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출근 (18/25)

다시, 출근

다시, 출근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저 오늘 1일이에요!”

늘 하던 인사인데, 돌아오는 재희의 목소리가 유달리 활기찼다. 재희는 수습 기간 세 달을 보내고 정직원이 되어 계속 함께하게 되었다. 진짜 우리 식구, 정식 후배. 그리고 놀랍게도 나 역시 회사에 쭉 남아서 그녀와 함께 근무를 하고 있다.

“응, 알아. 오늘 1일이지. 그게 백 일 되고, 천 일이 될 때까지 남아서 대리도, 팀장도 다 제쳐라. 응?”

“그럼요. 요청하신 자료 다 찾아 정리해 두었습니다. 말씀하신 건 늘 3일 이내로 꼭 찾으시잖아요.”

“오, 말 아직 안 꺼냈는데 귀신 다 됐네.”

담담하고 투박하게 던지는 칭찬이었지만, 실상 마음속에서는 그보다 더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친구들에게 어찌나 자랑을 했는지. 눈치껏 직원 성향을 파악하고 일 처리를 똑 부러지게 하는 후배가 생긴 덕분에 회사 생활이 꽤 새로워졌다. 아, 물론 이 친구의 눈치가 빨라졌다고 해서 내 초능력을 멋대로 던져주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직원들의 속마음을 슬쩍 알려주어 그녀의 사내 정치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선배가 되었다.

나는 맘에 드는 후배가 원하던 대로 이 회사에 남아 좋은 멘토가 되기로 마음먹고, 여전히 저주받은 귀신으로 살고 있다. 내가 그 삶을 살아보니, 이 저주를 그녀에게 넘겨서 지금 가지고 있는 패기와 창의력을 다 날려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 본인의 말처럼 신선한 자극을 주는 팀원이어서 말라버릴 대로 메마른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허무맹랑한 제안들을 가끔 던졌다. 그 아이디어 중에 아직 쓸 만한 건 절반도 안 되지만, 잘 다듬고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홈런을 칠 수도 있지 않겠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 쓰는 대신, 팀을 꾸리고 사람을 가꾸는 데 온전히 집중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여태 회사를 다니며 한 번도 제대로 후배를 키워보겠다고 마음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내 능력을 이용해 이런 쪽으로도 색다른 도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희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속 읽어내는 내 능력을 특별히 신기해하거나 놀라워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 능력이 일 잘하는 사람의 센스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그러니 이 거지 같은 능력은 당분간 내 몫으로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

사실, 이 저주를 떠안고 버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들이 내뱉는 같잖은 말들을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강다영이 여잔데 얼마나 가겠어? 너 천년만년 강다영이가 너 챙겨줄 거 같냐? TF팀 해체되면 실세는 마케팅팀이야.’

그날 재희가 직접 전한 말 외에도 눈을 통해 더 많은 걸 읽었다. 고 팀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말이 사실이 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이 회사 사람들 입에서 ‘거봐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이 회사에 남기로 한 가장 큰 이유다. 회사에서만 통하는 이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언젠가는 내가 키운 후배들이 모두를 다 밀어버리고 진짜 실세를 차지하는 날이 오겠지. 나는 이미 잘 하고 있고, 그런 내가 키우는 후배는 남다를 테니까 스케일 큰 꿈을 꿔본다.

초능력 덕분에 커리어에 큰 성과들을 이루었지만,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이 능력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 성장이 멈췄다는 생각이 들 때 제2의 강다영으로 키워보고 싶은 후배가 나타나 초능력으로 누군가를 돕게 되니, 이제야 전쟁터였던 회사 생활에 활력이 도는 느낌이다.

물론 사람을 내 맘대로 움직이거나 조종할 수 없으니 언젠가는 이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철석같이 믿은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누군가에게 욕 한 바가지를 뒤집어쓰는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니까. 진심을 다해서 해보지 않았던 일이니 나의 저주가, 나의 초능력이 내가 아닌 우리에게 승리의 열쇠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늘도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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