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말 출근 (15/25)

주말 출근

주말 출근

“주말인데 나와서 일하느라 고생했어요. 다들.”

갑자기 잡힌 촬영 일정에 다들 지쳐 겨우 눈만 뜨고 있었다. 그래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으니 빈말이라도 수고를 인정해 주는 것과 당연하게 여기는 것엔 차이가 있다. 그다지 친절한 상사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별거 아닌 말에 좌지우지되는 걸 알아차린 후로는 습관적으로 빈말을 달고 살았다. 피곤에 잠식당한 와중에도 예의를 차린다고 재희가 최 대리 앞에 수저를 놓아주자, 최 대리는 컵에 물을 따라 우리 자리에 각각 한 잔씩 놓아주었다.

“재희 씨, 아침에 대표님이 불러서 뭐라고 하셨어요?”

“아, 대표님이요….”

나의 물음에 재희의 눈이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식탁 테이블 언저리를 헤맸다.

‘아,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그래도 되는 건가.’

얘는 뭘 또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건지.

“말하기 힘든 거면 안 말해도 되는데, 무튼 내가 팀장인데 팀원이 뭐 하고 다니는지는 아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덧붙인 말을 듣고 나서야 재희는 알겠다는 듯 대답을 내뱉었다.

“다음 주말에 나와서 임원 회의 도우라고 하셨어요.”

“임원 회의를 도우라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최 대리가 재희의 말에 황당한 듯 허탈한 웃음을 짓고는 물 잔을 들어 홀랑 물을 다 마셔버렸다. 그렇다고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사원보고 무슨 임원 회의를 도우래.”

“뭐…. 돌아가면서 늘 그랬잖아요.”

익숙하다는 듯 대답하는 최 대리를 보고 재희의 속마음이 또 혼란스러워졌다. 최 대리 역시 속이 시끄러웠지만 그녀 머릿속에는 재희에겐 없는 뚜렷하고 명확한 생각이 있었다.

‘진짜 때려치우고 말지. 1년만 채워봐. 대표 얼굴에다 사표를 야멸차게 집어던지고 뛰쳐나갈 거야.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이 회사가 얼마나 썩어빠졌는지. 이 회사는 도대체 왜 안 망하는 거야?’

최 대리의 생각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막아야 했다. 나라고 이 회사가 좋은 건 아니지만 입사 일주일 된 사원 앞에서 굳이 선배들이 흔들리는 걸 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최 대리는 사무실 안 들어가도 되지?”

“네?”

“난 들렀다 가야 해서 짐 있으면 내 차에 실으라고.”

“아, 그럼 저 이따 지하철역에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라고 하면, 걸어갈 거야?”

“아, 팀장님~.”

최 대리는 평소 회사에서 딱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편이다. 정석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정확한 값을 입력해야 정확한 답이 출력됐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았고 그래서 함께 일할 때 편했다. 최 대리도 나와는 일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따금 이렇게 말끝을 늘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최 대리의 본래 소속인 마케팅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일 거다. 그 팀 리더인 고 팀장은 손꼽히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SPA 브랜드를 여럿 거쳐 이곳에 들어왔다. 이런 이유로 입사 때부터 고 팀장에 대한 대표의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짧은 배경지식만으로 그의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고 팀장은 자신 외의 사람을 하대하는 유난스러운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늘 말끝마다 ‘넌 머리 나빠서 어떻게 사니?’ 하고 타박하는 상사랑 일하다 나를 만나니 상대적으로 더 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편안함이 나를 말랑하게 보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회사에서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늘 상대에게 잘해주려 노력하면서도 일부러 못되게 굴어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그래서 이따금 앞뒤 다르게 태도를 전환하니, 미친 귀신 들린 년이란 소릴 듣는 것도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사람은 참 못된 쪽으로 영리한 동물이다. 약한 이를 잡아먹고 강한 이를 피해 다니면서 진화한 동물이라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맨 처음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 이야기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무조건 거절하지 않는 예스맨이 되었다. 나를 향한 좋은 평가만 귀에 들렸으면 하는 마음에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남들보다 먼저 나서는 그런 사람으로 육체와 정신을 갈아 넣으며 회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 끝에 남은 건 좀 더 나은 평가가 아닌 지친 몸과 마음이었다.

내가 백 번을 잘해줘도 한 번을 못 해주면, 결국 못 해준 그 한 번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었다. 힘들고, 지치고, 피곤한 일들을 아무리 대신 해줘도 어느 날 갑자기 부모의 원수보다도 못한 놈이 될 수 있는 게 회사였다. 친절함이 업무 성과에 의미 있는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성실함도 인간관계를 개선해 주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 사람에 대한 평가에는 좋고 나쁨만 존재하지 않았고 시기, 질투, 부러움 등의 다채로운 감정이 존재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휴, 저 미친년, 또 살살 웃는 거 봐라. 쟤 뒤에서 무슨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혼자 산다는데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지 알 게 뭐야. 저런 식으로 거래 트는지도 몰라.’

‘막상 지가 도와준다고 해놓고 이거 다 가로채는 거 아니겠지? 보고할 때는 그냥 우리 팀 이름만 써서 내야겠다. 어차피 같은 팀도 아닌데 남의 팀 성과 올려줘서 뭐 해. 이 정도는 나도 알아서 할 수 있는데 그냥 말만 얹은 거잖아?’

‘아오, 저 여우. 상여우. 다 꼴 보기 싫어. 나보고 웃지 마. 아침부터 재수 없게 뭐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 그건 이미 속으로 가래침을 있는 힘껏 뱉어서다. 법 없이 살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소한 거로 시기하고, 득실을 따지며 욕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원래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걸 이 회사에서 끔찍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배웠다. 이제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 굴려 계산을 하는 게 신물이 난다. 더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더 배울 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회사이기에 어서 나를 대신해 내 저주를 가져가 줄 사람을 간절히 찾는 중이다. 이 정도 커리어면 다른 곳에 가서도, 아니면 내 회사를 차려도 이만큼은 먹고 살 것 같으니.

“콩나물 국밥 어디로 드릴까요?”

주문했던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잡생각이 사그라졌다. 그래,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화보 찍느라 촬영장에서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지금은 밥 먹는 거에 집중해야겠다. 아주머니가 놓아주신 공깃밥 뚜껑을 열어 반 정도 뚝 잘라 국에 밥을 말았다. 남은 공깃밥 뚜껑을 덮고는 테이블 가운데로 밀어 보내며 말했다.

“더 먹고 싶은 사람 먹어요.”

그러나 아주머니가 다시 와 공깃밥을 무심히 옆으로 밀어버리고는 그 자리에 빈대떡 하나를 척 올렸다.

“메뉴 다 나왔죠?”

다들 피곤에 절어 아주머니 물음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곤 바로 숟가락을 들고 각자 식사에 열중했다. 그 모습이 순간 귀여워 보여 직원들 앞으로 빈대떡 접시를 밀어주며 말했다.

“남겨도 되니까 먹고 싶은 만큼 배불리 먹어요. 고생 많았고 내일 출근이니까 술은 패스.”

“네, 팀장님.”

“잘 먹겠습니다.”

그 뒤로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눈 마주쳐 봐야 쓸데없는 속마음이 들려서 겨우 밥 한술 못 넘기게 될 수도 있으니 오직 내가 쥔 숟가락에만 집중했다. 어기적거리며 국밥을 휘휘 저어 천천히 밥을 먹었다. 이틀 동안 총책임자로 신경 쓰느라 곤두섰던 긴장이 풀려 밥맛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밥조차 쫓기듯 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회사에 있는 놈들은 왜 그렇게 밥 먹는 시간을 아까워할까. 임원들이랑 식사하러 가면 허겁지겁 체할 듯 3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는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습관이 들면 먹다가 죽겠다 싶어 팀원들과 밥을 먹을 때면 한 입 먹고 세 번씩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다만 절대로 숟가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래야 아랫사람들도 식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한 손엔 숟가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실컷 인스타를 보다 시선을 살짝 올려 시계를 보니 벌써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때 마주 보고 앉은 직원들을 보면 반응은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잘 먹었다거나 혹은,

‘아, 다 먹었는데 왜 안 가?’

그래, 이것도 결국 나 편해지려고 베푼 배려이니 이 정도 반응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

식당을 나와 다 같이 차에 올랐다. 지하철역에서 내려달라던 최 대리가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 뒤 옆자리에 앉은 재희에게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서 내려줄까요?”

“아, 저…저도 사무실 갔다가 퇴근하겠습니다.”

“사무실? 사무실에 뭐 두고 왔어요?”

“아, 네….”

“급한 거 아니면 그냥 내일 가지? 시간도 늦었는데?”

“아, 팀장님도 사무실로 가시는데 혼자 가기가….”

재희가 말끝을 흐려서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고, 운전 중이라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으니 속마음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긴 했다.

“혹시 내가 혼자 사무실에 들어가는 게 눈치 보여서 굳이 같이 가겠다는 거예요?”

“아, 그…그런 건 아니고….”

“난 재희 씨가 사무실 갈 일 없으면 바로 집으로 가도 되는데? 어차피 짐이야 내일도 이 차 끌고 출근하면 되니까. 근데 굳이 사무실에 가야 한다고 하면 지금 사무실로 다시 차를 돌려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아….”

“재희 씨.”

“네, 팀장님.”

“남 생각해 주는 거 나쁜 건 아닌데, 본인 상황 생각하면서 해요. 왜 사원이 팀장을 걱정합니까?”

내 눈치 보느라 친절 아닌 친절을 베풀려던 재희에게 쓴소리를 건네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런 배려는 정말 하등의 쓸모가 없는 배려니까. 나중에 가선 본인만 힘들어질 거란 걸 아니까. 애초에 싹을 잘라버리는 게 좋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뭐가 감사해요?”

“어…. 팀장님 좋은 분 같아서요.”

“재희 씨, 여기가 첫 회사죠?”

“아, 네….”

수줍은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티 엄청 나네… 뭐. 아무튼 나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착한 사람은 더 아니고. 회사에서 그런 사람 찾지 말아요. 회사는 좋거나 착하거나 멋있는 사람 찾는 데 아니니까.”

“그래도 팀장님 닮고 싶어요. 멋있게 일도 잘하시고. 저 사실 면접 때 안 뽑힐까 봐, 같이 일 못 하게 될까 봐 엄청 마음 졸였거든요.”

“한 일주일 일했는데 어때요? 여전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네,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이라….”

재희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어색함 하나 없이 입에 착 감기는 말. 이 회사에 들어와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이전 디자인 팀장의 질문에 나도 재희와 똑같은 대답을 했었다.

⁎⁎⁎

“팀장님이 원하시는 만큼은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재희의 말이나 행동은 뭘 모르던 시절의 나와 참 많이 닮았다. 높은 분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에도 이게 회사 생활이려니 참고 넘어가고, 내 할 말을 하기보다는 내가 채우지 못한 다른 이의 기대를 먼저 생각했다. 회사 생활이 힘든 건 회사의 문제보다는 상사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는 내 문제라고 철석같이 믿었기에 팀장에게 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마다 팀장은 매번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 여기 계속 다닐 거니?”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온갖 소규모 사업체를 전전하다 그나마 회사 같은 회사에 겨우 들어온 것이었다. 이젠 큰 회사에서 어떻게든 몸값 한번 부풀려 보겠다고 어학 시험도 보고, 자격증도 따서 들어와 정착했으니 나는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야 어느 조직에나 있으니 버티어보자는 마음에 늘 일관된 대답을 한 게 나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네, 저는 여기서 꼭 팀장은 되고 나갈 거예요.”

“팀장?”

팀장은 내 대답에 혼자 끅끅대며 알 수 없는 헛웃음을 짓더니 한순간에 웃음기를 지우고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우리 회사에 도는 유명한 소문 알지?”

“네?”

“회사에 대대로 내려오는 귀신 있다는 소문 너도 알잖아. 왜 말을 못 해.”

회사에 대대로 내려오는 귀신이 여자 팀장만 골라서 빙의된다는 사내의 뜬소문. 빙의가 된 주인공은 하룻밤 사이에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서 어느 날엔 사근사근하다가, 또 어느 날엔 미친 사람처럼 화만 낸다. 그렇게 중간 없이 혼자 널뛰기를 하다가도 사람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맞힌다고 했다. 익히 들었지만 차마 알고 있다고 답하지 못한 건, 그 소문의 주인공이 앞에 있는 팀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여직원들 사이에선 유명한 사실이었다. 더욱이 우리 팀장의 귀신 들린 미친 업무 능력은 그 누구보다 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소문을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지낼 수밖에 없었다. 대답을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그녀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너 팀장 될 수 있으면 네가 귀신 가져갈래?”

“네?”

“허튼소리 같지? ‘회사에 지금 둘밖에 없는데 무섭게 왜 이래. 또라이같이. 집에나 가고 싶은데!’라고 생각했잖아. 아니야?”

그녀가 평소 내 말투 그대로 나의 속마음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했다. 속마음을 들킨 것도 놀라웠지만, 순간 그녀의 말투가 나와 너무 비슷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거 진짜야. 빙의인지 뭔지 하는 소문. 네가 마음만 먹으면 그때부터 진짜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스무고개같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대표님, 여우 같은 다른 팀장들, 능구렁이 같은 거래처. 다른 사람 마음을 읽게 되면 승진은 프리 패스야.”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나에게 결정타를 남긴 건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어딘가 찜찜해지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니까 너 가져. 너 팀장하고 싶다며. 나는 이제 여기 그만 다니고 싶거든.”

⁎⁎⁎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진의를 따져볼 새도 없이 기묘한 분위기가 그때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올 정도로 웃던 팀장의 얼굴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자꾸 생각이 나서 잊으려고 한참이나 애썼다. 그다음 주 팀장은 사표 하나만 자리에 남겨두고 홀연히 회사를 떠났다. 사표가 수리되어 공식적으로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회사에만 오면 남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초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귀신의 저주라고 해야 할지 모를, 영험한 능력을 얻고 한 달을 정신없이 보냈다. 때마침 바빠진 업무에 미친 듯이 일만 하면서 내가 처한 상황을 잊어보려 했지만, 듣기 싫은 사람들 속마음이 계속해서 들리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회사라고 해서 사람들이 일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니 별의별 사생활부터 시답지 않은 고민들, 알고 싶지 않은 취향들을 억지로 듣고 있어야 했다. 눈 감고는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라도 하게 되면 나는 티 내지 않으려 얼굴에 경련이 일도록 미소를 지어야 했다. 어금니는 얼마나 꽉 깨물고 다녔는지 잇몸이 배겨내지 못해 결국 진통제를 달고 산 시절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으려면 이 능력에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져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것. 원래 그렇다고 그냥 넘겨버리는 것. 사람의 본질은 원래 더럽고, 추잡하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그냥 그렇게 치부해 버리는 편이 훨씬 편했다. 어쩌면 나도 내 능력에 맞지 않게 자리를 욕심 낸 탓에 몹쓸 초능력을 갖게 되었으니.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인 건, 예언 같았던 그녀의 말처럼 나는 이 능력 덕에 대표가 말하지 않은 목표도 찰떡같이 알아차리고 시원하게 긁어주며 팀장이 됐다. 직급이 높아지면서 업무 스케줄을 융통성 있게 쓸 수 있었고, 외근도 하면서 지긋지긋한 속마음 소리로부터 이따금 벗어나긴 했다. 그래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팀장이고 나부랭이고 간에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들어오는 직원마다 나를 대신해 줄 만한 사람인지 재게 되었다. 이미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둘 마음이 가득했기에 새로 들어온 직원 중에 찾아야 했는데, 하나같이 한 달을 못 버티고 회사를 나가버려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재희가 던진 말에 다시 욕심이 피어올랐다. 드디어 이 저주받은 회사로부터 나도 탈출하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