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3. 또라이들 (1)
병원 정밀검사실.
혜성은 환자복을 입은 채 원통형의 검사기에서 나왔다. 전신에는 각종 센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어때?”
혜성은 유리문을 열고 제어실로 나와 태호에게 물었다. 태호는 벽면에 가득한 각종 모니터와 장비를 살피고 있었다.
“각성 레벨 C급, 체내의 각종 에너지 수치도 별 볼 일 없고. 아무래도 네 2차 각성은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한시적으로 발동되는 것 같다. 초진동 블레이드를 사용했지만, 그게 네 고유 스킬인지 적의 스킬을 카피하거나 흡수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태호는 두툼한 안경 너머로 차트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몸은?”
혜성은 어깨를 크게 돌리며 물었다. 근육 이상 무. 검상도 말끔히 치유돼 있었다. 그는 환자복을 벗고 본래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일단 어제 일로 인한 부상은 내가 말끔하게 치료했어. 다만 네 그 병 말인데. 그건 어제 말했듯이 에너지 차원의 문제거든. 자세한 건 내일쯤 나오겠지만……”
태호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런가?”
혜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2차 각성 덕분에 병이 치유된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사실 그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 유명인사가 다 됐구나.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해서라니. 미친 새끼. 집에서는 뭐라고 하시냐?”
태호 녀석은 안경을 고쳐 쓰며 쾌활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를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안 그래도 어제 이후로 혜성의 전화는 불이 났다. 연락이 끊긴 옛 친구며 선후배, 동료, 헤어진 여자 친구들까지.
그 때문에 지금은 저장된 번호 몇 개만 제외하고 전부 수신 거부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뭐라시긴. 너도 우리 아버지 성격 알잖냐? ‘넌 이혜성 개인이기 전에 국가에 봉사하는 공직자다. 집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사명을 다해라. 그게 곧 효도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셨지.”
혜성은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투를 그대로 흉내 냈다. 어머니와 동생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아버지의 성화 때문에 간단히 안부만 전하고 끊었다.
“여전하시구나. 그래도 너희 아버지 같으신 분 없다. 계실 때 잘해라.”
“글쎄. 남들 보기엔 좋은 분일지 몰라도 가족은 울화통이 터……”
혜성이 한창 말하는 도중이었다. 부웅,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누구야?”
태호가 어깨 너머로 그의 핸드폰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발신자명에 김 과장이 찍혀 있었다.
“일단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어? 뺀질이가 웬일로 사무실에 일찍 돌아간대?”
태호가 놀리듯 물었다.
“이 자식이 동대문의 히어로를 뭘로 보고.”
혜성은 인사 대신 녀석의 가슴을 툭 친 뒤,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을지로 NSA 본부.
“아이고, 혜성 씨. 병원에 있는데 전화해서 미안하네. 그래, 의사는 뭐래? 큰 이상은 없대? 자네 친구야 유명한 힐러니까 알아서 잘했겠지만.”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어제의 가시 돋친 태도와는 딴판이었다.
“히어로를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오늘은 좀 쉬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다른 직원들도 과장을 향해 악의 없이 한마디씩 했다. 정 대리만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혜성의 시선을 외면했다.
과장은 창가의 자기 자리로 혜성을 데려갔다. 그런 뒤 한창 넉살 좋게 공치사하고 본론을 꺼냈다.
“좋은 소식이야. 전투팀에서 지원 요청이 왔어. 어제 활약을 봤는지 자넬 콕 짚어서 파견 요청을 했더군.”
“네? 전투팀에서 절요?”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같은 K-NSA라도 지원팀과 전투팀의 위상은 천지 차이였다. 단적인 예로 김 과장도 여기선 큰소리쳤지만, 전투팀에 가면 막내에게도 굽실거렸다.
“어제 자네 활약을 보고 여기저기서 청원이 들어왔나 봐. 자네 같은 훌륭한 인재를 왜 보조팀에 묵혀두냐는 거지. 그래서 전투팀에서 자넬 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김 과장은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지? 지금 전투팀에서 자넬 끌어주겠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작은 임무를 몇 개 맡겨보고, 괜찮다 싶으면 데려가겠다는 거지. 그리고 자네도 아카데미 출신이라며? 그럼 전투팀에 아는 선후배 좀 있을 거 아냐? 이번 기회에 잘 좀 해보라고.”
“아.”
혜성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도 쓰게 웃었다.
“무슨 임무입니까?”
“나도 잘 몰라. 이번에 새로 개발한 특수 아이템을 호송하는 임무라던데? A급 요원들이 우르르 딸려가니까 자넨 옆에서 구경만 하면 될 거야.”
김 과장은 전투팀에서 내려온 공문을 내밀었다.
과연 파견 요청 대상자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작전 개시는 오늘 22시. 자세한 내용은 출발 전에 브리핑한다고 돼 있었다.
“전투팀 파견이라.”
혜성은 문서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지금이야 보조팀 뺀질이로 낙인찍혔지만, 아카데미에서 헌터나 국가의 전투요원을 꿈꾸던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투팀에 간다는 건 그만큼 순직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첫 실전 임무. 아직 작전 시간이 되려면 멀었지만,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았다.
20:00 정각, K-NSA 본부 지하 주차장.
붉은 늑대 팀의 팀장 외 다섯 명의 팀원들이 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능력자는 아니지만, 특수부대원 열두 명도 이번 작전에 동행했다.
“팀장 주관도다.”
“이혜성입니다. 대체 뭘 운반하는 겁니까?”
간단히 통성명한 뒤 혜성이 넌지시 물었다.
“몰라도 된다. 어차피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팀장은 몸을 돌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다른 팀원들도 피식 웃으며 준비된 차량에 나누어 탔다.
혜성만 뻘쭘해졌다. 다들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발끈하며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일단 화를 내봐야 자신만 손해였다.
게다가 붉은 늑대는 본부의 전투팀 중에서도 엘리트 부대인 반면, 자신은 보조팀의 C급 능력자였다.
입장이 바뀌어서 누군가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면 자신도 이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약 한 시간 뒤, 송도 외곽 K연구소.
그들은 몇 단계 엄격한 검문을 지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연구원들이 준비를 다 끝내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원들의 뒤에는 총 다섯 대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택배회사 차량으로 위장한 특수 트럭이 중앙. 그리고 검은색 승용차 두 대가 호위하듯 앞뒤에 있었다.
주관도가 연구소 측 사람들과 서류에 사인하며 인계 작업을 하는 동안 혜성과 대원들은 장비를 재확인했다.
전투 시 착용하는 갑옷은 너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대신 타이즈 형태의 보호구를 안에 입고, 조금 풍성한 겉옷을 걸쳤다.
‘대체 뭐지?’
혜성은 팀장 어깨너머로 트럭 내부를 힐끔 살폈다. 중앙에 튼튼한 금고가 놓여 있었다. 뭔가 대단한 아이템을 개발해 실전에 배치하려는 것 같았다.
곧 인계 작업이 끝났다.
“가자.”
이윽고 주관도는 팀원들을 둘러보며 짧게 말하고 중앙의 트럭 화물칸에 올랐다. 특수부대원 여섯 명이 그를 뒤따랐다.
붉은 늑대의 다른 대원들도 특수부대원 두 명씩과 짝을 이뤄 승용차에 탑승했다.
“저는요?”
막 트럭의 화물칸이 닫히려는 찰나, 혜성이 물었다.
“넌 막내하고 마지막에 따라와.”
팀장은 턱짓으로 막내를 가리켰다. 역시, 마지못해 데려간다는 듯 시큰둥한 태도였다.
“알겠습니다.”
혜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승용차로 갔다. 막내는 혜성보다 어린 아카데미 후배였다.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오며 가며 얼굴은 본 적이 있었다. 둥근 얼굴형에 약간 통통한 몸. 막내라는 별명과 잘 어울리는 외모였다.
“쳇!”
막내는 입을 삐쭉 내밀고 나직이 투덜거렸다.
“이왕 왔으니 운전이라도 하시죠.”
녀석은 차 키를 던져주고 보조석에 편히 앉았다.
‘개새끼.’
혜성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운전석에 앉았다. 전투팀의 차량은 처음이었다. 완전 방탄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단단해 보였다.
부릉, 가벼운 시동음과 함께 차량들이 줄지어 연구소를 나왔다. 출발부터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
서울 외곽 모 호텔 객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정장을 입은 사내 아홉 명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오늘 출발이라더군. 시간은 22시 정각. 출발장소는 송도 외곽의 NSA 연구소. NSA 전투팀 중에서 ‘붉은 늑대’팀이 붙는다. 이번 임무에 동원되는 차량은 총 4대. 선두에 승용차 2대, 물건을 실은 트럭이 그다음, 그리고 마지막에 승용차 한 대가 설 예정이다. 우리는 놈들이 운반하는 물건을 중간에 탈취……”
중앙의 팀장이 자료를 나눠주며 브리핑하다가 말을 멈췄다. 7명의 팀원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다만 구석에 처박혀 있는 한 놈이 문제였다. 그놈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으로 다른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야, 개 또라이!”
팀장이 그의 별명을 크게 불렀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팀원이 또라이라 불린 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씨발, 자꾸 왜 불러?”
그제야 녀석은 짜증을 부리며 팀장을 쳐다봤다.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살짝 보였다. 어제 DDP에서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또 봐? 지겹지도 않냐?”
팀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잊었어? 난 너희 팀원이 아니라는 거. 난 어디까지나 고용주가 특별히 붙인 용병이라고. 그러니까 작전은 너희끼리 잘 짜고, 난 내 일이나 하게 놔두란 말이지. 죽고 싶지 않으면.”
또라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표정과 달리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옆에 있던 팀원 하나가 달려들려다가 멈칫했다. 또라이의 손에는 어느새 노란색 뇌전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너, 나랑 싸워서 이길 자신 있어? 자신 있으면 덤비고.”
또라이는 팀원을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말만 하는 놈이 아니었다. 조금만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전기구이가 될 터.
“미친놈. 같은 편이고 뭐고 없구만.”
달려들려던 팀원은 잠깐 망설이다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젠장. 대체 뭔 생각으로 저런 놈을 붙여준 건지.”
팀장도 녀석을 한참 노려보다가 녀석을 무시하고 브리핑을 재개했다.
어차피 이번 의뢰만 끝나면 다시 안 볼 사이. 괜히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겁쟁이 새끼들. 능력자라는 놈들이 죽음을 두려워해? 그러니까 너희는 평생 남의 똥이나 닦아주는 거야.”
또라이는 뇌전의 기운을 거두고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혜성이라고 했나? 너희 같은 놈들보단 이놈이 훨씬 낫지. 등급은 기껏해야 B나 C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거든. 이런 게 진짜 능력자지.”
그는 다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혜성이 검을 들어 BJ들의 앞을 막아선 장면이었다. 실력은 해골 병사에 비할 바가 못 됐지만, 녀석은 죽기를 각오한 것처럼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용기, 배짱.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혜성. 조만간 한번 만나고 싶군.”
그는 친구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혜성의 이름을 불렀다. 입가의 미소와 눈가의 살기가 묘한 대비를 이뤘다.
그의 별명은 뇌전의 미치광이.
죽음의 공포가 주는 희열에 중독된 유명한 미치광이였다.
***
PM 11:05. 경기도 동부 2차선 국도.
차 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늦은 시간에 외진 도로였기 때문에 지나는 차량도 드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침묵을 견디다 못한 혜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훨씬 선배였지만, 오히려 존댓말을 쓰는 건 그였다.
“보면 알아요.”
막내는 창밖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 채, 팔짱을 끼고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자세였다.
‘발 치워, 이 새끼야!’
혜성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어? 공사 중? 이런 얘긴 없었는데?”
얼마 후, 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폭이 좁은 왕복 2차선 도로. 공사 중이란 팻말이 보였다.
선두의 승용차와 중앙의 트럭이 속도를 줄이자, 그도 30km 정도로 속도를 낮췄다.
“느낌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런 시간에 공사라니.”
“뭐가요? 야간도로정비 처음 봐요?”
막내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때였다. 큰 공사 차량이 비상등도 켜지 않고 끼어들었다. 혜성이 저속으로 운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사고가 날 뻔했다.
“이건 또 뭐야?”
그제야 막내도 눈살을 찌푸렸다. 폭이 좁은 도로였기 때문에 추월은 무리. 공사 차량 때문에 앞선 승용차와 트럭이 보이지 않았다.
막내는 센터페시아의 무전기를 들었다.
“어미 늑대, 어미 늑대 들리는가? 여기는 막내 늑대. 공사……”
그가 한창 무전을 날리던 도중이었다.
콰콰쾅, 선두의 승용차와 트럭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혜성과 막내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