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첩도
처음에는 세 번 접을 생각이었다. 두 번 접어서는 안심이 안 될 정도로 이곳 쇠의 품질은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조노량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자신이 경험 많은 대장장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계획대로 세 번 접었을 때, 조노량은 난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접어놓은 쇠판이 도저히 제대로 된 도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세 번 접어 완성시킬 생각이었으므로 첫 번째와 두 번째까지는 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세 번째에는 펴는 과정부터 접는 과정까지 상당히 신경을 썼건만 영 민망한 결과물이 탄생하고 말았다.
칼등이 실패한 낭아도처럼 울퉁불퉁한 거야 적당히 두드려서 접으면 될 일이었지만-검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칼날이 모래사장에 찍힌 뱀의 발자국 모양으로 파도치는 거야 원래 모양이 그런 것이라고, 그 유명한 ‘장팔사모’도 그런 모양이라고 스스로 우기면 될 일이었지만, 검신의 두께가 고르지 못한 것은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래서는 무게중심조차 잡기 어렵다. 무게중심이야말로 검의 생명인데 말이다.
손잡이로부터 대략 삼분의 일 지점, 그곳에 손가락을 대고 가늠했을 때 검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아야 무게중심이 잡혔다고 볼 수 있다. 검의 무게중심이 그 정도에 있어야 검을 가장 빠르면서도 무겁게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이곳 검은 무게중심이 완전히 칼끝에 쏠리도록 마름모꼴 모양을 하고 있다. 강력한 타격만을 위주로 만들어진, 한마디로 도끼와 다를 바가 없는 무기다. 애당초 검로의 변화는 고려치 않고 만들어진 것이다.
세 번 접었을 때의 결과물은 무게중심이고 뭐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두께가 들쭉날쭉한 실패작이었다. 검신이 그 모양이라고 해서 두꺼운 부분만 골라 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잘못 박음질한 천처럼 울어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 정도라면 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있어도 도라는 이름은 버려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조노량은 아예 네 번 접는 길을 택했다. 조금 더 시간이 든다 뿐,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하지만 네 번째 접었을 때 조노량은 결국 다시 한 번 더 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의 기간이 헛되지는 않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들고 다니기에는 조금 민망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섯 번을 접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 조노량이 마주 대하고 있는 기형도이다. 일단 도신은 제법 고르게 빠졌다. 무게중심도 적당하다. 하지만 기형도라도 말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도의 너비가 너무 넓었다. 손가락 세 개는 겹쳐 놓은 넓이다. 이래서는 날렵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애초에 틀렸다.
두 번째는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도의 날이 여전히 파도를 치고 있었다. 이 부분은 결국 사도(蛇刀)라고 우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접는다면 반년으로도 모자랄 판이다.
세 번째는 도면과 등에 있는 얼룩무늬였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부위를 억지로 두들겨서 가지런히 맞추다 보니, 접은 부위가 터져 버려 아주 희한한 무늬를 만들어 냈다. 다섯 번을 접다 보니 차기(借氣)를 해도 좀처럼 성형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 네 번을 접는 데 두 달 반을 소모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을 접는 데에 그 전 네 번을 접을 때 들어간 기간을 합친 만큼의 시간이 들어갔다. 그나마 내공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다섯 번을 접는 동안 원통형이던 쇠막대기의 부피가 반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불순물이 빠져나가서 줄어든 것도 있지만 차기로도 쉽사리 성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고밀도로 단조 되었기 때문이다. 차기에 대한 숙련을 훈련장이 아닌 대장간에서 이루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정도였다. 이제는 검이 아니라 망치를 들었을 때가 기의 수발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그렇게 단단히 제련된 쇠를 억지로 우겨 넣다 보니 접은 부분이 터지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터져 나가는 것을 무시하고, 무려 반달이나 씨름하고서야 칼등을 가지런히 했다. 그런 이후에 다시 뭉개진 칼날 부위를 다듬을 수 있었다.
조노량의 눈 아래, 서른두 겹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무테 모양의 구불구불한 문양이 칼등을 휘감고도 모자라, 칼등을 벗어나 옆구리 쪽까지 침범했다.
하지만 한 번 더 접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한 번 더 접으려면 틀림없이 꼬박 반년은 소모하고도 모자랄 것이다. 내공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접는다고 덤볐다가는 진짜 대장장이가 되고 말 것이다.
조노량은 집게를 이용해 오전 내내 달궈 놓은 도를 눈높이까지 들어 보았다. 달궈지다 못해 눈부신 백광을 뿌려대고 있었다.
칼의 생김새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투박한 맛과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조금 무거운 감이 있었지만 중병이 많은 이곳 무기들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칼의 너비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파도치는 날도, 독특한 느낌의 무늬들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나름의 멋이라고 여겨도 좋을 듯했다.
이제 마지막 과정만 남았다.
신선한 피를 먹여야 한다. 다행히 이곳 사람들은 짐승을 잡아도 따로 피를 먹지 않기 때문에 피를 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순조롭지도 않았다. 피를 대지로 되돌리지 않고 이용하는 자는 흑마법사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은 북부 대륙에서 절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가우렐리온이었다. 돼지 한 마리에 해당하는 양의 짐승 뼈를 모아다 줬고, 지금 또 한 동이의 양 피를 받으러 간 사람도 가우렐리온이었기 때문이다.
조노량은 도를 화덕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어린 시절 함께했던 늙은 대장장이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렸다.
“무섭긴, 이놈아. 사내놈이 짐승 피를 보고 무서워한대서야 장차 무슨 일을 하겠누? 검은 말이다. 피를 먹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놈이니라. 피 맛을 봐야 제 구실을 하는 거지. 노부도 잘 모르겠다만, 노부에게 쇠 치는 법을 가르친 노인네의 말이다. 아니, 그 노인네도 그 윗대 노인네한테 들은 말일 테지. 하여간, 피에는 인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쇠를 강하게 한단다. 화덕에 뼈를 태우는 것도 같은 이치다만, 마지막으로 직접 피를 흠씬 먹여야 하는 게지. 피는 생명이고, 검에게 피를 맥임으로써 비로소 살아나게 되는 거란다. 스러진 생명을 먹고 새 생명이 잉태되는 게지. 헛, 허험……. 어찌되었던 피를 먹은 놈과 안 먹은 놈은 차이가 있단다. 단단한 것도 단단한 것이지만 피를 먹은 놈은 좀처럼 녹도 슬지 않느니라. 에잇,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려무나.”
“이런, 우라질! 미친놈이 갈수록 미쳐 가는구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겠다? 다시는 이런 해괴한 짓거리를 도와주면 내가 가우렐리온이 아니다. 뭣이? 고맙다고? 새벽 마파람에 과부 오이 먹는 소리 말아라. 이놈!”
가우렐리온은 시뻘건 선지가 담긴 양동이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양동에서는 아직까지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내, 그 백정 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다니……. 뭐이? 식칼이 필요하다고? 허, 이런 빌어먹을 백정 놈! 이 가우렐리온 님에게 식칼 따위를 만들어 달라고?”
가우렐리온은 한동안 멈추지 않고 투덜거렸다.
조노량은 괄괄한 근육질 노인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의 양이 조금 모자란 감이 있지만 아쉬운 대로 쓸 만한 양이었다. 조노량은 칼이 푹 잠길 수 있도록 길쭉한 물통에다가 피를 옮겨 담았다.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시간이 지나면 피가 굳어 버리기 때문이다.
화덕을 열고 칼을 꺼냈다. 달궈진 칼이 숨이라도 쉬는 듯 작열한다. 피를 먹을 것을 알고 흥분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 열기에 순식간에 집게의 끝부분까지 붉게 달아오른다.
조노량은 조심스럽게 칼을 물통에 담갔다. ‘퍼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터져 나가듯 사방으로 비산한다. 역겨운 비린내를 뿌린다.
조노량은 익은 피를 얼굴에 고스란히 뒤집어썼지만 미동도 없다. 땀방울과 결합해 붉게 번득이며 흘러내린다.
온 신경을 칼을 쥔 집게에 집중한다. 행여나 물통에 칼끝이라도 닿을 세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물통에 담긴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열기에 익어 가는 피비린내가 붉은 운무와 함께 대장간을 가득 채웠다. 호기심을 가지고 작업을 지켜보던 가우렐리온과 일꾼들이 인상을 찌푸리다 못해 대장간을 벗어났다. 반대로 옆 대장간 인부들은 지독한 피비린내에 놀라 모여들었다.
인부 중 하나가 혀를 찼다. 제대로 쇠를 다룰 줄 모르는 야만족이나 하는 어리석은 의식이라고 비웃었다. 일부는 가우렐리온에게 더 이상 주술적인 행위로 대장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조노량은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각이 지나고 나서야 끓어오르던 피거품이 사그라졌다.
조노량은 칼을 꺼내서 준비되어 있는 찬물에 담갔다. ‘폭’하는 가벼운 소음과 함께 잠겨 든다. 하지만 들러붙은 피는 좀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익어서 엉겨 붙어 버린 모양이다. 조노량은 젖은 천을 이용해 엉겨 붙은 피를 세심히 닦아 냈다. 거칠고 투박한 표면이 드러난다. 특별한 광택도 발하지 않았다. 좋은 검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칼등에 스며든 검붉은 선들은 뭔가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손가락으로 표면을 살짝 만져보았다.
아직까지는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조노량은 물을 갈아 다시 한 번 찬물에 칼을 담갔다. 아무런 소음도 없이 사뿐히 미끄러져 들어간다. 조노량은 그것이 마치 유영하는 물고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
‘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
‘다섯 번을 접었으니 오첩도(五疊刀)라 하겠다. 멋진 이름을 기대했을 텐데 미안하구나.’
‘웅웅.’
그럴 리야 없겠지만 조노량에게는 낮은 울림이 들리는 듯했다.
조노량이 이 칼에 들인 정성을 아는지라 가우렐리온은 손잡이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칼 하나에 무려 다섯 달이나 정성을 기울이다니.
스스로 장인이라 자부하는 가우렐리온조차 무기 하나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 본 경험이 없었다. 칼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손잡이 정도는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잘 말린 비연목으로 마감하고, 무두질한 갈리온 가죽을 씌워 줄 생각이다. 쓸데없이 긴 슴베 탓에 가죽이 좀 더 들겠지만, 그 정도야 다섯 달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감수해 줄 수 있다.
조노량이 돌아간 후 가우렐리온은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비연목을 다듬었다. 요청대로 손잡이가 될 비연목을 비교적 얇게 다듬었고, 슴베에 뚫어 놓은 세 개의 구멍과 간격을 맞춰 비연목의 안쪽에도 적당한 깊이의 구멍을 뚫었다.
고정핀을 가져와 여러 차례 맞춰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 가우렐리온은 나무망치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양쪽 손잡이를 하나로 결합했다. 일부러 조금 작게 판 손잡이 구멍 속으로 고정핀이 단단히 박혔다. 칼의 몸체와 나무 손잡이가 따로 놀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들고 휘둘러보아도 한 몸이나 된 듯 전혀 요동이 없다. 가죽을 씌우기 전에 이 정도라면 제대로 맞아 들어간 셈이다.
가우렐리온은 아껴 두었던 갈리온 가죽을 적당한 길이로 재단한 후, 아교를 칠해서 가드와 폼멜의 끝부분까지 단단히 감았다. 아교가 굳을 때까지 힘껏 눌러 고정 시킨 후에 얇게 무두질한 양가죽 끈으로 갈리온 가죽과 반대 방향으로 돌려 감았다.
늦은 밤에야 완성된 칼을 들어 본 가우렐리온은 작은 감동을 느꼈다. 특이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장인의 혼이 담긴 칼이었다. 자신도 이렇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 검을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잊고 살아 온 지 너무 오래였다.
가우렐리온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묘한 감동 때문에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마나 청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소를 위해 가마의 재를 정리하다가 희한한 일을 목격했다. 붉게 달아오른 둥근 뼛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뼛조각을 넣고 태웠으니 뼛조각이 있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보고 있는 저 뼛조각이 정상일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뼈를 넣은 것이 이틀 전이었으니, 이 뼛조각은 최소한 이틀 이상 가마에서 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고온의 가마에서 이틀간 원형을 유지하는 뼛조각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우렐리온은 붉게 달아오른 뼛조각을 꺼내어 한편에 밀쳐놓았다. 식은 후 자세히 살펴볼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