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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순직이 힘들다-4화 (4/150)

# 004. 또라이들 (2)

“제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혜성과 막내는 승용차에서 내려 앞으로 뛰어갔다. 공사 차량은 완전히 멈춘 상태. 능력자로 보이는 놈은 공사 차량을 세운 뒤 잽싸게 내려 도망쳤다.

콰콰쾅, 그사이에도 연쇄 폭발은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최소 대전차 급의 위력. NSA의 특수 차량이라도 이 정도는 견딜 수 없었다.

“크하하핫!”

어떤 놈이 달을 등지고 나타나 마구 뇌전을 쏘아댔다. 마치 발광하는 것처럼.

퍼퍼펑, 차량이 장난감처럼 부서졌고, 파편 일부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씨발!”

그들은 급히 걸음을 멈추고 상체를 숙였다. 아슬아슬했다. 파편들은 그들을 스쳐 근처의 가드레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물건은?”

혜성은 반사적으로 트럭 쪽을 확인했다. 복면을 쓴 놈들이 금고를 곁에 있는 승합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트럭 내부에서 피투성이가 된 팀장과 특수대원들이 얼핏 보였다.

‘적의 기습인가? 작전을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 어떤 놈들이 감히 정부 요원들을 기습하고 물건을 빼돌리는 거지?’

순간적으로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이 새끼들이.”

막내는 안달이 나 발을 굴렀다. 정면에서는 뇌전의 미친놈이 발광하고 있었고, 좌우에서는 작은 폭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놈들에게 접근은 고사하고 몸을 피하는 것도 어려웠다.

첫 폭발이 있고 5분 후.

놈들은 금고 탈취라는 임무를 완료했다. 끼이익, 요란한 바퀴 소리와 함께 승합차가 출발했다.

뇌전의 미친놈은 그 후에도 계속 발광하다가 마지막에 승합차에 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막내는 황당했다. 한바탕 악몽을 꾼 기분이었다. 놈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불탄 차량들, 피투성이가 된 요원들, 그리고 텅 빈 트럭만 남았다.

“일단 지원이라도 요청해야 하나?”

그가 막 휴대폰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끼이익, 옆에서 요란한 바퀴 소리가 들렸다. 혜성이 어느새 승용차를 몰고 나타난 것이다.

길을 막은 공사 차량 때문에 가드레일을 뚫고 돌아왔다. 범퍼와 측면이 잔뜩 찌그러져 있었다.

“야, 뭐해? 안 타?”

혜성이 창문을 내리고 외쳤다.

“뭐 하려고?”

막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거 중요한 거라며?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 안 타면 나 혼자 간다!”

“씨발!”

막내는 급히 조수석에 앉았다. 그 와중에도 욕은 끊이지 않았다.

혜성도 당황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입꼬리는 웃고 있는 것처럼 위로 살짝 올라가 있었다.

‘위험한 임무 수행. 적의 기습. 장렬한 전사. 오케이, 순직 요건 성립!’

자동차 액션영화의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몸이 떨리며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됐다. A급 전투팀이 당할 정도였으니,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다만, 그 전에 먼저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없으면 그저 개죽음이었다.

혜성은 승용차 중앙에 있는 무전기를 들었다.

- K-NSA 인식번호 M877900 이혜성. 지금부터 탈취범들의 추격을 시작하겠다.

인식번호와 이름을 분명히 강조했다. 곧 무전기 너머에서 뭐라고 대답이 들렸지만, 옆에 앉은 막내의 고함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제정신이야? 정말 우리 둘이서 놈들을 막자고?”

막내가 어이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못 들은 척했다. 막내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순직이 우선. 막내는 순직의 증인이 될 터였다.

“가자!”

혜성은 크게 심호흡하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부아앙, 승용차가 굉음을 토해내며 총알처럼 미끄러졌다.

***

2차선 국도.

검은색 승합차와 승용차가 굉음을 내며 한창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왜 마지막에 승용차가 한 대 더 붙었지?”

누군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NSA의 차량은 네 대. 그런데 한 대가 끝에 더 있었던 것이다.

준비된 폭탄이 부족해 공사차량으로 막긴 했지만, 놈들을 그대로 두고 온 게 영 찜찜했다.

“가끔 쉬운 임무에 인턴이나 신참을 덤으로 보내잖아. 뭐, 그런 거겠지.”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때였다.

“어라? 저거 뭐야?”

운전자가 사이드미러로 후방을 확인하고 고함쳤다. 승용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공사 차량으로 막았던 승용차였다.

“우릴 두 놈이서 막겠다고?”

“미친 거 아냐?”

다른 팀원들도 뒤를 돌아보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귀찮게 됐다. 꼬리가 붙었다.

다른 승용차에서도 무전이 들렸다.

“그래. 이렇게 싸움이 좀 있어야 작전답지. 내가 나서겠다.”

승합차 조수석의 또라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였다.

“참아, 이 미친놈아.”

“너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뒷자리에 앉은 다른 팀원들이 동시에 화를 내듯 말했다. 다시 녀석이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팀장이 선수를 쳐서 무전을 날렸다.

- 우리는 작전대로 A 포인트로 간다. 2호 차가 놈들을 막아라.

그는 바로 옆을 달리던 승용차를 힐끔 쳐다봤다.

- 알겠다.

짧은 대답이 들린 뒤, 승용차가 속도를 늦췄다.

“주제 파악도 못 하는 신참들인가?”

팀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운전자를 재촉했다. 부아앙, 승합차의 엔진이 다시 바빠졌다.

***

“너 미쳤어? 당장 속도 줄이지 못해?”

막내는 몇 번이나 혜성의 운전대를 뺏으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거 참, 되게 시끄럽네. 나한테 운전대 맡긴 거 아니었어?”

혜성은 오른손으로 녀석을 뿌리치는 한편,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실랑이 때문에 차가 잠깐 좌우로 비틀거렸다.

“어?”

막내는 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움찔했다. 놈들의 승용차가 조금 속도를 늦추고 길을 막은 것이다.

그사이 승합차는 속도를 높여 조금씩 치고 나갔다.

“드디어 시작인가?”

혜성은 가속 페달을 더욱더 힘차게 밟았다.

500m, 400m, 300m.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놈들의 차량이 시야에 똑똑히 들어왔다. 번호판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뭐해? 보고만 있을 거야?”

혜성은 조수석을 힐끔 쳐다봤다.

“누구한테 명령이야?”

막내는 화를 내면서도 창문을 내리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

동시에 앞의 승용차에서도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고 복면을 쓴 놈이 상체를 내밀었다. 놈의 손이 푸른색으로 빛나더니 차가운 기운이 쏟아졌다.

파지직, 한여름의 도로 위가 난데없이 빙판길이 됐다.

“빙계 능력자인가? 재미있군.”

막내는 빙판을 향해 팔을 뻗고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퍼펑, 화염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얼음을 녹여버렸다.

‘괜히 엘리트 전투팀이 아니군.’

혜성은 재차 막내를 힐끔거리며 감탄했다.

자연계 능력자인 것도 대단했지만, 더 놀라운 건 스킬을 발동시키는 솜씨였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이 정도의 숙련도라면 최소 A급 이상의 능력자라는 뜻이었다.

복면을 쓴 놈도 승부욕에 불타는 것 같았다.

끼이익, 승용차들이 연신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푸른 기운과 붉은 기운이 중간에서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퍼퍼펑, 둘의 충돌로 인해 가드레일이 부서졌고, 도로 곳곳이 움푹 파였다.

“제길!”

혜성은 이내 초조해졌다. 막내와 놈의 레벨은 엇비슷했다. 쉽게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왕 순직하는 거, 부하에게 죽는 것보다는 보스에게 장렬히 죽고 싶었다.

그는 센터페시아의 내비게이션을 힐끔 쳐다봤다. 지금 그들이 달리고 있는 곳은 활처럼 굽어지는 국도. 가드레일 너머에는 잡초가 무성한 야트막한 언덕들이 겹겹이 보였다.

‘이거다!’

혜성은 오른손으로 무전기를 들고 외쳤다.

- 막내 늑대. 현재 용의 차량을 추격 중. 인근 국도를 모두 전면통제하는 한편, 신호를…….

“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듣고 있던 막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혜성은 녀석을 한번 쳐다본 뒤, 무시하고 핸들을 옆으로 홱 돌렸다.

쾅, 그들이 탄 승용차는 가드레일을 뚫고 날아올랐다.

“이 또라이 새끼야! 당장 차 세워!”

막내는 혜성의 목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아마 이렇게 많은 욕을 한 날은 처음일 것이다. 비포장도로를 가로지른 것까진 참았다.

그런데 혜성은 역주행을 하더니 놈들의 차량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저놈들. 도망치는 건가?”

혜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막내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놈들의 승용차가 앞으로 치고 나왔다. 혜성의 정면 돌진은 어디까지나 허세. 이쪽에서 강하게 나가면 혜성이 먼저 핸들을 꺾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사이 물건을 실은 승합차는 잠시 멈추더니 반대로 방향을 바꿨다.

“이 새끼야! 내 말 안 들려?”

막내의 언성은 계속 높아졌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뵈는 게 없나. 누가 새끼야? 내가 너보다 선배야, 이 새끼야!”

퍼억, 혜성은 오른손으로 막내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뭐?”

막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눈물을 찔끔거렸지만, 너무 놀란 탓에 화도 내지 못했다.

빠아앙, 놈들의 차에서 긴 경적이 울렸다. 놈들과의 거리는 수백 미터.

상향등 때문에 눈을 뜨는 것도 어려웠다. 놈들 또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속도를 더욱 높였다.

최악의 치킨게임.

“주, 죽고 싶어? 이래 봐야 순직밖에 더 하느냐고. 그러니 제발……”

막내는 울 것처럼 매달리며 사정했다. DDP의 영상을 봤을 때는 주제 파악 못 하고 영웅심에 사로잡힌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죽지 못해 안달이 난 미친놈이었다.

순직.

그 한마디에 혜성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쳤다. 그는 가속 페달을 밟은 발에 더욱 힘을 줬다.

부아아앙, 승용차의 엔진이 터질 듯 울어댔다.

“이 또라이 새끼야아아!”

“가즈아아아!”

막내의 비명이 길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는 마주 오는 헤드라이트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

승합차 안.

무모한 치킨게임의 결과는 모니터를 통해 생생히 중계됐다.

그들이 본 건 2호 차의 운전사가 급히 핸들을 옆으로 꺾는 것, 그리고 가드레일과 나무가 차례로 부딪치는 장면이었다.

삐-, 그다음에는 신호가 끊기고 검은 화면만 나왔다.

“와! 뭐 저런 새끼들이 다 있어?”

복면인들은 한참 동안 탄성을 내뱉었다. 너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브라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조수석의 원조 또라이만 신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놈들은 쉽게 포기할 놈들이 아니……”

팀장이 질린 표정으로 말하는 도중이었다.

“어? 또 왔어?”

운전석의 사내가 사이드미러를 확인하고 외쳤다. 그 말에 모두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부아앙, 검은 승용차가 굉음을 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끈질긴 새끼들. 정말 끝장을 보려는 건가?”

팀장은 상체를 숙이고 승합차 뒤로 자리를 옮겼다. 손에는 어느새 묵직한 기관총이 들려 있었다.

콰직, 그는 주먹으로 후방 유리를 깨고 기관총을 내밀었다. 다른 복면인들도 창문을 내리고 공격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윙, 진동 소리가 들렸다. 팀장은 품에서 특수 위성 전화를 꺼냈다. 그리곤 스피커 모드로 바꿔 모든 팀원이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했다.

- ……NSA 놈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인식번호 M877900 이혜성, 그리고…….

위성 전화 속 인물은 혜성과 막내의 등급, 특기 등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NSA에서도 고위층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뭐? 이혜성?”

또라이가 비명처럼 외쳤다. 녀석의 목소리 때문에 본부의 전달 사항이 잠깐 끊겼다.

“세상 참 좁군. 이혜성이라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놈이 아니고선 이렇게 대범하게 나설 놈이 없는데 말이야.”

녀석은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들었지? 이혜성이란다, 이혜성! 당장 차 돌려!”

녀석은 운전대를 뺏을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순간적으로 승합차가 좌우로 흔들렸다.

“이 미친놈아! 임무 잊었어? 중요한 건 이혜성인지 뭔지가 아니라 물건이라고!”

팀장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또라이의 헛소리를 참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NSA 놈들보다 저 또라이를 먼저 죽이고 싶었다.

“어이, 또라이. 나대는 것도 적당히 해라.”

다른 팀원들도 녀석을 향해 무기를 돌렸다.

“겁쟁이 새끼들.”

그제야 녀석은 운전사에게서 물러나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나 입은 쉬지 않았다.

“그건 너희들 임무고. 잊었어? 난 너희랑 다른 소속이라는 거 말이야.”

녀석은 히죽 불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계속 도망만 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아무래도 우리의 동행은 여기까지인 거 같군.”

“뭐?”

팀장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녀석의 두 주먹에 노란색 구체가 맺혔다.

펑, 녀석은 갑자기 상체를 숙이며 두 주먹을 부딪쳤다.

워낙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복면인들은 방아쇠를 당길 틈도 없었다.

콰쾅!

노란색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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