기가 앞에서 감지됐다.

“으아아!”

높은 괴성과 함께 누군가가 막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번쩍거리는 단검을 손에 든 채.

“뭐야?”

막내는 당황하며 얼떨결에 뒤로 물러났다.

짙은 연막이 갈라지며 상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충혈된 눈. 벌어진 입. 관자놀이에 선 핏대. 그것은 악귀처럼 정신이 나간 혜진이었다.

***

“나왔다, 2차 각성!”

“이야, 저게 그 말로만 듣던 스킬 카피인가?”

정신이 조금 몽롱한 가운데서도 관객들의 함성이 똑똑히 들렸다.

“이번엔 한빙계인가? 재미있군.”

혜성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천천히 일어났다. 5m 전방.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현수가 보였다.

그는 시험 삼아 왼손 엄지와 중지를 살짝 튕겼다. 파지직, 얼음 알갱이들이 장현수를 향해 산탄총처럼 날아갔다.

“젠장!”

장현수는 황급히 쌍검을 교차해 막으며 뒷걸음질 쳤다.

속임수였다. 놈의 주의가 공격에 집중된 사이, 혜성은 벼락처럼 움직여 놈의 뒤로 돌아갔다.

“이게 보고 싶었나?”

혜성은 대검을 1시 방향에서 7시 방향으로 크게 휘둘렀다. 파앗, 놈의 등에서 긴 상처를 따라 핏물이 뿜어졌다.

“크윽!”

장현수는 신음을 삼키며 비틀비틀 몸을 돌렸다. 급히 쌍검을 들어 다음 공격을 대비했지만, 혜성은 따라오지 않고 공격을 멈췄다.

“왜 그래? 겨우 이 정도였어?”

혜성은 그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2차 각성 때문인지 평소와 달랐다. 먹이를 앞두고 여유를 부리는 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장현수의 얼굴에 다시 진한 살기가 서렸다.

“죽어!”

놈은 발광하듯 거친 공격을 퍼부었다. 두 개의 얼음 기운이 하나로 합쳐져 혜성의 전신을 덮쳤다.

“소용없다니까.”

혜성은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퍼퍼펑, 놈의 공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같은 빙계이지만 그가 한 수 위. 아이템의 격차는 뛰어넘고도 남았다.

“다른 재주는 없나?”

혜성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 개새끼야!”

장현수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치며 쌍검을 교차했다. 이번에도 얼음의 강기가 쏟아졌다.

“흠. 다른 재주는 없는 거로 이해하지.”

혜성도 대검을 수직으로 크게 휘둘렀다.

고오오, 20m 높이의 천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거대한 얼음이 검신에 맺혔다.

파지직, 장현수의 공격은 산산조각 났다. 오히려 혜성의 강기가 여세를 몰아 놈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걸로 끝……”

혜성이 막 히죽 웃으려는 순간이었다.

콰콰콰쾅, 무대가 흔들렸다.

“뭐야?”

혜성은 대검을 짚고 서며 주위를 둘러봤다. 퍼퍼퍼펑, 무대 곳곳에서 불기둥들이 솟구치고 있었다. 무대 주위의 기물들, 철제 링, 천장의 조명들 등은 불기둥에 닿자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렸다.

혼비백산.

“으아아! 사람 살려!”

“이게 뭐야?”

관객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자들, 의자에 부딪혀 넘어지는 자들, 그리고 다른 이에게 밀쳐지고 깔리는 자들까지. 모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려는 통에 아수라장이 됐다.

“처음부터 함정이었나? 장현수는?”

혜성은 대검을 고쳐 잡으며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불기둥과 자욱한 연기 탓에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대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다행히 그가 서 있는 곳은 불기둥이 없었지만, 지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도 살아있어요? 참, 질긴 분이군요.”

혼란을 뚫고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혜성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동생 때문에 머리가 굳어졌나 봐요? 장현수가 굳이 나를 공개 방송의 책임자로 지목했다면, 당연히 나도 의심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CP가 어깨를 으쓱하며 비웃었다. 뿔테 안경은 벗어 불기둥에 던졌다.

“……!”

혜성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었다.

“장현수는 당신의 2차 각성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 진짜는 표적의 능력치에 따라 위력이 변하는 진법입니다. 자, 화려한 불꽃 속에서 2라운드를 시작해볼까요?”

CP는 그를 향해 오른 주먹을 슬쩍 쥐어 보였다.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며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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