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새로운 바실레오스
함께 행진한 시민들은 텅 빈 시민궁을 보고 나서야 바라흐하가 도주한 걸 알게 되었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목민관이란 자가 폴리스를 버리고, 시민들을 버리고 도주했다. 자부심 높은 켈커티스의 시민들로서, 명예로운 북국의 전사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비겁함이었다. 시민들과 병사들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커트리안군은 개선군이자 동시에 해방군의 대접을 받았다. 시민궁이 정비되고, 가택에 구금되었던 원로들이 서둘러 시민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히어데로를 비롯해 실종되거나 사라졌던 원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무사한 모습을 보고 동료 원로들이 눈물을 흘렸다.
의외인 점은 중립을 표방했음에도 제도 개선에 찬성표를 던졌던 다수의 원로들이 그대로 시에 남았다는 점이었다. 다른 원로들과 시민들의 눈총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커트리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급히 원로회의가 소집됐다. 켈커티스는 동맹의 중심이다. 단 하루라도 지도자의 자리를 비워 둬서는 안 됐다.
켈커티스 원로원은 총원이 칠십 명이다. 그중 바라흐하를 따라나선 원로가 스물일곱이었고, 사망하거나 와병중인 원로가 아홉이다. 히어데로를 비롯해 실종되었던 여섯 명의 원로가 모습을 드러냈고, 와병 중이라고 소문이 난 원로 셋이 정정한 모습으로 시민궁에 나타났다.
또한 중립을 표방했던 원로 중 열 명이 시민궁에 들어섰다. 다른 원로들과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최고원로이자 커트리안의 아비인 히어데로가 나서서 이를 무마시켰다.
원로회의에 참석한 총원은 서른일곱 명, 가까스로 절반을 넘겼다. 당일로 긴급 원로회의가 시작됐다. 원로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커트리안은 대기실에 앉아 회의 결과를 기다렸다.
장장 두 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여러 가지 긴급한 사안이 결정됐다.
원로원은 바라흐하가 주도한 제도 개편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했다. 중립을 표방했던 원로들의 증언에 의해 바라흐하가 일부 원로들을 겁박한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또한 군대를 동원해 원로원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독재를 획책한 바라흐하를 탄핵함과 동시에 관련 행위 일체를 폴리스에 대한 반란 행위로 규정했다.
더불어 바라흐하를 따라 반란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처분도 결정됐다.
바라흐하에게 협조했으나 그 행위가 자신의 직무였던 자들은 사면되었다. 반면 적극적으로 협조했거나 사안이 중한 자들은 십 년간 시민권을 박탈했다. 바라흐하를 따라 폴리스를 버리고 반란군에 가담한 원로들과 가주들에게는 수배령이 떨어졌고, 남겨진 가족들의 신분은 전원 노예로 강등시켰다. 처형을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은 공석이 된 양대 바실레오스의 선출이었다. 원로원은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당분간 한 명의 바실레오스만으로 폴리스를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그 한 명의 바실레오스로 커트리안을 선출했다. 출마자도 없었고 당사자인 커트리안의 출마 선언도 없이 이뤄진 결정사항이었다.
원로원의 결정사항은 그 즉시 시민궁 광장에서 공표되었다. 원로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시민궁 광장을 떠나지 않던 시민들이 결정사항을 전달받고 환호했다. 켈커티스 만세를 외치고, 커트리안 만세를 외쳤다.
커트리안의 수락 연설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날이 저물도록 시민궁 광장을 떠나지 않고 열광했다. 커트리안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확고했다.
아쑨타에 의해 감금당했던 5군단장 파스쿠알레도 기대장들의 부축을 받고 나와 원로원의 결정에 지지를 표명했다.
바라흐하의 총애를 받던 일부 행정가들이 그대로 시민궁에 남았다.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중 하나인 군정 관리 아르세니오가 히어데로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들이 새로운 바실레오스 커트리안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에 시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정상을 찾아갔다.
크로아지크 1군단은 공식적으로는 이전 명칭인 켈커티스 2군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단별로 구역을 정하고 기대별로 흩어져 밤새 시내를 순찰했다. 5군단은 이전처럼 북문에 배치됐다. 당연히 조노량에 의해 뻥 뚫려 버린 북문 보수 작업도 그들의 몫이었다.
시민들에게도, 커트리안에게도 아주 긴 하루였다. 커트리안은 자정을 훨씬 넘겨서야 과거 바라흐하가 사용했던 침실에 들었다. 큰일을 치른 탓인지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갑옷만 대충 벗어 던진 후 바라흐하의 채취가 묻어 있는 침대에 그대로 몸을 뉘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 ☆ ☆
켈커티스의 소식은 게이트를 타고 빠르게 동맹의 폴리스들로 전해졌다.
켈커티스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동맹을 대표하는 폴리스이며 명실상부한 동맹의 중심도시다. 그 켈커티스가 공격을 받았다. 공격한 사람이 누구고, 이유가 무엇이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원 요청이 오기 전이라도 게이트를 넘고, 군대를 파견함이 마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폴리스들은 섣불리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카테니오 등 몇몇 폴리스들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켈커티스 내부 문제로 선언하고 자신들은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며 선수를 쳐 버렸다. 혹시 있을지 모를 바라흐하의 도움 요청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다른 폴리스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지나며 카테네오와 같은 방침을 발표하는 폴리스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모두 새로운 후원자 케이론 때문이었다.
서부에서 가장 강성한 폴리스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케이론을 꼽는다. 인구 십칠만의 대형 폴리스인 케이론은 서이스테르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식생이 풍부하고, 염전이 발달했다. 풍부한 단백질을 섭취하며 자란 탓인지 시민들의 체구는 건장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다.
또한 케이론은 군사적으로도 강력했다. 현재는 3개 군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금만 무리한다면 4개 군단까지도 운용이 가능한 폴리스였다.
케이론이 넉넉한 폴리스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각 폴리스들의 여러 정치인들을 동시에 후원할 정도로 넉넉한 건 아니다. 그런 케이론이 그 많은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입김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건 순수하게 케이론 목민관의 둘째아들 벤트의 자금력 덕분이었다. 벤트는 출처불명의 자금을 들고 각 폴리스의 유력한 정치인들을 찾아 배포 크게 뿌려 댔다.
더불어 켈커티스의 상단 몰래 각 폴리스의 특산품을 만족할 만한 가격에 구매해 주고, 폴리스가 원하는 물품을 시의 적절하게 공급할 정도의 능력을 발휘했다.
각 폴리스의 유력 정치인들은 그동안 바라흐하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후원에는 반대급부가 따랐다. 폴리스의 이권을 넘겨줘야 했고, 정치, 군사적으로 통제를 받아야 했다.
그들 모두 한 개 폴리스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전사들이다. 비록 바라흐하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을 쟁취했지만 바라흐하의 독선이 마냥 기껍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케이론에서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후원을 해 왔고, 또한 켈커티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원활하고도 저렴한 물류의 공급을 보장해 줬다.
각 폴리스들은 몇 차례 거래를 통해 벤트가 추천한 시나투스 상단의 능력이 켈커티스의 로메노 상단 못지않음을 입증 받았다.
벤트가 들어가면 시나투스 상단이 따라 들어갔고, 거래 폴리스가 늘어날수록 시나투스의 물류는 더욱 풍부해졌다.
최근 각 폴리스는 바라흐하가 단행한 제도 개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종신제 단독 목민관! 그 의미를 모를 정치인들은 없었다. 이번 개편은 한마디로 바라흐하의 독재 선언이었다.
안 그래도 독선적인 바라흐하의 처사에 휘둘려 온 다른 폴리스들이 이 소식을 반길 리가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폴리스들은 기본적으로 공화제를 최선의 정치체계로 선호했다. 그들에게 독재정권을 구축한 바라흐하가 좋게 비쳐질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바라흐하의 독주에 밸이 꼴려 있던 트렌티노와 같은 폴리스들은 커트리안의 반란(?)을 노골적으로 환영했다.
☆ ☆ ☆
켈커티스가 격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도니아에도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치프만가, 아도니아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며 현 목민관이자 아도니아 최고의 실세, 피온 치프만의 가문이다. 그 가문에 감당할 수 없는 비사가 발생했다. 집안 곳곳에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직계, 방계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사촌 간에, 팔촌 간에 원한에 사로잡혀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 기세였다.
치프만가의 500년 역사, 그리고 아도니아의 500년 역사! 아도니아의 성쇠와 치프만가의 성쇠는 묘하게 비슷한 곡선을 그렸다. 아도니아가 세를 떨칠 때마다 그 배경에는 늘 치프만가가 있었고, 치프만가가 정치적 세를 잃고 침체기에 들면 아도니아도 그러했다.
연합이 결성된 것도, 아도니아가 연합의 맹주가 된 것도 모두 치프만가에서 배출한 목민관이 이뤄 낸 성과였다.
묘한 우연이겠지만 치프만가의 사람들이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때마다 아도니아는 도약에 도약을 거듭했다. 치프만가의 자부심이 남다른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런 치프만가가 산산이 쪼개질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방계 중엔 당장 성씨를 갈아 버리겠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린 사람들까지 있었다.
아도니아 제3목민관이며 치프만가의 현 가주인 피온 치프만이 인정에 얽매여 시간을 끌고, 사태를 방관한 것이 사달을 불러왔다.
언제부터인가 치프만가의 기사들 사이에 파벌이 생겨났다. 피온 치프만의 공식 후계자이자, 차기 가주로 공표된 파란 치프만을 중심으로 모여 든 다수파와, 전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난 루이드 치프만을 중심으로 모여든 소수파 기사들 간의 분쟁이었다.
다수파의 주장은 이미 후계가 결정된 이상 이를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소수파의 주장은 전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났던 장자가 극강의 전사가 되어 돌아왔으므로 전통에 따라 마땅히 장자가 치프만가를 승계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었다.
이 정도의 의견 충돌은 보통의 가문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고, 동시에 가주가 건재하는 한 크게 불거져서는 안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기사들 사이에서 발생한 이 사소한 대립은 기사가 속한 방계에까지 옮겨 갔고, 시간이 흐르며 공식적으로 루이드를 지지하는 방계 가문까지도 등장하게 되었다. 과거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사실 피온은 이러한 현상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기까지 했었다. 장자인 루이드를 받쳐 주는 기사들과 가문들이 생김으로 인해 완고한 늙은이들의 입을 막고, 그 빌어먹을 전통을 바꿔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이렇게 대규모 유혈사태까지 초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안 내에서 어찌 이런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 다수파 기사들이 루이드를 공격한 것이다. 그들은 복면을 쓰고 오밤중에 루이드가 쉬고 있던 내실을 습격했다. 루이드는 가까스로 몸을 빼냈지만 자다가 기습을 당한 탓에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루이드를 보호한 것이 소수파였다. 부상을 입은 루이드는 마침 제3별관에 모여 의견을 나누던 소수파 기사들에게 도망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두 파벌 간에 유혈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처음 습격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두 파벌이 처음 부딪쳤을 때는 소수파의 숫자가 오히려 많았다. 당연히 습격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 소식은 바로 다수파 기사들에게 전해졌다. 상당수의 다수파 기사들이 몰려들자 이번에는 소수파 기사들이 일방적으로 피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양쪽 모두 합해 무려 이백이 넘는 기사들이 정원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유혈사태였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간 피온과 친위기사들에 의해 사태가 무마되었지만 이미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명백히 다수파의 잘못이었다. 가문의 기사가 가문의 적자를 습격한 사건이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피해자는 루이드였다.
불구가 되거나 살해당한 소수파 기사들과 그들의 가문에선 이 사태를 그대로 묵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피온의 입장에서도 가문의 적자를 습격한 가문의 기사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이번 사태를 유발시킨 다수파 기사들을 색출해 사옥에 가두고 심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치고 살해당한 기사가 모두 소수파인 것은 아니었다. 분명 잘못은 다수파가 했지만 다수파에 속한 방계 가문과 가문의 원로들이 일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피온을 원망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