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순직이 힘들다-10화 (10/150)

# 010. 내 이름을 불러줘. (4)

이젠 폭탄만 보면 몸을 날리는 게 습관이 될 것 같았다.

‘굿 바이!’

혜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폭발, 지각할 사이도 없는 짧은 고통, 장렬한 산화, 훈장과 순직, 각계의 애도…… 어라?

그의 생각은 여기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반응이 없었다.

“뭐지?”

그는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설마,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하하핫!”

장진우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뒤에는 검은색 특수복을 입은 대원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도 혜성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황석구는?’

그는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석구는 기폭장치를 든 채 기절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목덜미에 특수 마취탄이 박혀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단호한 결의라니. 역시 자네답군.”

장진우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설마 우리가 놈의 스킬이 분신술이라는 것도 몰랐을까?”

특수 대원 하나가 웃으며 덧붙였다.

“아.”

그제야 혜성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곧 전후 사정이 그려졌다.

장진우나 특수팀은 혜성이 상대하고 있는 게 분신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문제는 중식당 어딘가에 숨어 있는 진짜 황석구를 찾는 것. 혜성을 이용해 가짜 황석구를 공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 화가 난 진짜 황석구가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나타날 테고, 그 순간 뒷문으로 잠입한 다른 대원들이 진짜 황석구를 제압하는 게 작전이었다.

“미안하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거든. 아마 언론에는 자네 혼자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보도될 거야. 우리 회색 여우는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곤란하니까.”

잠시 후, 장진우가 웃음을 거두고 사과했다.

“아닙니다.”

혜성은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이 됐다.

“상황 클리어. 대기 중인 지원팀은……”

특수 대원의 무전을 끝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아니, 종결된 것으로 보였다.

***

이틀 후, NSA 별관 대강당.

각계에서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정복을 입은 요원들이 가득 서 있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혜성. 그가 정복을 입고 단상에 선 가운데, 총국장이 직접 2급 동장 훈장을 수여했다.

일 년에 서너 명뿐인 영광스러운 자리였고, 특히 전투 보조팀에서 훈장을 받는 건 그가 최초였다.

“……이상으로 이혜성에게……”

총국장이 혜성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는 순간, 요원들이 열렬히 손뼉을 쳤다. 장진우와 회색 여우 팀원들, 붉은 늑대의 막내 등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유언이 뭐였다고? 단호한 결의?”

누군가가 크게 말하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졌다.

혜성은 수여식 내내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주목받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훈장을 받고 뭐라고 짧게 연설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30분 뒤, 혜성은 행사를 끝내고 보도실에서 기자들과 마주했다.

- 폭탄을 몸으로 막았다고 하던데 어떤 기분…….

- DDP에 이어 여의도에서도…….

- 그 이름처럼 혜성처럼 나타난…….

한꺼번에 질문이 쏟아지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추후 기관 홍보팀을 통해 전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포상금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누군가가 웃으며 물었다.

혜성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뭐하긴. 부모님께 좀 드리고. 태호 녀석과 동료들에게도 한턱 쏘고. 남은 돈은……’

혜성은 무심코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번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짐짓 침통한 표정으로. 플래시가 사방에서 번쩍이며 그의 얼굴을 담아냈다.

“포상금은 황석구처럼 불의의 사고를 당한 능력자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겠습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돈입니다만,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작은 씨앗이 되고 싶습니다.”

“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몇몇 기자들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 혜성에 대해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설픈 영웅심에 사로잡힌 광대, 혹은 돈 때문에 나대는 위선자라는 말도 떠돌았다. 한데 혜성은 그런 말이 무색하게 전액 기부를 택한 것이다.

“역시 이혜성!”

기자 중 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박수는 물결처럼 옆으로 퍼졌고, 이내 보도실 전체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혜성의 이름을 연호하며.

‘크윽!’

혜성은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담담한 표정과 달리, 내심 피눈물이 흘렀다. 포상금은 약 오백만 원.

훈장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지만, 그와 같은 월급쟁이 하급 요원에게는 제법 큰돈이었다.

‘할 수 없지. 미래를 위한 투자니까. 투자!’

그는 자신의 순직 후 각계에서 쏟아질 조위금을 떠올렸다.

각 기업이나 민간단체, 개인들의 조위금. 일부 연예인들의 보여주기 식 기부와 유사했다.

지금의 이 투자는 훗날 몇 억 원에 이르는 조위금으로 돌아올 터.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모두가 혜성만 주목하는 상황.

혜성은 고민하다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조국의 안보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 언제든 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죽음을 불사하는 단호한 결의. 저 이혜성이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결연하게 외쳤다. 오글거렸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대협 이혜성. 순직 후의 조위금을 위해서라면 이런 연극은 뻔뻔하게 할 수 있었다.

***

A 신문사 3국.

주로 능력자와 관련된 뉴스를 다루는 부서는 오늘도 보도 회의로 정신이 없었다.

화제의 중심은 단연 이혜성. 이미 많은 언론사에서 혜성을 다뤘기 때문에 뭔가 차별화된 기사가 필요했다.

“이혜성. 우리 입장에선 참 재미있는 친구야. 지금까지의 히어로와는 다르거든. 보통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언성 히어로 타입이 많은데, 이 친구는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행동한단 말이지. 사람들 반응은 어때?”

국장은 웃으며 테이블 좌우를 쳐다봤다. 베테랑 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게 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호평입니다. 어쨌거나 두 번이나 몸을 바쳐 시민들을 구한 영웅이니까요.”

“얼마 안 되지만 포상금을 전액 기부한 것도 컸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능력자는 돈만 밝히지 않았습니까? 사고도 많이 치고 말입니다. 이런 능력자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일부러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카데미에는 혜성을 롤모델로 여기는 학생이 늘었다고 합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정의로운 요원을 꿈꾸는 거죠.”

베테랑 기자들은 각 인터넷 게시판의 인기 댓글들, 다른 언론사의 보도 등을 간단히 언급했다.

불과 며칠 만에 신드롬으로 발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오,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게 이혜성의 큰 그림인가? 아무튼 잘됐군. 이번엔 이걸 중심으로 해서 이혜성 특집으로 가자고. 능력자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특히……”

국장이 한창 말하는 도중이었다.

“국장님.”

막내 기자가 전화기를 들고 다급하게 들어왔다.

“뭐야? 회의 중에는 메모만 남기라고 했잖아?”

국장은 신경질적으로 막내를 쏘아봤다.

“꼭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연쇄 폭탄 테러를 할 거라는데요?”

“어떤 미친놈이야?”

국장은 짜증을 내며 마지못해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이런 장난 전화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네. A 신문사……”

통화를 시작하고 얼마 후,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막내 기자에게 손짓해 회의실의 TV를 켰다.

혜성이 활약했던 중식당 부근 주차장이 나오고 있었다. 완전히 전소된 차량들, 바쁘게 움직이는 경찰들과 구급요원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울부짖는 사람들까지. 주차장 일대는 폭탄을 맞은 듯 폐허가 돼 있었다.

“이거 뭐야?”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입만 벌렸다.

이윽고 국장은 전화기를 외부 스피커로 전환했다.

- 어때? 이제 내 말이 좀 믿어지나?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하는 게 뭡니까?”

국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 지금 이 통화는 잘 녹음하고 있겠지? 가서 NSA에 전해라.

“네?”

- 며칠 전, 여의도에서의 사건을 우연히 목격했다. 아주 재미있는 요원이 있더군. 이혜성. 놈을 내가 말하는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보내라. 시간과 장소는 조만간 다시 통보하지. 만약 내가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 이혜성이 없을 경우, 주차장의 폭발은 애들 장난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의문의 남자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뚜-, 통화 종료음만이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맴돌았다.

국장과 기자들은 한동안 멍하니 전화기만 쳐다봤다. 잠시 후.

“야, 들었지? 당장 NSA에 연락해! 다른 팀에도 지원 요청하고! 이 시간부로 다른 취재는 종료. 이혜성 하나에게만 집중한다.”

다들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새가 났다. 신문사 역사상 최고의 특종이 될 것 같았다.

같은 시각, 다른 신문사와 방송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송도 K 연구소, 휴게실.

“어떤 미친 새끼야?”

연구원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비볐다. TV 뉴스에서는 폭탄 테러에 당한 야외 주차장이 나오고 있었다. 중식당의 폭탄은 이것에 비하면 장난감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소장님!”

선임 연구원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뒤에는 책임 연구원이 땀을 흘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또 뭐야?”

나이 지긋한 연구원은 대번 인상을 찌푸렸다. 이름이 불린 것만으로도 괜히 불안해졌다. 주위의 다른 연구원들도 일제히 그들을 쳐다봤다.

“‘아이덴티티’ 때문에 그런 거야? 그건……”

“그게 아닙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만, 더 큰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번엔 책임 연구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데?”

“지하에 보관 중이던 프로토타입 아이템이 사라졌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없어졌는데?”

“그게……”

책임 연구원은 소장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뭐가 없어진 거지? 외부에서 침입자가 든 건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침입자가 여기에 들어온 거야?”

다른 연구원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책임 연구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소장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리는 것으로 보아 보통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이윽고 소장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TV 뉴스로 시선을 돌렸다.

TV에는 혜성의 사진과 함께 범인이 그를 요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저건 단순한 폭탄 테러가 아니다. 물론 폭탄도 문제지만…… 자칫 최악의 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다.”

소장은 신음처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