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2.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2)
두 해골 병사는 장검을 높이 들었다. BJ들의 몸을 대각선으로 베려는 것 같았다. 놈들의 장검이 햇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안 돼!”
BJ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서늘한 검기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찰나였다. 챙, 맑은 금속성이 들렸다.
‘어라?’
BJ들은 슬며시 실눈을 떴다. 누군가가 그들을 등지고 해골 병사들의 검을 막고 있었다.
혜성이었다. 그는 검을 수평으로 들고 놈들을 막아섰다. 헉헉, 달려와서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도 숨이 가빴다.
해골 병사들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누구……?”
BJ들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혜성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 카메라에는 아직도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그의 머리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순직.
“K-NSA(Korea-National Security Agency)의 이혜성입니다!”
그는 카메라를 슬쩍 쳐다보며 ‘이혜성’을 강조했다.
“저거 뭐야?”
BJ들은 순간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성 히어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웅은 자신을 감추는 과묵한 이미지였다. 지금의 혜성처럼 이름을 광고하는 놈은 처음이었다.
‘아, 시바!’
말을 내뱉은 혜성도 손발이 다 오글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장렬한 순직을 위해서는 소속과 신분을 확실히 해야 하는바. 이름 없는 정의의 ‘요원 1’쯤으로 죽는 건 사양이었다.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쇄애액,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해골 병사들이 안광을 붉게 빛내며 검을 휘둘렀다.
‘다른 요원들은?’
혜성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고 막는 한편,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폈다.
전투 요원 하나가 뒤늦게 그들을 발견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중간에 해골 병사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은 그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었다.
‘BJ들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 수적 열세. 장렬한 순직. 오케이.’
감동적인 시나리오가 즉흥적으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혜성은 검을 수평으로 크게 휘둘러 방어했다. 지금은 비록 비전투 요원이지만, 그도 한때는 전투 요원을 꿈꿨던 각성자였다.
채채채챙, 그와 해골 병사 사이에 다시 요란한 금속성이 울렸다.
파앗!
“크윽!”
혜성은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역시 그의 실력으로 혼자서 C급 몬스터 둘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고, 검상과 핏물이 온몸을 뒤덮었다.
해골 병사들은 잠깐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이상한 놈이 나타나 자신들을 방해하니, 조금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끄어어어!”
놈들의 안광이 더욱 붉어졌다. 살기도 짙어졌다. 부우웅, 놈들의 손에 들린 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초진동 블레이드?”
BJ들이 이 상황에서도 중계를 잊지 않고 다급하게 외쳤다.
해골 병사들은 좌우에서 혜성을 덮쳐 왔다. 놈들의 검이 수십 개로 불어났다. 현란한 잔상이었다.
곧이어 혜성의 전후좌우, 사방에서 검의 폭우가 쏟아졌다. 검의 떨림은 수백 마리의 벌떼가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혜성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막고 싶지도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칼로 베는 게 아니었다.
왼쪽 상반신 전체가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수중의 장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디오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직. 이 두 글자만 떠올리며.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
고오오, 혜성의 전신에서 황금빛 서기(瑞氣)가 뿜어져 나왔다.
폭발 직전의 태양 같았다. 빛은 돌개바람처럼 그의 몸을 감싼 뒤, 이어서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를 중심으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혜성을 공격하던 해골 병사들, BJ와 구경꾼들, 그리고 멀리서 전투를 벌이던 요원들과 다른 해골 병사들까지……. 모두는 홀린 것처럼 그를 쳐다봤다.
“저거 뭐야? 2차 각성인가?”
“2차 각성이라기엔 뭔가 다른데?”
뒤늦게 몇몇 요원들이 비명처럼 외쳤다. 유니크 레벨의 2차 각성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전투 도중 각성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잠시 후, 서기와 돌개바람은 혜성의 몸에 흡수되듯 서서히 옅어졌다.
“끄아아악!”
해골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혜성에게 달려들었다.
번쩍, 마침내 혜성이 눈을 떴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눈은 황금색으로 빛났고, 범접할 수 없는 묘한 아우라가 전신에서 뿜어졌다.
“잔재주는 끝났나?”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적들을 노려봤다. 순직이라는 목표는 사라졌다. 대신 적에 대한 투쟁심과 전투본능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흥!”
생각하기 전,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혜성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오른발로 슬쩍 차올렸다.
팽그르르, 검이 가슴 높이에 이른 순간,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아 번개처럼 휘둘렀다.
콰지직, 해골 병사들의 장검이 얼음처럼 깨졌다.
해골 병사들은 손잡이만 남은 장검과 혜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표정은 없었지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놈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급히 물러섰다.
“어딜?”
혜성은 상체를 살짝 숙이고 놈들을 따라 앞으로 달려갔다.
오른손의 검이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마치 팔이 수십 개로 불어난 것 같았다. 화려한 잔상을 남기는 검술.
바로 해골 병사의 스킬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장검은 놈들의 것처럼 아주 낮은 소음을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끼에에엑!”
해골 병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콰지직, 방패와 그 뒤의 해골 병사들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뭐야? 초진동 블레이드?”
“어떻게 몬스터의 스킬을 쓸 수 있는 거야?”
뒤에 있던 BJ들의 눈이 더 커졌다. 아니, 외형은 같지만 파괴력은 혜성의 것이 한 수 위였다.
전투는 혜성의 독무대였다.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그의 초진동 블레이드와 변화무쌍한 검술은 주위의 몬스터들을 모두 가루로 만들었다. 오히려 몬스터들이 그를 피해 도망치기 급급했다.
“시청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절망의 게이트 시대, 새로운 영웅이 나타났습니다!”
BJ들은 혜성을 따라 캠코더를 비추며 호들갑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 공포에 사로잡혔던 기억은 까맣게 잊었다.
조회수 급상승, 쏟아지는 풍선,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
약 20여 분 후.
마지막 한 마리의 비명을 끝으로 모든 해골 병사들은 소멸됐다.
이어서 하늘에 떠 있던 게이트 또한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흐릿해지다가 사라졌다.
“저거 뭐야? 어디 소속이지?”
“비전투 요원 중에 저런 놈이 있었어?”
검은 갑옷의 요원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광장 중앙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그들이 취재의 중심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소외된 기분으로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광장 중앙, 혜성은 BJ들과 기자들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썅,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혜성은 자신의 손에 들린 장검을 내려다봤다. 2차 각성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순직이라는 계획은 까맣게 잊고, 본능적인 투쟁심에 사로잡힌 전사가 돼 있었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상황.
“난감하군.”
오매불망 기다리던 2차 각성을 한 건 좋은데, 하필 그게 순직을 막 눈앞에 둔 순간이라니.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어디 소속이고, 직급은 어떻게 되십니까?”
“이제 막 2차 각성을 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초진동 블레이드를 사용하신 겁니까?”
“단신으로 해골 병사와 맞섰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어느새 나타난 공중파 기자들도 커다란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밀고 질문을 쏟아냈다. 여러 질문이 한데 뒤섞였다. 귀가 다 얼얼했다.
“에…… 그러니까……”
혜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에 흩어진 해골 병사의 조각들, 그를 향해 내민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는 기자들…….
이 모든 게 그저 꿈만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주목받는 인터뷰도 처음이었다.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기자들은 눈을 빛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머리가 멍해졌다. 마른침만 삼키길 수차례. 그는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K-NSA가 항상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그는 카메라들을 둘러보며 공익 광고 모델처럼 믿음직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딱히 대단한 의무감이나 소속감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사무실과 TV, 공익 광고 등에서 지겹게 본 K-NSA의 홍보 멘트 중 일부였다.
‘너무 유치했나?’
잠깐 후회도 됐지만, 효과는 생각 이상이었다. 사방에서 함성이 터졌다.
“이, 혜, 성!”
기자들마저도 주먹을 움켜쥐고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혜성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바라던 순직은 안 되고, 시민을 구하기 위해 위험에 뛰어든 영웅이 되다니.”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문득 허탈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앞으로 기회는 많을 거야.”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순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
같은 시간. 서울 모 PC방.
“어, 이게 뭐야? 이혜성?”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웅성거렸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바뀌었다. 1위는 ‘이혜성’, 2위는 ‘DDP 이혜성’, 3위는 ‘NSA 이혜성’ 등이었다.
곧 1위부터 10위까지 모든 검색어 순위가 ‘이혜성’이란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보던 ‘능력자 H군 마약’이나 ‘스캔들’, ‘길드 D 탈세’ 등은 순식간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야, 여기 이거 좀 봐!”
누군가가 동영상을 클릭했다. [DDP 실시간 중계]였다.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현장감이 생생했다.
BJ들의 목이 해골 병사들의 검에 떨어지기 직전, 비전투 요원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몸을 날려 그들을 막아섰다. 마치 히어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새끼 뭐야?”
처음엔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헛웃음을 터뜨렸다.
곧 장르가 변했다. 막강한 힘을 지닌 주인공이 괴물들을 때려잡는 액션 활극이었다.
해골 병사들이 부서지는 장면에서는 자신들도 모르게 환호가 나왔다.
10분가량의 영상은 [이 시대의 참된 히어로, 이혜성!]이라는 80년대식 자막으로 마무리됐다.
“이혜성이라고? 누구야? 듣보잡인데?”
“어째 중2병 걸린 애 같지 않아?”
“중2든, 중3이든 요즘 세상에 이런 능력자가 흔해?”
“맞아! 돈만 밝히는 능력자들보단 이런 영웅병 걸린 능력자가 훨씬 낫지!”
키보드 전사들이 거칠게 자판을 두드렸다. 각 게시판마다 혜성에 대한 호의적인 댓글들이 경쟁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누군가가 말했다.
“어? 그런데 복장이…… 2급 비전투 요원인 거 같은데?”
“그렇네! 갑옷이 아니라 전투복을 입었네!”
“뭐? 일꾼이라고? 말도 안 돼!”
몇몇이 키보드를 내려치며 흥분했다.
그날 오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이혜성을 1급 전투 요원으로……!]라는 청원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