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3화 (13/150)

# 013. 이혜성을 분석하라. (3)

명동.

강남과 더불어 유동인구가 많기로 손에 꼽히는 곳. 게이트 시대 이후 관광산업이 많이 위축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울의 중심 상권 중 하나였다.

다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과 시끄러운 경적,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이 와중에도 방송하는 BJ들까지. 일대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헉헉.”

혜성과 막내는 숨을 헐떡이며 명동 한복판에 겨우 도착했다.

PM 2:58.

때마침 지나던 교통경찰의 오토바이를 얻어 탄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개새끼.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릴 몰아붙이려는 건가?”

막내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욕설을 잊지 않았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이라니. 미치겠군.”

혜성은 마른침을 삼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다들 대피한 상태. 거리가 휑했다. 상가들도 셔터를 내리고 철수했다. 만약 범인의 목적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었다.

“이상한 게 있어. 놈이 훔쳐 간 오프너는 최대 A급까지 다양한 등급의 게이트를 여는 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왜 B급을 먼저 오픈했을까?”

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꾸 마음에 걸렸다. ‘혹시 날 테스트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글쎄요. 게임처럼 레벨업을 하자는 것도 아닐 텐데.”

막내도 뒤늦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삐삐, 손목시계의 알람이 3시 정각을 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웅하고 대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게이트?”

둘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 소용돌이. B급 게이트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빠르게 발달하고 있었다.

“이번엔 또 뭐가 튀어나오려나?”

둘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몇 걸음 주춤 물러섰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 긴 칼과 방패. 이글거리는 듯한 눈. 보스로 보이는 붉은 해골과 오십여 마리의 해골 병사들이었다.

“오호! 이번엔 좀 쉽군요. 언데드 계열은 태워 죽이면 그만이거든요.”

막내는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섰다.

“조심해라. 마력을 사용하는 몬스터 같으니까.”

혜성은 막내의 뒤로 물러서며 붉은 해골을 주목했다.

놈은 손에 괴상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C급 능력자의 감각으로도 지팡이에서 괴상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침내 긴 고함과 함께 해골들이 지상에 착륙했다. 해골 병사들이 앞에 서고, 붉은 해골은 부하들의 뒤에 숨은 대형이었다.

- 화염의 바다!

막내는 주먹을 쥐고 두 손을 힘차게 교차시켰다. 콰콰쾅, 그를 중심으로 화염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끄어어억!”

해골 병사들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봤죠. 저도 이 정도는 한다고요.”

막내가 혜성을 힐끔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역시 화염계가……”

혜성은 웃으며 대답하다가 말을 잃었다. 막내도 돌연 표정이 굳어졌다.

화염 너머, 해골 병사들의 희생을 앞세워 보스가 살아남은 것이다.

놈은 지팡이를 높이 들고 괴상한 주문을 외웠다. 번쩍, 붉은빛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끄어어어!”

녹아내렸던 해골 병사들이 스르르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이름처럼 절대 죽지 않는 몬스터들. 놈들이 명동의 중심가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거참. 이것도 반칙이지.”

혜성과 막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크아아아!”

해골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돌격했다.

- 화염의 바다!

막내가 거대 화염 공격으로 해골 병사들을 녹여버렸다.

“지금이다. 보스도 죽여.”

“제 EF(Energy Force) 수치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큰 기술은 당연히 딜레이가 있다고요.”

혜성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막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후로는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막내가 거대 화염으로 해골 병사들을 녹인다. 그러면 막내의 딜레이 동안 보스가 해골 병사들을 재소환했고, 놈들의 소환이 완료되면 막내가 다시 화염의 바다를 만들었다.

‘해골 병사를 무시하고 바로 보스를 공격할까?’

혜성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 다른 요원들은 테러범의 요구에 따라 철수한 상태였다. 따라서 주위에는 그 흔한 바리케이드도 없는 상황. 게다가 도로변에는 아직도 피하지 못한 차량과 사람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해골 병사들이 명동 상가 거리 밖으로 나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내가 보스를 맡지.”

“형이요?”

막내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혜성은 이곳으로 오는 동안 힐링 팩터와 영약을 쏟아부어서 60% 가까이 체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다만 그 때문에 2차 각성도 사라진 터. 혼자 붉은 해골을 상대하는 건 조금 무리일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라. 네크로맨서 계열은 물량이 무서운 거지, 그 자체의 공격력은 형편없으니까. 아마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자신만만한 혜성.

“알았어요.”

막내는 여전히 불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혜성이 나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위치에서 보스까지의 거리는 약 30m. 보스는 지팡이를 높이 들고 해골 병사들을 재소환하려는 찰나였다.

‘지금이다!’

혜성은 놈을 향해 돌진했다. 아직 2차 각성 전. 따로 카피한 스킬이 없기 때문에 그는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팟, 보스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야?”

혜성의 주먹은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형, 1시 방향!”

막내의 외침이 들렸다.

괜히 보스가 아니었다. 보통 때는 흐느적거리듯 서 있었지만, 필요에 따라선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타입이었다.

“젠장!”

혜성은 다시 이를 악물고 놈을 향해 돌진했다. 결과는 동일.

그는 놈의 그림자도 잡을 수 없었다. 그 사이에도 놈은 해골 병사들을 계속 소환했고, 이를 막느라 막내도 점점 지쳐갔다.

“영악한 놈. 지구전으로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생각인가?”

혜성은 욕설을 내뱉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데미지가 없기 때문에 2차 각성도 불가.

게다가 놈이 사용하는 마력의 원천은 괴상한 지팡이였기 때문에 스킬 카피도 불가능했다.

“형! 빨리!”

뒤에서 막내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도 기진맥진. 화염 공격은 앞으로 두세 번이 한계였다.

- 화염의 바다!

콰쾅, 막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화염을 쏜 찰나였다.

‘이거다! 몬스터도 잡고, 순직도 하고!’

혜성은 돌연 방향을 바꿔 막내의 화염을 향해 돌진했다.

“앗!”

“크아아아!”

막내의 짧은 비명과 혜성의 긴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퍼퍼퍼펑, 요란한 폭발과 함께 해골 병사들이 녹아내렸다.

“끼에에엑!”

붉은 해골은 뒤로 슬쩍 물러나며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해골 병사들을 재소환하려는 찰나.

“화염의 바다!”

화염 속에서 혜성의 고함이 터졌다.

“뭐?”

막내는 황당한 눈으로 화염 속을 유심히 살폈다. 은은한 서기와 황금빛 눈동자. 혜성의 2차 각성이었다.

콰쾅, 막내의 화염 속에서 새로운 화염이 불어닥쳤다.

타깃은 붉은 해골. 놈은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화염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크고 범위가 넓었다.

약 50m의 거리가 완전히 불바다가 됐다. 놈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니, 행동반경 전체를 불바다로 만든 것이다.

“끄아아아!”

놈의 처절한 외침이 들리고, 얼마 후 게이트가 스르르 닫혔다.

“형! 괜찮아요?”

막내는 손을 내밀어 화염을 빨아들였다.

“크윽!”

옅어지는 불길 속에서 비틀거리는 혜성이 보였다.

등에 심한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주위에 숨어 있던 힐러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미쳤어요? 왜 그런 무식한 짓을 한 거예요?”

막내는 급히 혜성을 부축했다.

“그 새끼가 자꾸 도망만 다니잖아.”

혜성은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히죽 웃었다.

사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이 났다.

원래 계획은 붉은 해골을 향해 화염을 쏘고 자신은 막내의 화염에서 장렬히 산화하는 것. 한데 막내는 화염을 만드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화염을 거둬들이는 능력도 있었던 것이다.

“정말 강한 건지, 무식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막내의 투덜거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혜성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죽겠다.”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루에 2차 각성을 두 번이나 하다니. 이젠 정말 힘이 없었다.

부웅, 그때 혜성의 바지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또 놈인가?”

혜성은 핸드폰을 꺼냈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그러나 그때, 그의 입꼬리는 웃는 것처럼 한쪽으로 올라가 있었다. 놈에게 휘둘리는 건 질색. 슬슬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됐다.

***

명동역 인근 주차장.

야구 모자를 쓴 사내가 차 안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혜성이 스스로 불길에 뛰어들어 2차 각성을 유도, 카피한 스킬로 붉은 해골을 죽이는 장면이 나왔다.

“찾았다. 네 녀석의 약점.”

사내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

SJ 기획, 회의실.

“이혜성은 아직 스스로 2차 각성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군. 자네라면 보스를 어떻게 잡을 텐가?”

박무영은 모니터를 응시한 채 물었다. 혜성은 막내의 부축을 받으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놈의 이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놈을 공격하는 척하다가 다음 위치를 공격하면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한수은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눈썰미가 예리하군. 이혜성은 그 패턴을 죽었다 깨어나도 알아내지 못할 거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바로 경험 부족. 그런 건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니까.”

“한데 좀 이상합니다. 두 번의 게이트가 마치 이혜성을 시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지닌 능력을 낱낱이 분석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게 당연하지. 자넨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혜성도 인지도 하나는 전국구니까. 따라서 앞으로 나타날 적들은 지금처럼 그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나타날 터. 이혜성도 그걸 이겨내야만 초일류 능력자가 될 수 있을 거야.”

박무영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테러범을 떠올렸다.

견제, 분석, 함정 등. 이런 건 비겁하다고 욕할 게 아니었다.

전투란 단순히 능력의 고하를 가리는 자리가 아닌 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꺾으면 그만이었다.

“테러범도 이혜성의 약점을 봤으니 곧 나타나겠지. 그러니 이번엔 우리가 좀 도와줘야겠다.”

“네? 어떻게 말입니까?”

“코드명 ‘아이덴티티’. 그걸 이혜성에게 이식한다.”

“진심입니까?”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아이덴티티도 혜성만 고집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애초에 다른 임자가……”

한수은은 아이템의 원래 주인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주인 예정자였지만.

유수혁.

패기만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자였다. 자신에게 오기로 된 아이템을 다른 사람이 가로챘다는 걸 알면 결코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도 수혁이의 반응이 조금 걱정되긴 한다. 하지만 유수혁은 이미 실력자.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면 능력이 더 올라가겠지만, 인상 폭은 크지 않을 테지. 이전의 능력을 100이라 하면 120 정도나 될까? 반면 혜성 씨는 현재의 능력이 낮은 덕분에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지. 만약 현재의 혜성 씨에게 아이덴티티를 더하면 어떻게 될까?”

박무영은 씨익 웃으며 한수은을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당장 K 연구소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성과 아이덴티티의 조합이라. 과연 어떤 시너지가 나올까?”

박무영은 손깍지를 끼고 다시 모니터를 주시했다. 생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

A 신문사 3국.

“이혜성이 또 이겼다고? 영상 확보는?”

“안 그래도 근처 빌딩에서 촬영한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좋았어! 당장 분석실로 보내고……”

회의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신문이 아침, 저녁 두 번 발행되는 건 옛말. 요즘엔 신문사도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기사를 쏟아냈다.

“긴급 뉴스입니다, 긴급!”

막내 기자가 핸드폰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제보를 받는 공용 전화였다.

“또 뭐야? 방금 범인의 3차 지령이 내려왔잖아?”

누군가가 큰 소리로 물었다. 다른 기자들도 막 3차 장소로 이동하려는 찰나였다.

“범인이 아닙니다!”

“그럼 누군데?”

“이혜성입니다.”

“뭐?”

수십 명의 기자가 동시에 비명처럼 외쳤다. 범인이 아니라 이혜성이라고?

기자들은 옆 사람과 수군거렸지만, 다들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이혜성이 범인에게 역제안을 했습니다.”

막내 기자는 핸드폰에 녹음된 혜성의 목소리를 재생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