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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5화 (5/150)

# 005. 2차 각성 (1)

쾅, 검은 승용차가 가드레일을 뚫고 날아올랐다. 가드레일 아래는 야산.

승용차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한참을 더 날아간 뒤 커다란 나무에 처박혔다.

“아아, 또 실패인가?”

탄식이 섞인 아쉬운 쓴웃음이 나왔다. 혜성이었다.

그는 사이드미러로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마지막 순간, 핸들을 꺾은 것은 탈취범들이었다.

보닛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휴지처럼 구겨진 차체, 부서진 유리창과 파편들, 그리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 복면인 등이 보였다.

“놈들이 가져간 게 대체 뭐냐?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기에 이런 사건이 터진 거야?”

혜성은 정면을 응시한 채 화제를 돌렸다.

“저도 잘은 몰라요. 워낙 극비 프로젝트였으니까. 다만 기존의 아이템과는 좀 다른, 특별한 아이템이라는 것만 언뜻 들었어요. 아마 AA급 이상은 되겠죠.”

막내는 심호흡하며 대답했다. 조금 전의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려봤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이번 작전은 당사자 외에 열람이 제한된 극비 아니었어? 대체 누가, 어떻게 이번 작전을 유출한 걸까? 혹시 NSA 최고위층에 블랙마켓과 거래하는 자가 있는 걸까?”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떤 놈들인지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막내가 한창 대답하는 도중이었다.

콰콰쾅! 저 멀리서 어둠을 뚫고 노란색 기둥이 치솟았다. 대기가 감전돼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찌릿한 기운이 혜성과 막내에게까지 전달됐다.

“제길! 또 뭐야?”

마음이 급해졌다. 이미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은 상태였지만, 그는 발에 더욱 힘을 줬다. 잠시 후.

“어라?”

“저거 뭐야?”

혜성과 막내는 전방을 보고 동시에 소리쳤다.

탈취범 중에서 유일하게 복면을 쓰지 않은 놈이었다. 뇌전 계통의 능력자. 길게 째진 눈과 삐죽한 뻐드렁니 때문에 언뜻 미친개처럼 보였다.

녀석이 불타는 승합차를 등지고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마치 그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의 오른발을 주목했다. 탈취한 금고가 녀석의 발밑에 있었다.

“내분? 항복? 아니면 혼자 우릴 막으려는 건가?”

혜성은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엇 하나 명확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둘이 동시에 덤벼도 이기기 어려운 강적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때였다.

- 너냐? 내 파트너가 될 놈이? 참 재미있는 능력을 지녔군.

혜성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언어가 아닌, 그의 머릿속에 직접 말하는 느낌이었다.

“너 뭐라고 했냐?”

“네?”

혜성은 슬쩍 조수석을 돌아봤지만, 막내는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 크크크.

낯선 목소리는 계속 낮게 웃어댔다. 그를 환영하는 것처럼.

‘혹시 저 아이템이 말한 건가?’

혜성은 또라이의 발밑을 쳐다봤다. 콕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 자의식을 갖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아이템이라니.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황당했다.

지금은 낯선 목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파지직, 이어서 녀석의 손에 거대한 뇌전의 구체가 맺혔다.

콰쾅!

도로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움푹 파였다. 그들의 승용차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몇 바퀴 구른 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겨우 멈췄다.

반파된 차량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

“끄으응.”

잠시 후, 혜성과 막내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례로 기어 나왔다. 둘 다 이마가 깨진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삭신이 다 쑤셨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둘은 큰 대자로 누워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그래도 운이 좋았어요. 번개가 조금 빗나가서 겨우……”

막내는 소매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벼락이 떨어진 순간, 혜성은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만약 혜성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들은 그대로 전기구이가 됐을 것이다.

“훗! 운이 좋았다고? 그게 정말 운이었다고 생각해?”

누군가의 비웃음이 들렸다.

혜성과 막내는 정색하고 상체를 들었다. 또라이가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달리는 차량에 번개를 쏘다니. 완전 미친놈이군.”

혜성은 놈을 경계하며 주춤 일어섰다. 하는 짓은 이상했지만, 실력만큼은 AA급 이상이었다.

“역주행해서 차를 들이받으려던 놈이 그런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또라이는 섭섭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만이 지나친 것 같군.”

막내가 어깨를 좌우로 까딱여 몸을 풀며 끼어들었다. 또라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스쳤다.

“일단 저놈은 빼고 가지.”

또라이는 혜성을 응시한 채 막내를 향해 느닷없이 오른손을 뻗었다. 예고 따위는 없는 기습. 파직, 순간적으로 노란빛이 번쩍였다.

“큭!”

막내는 본능적으로 물러나며 두 팔을 교차시켜 상체를 보호했다.

속임수였다. 신형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또라이는 어느새 막내의 뒤에 나타났다. 그런 뒤 오른손으로 막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파지직, 그의 오른손에서 뇌전이 번쩍였다.

“끄아아악!”

막내는 비명을 지르며 거칠게 몸부림쳤다. 뭔가 타는 냄새가 풍겼지만, 또라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이놈이 장거리 화염계라는 건 알고 있다. 괜히 시간을 주면 곤란할 테지.”

몇 초 후, 그는 막내를 옆으로 던졌다.

쿵, 막내는 가드레일에 처박히고도 한참 동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혜성은 주춤 물러섰다. 놈에 대한 평가를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압도적으로 강한 미친놈이었다.

“적당히 힘 조절을 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시간은 별로 없을 거야. 동료를 구하고 싶으면 빨리 날 쓰러뜨리는 게 좋을걸?”

또라이는 히죽 웃으며 혜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대문에서의 활약은 잘 봤어. 조금 독특한 2차 각성자인 것 같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골 병사 따위에게 통하는 수준. 능력 대결로 가면 내가 이길 게 뻔하지. 그러니 핸디캡을 주겠다.”

자신감이 넘쳤다.

혜성은 놈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었다.

탈취범들의 승합차가 갑자기 폭발한 것도 어쩌면 놈의 짓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머리 아픈 건 질색이거든. 단순하게 가자. 능력을 봉인하지. 누가 더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지, 누가 한계 이상까지 버틸 수 있는지…… 주먹 대 주먹으로 겨루는 거다.”

“웃기지도 않는군. 내가 왜 그런 황당한 대결에 응해야 하는 거지?”

혜성은 대번 코웃음을 쳤다. 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첫째, 넌 나하고 같은 냄새가 나거든. 죽음의 두려움과 스릴을 즐기는 거 말이야. 죽기 직전의 짜릿함. 어때? 내 말이 맞지?”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냐?”

“부정하려 하지 마. 너도 자연스럽게 내 말을 이해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지.”

“그건 또 뭔데?”

혜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대결을 원하고 있다는 것. 넌 선택의 여지가 없단 말이다.”

또라이는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혜성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

‘이 무식한 놈.’

혜성은 절로 욕이 나왔다.

녀석의 대결 방식은 간단했다. 방어는 없었다.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한 방씩 교대로 치는 방식이었다.

놈은 약속대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관자놀이에 한 방 맞을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쾅, 녀석의 주먹에 관자놀이를 맞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크게 휘청거렸다.

“선배님.”

막내가 꿈틀거리며 그를 불렀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움직이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아직은 견딜 만하니까.”

혜성은 오른손을 살짝 들어 아직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젠장! 순직은 좋은데 이건 좀 아니잖아.’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세를 바로 했다. 겨우 다섯 대 맞았을 뿐인데 얼굴은 만신창이였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극한까지 고통을 받다가 맞아 죽는 건 사양이었다.

이왕이면 고통 없이 단숨에 죽고 싶었다. 물론 인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지만.

“이 상황에서 웃어? 역시 재미있는 놈이군.”

퉤, 또라이는 크게 웃은 뒤 침을 뱉었다. 핏덩이와 깨진 이빨이 섞여 나왔다. 하지만 녀석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왜 2차 각성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 그게 있으면 더 재미있을 텐데 말이야. 혹시 네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거냐?”

녀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글쎄. 너 따위를 상대하는데 굳이 2차 각성까지 필요할까?”

혜성은 쓰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솔직히 그 질문은 오히려 그가 묻고 싶은 것이었다.

“네 영상은 수십 번도 더 봤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네 녀석이 2차 각성을 끌어낼 수 있을지 하나 짐작되는 게 있더군.”

또라이는 피식 웃으며 그를 노려봤다.

혜성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같은 웃음이었지만, 조금 전과 눈빛이 달라졌다.

파팟, 순간적으로 놈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막내를 제압할 때 보여준 그 번개 같은 움직임이었다.

“커헉!”

혜성은 침을 흘리며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혔다. 뇌전이 맺힌 놈의 오른 주먹이 어느새 그의 복부 깊숙이 꽂혀 있었다.

“일정 수치를 넘어서는 데미지. 그게 네 2차 각성의 열쇠지. 내 말이 틀렸나?”

놈의 흥분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전후좌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놈의 뇌전은 쉴 새 없이 혜성을 강타했다. 놈이 마지막으로 그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려는 찰나였다.

퍽, 또라이는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대신 놀랍다는 표정으로 혜성을 쳐다봤다.

혜성의 왼손이 뇌전이 실린 주먹을 막은 것이다. 놈은 주먹을 빼고 물러서려 했지만, 혜성의 손은 놈의 주먹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어이, 또라이. 이게 보고 싶다고?”

혜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섬뜩하리만치 무표정했다. 은은한 서기, 황금빛 눈동자. 영상에서 본 2차 각성의 징후였다.

‘위험한 놈이다!’

또라이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켜졌다. 놈은 뇌전을 맺은 왼 주먹으로 혜성의 복부를 치려 했다. 한발 늦었다.

퍼억, 혜성의 오른 주먹이 먼저 놈의 복부 깊숙이 꽂혔다.

“커헉!”

또라이는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조금 전 혜성이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맞은 아랫배에 뇌전의 기운이 짜릿하게 남아 있었다.

혜성의 공격은 계속됐다.

쾅, 이번엔 그가 놈의 품으로 파고들며 왼 주먹으로 턱을 올려쳤다.

“크헉!”

또라이는 짧은 비명과 함께 멀리 날아가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콰직, 충격이 컸는지 가드레일이 움푹 파였다.

혜성은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의식은 자신이 맞는데, 몸은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데미지는 남아 있었지만, 전신에 힘이 넘쳤다.

“놈의 뇌전을 카피한 건가?”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은 뇌전이 뭔지도 몰랐었다. 한데 지금은 뇌전의 기운이 엷게 맺혀 있었다.

양 주먹에 슬쩍 힘을 줘 봤다. 뇌전이 크고 강해졌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이었던 것처럼.

“스킬 카피라. 재미있는 스킬이군.”

혜성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사람이 달라졌다. 본능적인 투쟁심이 그를 휘감았다.

이젠 그가 놈에게 한 수 가르쳐줄 시간. 두 주먹에 맺은 뇌전이 점점 크고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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