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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6화 (16/150)

# 016. 영혼의 파트너 (3)

“혀엉.”

막내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것 같았다. 손발만 가끔 꿈틀거릴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야 한다.’

혜성은 공격의 속도를 높였다.

퍼퍼퍽, 그의 주먹이 산탄총처럼 놈의 급소에 꽂혔다.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구타.

아이템 덕분에 크게 레벨업을 했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었다.

“이 새끼가!”

차성진이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 의미 없는 마구잡이 공격. 악에 받친 듯 두 눈이 붉게 빛났다.

“흥!”

혜성은 상체만 뒤로 젖혀 놈의 주먹을 흘렸다. 쾅, 이어서 그의 오른발이 차성진의 턱을 강타했다.

“컥!”

차성진은 대각선 위로 멀리 날아갔다. 부서진 이빨과 끈적한 피를 공중에 흩뿌리며.

파팟, 혜성은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그의 오른 팔꿈치가 놈의 명치를 강타했다. 퍽!

“꾸륵.”

놈은 괴상한 신음을 내뱉으며 상체를 굽혔다. 전투력 상실. 눈은 흰자위만 보였고, 입에는 게거품이 물려 있었다.

‘역시 이놈이 죽어야만 끝나는 건가?’

혜성이 쓰러진 놈의 머리를 걷어차려는 찰나였다.

파앗, 돌연 놈의 가슴을 중심으로 검은빛이 뿜어졌다.

“뭐지?”

혜성은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순백의 공간이 급속도로 녹아내렸다. 마치 검은빛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공기의 흐름도 달라졌고, 진법 특유의 이질감도 빠르게 사라졌다.

“와-아!”

“어? 이혜성이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들렸다.

맑은 하늘, 따뜻한 햇살, 시원한 공기.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막내는?’

혜성은 제일 먼저 막내 쪽을 쳐다봤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막내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휴, 끝난 건가?”

혜성도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다. 누적된 데미지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아, 아직이다.”

차성진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얼굴이며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두 눈은 광기로 번뜩였다.

“끈질긴 새……”

요원들이 막 놈에게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콰쾅, 놈 주위에서 요란한 폭발이 일었다. 뿌연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일대의 보도블록들이 산산조각 났다. 매립형 폭탄.

퍼퍼펑, 처음의 폭발에 호응하듯 곳곳에서 연달아 폭발이 일었다.

“으아악!”

“사람 살려!”

기자, 카메라맨, 구경꾼, 심지어 정부 요원들까지.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화약 냄새, 흙먼지, 그리고 비명과 울음이 뒤섞여 혼란을 부채질했다.

“흐음. 그래, 이 냄새야.”

차성진은 가슴을 펴고 매캐한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충혈된 눈, 피범벅이 된 얼굴 탓에 악귀가 웃는 것 같았다.

요원 두 명이 뒤에서 달려들려는 찰나, 다시 폭탄이 터졌다.

“제, 젠장!”

요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놈의 주위에서 주춤 물러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곳곳에 지뢰처럼 심어 놓았거든.”

놈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개새끼, 이건 약속하고 다르잖아?”

혜성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서로 밀고 밀리고, 밟고 밟히는 아수라장.

남은 건 머뭇거리는 기자 몇 명, 당황한 요원들 일부, 그리고 들것에 실리기 전 응급처치를 받고 있던 막내가 전부였다.

“너희 관점대로라면 난 악당이잖아. 악당이 약속 지키는 거 봤어?”

차성진은 냉랭히 코웃음 치며 점퍼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담뱃갑처럼 생긴 케이스였다.

“지금까지의 폭탄은 인사치레. 이게 진짜다.”

“안 돼!”

사람들이 길게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놈은 히죽 웃으며 케이스를 열었다.

***

- 게이트와 던전의 시대. 12인의능력자가 정의의 맹세를 하고 길드를 만들었으니…….

둥, 둥, 둥. 힘찬 배경음악과 함께 흰 호랑이의 영상이 허공에 나타났다. 대한민국 넘버원 길드, ‘백호’의 홍보 영상이었다.

“뭐, 뭐야?”

차성진은 황당한 표정으로 케이스를 내려다봤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케이스에서 주황색 구슬이 둥실 떠올랐다.

“하늘의 눈?”

다른 이들도 순간 눈만 끔뻑거렸다. ‘여기서 이게 왜 나와?’라는 표정들이었다.

“내가 받은 예물인데. 마음에 들어?”

혜성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늘의 눈.

GPS, 통신, 기록 저장 등 다양한 기능을 지닌 아이템. 기존의 장비가 통하지 않는 던전에서 사용되며, 시가는 1억 원대였다.

만약 던전에서 하늘의 눈을 봤다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터. 하지만 여의도 한복판에서는 그저 잘 만들어진 홍보물이었다.

“이거 찾냐?”

혜성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놈의 손에 들린 것과 비슷한 케이스였다.

“네가 기폭장치를 소홀히 보관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 과연 네 품에 삼두 거북이의 케이스가 있더군. 그래서 슬쩍 바꿔치기했지.”

혜성은 놈을 약 올리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삼두 거북이.

그 이름처럼 머리가 셋인 하급 몬스터. 특별히 위협적이진 않지만, 놈의 등껍질은 지금껏 알려진 어떤 물질보다 단단했다.

때문에 능력자들은 놈의 등껍질을 담뱃갑 형태로 가공, 중요한 아이템을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어느 틈에?”

차성진은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내뱉었다.

“네 스킬이 화려하더군. 그걸 좀 응용했지. 뭐, 넌 신나게 터지느라고 내가 몸을 뒤지는 것도 몰랐지만.”

혜성은 놈의 스킬을 떠올렸다.

빠르고 변화무쌍한 공격. 2차 각성을 했어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이 새끼가!”

차성진은 광분하며 혜성에게 달려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는 최후의 발악.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퍽, 혜성의주먹이 놈의 명치에 꽂혔다.

“컥!”

놈의 몸이 새우처럼 굽어졌다. 숨을 쉬기도 어려운 상태. 재차 혜성의 주먹이 복부에 꽂힌 뒤, 놈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잡아!”

뒤늦게 요원들이 달려들어 놈을 에워쌌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이제 곧……”

놈은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충혈된 눈으로 혜성을 노려보며. 놈을 둘러싼 요원들 때문에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이겠지?”

혜성은 놈이 끌려가는 걸 바라보다가 주저앉았다.

***

A 신문사 3국 회의실.

“하아, 이걸 참 어떻게 써야 할지.”

팀장은 탄식을 길게 내뱉었다.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쓸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어려웠다.

“결국 이혜성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셈이군요.”

“외신들도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다른 기자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얼굴에 홍조를 머금은 채. 흥분과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 눈치였다.

“캬아, 정말 장관이었지.”

팀장도 그때를 떠올리고 재차 탄성을 내뱉었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가운데, 정보국 요원들이 경례하고 부동자세를 취한다. 이어서 구경하던 시민들도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그때의 광경은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런데 놈은 어디에서 폭탄을 구했을까요? 놈은 정말 혼자였을까요?”

막내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 인터넷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나도 그게 좀 마음에 걸리는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오늘은 이혜성이 테러범을 막았다는 게 중요하니까.”

팀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구한 이혜성. 이로써 대한민국은 이혜성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가자고.”

그는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기자들에게 말했다. 지면 한두 장으로는 부족했다.

그날 저녁,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이혜성 특집으로 도배됐다.

***

병원 치료실.

혜성은 붉은 물이 일렁이는 욕조에서 천천히 나왔다. 힐링 주문을 걸고, 각종 아이템을 배합한 특수 치료기였다.

“국민 영웅님. 이제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호가 수건으로 닦아주며 그의 몸을 살폈다. 흉터 하나 남지 않고 말끔했다.

“그 얘긴 그만해라. 낯간지러우니까. 상태는 어때?”

혜성은 옷을 갈아입으며 물었다. 이상 무. 역시 녀석의 솜씨는 탁월했다.

“여전하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둘의 얼굴에 잠깐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그런가. 아이템은? 눈에 안 보이는 아이템도 있나?”

혜성은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해, 일명 ‘대수영’으로 화제를 돌렸다.

머릿속의 목소리는 잠잠했다. 2차 각성이나 뭔가 계기가 있어야만 활성화되는 것 같았다.

태호는 최상급 능력자만의 특수 아이템, 일명 시그니처 아이템을 간단히 언급했다.

“아이템이라고 꼭 형태를 갖춘 하드웨어만 있는 게 아냐. ‘무형검’이나 ‘광명의 서’처럼 눈에 안 보이는 아이템도 있지.”

그는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를 꺼내 건넸다.

“무형의 아이템? 소프트웨어 같은 건가?”

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하여튼 의사 놈들이란. 어려운 말만 잔뜩 써 놓았다.

“아이템이 적의 공격을 예측했다고 했지? 아이템의 기능은 그것만이 아닐 거다. 네가 경험을 쌓고 강해질수록 아이템도 계속 새로운 능력을 보여주겠지.”

태호는 아이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 더 이상한 게 있어. 네 EF 수치 말인데. 몸이 평소보다 가벼운 거 같지 않냐?”

녀석은 다른 차트를 꺼내 보여줬다. 혜성의 능력치를 분석한 자료였다.

“그게 왜?”

혜성은 쓰게 웃으며 물었다.

EF(Energy Force).

마나, 내공, 생명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각성 에너지의 근원이었다. 참고로 건장한 남성의 수치는 100. 혜성의 수치는 400 남짓이었다.

“그게 비정상적으로 증가했거든. 다시 측정해 보니 500대 초반이야. 18,000이 넘는 유수혁 같은 고수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비율로 따졌을 때는 25%나 증가한 셈이라고.”

태호는 25%라는 숫자를 강조했다.

“데미지의 일부가 EF로 흡수된 건가?”

혜성은 지난 2차 각성들의 감각을 떠올렸다.

강적들과 연이어 싸운 탓일까? 확실히 해골 병사와 싸울 때보다 강해진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C급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럼 앞으로도 계속 강해지는 거냐?”

혜성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고 싶은 순직은 안 되고, 자꾸 강해진다. 이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했다.

“아마도. 지금 네 혈액 샘플을 과거 자료와 비교 중이니까 며칠만……”

삐빅, 태호가 한창 말하는 도중에 혜성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혜성은 문자를 확인한 뒤 재킷을 걸쳤다.

“미안하다. 나 지금 가야겠다.”

“벌써 가냐? 점심이나 같이 먹고 가지. 요 앞에 괜찮은 설렁탕집이 생겼는데.”

태호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를 따라나섰다.

“미안.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주마.”

혜성은 녀석과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고 치료실을 나왔다. 방금 받은 문자가 마음에 걸렸다.

- 직접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신자는 백호 길드의 김준수. 2차 스카우트 제의일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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