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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6화 (6/150)

# 006. 2차 각성 (2)

“쿨럭. 설마 나와 같은 스킬을 가진 놈과 싸우게 될 줄이야. 이거 참 재미있군.”

잠시 후, 또라이는 마른기침을 해대며 몸을 일으켰다.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둘의 거리는 약 20m.

“으아아!”

놈은 긴 기합과 함께 달려들었다. 혜성 또한 제자리에서 한번 가볍게 폴짝 뛴 후,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콰쾅!

뇌전과 뇌전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뇌전이 주위의 어둠을 몰아내고 높이 치솟았다. 황홀하도록 눈부신 섬광.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막내는 눈살을 찌푸리고 섬광의 중앙을 바라봤다. 이윽고 섬광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처음에는 대등했지만, 곧 어느 한쪽이 밀리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뇌전을 지닌 또라이. 놈이 수세에 몰린 것이다. 자세히 보니 또라이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카피의 완성도와 위력이 오리지널보다 더 높다고?’

막내는 경악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또라이가 뭘 착각했는지.

분명 혜성은 일정 수준 이상의 데미지를 받아 2차 각성을 하고, 동시에 상대의 스킬을 카피하는 능력자였다.

다만 그가 카피하는 건 오리지널 이상. 상대가 C급이라면 혜성도 겨우 B급이 되지만, 지금처럼 상대가 AA급이라면 혜성은 AAA급 이상으로 강해지는 타입이었다.

상대의 수준에 맞춰 자신의 수준도 달라지는 스킬 카피.

이것이 혜성의 2차 각성이었다.

***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또라이는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기술의 숙련도나 위력. 놈은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위였다.

이대로 가다간…….

“잠깐? 내가 지금 놈에게 겁을 먹은 건가? 내가?”

그는 ‘내가?’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사이에도 혜성의 뇌전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이건 그의 자존심 문제였다.

“내가 너한테 질 것 같아?! 나 뇌전의 광견이야!”

또라이는 뇌전이 실린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방어는 무시한 마구잡이 공격이었다.

“흥!”

혜성은 뒤로 살짝 물러섰다. 흥분은 금물. 놈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순간, 카운터를 날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또라이의 공격은 속임수였다. 그가 물러난 순간, 또라이도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놈은 양손을 교차시켜 둘 사이에 뇌전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마치 반투명하고 거대한 노란색 벽이 둘을 갈라놓은 것 같았다.

“뭐냐?”

혜성은 뇌전의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콰직, 손에 묵직한 느낌이 왔지만 생각보다 단단했다.

억지로 두드리면 깨트릴 수 있겠지만,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았다.

커헉.

또라이는 상체를 숙이고 뭔가를 억지로 토해냈다. 처음에는 너무 맞아서 구역질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놈이 토해낸 것은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노란색 구슬. 내부에는 수십 개의 작은 번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원기 폭발?”

“자폭?”

혜성과 막내는 동시에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놈이 뱉어낸 건 각성자 능력의 근원이자, 단전에 생성된 초고밀도 에너지 덩어리. 일명 ‘원기’였다.

일부 최상위 각성자는 최후의 수단으로 원기를 꺼내 자폭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걸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놈은 자연계 중에서도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뇌전계 각성자.

크기는 작았지만, 그 안에 압축된 에너지는 주위 수십 미터를 초토화하고도 남을 것이다.

“크헉.”

또라이는 비틀거리다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뇌전의 울타리도 대기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능력을 쓸 수 없을 터. 갑자기 몇 년은 늙은 것 같았다.

“내가 널 이길 수는 없지만, 너도 날 이길 수는 없다.”

놈은 혜성을 향해 히죽 웃었다. 질 수 없다는 마지막 자존심. 광기마저 느껴졌다.

“저 미친 새끼!”

혜성은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비장의 카드라고 꺼낸 게 자폭이라니. 황당했다.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 넌 어떤 선택을 할 거냐?”

또라이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혜성을 쳐다봤다.

언제 폭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안에 중상을 입은 막내를 둘러업고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치는 건 무리. 게다가 근처에는 그들이 운반하던 아이템도 있었다.

무슨 아이템인지는 모르겠지만, 원기의 폭발에 휩쓸리면 크게 손상될 수도 있었다.

보통의 NSA 요원이라면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혜성은 달랐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할 수 없군.”

혜성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이어서 그는 막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놈의 원기를 향해 지체 없이 내달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 설마?”

또라이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혜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뜻밖이었다.

“선배님!”

막내도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혜성은 공중에서 막내를 향해 엄지를 슬쩍 들어 보였다. 그리곤 그대로 놈의 원기를 덮쳤다.

놈이 원기를 토해낸 다음부터 그가 원기를 덮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초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동료와 임무를 위한 장렬한 순직. 훈장 및 각종 포상. 각계의 위로금. 오케이!’

이어질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차피 맞이할 죽음. 그게 조금 빨라졌을 뿐이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아무에게도 인사를 못 한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원기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며, 혜성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두두두!

난데없이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벌써 가는 건 좀 이르지 않나?”

소음 가운데서 누군가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에겐 희망을, 반면에 혜성에게는 불길한 예감을 주는 목소리였다.

“뭐?”

혜성은 실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꼬리에 NSA의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헬리콥터가 날아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

혜성이 뭐라고 외치려는 찰나였다. 헬리콥터에서 누군가가 낙하산도 없이 뛰어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신사였다. 각진 얼굴과 은테 안경 때문에 언뜻 보면 대학 교수님 같은 인상이었다.

파팟, 그는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허공을 뛰어넘더니, 곧 혜성의 곁에 사뿐히 착지했다.

시간은 불과 2초 남짓.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혜성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부웅, 그의 밑에 깔린 원기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신사를 직접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누군지는 대충 짐작이 됐다.

검은 정장, 공간을 뛰어넘는 전음, 순간이동, 그리고 아공간을 이용한 폭탄의 제거까지. NSA 내에서 이런 능력을 사용하는 자는 오직 한 명이었다.

공간의 마법사 장진우.

NSA 특수팀 회색 여우의 팀장이자, 그 별명처럼 공간을 다루는 AA급 능력자였다.

‘실수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혜성은 울상이 됐다. 배에 깔린 뇌전의 원기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었다.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전후 사정이 대충 그려졌다. NSA 요원들의 장비에는 특수 GPS와 통신장비가 기본적으로 부착돼 있었다.

붉은 늑대팀의 사고는 실시간으로 본부에 전해졌을 터. 대기하고 있던 회색 여우팀이 헬기를 타고 급파됐을 것이다.

“늦어서 미안하네. 이제부턴 우리에게 맡기게.”

신사는 그의 마음도 모르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미소 지었다.

혜성의 활약은 여기까지. 요란했던 추격전과 대결치곤 허무한 결말이었다.

또라이의 원기는 장진우의 아공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소멸했다. 이어서 헬리콥터가 근처에 착륙했고, 회색 여우와 의무팀이 우르르 쏟아졌다.

“괜찮으십니까?”

남자 간호사들이 들것을 들고 혜성과 막내에게 달려들었다.

“괜찮……”

혜성은 오른손을 들며 혼자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다리가 크게 휘청거렸다.

2차 각성은 2차 각성이고, 데미지는 데미지였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리면서 누적된 데미지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간호사들이 급히 그를 들것에 눕혔다.

“젠장.”

그는 쓰게 웃으며 옆을 쳐다봤다.

또라이는 웃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돼 말할 힘도 없었지만, 눈은 여전히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징그러운 새끼. 다시는 보지 말자.”

혜성은 녀석을 외면하고 눈을 감았다.

그가 막 헬리콥터에 실리기 직전, 장진우와 회색 여우 팀원 5명은 그를 에워쌌다.

일동 차렷. 다들 엄숙한 표정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동료를 위한 헌신. 이혜성, 그대야말로 우리 K-NSA의 표상이다!”

장진우와 팀원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거수경례를 올렸다. 막내 또한 잠깐 의무팀을 세우고 그를 향해 경례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름도 모르던 지원팀의 뺀질이에게.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혜성도 NSA의 구호를 외치며 그들을 향해 경례했다. 이윽고 그가 먼저 손을 내린 다음에야 다른 요원들도 손을 내렸다.

그는 다시 헬리콥터로 실려 가며 눈을 감았다. 본부로 돌아가면 명예, 훈장, 특진 등이 줄줄이 따라올 것이다.

아마 방송국의 인터뷰 요청도 끊임없이 이어질 터. 하지만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그래도 하나 배운 게 있군. 지원팀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것. 다음엔…… 반드시 순직이다.”

혜성은 쓰게 웃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

송도 외곽 K 연구소.

“저어, 코드명 ‘아이덴티티’ 있지 않습니까? 그것과 관련해서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선임 연구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급하게 달려온 탓에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쪽에서 무사히 회수했잖아? 회색 여우팀이 무사히 배달했고 말이야.”

맞은편에 앉은 책임 연구원이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며 되물었다. 두꺼비처럼 불룩한 외모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책상 위에는 다음 프로젝트의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탓에 안 그래도 신경질적인 성격이 더욱 예민해진 상태였다.

선임 연구원은 쭈뼛거리다가 대답했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우리 쪽 요원이 그걸 회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곤데?”

“금고와 봉인이 깨지고, ‘물건’이 예정보다 일찍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물건’이 제멋대로 자신의 파트너를 정해 버렸습니다.”

“뭐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건 원래 유수혁이 쓰기로 한 거였잖아?”

책임 연구원은 책상을 내려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위의 서류들이 바람에 흩어졌다.

유수혁.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강자. 이제 갓 서른을 넘겼지만, 벌써 서열 7위에 오른 상태였다.

이미 AAA급을 넘어 S급까지 넘보는 수준. 여기에 그 ‘물건’까지 더해진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아시다시피 그 물건이 좀 괴팍하지 않습니까? 자기애와 자존심도 강하고 말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파트너 외에는 힘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시 봉인해 버렸습니다.”

“잘 설득해봐. 유수혁이라고 유수혁! 물건이 누굴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유수혁에 비할 바는 못 될 거라고. 설득이 안 되면 읍소라도 해 보든지.”

“안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한데 물건의 고집 아시지 않습니까? 이젠 유수혁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활성화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미친……”

책임 연구원은 길길이 날뛰며 욕설을 퍼부었다. 애초부터 그런 이상한 아이템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정체성을 지닌 능동형 아이템이라니. 위력을 좀 낮추더라도 평범한 아이템을 만들었어야 했다.

“죽 쒀서 개 준 꼴이군. 그래, 물건이 선택한 놈이 대체 누구야?”

책임 연구원은 한참 동안 날뛰다가 제풀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물었다.

“그날 현장에서 제일 돋보이는 활약을 한 요원이 있지 않습니까? 요즘 NSA에서도 난리가 난 요원 말입니다. 그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뭐? 그게 누군데?”

책임 연구원의 화와 짜증에 의문이 더해졌다. 밤낮으로 연구소에만 처박힌 탓에 외부 소식에 어두웠다.

선임 연구원은 소매로 땀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C급 전투 보조요원 이혜성. 그가 물건에게 선택받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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