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출근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에서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인턴이 눈에 들어왔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진 듯 보이지만, 분명 그녀의 고개가 미세하게 중력의 힘을 받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일부러 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정말 이렇게 계속 졸 생각인지, 정신을 차릴 생각인지 싶어서 시선을 고정한 채 자리에 앉았다.
‘졸려. 너무 졸려. 진짜 졸려. 다시 집에 가고 싶다….’
뜬 것도, 감은 것도 아닌 그녀의 눈동자가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역시나 본능에 잠식당한 그녀의 속마음이 내 귓가에 들렸다. 책상에 걸쳐둔 손목을 슬쩍 돌려 시계를 바라보니 분침이 9시 정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는 일어나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이수연.”
크게 부르지도 않았다. 나긋하게 부르며 책상을 두어 번 두드리자 그 소리에 손바닥에 올려져 있던 수연의 고개가 똑 하고 떨어졌고 이내 졸지 않았다는 듯, 빳빳하게 허리를 펴 고쳐 앉았다. 그렇게 한다고 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겠니?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계속 잘 거면 집에 가라. 회사는 잠자러 오는 데 아니니까.”
무심하게 말을 하며 컴퓨터를 켰고, 수연은 멋쩍은 듯 머리를 연신 쓸어 넘기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었다. 물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해서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팀장님, 기사 클리핑 보고해도 될까요?”
“네.”
아침마다 늘 하는 일이라 무덤덤하게 대답하니 수연은 키보드 자판을 몇 번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와 펜 한 자루를 들고 터덜터덜 다가왔다.
“팀장님, 기사 클리핑 보고드립니다.”
“응, 그래. 해.”
방금 메일로 받은 오늘 날짜 시트를 열어놓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멍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졸리지 않던 나까지도 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취합한 내용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꽤 깔끔하게 정리한 자료인데도 앞에 서서 중얼중얼 전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다 답답했다. 별말 없이 쭉 화면을 보며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의 말이 끝나는 걸 듣고 고개를 돌려 수연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일찍 갈 수 있을까…? 하루만 좀 푹 자고 싶다.’
화면만 보던 내 시선이 자신에게 이동했다는 걸 알아차린 수연은 애써 눈을 또렷하게 뜨려고 애썼다.
“수연아.”
“네?”
나라고 겨우 대학 졸업반인 어린 인턴이 며칠씩 야근하고 밤새워 일하는 게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니 어리다고 특별 취급해 줄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피로에 익숙해진 나에게 꼰대라고, 타성에 젖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직접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뿐이다. 어디서든 결국은 겪을 일이고 이 나이의 젊은이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능력치가 체력뿐이니 어쩔 수 없다.
“보고를 누가 그렇게 중언부언해. 그렇게 보고하면 듣는 사람이 집중은 되겠니? 설득은 되겠어? 내가 일 덜려고 너한테 일 주는 건데, 그렇게 쭝얼쭝얼 보고하면 내가 다시 들여다봐야 하잖아. 그럴 거면 애초에 내가 너한테 왜 일을 시키지? 안 그래?”
타박을 할 때는 늘 사람의 눈을 바라본다. 그래야 내가 하는 말이 이유 없는 짜증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고언이라는 걸 알 듯싶어서. 여전히 수연의 눈꺼풀 사이사이에는 졸음이 가득 끼어 있지만 귀는 열려 있으니 듣기 싫어도 내 말을 다 들었을 것이다. 흐릿한 수연의 눈빛에서 서운한 속마음이 보였다.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매일 혼자서 기사 클리핑에 매체는 좀 많냐고. 그렇다고 일을 덜어주는 것도 아니고. 홍보팀으로 들어왔는데 TF팀 서포트하는 일로 이렇게 지적할 거면 그냥 일을 시키지 말든가. 아 진짜 억울해서 눈물 날 거 같네.’
하지만 그 마음은 속에서만 맴돌 뿐, 수연의 입에서 나온 건 사과의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사과가 끝이야? 그다음은 없어? 대답 참 편해서 좋겠다. 여기까지 알려줘야 하나 싶어서 바라보니 수연의 눈이 평소와 달리 자꾸만 깜빡깜빡한다. 어떤 뻔한 결말이 있을지 알기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회사에서 그렇게 졸다가 지적 한 번에 울어버릴 거면 그냥 집에서 푹 쉬어. 회사가 뭐라고 나와서 잔소리하게 만드니, 내 입만 아프게. 대표님 오실 시간 다 되어가니까 세수하고 정신 차리고 들어와.”
입술을 앙 다물고 흐르려는 눈물을 꾹 누르며 수연은 대답도 없이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섰다. 그러더니 자기 자리에 노트와 펜을 던지듯 올려놓고 그대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마음이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지난 몇 달 간의 근무 태도를 보아 오래 다니지 않을 거란 결론이 이미 나버려서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여기 말고 저 아이의 능력이나 태도가 잘 맞는 곳이 있겠지. 이미 틀려먹은 조각을 애써 고쳐 이곳에 끼워 맞춰줄 만큼 친절하지 못해서 내가 참 미안하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수연이 아니라 면접 때 만났던 친구였다. 우물쭈물 두리번거리며 사무실로 스멀스멀 들어오던 그녀는 어느덧 우리 팀 자리까지 다가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뭘 모르는 알바생이 길을 잃고 여기까지 들어왔구나 싶어 금세 시선을 거두었다.
“안녕하세요.”
세상 환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다시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가 구면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앞에 인사팀 있었을 텐데 못 봤어요?”
“다들 자리에 안 계셔서….”
뭐야. 오늘 입사자가 있으면 알아서 준비를 딱 해놔야 할 거 아니야. 직감적으로 인사 팀장의 지각이 예상되었다. 다른 사람의 근무 태도에 점수 매기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그조차 많이 티가 나지 않으니 문제없다고, 이 정도는 인간미로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둘러대는 사람이었다. 그래, 오늘도 또 대표 오기 직전에 와서 아무 일 없는 척하고 있겠지. 계속 그렇게 살아라. 말해줘야 고칠 것도 아니니.
“문 열고 들어오면 보이는 팀이 인사팀이에요. 근무 준비 하느라 자리를 비운 거 같으니까 일단 저기 앉아요. 저 자리가….”
순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뽑아놓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좀 모자라 보이잖아. 뭐였더라. 기억해 내, 강다영.
“재희 씨 자리예요. 재희 씨 맞죠?”
“어?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이름 한 번 불러주었을 뿐인데 동그랗던 눈이 순식간에 반달 모양으로 변해 씩 웃었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과 다른 새로움이 훅 느껴졌다. 그래, 누구에게나 이렇게 생기 넘치던 때가 있었는데, 왜 우리는 이 좁아터진 사무실에서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게 된 걸까. 밀려오는 회의감을 겨우 밀어내고 기계적인 말을 쏟아냈다.
“지원서를 봤고, 채용 내용을 다들 공유했으니까 당연히 알고 있겠죠?”
“아. 네….”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시무룩해진다고?
‘아, 괜히 말했다. 기분 나쁘셨으려나? 점수만 깎였겠네.’
아직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나이인 듯싶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해주었다.
“재희 씨는 아직 아무것도 증명한 게 없으니까, 깎일 점수가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네?”
속으로 생각한 말에 대답하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란 듯 보였지만 나는 그러려니 하며 말을 이어갔다.
“알고 있겠지만 재희 씨는 내부에서 TF팀이라고 부르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팀 소속이에요. TF팀은 홍보팀이랑 마케팅팀, 그리고 디자인팀에서 각출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고 팀장이 저예요. 전 동시에 디자인 팀장이고요. 홍보팀에서는 수연이라고 인턴이 업무 서포트하고 있고, 이쪽은 사수가 될 마케팅팀 최지원 대리.”
두 사람이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에 수연이 쪼르륵 달려와 자리에 앉으려다 새로운 사람을 보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도 아니었다.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 재희가 먼저 수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신재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안녕하세요. 홍보팀 인턴 이수연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말 한마디에도 에너지가 달랐다. 울먹거리다 온 수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바닥으로 기어들어 갈 듯했고, 재희의 목소리는 또랑또랑 귓가에 박혔다. 그래, 수연이 더 어려도, 재희는 푹 자고 온 신입사원이니 몇 달을 굴러먹은 인턴보다 당연히 생기 넘칠 수밖에 없지. 대학생 인턴이라고 편히 일할 수 없는 이 회사라는 감옥에서 재희는 과연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이미 수두룩하게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이 회사의 난도를 보여주었다. 정직원은 아주 가끔씩만 뽑고 정부 지원 사업으로 대학생 인턴을 데려다 이렇게 몇 개월씩 돌려막으며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딱 티가 나잖아? 부디 힘들게 뽑았으니 오래 남아주길 또 한 번 기대해 볼 수밖에.
“앞으로 같이 잘 해봐요.”
“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뽑은 건 대표님이니까 나중에 대표님께 인사하시고, 인사 팀장님이 아직 안 오셔서 서류 처리는 이따 할 거 같으니 일단은….”
인사를 주고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손목을 들어 슬쩍 시계를 보니 9시 30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일단 다 필요 없고, 무조건 9시 전에 자리에 있어요.”
“어…. 출근 시간 9시 30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출근 시간은 9시 반이 맞죠. 근데 출근은 9시까지 해야 한다고요. 이해하죠?”
당연히 이해가 안 되겠지. 그녀의 눈을 바라보니 역시나 이해가 안 되는 듯 속엣말을 잔뜩 하더니, 이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9시 반에는 대표님이 오실 거예요. 뭐 때때로 오차가 있기는 하지만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는 꼭 오시니까 그 전에 와서 자리를 지키는 게 좋아요. 대표님 오시기 전에 전 직원 기립해서 기다리다가, 자리로 오시면 허리 숙여서 인사하는 거. 오늘 이거 하나만 알아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니까, 앞으로도 출근 시간이랑 인사는 꼭 잊지 말아요. 학교 다닐 때, 운동장 아침 조회 같은 거예요.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거, 해봤죠?”
“운동장 아침 조회요?”
기계적인 끄덕거림이 이번엔 튀어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나 보다. 재희의 눈을 보니 납득이 안 된다기보다 아예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운동장 아침 조회’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싶었다. 요새 애들은 그런 걸 안 하는구나.
“됐고, 그냥 일어나서 인사하는 거만 기억하면 돼요.”
“아, 넵. 알겠습니다.”
알아들을 만한 문장으로 대신하니 그제야 똑 부러진 대답이 나왔다. 그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질질 끄는 구두 소리와 당장이라도 가래침을 뱉을 듯이 끌끌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이미 사무실 현관에서부터 한두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이런 문화가 있나 싶겠지만, 3년이나 겪으니 이제 그냥 아무 생각 없다. 작년처럼 현관에 일렬로 안 서고 자리에서 인사하는 게 어디야. 이걸 다행으로 여기는 것도 답답한 일이지만, 생각이 많아지면 나만 더 힘들어서 그저 습관처럼 일어났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현관 가까이에 있는 사업 본부장의 우렁찬 목소리로 대표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보여주기 식 아침 인사가 시작되었다. 대표가 길을 지나갈 때마다 마치 접이식 의자처럼 순서대로 착착 접히는 인간들. 인사팀과 사업 본부 사이 복도를 통해 대표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늘 대표는 온 사무실 구석까지 다 훑고서야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모두가 긴장하고 일어나 일렬로 서서 그를 맞이할 수밖에.
“안녕하십니까.”
평소와 달리 팀원들과 내 자리 사이 애매한 공간에 서서 인사를 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대표의 시선이 나와 내 옆에 있는 재희에게 머물렀다.
“아, 우리 신입이 들어왔구나.”
대표는 끼고 있는 안경을 코 아래까지 내리고, 눈을 치켜뜨며 재희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인상착의를 한 번 훑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신재희입니다.”
“응, 그래. 잘 들어왔어요. 우리 인재가 또 하나 들어왔으니까 열심히 해보자고. 한국대 나왔다고 했었지?”
“아, 네. 맞습니다.”
“어, 그래. 좋아. 좋아.”
우리 아버지 또래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해 올리고, 구김 없이 차려입은 정장과 반짝반짝 빛이 나는 구두까지. 이렇게나 말끔한 모습을 하고 행동과 언사는 쪼잔하다 못해 지저분하기까지 하니 직원들은 늘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다. 오늘만 봐도 그랬다. 새로 입사한 재희를 격려하며 대표의 손이 재희의 어깨로 향했는데, 그 손길이 토닥거림이나 툭툭 정도의 격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걸 주변 직원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의 손이 닿은 재희야말로 그 상황을 명확히 인지했을 것이다.
“어….”
재희의 입 밖으로 무언가 대답 이외의 말이 튀어나올 듯하자 능구렁이 같은 대표가 손길을 거두고 다른 직원들을 쓱 훑었다. 누가 제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려는 듯싶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사무실을 스캔할 때 흐르는 순간의 정적은 항상 모두의 아침을 괴롭혔다. 그사이 저 멀리 인사팀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채웠고, 덕분에 대표의 아침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문제였다. 기분 좋은 마음에 헛소리를 내뱉을 수 있으니까. 나는 대표가 말하기 전에 그 정적을 깨버렸다.
“대표님, TF팀 보고 오전에 드리면 될까요?”
“어, 그거….”
“들어가 계시면 바로 보고서 들고 들어가겠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잇자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사감 선생님처럼 출석 체크하던 눈길을 거두고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듯했다. 그러다 다시 휙 몸을 돌려서는 재희를 바라보며 내가 막으려 했던 입을 기어이 열었다.
“야, 너 렌즈 끼니까 얼마나 예쁘냐. 으이고, 그 왜 면접 때는 안경을 쓰고 와가지고 하마터면 불합격시킬 뻔했잖아. 그래도 말 잘 들어서 아주 좋아. 모름지기 패션 회산데 앞으로도 예쁘게 하고 다녀라, 알았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입 다물고 방으로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있는 재희의 눈을 바라보니 정리되지 않는 생각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딱 떨어지는 문장으로 명료하게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듯 눈동자를 봐도 속마음이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녀와 똑같은 감정을 수도 없이 느꼈기에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재희 씨, 인사팀 가봐요.”
“아, 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뚝 끊어버렸다. 어차피 모든 걸 다 막아줄 수 없고, 피하게 도와줄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탈출하고 저주 같은 초능력을 털어내기 위해선 누구라도 이곳에서 나 대신 버텨야 한다. 오늘도 대표의 쓸데없는 생각을 읽고 있으려니 아침부터 속이 메스꺼워 살 수가 없다. 이 자리에서 버틸 만큼 버티었고, 이력서에 팀장 직급 잉크 굳을 만큼 눌러앉아 있었으니 다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상황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새로 들어와서 곤란함을 겪고, 그래서 내게 의지하게 되길. 나 편하게 살자고 다른 사람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 같아도, 어쩔 수 없다. 이젠 나부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