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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1화 (11/150)

# 011. 이혜성을 분석하라. (1)

PM 1:15, NSA 본부 대회의실.

“이혜……”

혜성은 문을 열고 거수경례를 하려다가 움찔했다.

숨 막힐 듯 무거운 공기가 회의실을 지배하고 있었다.

국장 이하 주요 간부들은 물론, 장진우와 막내 등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혜성은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국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TV에서 봤겠지만, 정체불명의 테러범이 자네를 요구했네.”

장진우가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놈의 요구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언론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 BJ들이 달라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바. 해외에서도 계속 속보로 내보내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입니까?”

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네. 자네를 콕 짚은 걸 보면, 자네와 면식이나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특별히 누구 짚이는 사람이라도 있나?”

국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체구는 작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저하고요?”

혜성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론 그도 대인관계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살다 보면 사소한 일로 다툴 때도 있는 법. 하지만 폭탄 테러를 일으킬 만큼 누군가에게 크게 원한을 산 적은 없었다.

“혹시 지난번의 뇌전의 광견이나 그 부하는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네. 뇌전의 광견은 현재 모처에서 우리 쪽 요원들이 취조 중이네만, 현재까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놈은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했더군. 그리고 조금 전, 테러범의 2차 예고가 왔네. 오후 2시까지 월드컵경기장으로 오라더군. 방어구나 각종 무기는 몸에 지니지 말고 말이야.”

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회의실 중앙의 TV를 켰다. 모든 방송사에서 놈의 2차 예고를 다루고 있었다.

1차 때와 같은 목소리. 놈은 제 할 말만 하고 곧 전화를 끊었다.

“맨몸으로 오라는 겁니까? 게다가 2시라니. 너무 빠듯합니다. 혹시 저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려는 게 아닙니까?”

“그런 것 같네. 시간을 촉박하게 주고 장소를 계속 바꿈으로써 우리의 대응을 마비시키려는 거지.”

영악한 놈. 국장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NSA라도 서울 전역을 24시간 감시할 수는 없었다.

“놈은 지금 이걸 일종의 게임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 아이템이나 장비를 금지하는 대신 자네가 파트너 한 명을 데려오도록 허락했네.”

“파트너?”

혜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회의실을 슬쩍 둘러봤다.

며칠 동안 대활약을 했지만, 아직은 전투 보조팀 소속이었다. 다른 전투 팀원처럼 파트너가 있을 리 없었다.

“제가 혜성 씨의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장진우가 손을 살짝 들고 나섰다.

“오! 공간의 마법사라면 믿을 만하지.”

국장은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각 팀에서 에이스급 능력자들이 거론됐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다른 사람과 하고 싶습니다.”

혜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 말인가?”

“저 녀석입니다.”

국장의 물음에 혜성의 시선은 회의실 말석으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따라 한곳으로 향했다.

김성후라는 이름보다 막내라는 별명이 더 익숙한 요원이었다. 특급 힐러들의 치료와 각종 아이템 덕분에 부상은 멀쩡히 회복된 상태였다.

“엥? 저, 저요?”

막내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사실 그는 혜성과의 친분 때문에 이 자리에 억지로 앉아 있었다. 발언은 고사하고 다른 간부들과 눈을 마주칠 계급도 아니었다.

“응. 너밖에 더 있어?”

“아니, 제가 왜요?”

막내는 곧 울상이 됐다.

“김 요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더 강한 능력자를 데려가야 하네. 내가 거북하면 다른 팀장급 요원을 데려가는 게 어떻겠나?”

장진우가 넌지시 말했다. 다른 요원들도 현장 근처에서 대기하겠지만, 놈에게 폭탄이 있는 이상 함부로 지원할 수 없을 터. 파트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이번 일은 개별 능력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의 호흡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 요원과는 지난번에 뇌전의 광견을 상대하며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말입니다. 따라서 제 파트너로는 김 요원이 제격입니다.”

혜성은 막내를 힐끔 쳐다본 뒤 국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막내가 사정하는 듯 뭐라고 입을 뻥긋거렸지만, 그는 못 본척했다.

“호흡이라. 하긴, 그거도 중요하지. 1 더하기 1이 꼭 2가 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국장은 좌우의 간부들과 잠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알겠네. 다른 건 없나?”

이윽고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가는 길까지 차량을 통제해 주시고, 고척 주위에도 소개령을 내려 주십시오.”

“알겠네.”

혜성은 꾸벅 묵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요.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막내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억지로 끌려나갔다.

***

“나한테 왜 그래요? 솔직히 말해 봐요. 나 미워하죠?”

막내는 운전대를 잡고 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혜성이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녀석은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다시는 혜성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겠다고 단단히 다짐한 모양이었다.

혜성이 막내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막내가 그 자리의 요원 중에서 그나마 제일 약한 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터.

“그런 거 아냐. 정말 너하고 호흡이 잘 맞아서 그런 거라니까.”

혜성은 자동차 추격전을 떠올렸다. 빙계 능력자가 앞에서 달리며 공격하던 상황. 실제로 그와 막내는 제법 죽이 맞았다.

“그런데 옛날에 이거랑 비슷한 영화 있지 않았냐?”

혜성은 장비를 점검하며 화제를 돌렸다.

몸에 달라붙는 특수 강화복을 안에 입고, 겉에는 헐렁한 트레이닝 복을 입었다. 막내도 비슷한 복장이었다.

“아, 대머리 아저씨가 주연으로 나오던 그 영화요? 안 그래도 그 생각 했어요. 제목이 <다이하드>였던가?”

막내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왜? 결국 주인공이 이기는 영화였잖아.”

“뭐, 이기기는 했죠.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만신창이가 된 게 문제였지만. 한마디로 개고생이라고요.”

녀석은 치를 떨었다.

“걱정하지 마. 이번엔 영화하고 다를 거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막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처럼 고생하지 말고 쉽게 가자는 말이었지만, 혜성은 다른 의미였다.

‘이번엔 주인공이 장렬히 순직하는 새드 무비다. 보호 대상은 바로 너. 내가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확실히 지켜주마.’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결의를 다졌다.

잠시 후, 저 멀리에 경찰의 통제선이 보였다. 혜성은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봤다. PM 1:52. 슬슬 시간이 됐다.

***

월드컵경기장.

넓은 축구장에 둘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뭔가 으스스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군.”

혜성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방송국의 카메라는 전부 철수했고, BJ들의 극성스러운 드론들도 경찰이 전부 제거한 상태였다.

물론 범인이 어딘가에 카메라를 설치해 지켜보고 있겠지만, 그것까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삐삐, 손목시계가 알람을 울렸다. 2시 정각.

“시작인가? 어떻게……”

막내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부우우웅, 대기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원지는 그들의 머리 위. 아주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게이트?”

혜성과 막내는 동시에 위를 쳐다봤다.

맑은 하늘에 붉은 점이 떠 있었다. 처음엔 손톱처럼 작은 크기였지만, 점점 크고 뚜렷해졌다.

휘위잉, 주위의 공기가 점에 빨려 들어가듯 휘몰아쳤다.

삐-잉, 둘의 핸드폰과 스마트워치도 동시에 시끄럽게 울어댔다. 게이트 생성 경보였다. 장소는 월드컵경기장, 등급은 B였다.

“이상한데요. 아무리 B급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열리다니.”

막내가 알람을 끄며 중얼거렸다.

게이트는 생성된다고 해서 바로 열리는 게 아니었다. 게이트마다 시차가 있지만, B급은 보통 1시간가량의 여유가 있었다.

한데 지금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게이트는 동영상을 고속으로 재생하는 것처럼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이어서 혜성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발신자는 본부.

- 지금 막 송도 K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네. 테러범이…….

“네?”

혜성은 듣다가 비명처럼 외쳤다.

말도 안 돼.

그는 곧 전화를 끊고 다시 게이트를 올려다봤다. 게이트는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5분.

- 끄아아악!

게이트 너머에서 기분 나쁜 울음이 들렸다. 전신의 솜털이 뻣뻣하게 곤두섰다.

“뭡니까? 범인의 정체라도 밝혀냈습니까?”

막내도 게이트를 응시한 채 다급하게 물었다.

“정부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던 아이템 몇 개가 도난당한 모양이야. 누가 훔쳐 갔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이번 사건의 범인이 가져간 것 같아.”

“무슨 아이템이요?”

“코드명 ‘오프너’.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생성하고 여는 아이템이라더군.”

망했다. 혜성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뭐? 이쪽에서 게이트를 만든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아니, 그보다 그런 걸 왜 만들었대요?”

막내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게이트가 출현한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인류는 아직도 게이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왜 게이트가 생성되는지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였다.

“게이트 너머를 탐사하기 위한 용도라더군. 게이트는 몬스터가 나오는 지옥인 동시에, 각종 진귀한 아이템과 자원이 있는 노다지이기도 하니까. 게이트의 근원을 파헤치고, 동시에 게이트를 영원히 막는다. 명분은 그럴듯하지.”

혜성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걸 만든 걸까?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범인의 목적이나 분실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생성된 게이트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껏해야 B급일 테니까. 놈들이 나오자마자 제가 화염으로 한 방에 쓸어버릴게요. 같은 화염계의 몬스터만 아니라면야.”

막내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세를 취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래. 화염계만 아니라면.”

혜성은 녀석을 슬쩍 바라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같은 화염계’라는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자연계 능력자의 약점 중 하나는 속성을 탄다는 것이었다. 다른 속성에게는 별 영향이 없지만, 같은 화염계에게는 50~200%까지 다양한 데미지 반감이 걸렸다.

보통 전투팀에서 다양한 속성을 지닌 능력자들이 한 팀을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 끄아악!

게이트 너머의 울음들이 크고 강해졌다. 보나 마나 보스급 몬스터 한 마리와 잔챙이들 몇 마리일 터.

둘은 눈을 빛내며 놈들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아직 게이트가 덜 열렸지만, 성질 급한 몬스터 몇 마리가 억지로 몸을 내밀었다. 붉은 피부, 도마뱀처럼 생긴 다리, 긴 꼬리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하필이면 저놈이?”

이윽고 녀석의 정체를 확인하자, 막내는 표정이 굳어졌다.

“형. 미안해요. 이번에는 혼자 파이팅해야 할 것 같아요.”

녀석은 혜성을 쳐다보며 주춤 물러섰다. 조금 전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없었다. 대신 난감한 표정으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허! 저놈을 나 혼자서 처리하라고?”

혜성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높였다.

B급 몬스터 살라만더.

공격력이야 별거 아니었지만, 화염계 공격에 극상의 내성을 가진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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