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4화 (14/150)

# 014. 영혼의 파트너 (1)

혜성이 언론사를 통해 테러범에게 한 역제안은 간단했다.

너도 능력자라면, 무고한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자. 이건 너와 나, 단둘의 문제. 우리끼리 직접 만나서 해결하자.

물론 시간과 장소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며, NSA는 우리의 대결에 절대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 이거 너무 속 보이는 도발 아냐? 테러범이 이런 도발에 응할까?

- 테러범의 행동 못 봤어? 주목받기를 원하는 놈이라고.

- 맞아. 알아도 걸려들 수밖에 없을걸? 역제안을 거절하면 겁쟁이로 낙인찍히는 셈이니까.

- 그런데 이혜성이 정말 혼자 테러범을 상대할까? 다른 요원들이 잠복해 있다가 뒤통수를 치는 거 아냐?

- 에이, 그건 아니지. 테러범에겐 폭탄이 있잖아. 약속과 다르면 바로 기폭장치를 누를걸?

과연 테러범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30분 뒤, 모든 채널이 하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를 내보냈다.

“야, TV 소리 좀 키워봐!”

집, 사무실, 카페, 거리, 역 등의 공공장소.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TV만 주목했다.

테러범이 혜성의 역제안에 응한 것이다. 시간과 장소는…….

“와-!”

속보의 다음 멘트는 사람들의 함성에 묻혔다. 테러의 공포는 둘째 문제.

가장 핫한 요원과 잔인무도한 테러범의 대결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

NSA 본부 대회의실.

“뭐? 테러범과 맞짱을 뜨겠다고? 이게 지금 게임인 줄 알아?”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해? 몇 번 잘한다고 치켜세웠더니 기고만장하구먼.”

총국장 이하 간부들은 모두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들도 조금 전에야 TV를 통해 혜성의 제안을 접한 것이다.

“혜성이는 뭐 하고 있어?”

총국장은 장진우를 쏘아보며 물었다.

“현재 여의도로 이동 중입니다.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꺼버렸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GPS로 위치 추적할 수 있잖아? 당장 놈을 데려와!”

“그건 어렵습니다. 이미 모든 언론이 혜성 씨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른 행동을 한다면, 테러범은 즉시 폭탄을 터뜨릴 겁니다.”

장진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뒤 덧붙였다.

“혜성 씨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우린 아직 용의자의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혜성 씨가 겨우 막고 있습니다만, 곧 민간인들의 피해도 나올 테고 말입니다. 테러범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겨우 조금 수그러들었던 간부들이 다시 불타올랐다.

“NSA가 무슨 구멍가게 이름이야? 아무리 비상시라도 절차라는 게 있단 말이지, 절차!”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먼. 단둘이 해결하자고? 승산은 있어? 만약 혜성이가 패하면 어쩔 건데?”

“NSA, 나아가 대한민국이 테러범에게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애원하면서?”

간부들은 테이블을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장진우는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간부들의 이런 반응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때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뭐야?”

총국장은 애먼 비서에게 호통쳤다.

“VIP께 전화가 왔습니다.”

“뭐?”

총국장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VIP가 직접?”

“하긴, 사안이 중대한 만큼 그분이 나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간부들이 작게 수군거렸다. 장진우도 고개를 갸웃하며 총국장을 주목했다.

“네, NSA…… 네. 하지만 그건…… 네, 알겠습니다……”

총국장은 쩔쩔매며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주위를 통제할 요원들만 남기고, 다른 전투 요원들 다 철수시켜. 이혜성 말대로 한다.”

“네? 만에 하나라도 그가 진다면……”

누군가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건 걱정하지 마. 이혜성은 아직 진짜 능력을 보인 게 아니니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면, 이건 이혜성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총국장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형, 미쳤어요? 테러범이 어떤 놈인지 알고 이런 제안을 한 거예요? 당장 취소하고……”

막내는 운전하는 내내 악을 쓰듯 반대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놈에겐 폭탄이 있다는 걸 잊었어? 그랬다간 서울 전역이 불바다가 될걸? 흥분하지 말고 잘 생각해봐. 아카데미에서 배웠지? 테러의 목적이 뭐냐?”

혜성은 조수석에 앉아 힐링 팩터를 상처에 쏟아부으며 물었다. 푸른 약물이 닿을 때마다 상처가 쓰라렸다.

막내는 대답 대신 눈만 끔뻑거렸다. 그걸 왜 묻냐는 표정이었다. 혜성이 대신 대답했다.

“테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구체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것. 이 경우 테러 대상은 특정인이나 특정 시설로 한정되지. 둘째는 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이때 테러 대상은 불특정 다수가 되는 게 보통이다. 어때, 내 말이 틀렸냐?”

“그래서요?”

막내는 화를 삭이며 날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와 언론 플레이. 놈의 테러는 전형적인 2번이다. 즉, 놈은 뭔가 전할 메시지가 있는 거지. 다만 너도 알잖아. 요즘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거. 어지간한 사건으로는 언론의 주의를 끌 수 없었고, 따라서 놈은 이런 사건을 꾸민 거라고. 그러니 언론이라는 미끼를 던지면, 놈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지.”

“……”

“그리고 실제로 놈은 우리의 제안에 응했잖아. 그러니까 이제 놈을 잡기만 하면 된다고.”

혜성은 막내를 안심시키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역제안은 간단했다.

그가 이기면 사건은 종결된다. 반대로 테러범이 이기면, 놈은 언론 앞에서 자기 뜻을 밝히고 유유히 도주한다.

물론 NSA는 놈을 추격할 테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말은 좋죠. 한데 놈이 어떤 함정을 준비했을 줄 알고요?”

“걱정하지 마. 다 계획이 있으니까.”

혜성은 뭔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막내는 여전히 불안해하면서도 계속 차를 몰았다.

잠시 후, 그들이 탄 승용차는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다.

일대는 이미 취재진으로 인산인해였다.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취재진을 통제하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가자.”

혜성과 막내는 차를 공원 근처에 세우고 내렸다.

“왔다!”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테러범과의 맞대결은 이혜성 씨의 단독 결정입니까, 아니면 NSA의 결정입니까?”

플래시와 함께 질문이 쏟아졌다.

- 지금 막 이혜성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 테러범 대 이혜성의 맞대결.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일부는 멀리서 카메라로 혜성을 클로즈업하며 멘트를 날렸다.

혜성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없었다.

경찰과 요원들이 급히 달려와 인간 띠를 만들었고, 혜성과 막내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중앙 광장으로 갔다.

“결전의 영역?”

혜성과 막내는 멈칫했다.

광장에는 괴상한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문양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 20m 정도. 그리고 문양 위에는 일렁이는 검은 장막이 하늘 높이 드리워져 있었다.

바리케이드 뒤의 BJ들이 문양과 장막을 클로즈업하며 해설했다.

- 아, 결전의 영역입니다. 능력자 간의 대결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진법인데, 안에는 아마 다른 함정도…….

- 결전의 영역에 입장하는 순간, 당사자의 목에는 특별한 낙인이 찍힌다고 합니다. 신뢰의 낙인이란 건데, 만약 승패가 결정된 뒤에 약속을 어기면 금제가 발동해…….

“개새끼들. 아주 신났군.”

막내는 눈살을 찌푸리고 BJ들을 노려봤다. 정신 나간 놈들. 어쩐지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누가 이기든 여기서 끝내자. 그게 민간인들의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혜성은 크게 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요.”

막내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형이 가려고요? 지금 형 상태가 어떤지 몰라요?”

막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혜성의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오늘 하루에만 2차 각성을 두 번이나 했다. 그리고 회복할 시간도 없었다.

힐러들이 응급처치를 하긴 했지만, 현재의 체력은 보통 때의 50% 남짓이었다.

여기서 한 번 더 2차 각성을 했다간 그의 몸이 견뎌내지 못할 게 뻔했다.

“저기는 한 명만 갈 수 있는 거 모르세요? 이번엔 제가……”

막내는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나아가려 했다.

철컥, 그는 손목에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끼고 멈칫했다.

어느새 능력자를 봉인하는 특수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혜성이었다.

“가더라도 내가 가고, 죽더라도 내가 죽는다.”

혜성은 수갑 열쇠를 멀리 BJ들이 있는 곳으로 던져버렸다.

“미쳤어요? 진법의 규모로 봤을 때 놈은 최소 AA급이라고요. 안에 어떤 함정을 준비했을지도 모르고요. 그 몸으로 뭘 하려는 건데요?”

막내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그럼 너라고 저놈을 이길 수 있냐? 너도 A급 아니었어?”

혜성은 히죽 웃으며 되물었다.

“나 참, 어이가 없네. 놈을 막을 계획이 있다더니. 그 계획이란 게 겨우 형이 죽는 거였어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진을 강제로 부수고 놈을 잡자고요.”

“아니. 놈이 지목한 건 처음부터 나였잖아. 내가 끝내는 게 맞지. 내가 이기든, 놈이 이기든…… 이제 폭발은 없을 거다.”

혜성은 막내의 말을 잘랐다. 그런 뒤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눈짓했다. 경찰은 머뭇거리다가 막내를 끌어냈다.

“미쳤어요? 당장 수갑 풀지 못해요?”

막내도 완강히 저항했다. 곧 다른 경찰들이 두세 명 더 달라붙어 그를 끌어냈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미안하다.”

그는 막내의 어깨를 툭툭 치고 몸을 돌렸다. 결국 막내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혀어어엉!”

뒤에서 막내의 울음 섞인 절규가 들렸다.

“이 새끼가. 차에서 다리 올리고 무시할 땐 언제고. 이젠 은근슬쩍 형이네.”

혜성은 피식 웃으며 악의 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하마터면 막내를 따라 눈물을 보일 뻔했다.

‘일단 진에 들어가면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고 했지? 언론도 벌 떼처럼 몰려들었고. 국민을 위한 숭고한 희생. 눈물겨운 동료애. 오케이, 이번엔 진짜 제대로 판이 깔렸다.’

그는 못 들은 척하고 장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의 뒤에서 황홀하게 빛났다.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지로 떠나는 비장한 장면처럼.

승산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혜성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갈 때 가더라도 저 미친놈은 반드시 데려간다.’

혜성은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

SJ 기획, 소회의실.

“다행히 VIP께서 승낙해 주셨습니다. 일단 이혜성의 계획대로……”

한수은이 한창 보고하는 도중이었다. 짙은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지금 막 테러범의 신분을 파악했습니다. 이혜성의 주위를 계속 감시하니 과연 한 놈이 걸렸습니다.”

사내는 박무영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붉은 글씨로 [1급비]라 쓰여 있었다.

“어떤 놈인가?”

박무영은 봉투를 열고 서류를 읽으며 물었다.

“이름은 차성진. 무정부주의 국제테러조직, 일명 블랙과 접촉한 자입니다. CIC에서도 그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사진 몇 장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야구 모자를 쓴 사내가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장면, 월드컵경기장과 명동 주위를 배회하는 장면, 그리고 여의도에서 진법을 그리는 장면 등이 찍혀 있었다.

“블랙이 한국에까지 마수를 뻗치는 겁니까?”

한수은은 놀란 표정으로 박무영을 쳐다봤다.

블랙.

능력자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 도쿄, 베이징, 방콕, 뉴욕 등에서 놈들이 자행했던 참혹한 테러들이 떠올랐다.

“차성진은 어떤 능력자야?”

박무영이 놈의 사진을 들고 물었다.

“기본 능력치는 AA급입니다. 특기는 각종 진법의 연성. 다만 전투 방식이…… 이혜성과는 상극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2차 각성을 해도 이혜성의 승률은 20%가 안 됩니다.”

사내는 목소리를 낮춰 놈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쪽 요원들을 투입하는 게 어떻습니까?”

한수은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송도에서 연락이 왔네. ‘아이덴티티’의 세팅이 끝나고 여의도로 출발했다더군. 이대로 이혜성에게 맡긴다.”

박무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혜성과 새 아이템의 조합을 시험해 볼 최적의 상대군. 어디, 얼마나 대단한 시너지가 생길지 한번 볼까?”

그는 기대에 부푼 얼굴로 모니터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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