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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기준 (22/25)

꼰대의 기준

꼰대의 기준

직원들은 모르는 기가 막힌 밤이 지나갔다. 이 아침 내가 눈뜬 세상이 어제까지 알던 세상이 맞는지, 새삼 모든 게 의심스러웠지만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출근길에 올랐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매일 하던 대로 쌓인 결재 메일을 확인하니 사르르 사라져 버렸다. 세상도, 회사도,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걸 늘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하며 깨달았다. 어제 딱 하루, 교육 때문에 사무실을 비웠더니 밀린 결재는 둘째 치고, 회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이번 달은 이리저리 넘어갔지만, 다음 달엔 어떻게든 수입으로 고정비를 메꾸고 싶으니 바싹 달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회의실에 들어가 미리 보고 자료를 확인하려 웹하드에 접속했지만, 어디에도 오늘 회의 자료가 올라와 있지 않았다. 더욱이 회의실엔 아직 아무도 없어서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나만 다급한가 싶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기다렸다.

출근 시간은 9시 반. 회의는 10시. 내가 보고 있는 시계의 분침은 10시 정각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하나둘 회의실로 들어와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채웠는데 그 와중에도 몇 명이 없었다. 사원급 직원들이 보이지 않아 의아한 마음에 팀장을 부르려는 찰나에 회의실 문이 열리며 사원 세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저마다 커피를 하나씩 들고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수다를 떨면서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회사가 아니라 대학교 동아리방에 들어오는 듯 보여 멍해졌다. 자리에 앉은 사원 3인방 중 하나가 손에 들고 있는 커피 캐리어를 내려두니 대리가 일어나 하나씩 꺼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내 앞에도 커피를 한 잔 턱 하니 놓았다.

“대표님은 콜드브루 좋아하시죠?”

씽긋 웃으며 자리에 앉는 오 대리의 모습에 기가 막혔지만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어 말을 아꼈다. 이걸 지금 센스 있는 회의 준비였다고 칭찬해 줘야 하는 건지, 공사 구분하라고 한 소리를 해야 하는 건지.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은 10시 10분을 넘어가는 중이었다.

“아니, 다들 이렇게 커피를 좋아했어?”

“아우, 대표님. 아침에 커피 한 잔은 직장인에게 필수죠.”

“맞아, 맞아. 팀장님, 어제 덕분에 집에 택시 타고 편하게 갔어요. 감사합니다!”

까르르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법인 카드를 책상 건너편에 있는 박 팀장에게 건네는 유주. 대놓고 건네는 카드를 안 받을 수도 없으니 박 팀장은 뭔가 할 말 있는 듯한 찝찝한 표정으로 카드를 받아 들었다. 여기서 내가 한마디 하면 이전 회사에서 흔하게 만났던 직장 꼰대가 되는 건가?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지금 이건 회사가 아니라 거의 학교나 대학교 동아리 같은데? 누가 이렇게 일을 하지? 요새 애들은 이렇게 일을 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

“아니, 유주 씨, 푸름 씨, 다솔 씨. 오늘 왜 이렇게 신났지?”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웃는 세 사람을 향해 웃음기를 지우고 질문을 던졌지만, 세 사람은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연신 손만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아니야. 지금 엄청나게 신났어. 출근하는 게 그렇게 좋아요? 오늘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아, 그런 건 아닌데….”

“아침 회의 10시라고 분명 미리 말했는데, 커피 좀 더 일찍 가서 살 수 있지 않나?”

“아, 넵….”

감정은 배제하고 메시지만 전달하려 목소리의 높낮이를 최대한 없애고 차분히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의도와는 달리 꽤 묵직하게 중저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쉬는 시간에 정신 못 차리고 놀다가 담임선생님의 말에 집중력이 싹 모이는 것처럼 방금까지 저 높은 곳에서 방방 뛰놀던 사원들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아니, 신나게 하루 시작하는 건 당연히 좋은데 우리 기본은 좀 지키면서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시간은 맞춰야죠.”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좋게 말해보려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국혼나는 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지금 한 소리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였고, 나마저도 이걸 넘어간다면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조직이 되어버릴 테니. 아무리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라지만, 자유로운 거랑 무책임한 거는 구별을 해야지. 학교도 아니고. 감정을 누르고 눌러 겨우 딱 한마디 한 거라 속엣말을 다 하지 못한 답답함이 밀려오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대답을 한 뒤론 펜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각자 태블릿 PC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대체 이 친구들의 분위기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 거지? 고작 그래 봐야 대여섯 살 차이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골머리가 아파지려는 찰나 박 팀장이 말을 걸었다.

“대표님, 저 화면 띄우고 보고해도 될까요?”

“네. 진행하세요.”

노트북을 연결해 스크린에 띄우자 그제야 보고 자료가 보였다. 순간 한 가지 궁금증이 머리를 스쳐 박 팀장에게 물었다.

“박 팀장님, 원래 회의 전에 공유 폴더에 자료 올리지 않나요?”

“아, 맞습니다.”

“오늘은 안 올라왔던데.”

“오늘 자료 취합이 좀 늦어져서 못 올리고 바로 가지고 왔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입 밖으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박 팀장의 이야기에도 누구 하나 시선을 그녀에게 돌리는 사람은 없다. 다들 여전히 테이블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손에 든 펜을 꼼지락거릴 뿐. 조용히 회의를 진행시키니 박 팀장은 준비한 자료를 하나씩 보여주었다. 어떤 친구의 아이디어였고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그간 기획팀이 논의한 사항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전했다. 회의 중 자기 이름이 거론되어도 여전히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원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무슨 새로운 기능이 있나 싶어 시선이 자꾸만 사원들의 태블릿으로 향했다.

“대표님?”

자리에서 반쯤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옆에 앉아 있던 박 팀장이 나를 불렀고, 덕분에 다시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아니요. 어, 그래요. 잘 들었고, 그러면 섀도 컬러는 A안으로 결정하고 금형은 샘플 오는 거 보고 결정합시다.”

애매한 분위기를 지적할까 말까 고민하다 다른 말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결국에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자료 기획팀 다 같이 준비한 거 맞죠?”

내 질문에 직원들의 시선이 드디어 나에게로 모였다.

“네, 맞습니다.”

“근데 왜 박 팀장님 얘기에 다들 아무 반응도 없고 자기 태블릿만 보고 있어요. 덧붙이고 싶은 의견 있으면 더하라고 일부러 모여서 이야기하는 건데…?”

질문에 대답은 없고 조용해진 회의실. 내가 물어보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던진 건가? 묘하게 분위기가 싸했다. 결국 대답 듣기를 포기하고 업무적인 방향으로 질문을 바꿔봤다.

“어제 틴트 샘플 온 거 다들 확인하고 의견 모은 거 같은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는 건 어때요.”

“저….”

그러자 살며시 다솔이 손을 들고 말했다.

“대표님, 저 의견이 있는데요.”

“얘기해 봐요.”

“저희 팀은 기획 회의 자주 하고, 한 번 할 때마다 오래해서요. 대표님 보고는 웬만하면 팀장님이랑 두 분이서 하시는 게 시간도 줄이고 효율적일 것 같은데, 어떠세요?”

“네?”

다솔의 의견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아 되물으니 옆에 있던 유주가 의견을 덧붙였다.

“저희끼리는 이미 다 했던 얘기고, 대표님이 회의 들어오시면 똑같은 얘기 반복해서 또 듣는 셈이라서요. 더할 의견이 있었으면 이미 팀 회의에서 나왔을 거예요. 대표님이랑 팀장님이 결정해 주시면 저희는 거기에 따라가면 되는데, 이렇게 매번 기획팀 회의 다 하고 나서 다시 대표님이랑 논의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회의 시간 내내 패드만 보고 있던 사원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제야 막힌 듯한 궁금증이 풀렸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피할 데도 없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박 팀장을 보니 이번엔 박 팀장이 입을 꾹 닫고 손에 쥐고 있는 펜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기획팀 회의는 팀 회의로 끝내고, 보고는 박 팀장님한테 받고, 결정은 의견 참고해서 윗선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거, 맞나요?”

“네!”

직원들의 대답이 나오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토록 원하는 바가 명확하다니. 그리고 그걸 솔직하게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있다니. 여태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직장 생활도 겸하고 꽤 다양한 환경에서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만든 조직이지만 이 업무 환경은 신선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건의 사항이 들어왔으니 대답은 해야지.

“어, 얘기한 건의 사항은 박 팀장님이랑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고 결정할게요. 시간 낭비라든지, 효율성이라든지 어떤 의도로 의견을 제시한 건지는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업무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생글생글 웃어 보이는 사원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솔직히 욱하는 마음엔 다들 뺀질거리는 거 같고 근무 태만이 아닐까 싶었지만 회의 중 슬쩍 보인 틴트 자국들에 의심이 사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원들의 손등이 여전히 빨갛게 물이 든 모습을 보면, 분명 어제도 밤늦은 시간까지 샘플 테스트를 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까. 나와 방식이 다를 뿐, 직원들이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고 회사 망하라고 이런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다. 갑자기 펼쳐진 상황에 당황해 더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회의를 끝냈다.

“어…. 그럼 회의는 마무리하죠. 박 팀장님은 저랑 따로 얘기 좀 할까요?”

“네.”

박 팀장이 대답하자마자 하나둘 일어나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재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내 뒤로 지나가는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걸 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 모르게 무슨 작당 모의라도 하나 걱정해야 하는지…. 마음이 심란했다. 모두가 회의실을 나가고 회사를 만들기 이전부터 함께 일했던 박 팀장이 자리에 남아 나를 빤히 바라봤다.

“미리 얘기해야 했는데, 죄송해요. 어제 외근이셔서.”

“어떤 얘기요?”

박 팀장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고개를 돌려 힐끗 회의실 밖을 잠시 살폈다. 그 모습에 나도 힐끗 회의실에 놓인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웠다.

“우리, 점심 같이 먹을까요?”

사무실에서 나와, 멀지 않은 브런치 카페에서 둘이 거하게 주문해 놓고는 포크도 들지 않은 채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이야기가 시작될 듯싶어 운을 띄워봤다.

“우리끼리 이야기 못 할 문제도 없으니까 편하게 얘기해요. 창립 멤버고, 같이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는데 박 팀장님까지 말하기 어려워하면 내가 더 불편해요.”

“혹시 회사 자금 사정이 아주 어렵나요?”

“자금이요? 왜요? 무슨 얘기가 돌고 있나요?”

“팀장급끼리는 다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니까 편하게 얘기하긴 하는데 이 팀장님 얘기 들어보니까 자금이 원활하게 돌고 있는 거 같진 않아서요.”

“아, 그래서 다들 불안해하나요…?”

“아니요. 그보다는….”

‘아니’라는 의외의 답변에 그다음 말이 더 걱정됐다. 만약 내가 손쓸 수 없는 수준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박 팀장의 답을 기다렸다.

“제품 론칭 준비하면서 아이디어는 많이 내는데, 그에 비해서 바로 제품이 나오지 않으니 다들 일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팀장들이야 제품 개발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예상 못 한 거 아니지만, 우리 회사에 신입들이 많잖아요. 개발 과정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팀원들 입장에선 일이 빠르게 진척되지 않으니까 사기가 금방 떨어지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프로젝트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서 회사가 재미없어졌다는 소리잖아? 아니 회사를 재미로 다닌다고? 누가 회사를 재미로 다니지? 박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히려 억울한 마음이 밀려왔다.

“팀장님. 아니 언니, 제품이 생각처럼 뚝딱 나오면 저도 좋겠지만, 아시잖아요. 저 여태까지 유튜버 하면서 세상에 나온 모든 제품은 다 써봤는데, 이미 있는 거 비슷하게 만들어낼 거였으면 사업 시작 안 했어요.”

하소연 섞인 말을 하다 보니 예전에 쓰던 편한 말투가 툭 튀어나왔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 현진 언니도 한층 편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 물론 이해하지. 알고 있고 나도 나름대로 팀원들 독려하는데, 일부러 우리 채널 구독자들과 같은 연령대의 젊은 친구들을 뽑은 게 장점이면서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 단시간에 빠르고 효과적인 아이디어는 나오지만 그만큼 빠른 피드백을 원하고 흥미 요소의 전환이 빠르달까…. 그러니 길게 꾸준하게 해내는 게 쉽진 않아. 이게 팀장 입장에서 느끼는 솔직한 생각이야.”

아무리 사장과 사원이라지만, 열 몇 살씩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나이 차인데. 겨우 생각을 쥐어짜서 다른 점을 생각해 보라면, 회사 생활을 몇 년 더 하고 덜 하고 안 해보고의 차이일 뿐인데 이 작은 회사 안에서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직급마다 생각의 폭이 달라진다는 걸 언니의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온전히 직원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본다면 지금 상황이 재미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회사 운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아니 그럴 필요도 없는 월급쟁이였으니 대표가 무슨 생각으로 밖으로만 나다니는 건지,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건지, 직원들 생각을 하긴 하는 건지 한심해했으니까. 아마 우리 사원들도 내가 얼마나 대환장을 겪고 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을 테지.

집에 돌아와 다시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화면을 열어놓고 현진 언니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이미 혼자 꽤 고민한 듯 보이는 현진 언니에게 해결 방안을 물으니 의외의 답변을 주었고, 이 때문에 고민이 깊어졌다.

“당연히 제일 빠르고 효과적인 건 기획 상품들의 출시 일정을 앞당겨서 빨리 론칭을 확정 짓는 거지. 근데 현실적으로 스케줄 당기는 게 어렵다면 브랜드 자체를 하나의 제품으로 생각해서 팬덤을 만들 수 있는 큰 규모의 캠페인을 기획하는 건 어떨까 싶어. 이제는 팬덤이 소비를 주도하기도 하고 인플루언서 브랜드로 시작했으니 더욱더 잘 맞는 방향이 아닐까? 우리 브랜드 자체가 더 많이 알려지면 직원들도 소속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문제는 예산이지. 그래서 처음에 물어본 거야. 전자든 후자든, 결국 필요한 건 원활한 자금 융통일 테니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했던가. 또다시 닥친 자금 문제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지인 찬스나 은행이 아닌 교환소였다. 사이트에 접속해 고민에 빠졌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여태 나를 믿고 좋아해 준 구독자들을 자본과 맞바꾸어도 되는 걸까? 여기까지 오는 데 구독자들이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어주었는데, 그래서 성장한 건데 이 팔로워를 돈으로 바꾸고 나면 우리가 그 돈으로 다시 그만큼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아니야. 여태껏 잘 해왔고, 한 번 해봤으니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그렇게 믿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브랜드가 잘되면 구독자는 알아서 다시 모일 거고, 이 기회에 더 늘어날 수도 있는 거니까. 어제 교환한 뒤로 지금까지 별일 없었으니 괜찮겠지. 한 번 더 기회를 사용한다고 해서 뭔 큰일 나겠어?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고민하고 따졌던 어제와 달리 좀 더 과감하게 정보를 입력했다.

교환 희망 금액 : 30,000,000원

역시나 오늘도 숫자를 입력하니 자동으로 환산된 팔로워 수가 금액 아래에 제시됐다.

30만 명의 팔로워가 차감됩니다.

어제랑 오늘 합쳐도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아 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괜찮아. 등록 버튼을 누르고 동시에 각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팀장님, 이번 가수금은 자본금으로 처리해 주시고, 1천만 원은 샘플 견적 건으로 바로 비용 처리해 주세요.

박 팀장님, 말씀하신 캠페인 진행해 주세요. 예산 2천만 원 확보했어요. 내일 회의 진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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