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는 순직이 힘들다 1권]
# 프롤로그. 나를 죽여줘!
쾅, 혜성의 펀치가 놈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붉은 뿔을 지닌 S급 몬스터였다.
“끄어어억!”
놈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몸뚱이가 쩍쩍 갈라졌고, 갈라진 틈에서 붉은빛이 새어나왔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자폭인가? 시민들은?’
혜성은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수많은 S급 몬스터들이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놈의 우측으로 향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 십여 명이 벌벌 떨고 있었다. S급의 자폭이라면 빌딩 하나쯤은 우습게 날려버릴 수 있을 터. 능력이 없는 시민들이 폭발에 휘말린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자폭을 몸으로 막는다. 장렬한 산화. 순직. 오케이!’
일련의 시나리오가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는 어금니를 깨물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몬스터들의 공격은 무시.
콰쾅, 그는 휘청거리면서도 그대로 몬스터를 덮쳤다.
번쩍, 그의 몸이 놈을 깔아뭉개는 것과 동시에 화염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아디오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주위의 시민들, 그를 공격하던 몬스터들도 모두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직 보상금은 얼마나 될까? 당연히 국립묘지에 묻히겠지? 혹시 광화문에 동상도 세워주려나?
그러나 그의 망상은 여기까지.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야?”
혜성은 실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신에서 은은한 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먹을 슬쩍 쥐어봤다. 화염 구체가 양 주먹에 맺혔다.
다차 각성과 스킬 카피.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능력이 제멋대로 발현된 것이다.
“끄아아악!”
물러섰던 몬스터들이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혜성은 시민들을 힐끔 돌아봤다. 다들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라아아알!”
그는 길게 욕설을 내뱉으며 양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몬스터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제멋대로 발현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분노였다.
파아앗!
조금 전 흡수한 화염이 증폭돼 뿜어졌다. 마치 붉은 파도처럼.
“끼에에에엑!”
몬스터들은 황급히 물러나며 두 팔을 교차시켜 몸을 막았다. 소용없었다. 놈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잠시 후, 황금색 눈동자가 서서히 짙은 갈색으로 돌아왔다. 혜성은 주위를 둘러봤다.
서울역 대합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검게 탄 시체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코볼트나 고블린처럼 약해빠진 놈들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S급 몬스터들이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그는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와아! 이혜성, 이혜성!”
시민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몰려왔다.
대꾸할 의욕도 없었다. 그는 건성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 못난 놈들아! 명색이 S급 몬스터 군단이라면서. 나 하나 못 죽이냐? 제발 나 좀 죽여줘.”
혜성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순직은…… 이번에도 실패였다.
# 001.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1)
그날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요즘 이상하게 몸이 안 좋아 친구 녀석의 병원에 가 본 것인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친구로서 이런 말 하기 정말 미안한데…… 각성 에너지의 비정상적 폭발, 일명 블랙아웃이다. 앞으로 짧으면 6개월, 길면 9개월 정도……. 학계에서도 그동안 이론상으로만 존재했을 뿐, 실제로 보고된 적은 없었어. 능력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통증이나 자각 증세는 없겠지만…….”
태호 녀석은 금테 안경을 올려 쓰며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환자처럼 창백한 피부가 오늘따라 더욱 하얗게 보였다.
혜성은 처음엔 피식 웃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나 녀석의 표정은 전혀 농담이 아니다. 그는 곧 녀석의 멱살을 잡고 횡설수설했다.
“……씨발, 왜 나한테만 그래? 힐러는 폼이냐? 아이템은? 치유능력은? 아니면 성녀의 축복이나 뭐 그런 건? 너 유명한 힐러라며? 너 이 새끼, 실은 돌팔이지? 내 말이 맞지?”
태호는 그가 악에 받쳐 소리치는 모습을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내가 아니라 어떤 힐러도 널 고칠 수 없을 거야. 네 몸의 이상은 각성자 고유의 에너지와 관련된 것이거든. 특히 EF수치 중에서…….”
녀석의 말은 오래된 테이프처럼 길게 늘어졌다. 혜성은 녀석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치병, 6개월, 마음의 준비, 이 세 단어만이 꼬리를 물고 귓가를 맴돌았다.
“일단 이건 비밀로 하자.”
혜성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이 뭐라고 말하며 따라 나오려고 했지만, 그는 손을 내젓고 혼자 나왔다.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혜성은 복도에 있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걸리라는 로또는 안 걸리고 엉뚱한 게 걸리다니.
0.0001%도 안 된다는 확률이 왜 하필 나한테……. 눈앞이 캄캄해지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수신자 명은 [어무이]. 받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연결됐다.
“지금 바쁘다. 급한 일이냐?”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화기 너머로 순대국밥을 재촉하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냐. 그냥 한번 해봤어. 엄마는?”
“잘 있다. 밥 먹었지?”
“응.”
“아픈 데는 없지?”
“응.”
“그럼 됐다. 끊어.”
통화시간 10초. 형식적인 인사뿐이었지만, 아버지치곤 오래 통화한 셈이었다.
다음은 동생 차례였다. 동생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연결됐다.
“나 지금 알바 가야 해. 왜? 돈 필요해?”
대뜸 돈 얘기 먼저 나왔다. 매정한 것.
“아니다. 그냥 한번 해 봤어.”
“미쳤어? 징그러워! 끊어!”
쓴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다들 평소와 다름없이 바빴다. 적어도 집에 우환은 없다는 뜻이었다.
“알았다. 밥 잘 먹고……”
그는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나마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은? 그리고 돈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혜성은 필요한 돈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봤다.
“빌어먹을 게이트 병.”
절로 욕이 나왔다.
게이트 시대 초기, 일부 각성자들에게 나타난 희귀 질환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지금이야 치료법이 발달했지만, 당시에는 C급 영약 하나도 수천만 원을 호가했다.
그 때문에 혜성의 부모님이 끌어다 쓴 은행 대출금과 사채가 약 수십억 원. 온 가족이 뼈 빠지게 일해 갚았지만, 아직도 사채 일부가 남아 있었다.
“나 때문에 고생만 했으니, 노후에 작은 아파트라도 한 채 마련해 드려야지. 혜진이 년도 내년에 대학교에 간다고 했지? 학비 전액은 무리더라도 오빠로서 등록금 정도는 내줘야 할 테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계산해도 20억이 넘게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자산은 원룸 보증금을 포함해 4천만 원 남짓. 로또에 당첨돼도 부족했다.
능력자라고 다 돈을 잘 버는 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와 비슷했다. 수백억을 받는 슈퍼스타의 뒤에는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수많은 마이너리거가 존재했다.
능력자도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가 있는 반면, 당장 기본적인 장비도 부족한 저렙들이 수두룩했다. 그래도 그는 정부 요원이 됐으니, C급 각성자치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띵동, 핸드폰에서 문자 알람 소리가 들렸다. 무시했다. 2분 간격으로 다시 알림이 왔다.
“뭐야?”
혜성은 눈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잊고 있던 은행 자동이체였다. 무심코 문자 창을 닫으려는 찰나, 뭔가 눈에 띄었다. 후배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가입했던 보험이었다.
그는 급히 보험 약관을 검색했다. 능력자 전용의 특별보험이었다. 암처럼 일반 질병에 대한 보장은 없었다.
대신 몬스터와의 전투에 관한 보장이 있었다. 수령액은 최대 10억, 단 전투 중 사망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핸드폰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빨라졌다.
위험직무순직 특별 유족보상금, 일명 순직 급여도 있었다. 순직도 종류가 많지만, 백금 훈장을 받는 최고 등급이라면 10억 정도였다.
그 외 공무원노조의 조의금, 능력자 협회의 조의금, 각계의 성금. 이것저것 합치면 얼추 25~30억 정도 나올 것 같았다.
단, 어설프게 죽으면 안 됐다. 보험과 순직의 심사는 엄격했다.
‘좋다! 이왕 죽을 거, 영화처럼 한번 멋있게 죽어 보자!’
혜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
을지로 K-NSA 본부 B동 301호.
“혜성 씨, 어디 다녀왔어요?”
40대 과장이 안경 너머로 그를 쏘아봤다.
“아, 병원 예약이 있어서요.”
혜성은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과장은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실실 웃으며 슬쩍 자리에 앉았다.
“꼭 바쁠 때만 아파요. 하여튼 미꾸라지가 따로 없다니까.”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정 대리였다.
“혜성 씨 좌우명 몰라? 안전제일.”
“맞아. 그러려면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고 몸 사려야지.”
다른 동료들도 농담처럼 거들었다. 웃음 속에 뼈가 있었다.
뺀질이, 이혜성.
사무실에서 그의 별명이었다. 뭐,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괜히 용감한 척 나섰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단 가늘고 길게 살자는 게 그의 신조였다.
“요즘 변종 게이트 때문에 비상인 거 알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자리를 비우지……”
과장이 한창 말하는 도중이었다.
왜-엥!
건물 전체에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게이트?”
과장 이하 모든 직원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혜성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순직을 결심하긴 했지만, 막상 그때가 너무 빨리 닥쳤다.
그러나 놀람은 잠시. 그는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라리 잘됐다. 결심이 흔들리기 전에 빨리 실행에 옮기는 편이 나았다.
“가자!”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
DDP 근처 대로변.
지상에서 5미터 높이에 직경 1미터 정도의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린 지도 벌써 10년. 시민들은 당황하지 않고 순순히 경찰의 통제에 따랐다.
- ……지금 저희는 DDP 앞 현장에서…….
- ……보시는 바와 같이 C급으로 추정되지만…….
몇몇 BJ들이 호들갑을 떨며 중계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통제선 안쪽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왜-앵, 사이렌을 울리며 검은색 트럭 3대가 일렬로 등장했다.
측면에 흰색 페인트로 K-NSA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잠시 후, 검은색 전투복을 입고 검은색 전투모를 쓴 요원들이 우르르 내렸다. 혜성도 그중의 하나였다.
“자자, 오늘도 큰 사고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자고. 각자 맡은 곳은 확실히 하고. 특히 혜성 씨, 지난번처럼 배 아프다고 도망가면 안 돼!”
과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명령했다.
혜성은 고개를 끄덕인 뒤 남쪽으로 내달렸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굳어 있었다. 파트너인 정 대리가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뒤따랐다.
능력자라고 전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건 아니었다. 혜성은 주위를 통제하거나 전투를 보조하는 일꾼이었다.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민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곤 대(對) 몬스터용 중기관총을 게이트 쪽으로 고정했다.
5분 후, 검은색 승합차 두 대가 도착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요원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모두 12명.
검은 갑옷으로 상징되는 전투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도, 검, 창, 방패, 활 등 다양한 무기를 하나씩 들고, 일정 간격으로 서서 어울림 광장을 포위했다.
검은 후드를 푹 눌러쓴 두 명은 조금 떨어진 후방에서 대기했다.
- NSA의 전투팀이 도착했습니다. 원거리 딜러도 두 명 보이고…….
BJ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전투팀에게 향했다. 혜성을 비롯한 보조요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쳇! 더럽게 폼 잡는구먼. 그래봤자 같은 공무원인데 말이야. 너도 유니크 레벨이니까 가능성이 있는 거 아냐? 2차, 3차의 다중 각성이란 거 말이야.”
옆에 있던 정 대리가 누런 가래침을 뱉으며 혜성을 돌아봤다. 혜성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전투 요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스킬의 소유자. 말은 좋은데, 그럼 뭐합니까? 2차 각성을 못 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각성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거야?”
“포기했습니다. 인위적으로 2차 각성을 유도하는 방법을 알아내면 아마 노벨상감일걸요?”
혜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쓰게 웃었다. 그때였다.
부-웅!
하늘의 진동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 게이트가 위아래로 천천히 갈라졌다. 마치 외눈박이 거인이 눈을 뜨는 것 같았지만, 흰자위에는 피처럼 붉은 아지랑이가 있었다.
- 크아아아악!
게이트 너머에서 섬뜩한 비명이 쏟아졌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온다!”
혜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정면을 응시했다. 과연 무엇이 나타날 것인가?
전투 요원들도 눈을 부릅뜨고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했다.
잠시 후, 몬스터들이 게이트에서 우박처럼 쏟아졌다.
“해골 병사!”
혜성은 단말마처럼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C급 정도의 지상형 몬스터로서, 그 이름처럼 덜그럭거리며 움직이는 해골이었다.
왼손엔 원형 방패, 오른손엔 장검을 들고 있었다. 개개인의 검술도 제법이었지만, 대형을 갖춘 공격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각자의 위치를 지켜라!”
“놈들을 저지선 밖으로 보내면 안 된다!”
조장급의 전투 요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쳤다.
전투 요원들과 몬스터들이 DDP 어울림 광장에서 충돌했다.
콰콰쾅, 광장 여기저기서 거대한 불기둥이 일었다. 예상대로 후드를 쓴 자들은 마법사였다.
지뢰처럼 터지는 불기둥 때문에 해골 병사들의 대형이 흐트러졌다. 그 사이 근거리 전투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놈들을 공격했다.
혜성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숫자는 몬스터들이 스무 배 이상 많았지만, 전투력은 요원들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다량으로 분비됐다.
퍼펑, 그의 근처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해골 병사 몇 놈이 광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데?”
정 대리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중기관총을 고쳐 잡았다.
콰콰쾅, 다시 왼쪽에서 불기둥이 솟았다.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아악, 살려줘!”
왼쪽에서 다급한 비명이 들렸다.
“뭐야?”
혜성과 정 대리는 급히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BJ 세 명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였다. 얼굴이 땀으로 흥건했지만, 손에는 여전히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끼에에엑!”
해골 병사가 괴상한 울음을 터뜨리며 셋을 향해 달려들었다.
“씨발!”
정 대리의 입에서 대번 욕설이 터졌다. 상황은 뻔했다. 통제 요원들이 전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BJ들이 슬금슬금 바리케이드를 넘어온 것이다.
정 대리는 급히 왼쪽으로 총구를 돌렸지만, 막상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다.
몬스터용 기관총의 정확도는 많이 떨어지는 편. 자칫하면 BJ들이 유탄을 맞을 수도 있었다.
“잠깐!”
그림자 하나가 정 대리를 지나쳐 BJ들을 향해 달려갔다. 혜성이었다. 그의 손에는 죽은 해골 병사의 장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조회수와 풍선에 눈이 먼 BJ들.
평소라면 발암 덩어리라고 욕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 사명감으로 뭉친 열혈 요원, 시민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다!
내일 발행될 신문의 헤드라인을 떠올리며, 혜성은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