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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13/25)

첫 만남

첫 만남

“TA&co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질문해 주신 강다영 디렉터님과 함께 일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만 벌써 다섯 번이나 내 이름이 나왔다. 가끔 면접관으로 앉아 있다 보면 한 번씩 듣게 되는 뻔한 대답 중 하나였지만 오늘은 이번 시즌 캠페인의 조회 수가 터져서인지 유난히 내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이 회사에서 고작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가 일을 잘한 건 사실이니까. 그러니 회사가 유명해지고 나도 유명세를 얻는 게 당연하지. 업계 사람들이 아닌 이 조무래기 같은 녀석들까지도 이제 나를 알아보는구나. 기분이 좋으니 오늘은 퇴근하고 혼자 와인을 마셔야겠다.

“나랑? 왜요?”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고 면접은 제대로 봐야지. 한 번 더 깊숙이 질문해 보면 무슨 생각으로 내 이름을 언급했는지 속내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대충 인터넷에서 본 회사 자료나 기사에서 본 걸로 지원 동기를 만들어낸 건지, 아니면 정말 자기 생각이 있는 원석인지. 그런데 이 친구는 아무래도 그냥 내가 좋아서 지원한 듯싶다.

“서류에 기재할 만한 칸이 없어서 못 적었지만 지난 시즌 DDP에서 있었던 쇼케이스 행사에 현장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그래요?”

“대학 시절부터 패션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쇼케이스와 화보 촬영 등 다양한 현장들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현장보다도 그때 백스테이지에서 현장을 카리스마 있게 지휘하는 디렉터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또, 그간 디렉터님의 SNS를 통해 패션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경험은 부족하지만, 그래서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주는 팀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상 핵심은 없고 뭉뚱그려진 대답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눈을 보면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충 둘러댄 것인지 아니면 당황하여 자신의 견해를 다듬지 못한 것인지, 진심을 알 수 있다. 추측이나 비유가 아니라 진짜 저 친구의 속마음을.

나는 남들은 듣지 못하는 다른 이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 이번에도 마주 앉아 있는 용모 단정한 지원자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답변을 마치고 입 한 번 열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내 귀에 들렸다.

‘와, 진짜 강다영이랑 이렇게 가까이 마주 보고 있다니. 아 심장 터질 거 같네. 제발 이제 취뽀 좀 해보자.’

얼마나 이 회사가 간절한지는 명확해졌고, 내용은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또렷한 목소리로 잘 정리해서 대답했으니 이 친구는 아무래도 합격을 주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와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마케팅 팀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 또 그냥 강다영 팬클럽 하나 들어오겠네.’

이미 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서류를 한참 들여다보던 그는 피곤하다는 듯 안경을 올리며 지원자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불만은 한가득인데 그래도 ‘들어오겠다’고 단정 지어 생각하는 걸 보면 뽑힐 거란 확신이 있나 보네. 회사에서 가장 까다로운 그의 눈에도 합격 도장을 받았다면 이미 다른 사람들은 좋은 점수를 주었을 게 뻔했지만 스리슬쩍 왼쪽에 앉은 인사 팀장의 눈빛도 한번 쓱 읽어보았다.

‘아이고, 이렇게 멀쩡한 애를 우리 회사가 또 망쳐놓겠구나.’

누구 하나 고깝지 않게 볼 줄 모르는 인사 팀장은 저렇게 어린 애를 두고 앞날에 대해서 악담을 쏟는구나. 물론 속마음과 달리 그녀는 세상 온화한 미소로 지원자와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서류에 바쁘게 글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일이 몇 배로 늘었으니, 올해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면접을 보는 게 그녀 입장에선 영 피곤할 거라고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괜찮은 신입이라고 뽑아서 들어오면 하나같이 몇 달을 못 버티고 나가버렸고, 그 이유가 개인의 문제보다는 조직의 병폐에 있음을 나도 안다. 그러니 ‘회사가 사람을 망친다’는 그 말이 꼭 비약은 아니다.

“혹시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걸 시켜도, 언제 어디서나 다 할 수 있어요?”

“네?”

“주말 회의에 나와서 취향껏 커피 타라고 하거나, 아침에 수정 사항 말해주고 점심시간 전까지 달라고 한다든지, 한 번 입은 옷은 두 번 입지 말라고 한다든지?”

당황스러운 질문에 그녀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양쪽에 앉은 팀장들은 나를 또라이 보듯 쳐다보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들의 눈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역시나 나의 예상과 같았다.

‘아 미친년, 쟤 또 뭐라니.’

‘저 주인공 병 또 도졌네. 또 도졌어.’

이 과도하게 솔직한 질문은 ‘내가 이렇게 통통 튀는 아티스트다’라고 뽐내려는 시도가 아니다. 면접장에서까지 그렇게 튀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재능 있는 사람이니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이 회사에 실상을 모르고 들어오는 것보다 알고 들어오는 게 더 나으니까, 그래야 애당초 나갈 사람을 뽑지 않으니까. 내 딴에는 묘수를 쓴 거다.

“두 분도 대표님 성격 아시면서 뭘 또 그렇게 놀라세요?”

“아니, 그래도 강 팀장님, 지금 상황에서는 좀 불필요한 질문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가요?”

마케팅 팀장의 말을 가뿐하게 흘려버리고 다시 지원자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 회사에서 사람들이 저보고 귀신 들렸다고 해요.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을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알아서 딱딱 해놓으니까. 근데 여기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일이 힘든 건 물론이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뿐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과 아주 빠르고 바쁘게 협업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가롭게 하나하나 가르쳐줄 수 없어요. 눈치가 없으면 코치라도 달고 와서 어떻게든 이 인간들한테 비벼야 하는데, 그래도 하고 싶어요?”

하고픈 말을 숨김없이 다 쏟아내고 지원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눈에 딱 봐도 긴장감을 온몸에 두르고는 떨지 않기 위해 주먹을 꼭 쥐고 팔목까지 붉게 변할 만큼 애를 쓰고 있었다. 면접이라는 게 대부분 사람들에게 어려운 것이니 긴장은 그렇다고 해도, 대답은 바로바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잠시나마 가졌던 기대를 접으려는 찰나 대답이 들렸다.

“네. 저 기회만 주신다면 어떻게든 버텨보겠습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들으며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속마음이 들렸다.

‘안 뽑아주시면 어떡하지. 안 믿어주시면 어쩌지. 이번에는 진짜 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래, 좋아. 그렇게 간절하다면 어디 한번 와서 버티어봐라.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간절한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피식 튀어나왔다.

“그래요. 그럼 좋은 결과 기다려보세요.”

내 말이 끝나자 인사 팀장은 서둘러 면접을 마무리했고, 나는 테이블에 놓인 지원자 서류에 크게 합격 표시를 해서 그녀에게 넘겼다. 뒤이어 두세 명의 지원자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나서야 그날의 면접이 마무리되었다.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나는 인사 팀장이 한껏 올라간 목소리로 마케팅 팀장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강 팀장님이 하는 질문은 가끔 너무 솔직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니까요.”

그녀는 마케팅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차마 말로 못다 한 속마음을 들었다.

‘아, 진짜 이 기집애 좀 말려봐요. 매번 말 같지 않은 질문을 하잖아. 면접장에서 회사 욕해서 뭐 해. 누구라도 들어와야 빨리 여기를 탈출할 거 아니야. 나라고 뭐 몰라서 말을 안 하냐고. 웃기는 기집애야 진짜. 인사팀은 난데, 왜 지가 유난이야.’

마케팅 팀장은 그녀의 질문에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강 팀장이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깔 나니까, 뭐 할 말이 있나. 내가 상상치 못한 질문들이 결국 다 사람을 헤아리는 방법일지 누가 알겠어?”

마음에선 사람 좋게 내뱉는 말과 영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지 잘난 맛에 사는 애를 뭐 어떻게 말려. 일 잘하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뭐 하나 걸리기만 해. 아주 끌어내려 버릴 테니까.’

겉과 속이 다른 말들을 매일 웃어넘기면서 이 회사에서 3년을 버텼다. 그 덕에 대리로 들어와 이례적인 승진으로 과장을 달았다. 디자인팀을 이끄는 팀장이면서 동시에 비주얼 커뮤니케이션팀을 총괄하는 디렉터. 내 나이 또래에 이렇게 조직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우곤 했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부러움에 몸부림을 치면서 얼마나 욕을 해댔을까. 나라고 이 모든 걸 쉽게 얻지 않았다. 나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나만의 고통이 분명 있다. 그냥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진 거지. 나는 늘 그렇듯 어금니를 꽉 물고 들리지 않게 숨을 조용히 내보낸 후, 온화한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유연한 대답을 내놓았다.

“에이, 다들 왜 그러세요. 어차피 나갈 애 뽑으면 우리만 피곤하잖아요. 미리 미리 거르는 게 낫지. 그리고 제가 총대 매고 나쁜 년 하는 게 두 분은 더 편하시잖아요. 안 그러세요?”

이렇게 비꼬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면 누구든 내키지 않더라도 결국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지. 직원들과 있을 때만 발휘되는 독심술 덕분에, 나는 그들의 속내를 콕 집어 비꼴 수 있는 유려한 말본새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기이한 능력이 신기하긴 해도, 즐거운 회사 생활을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오늘만 해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을 생각들을 읽는 바람에 자발적으로 욕을 씹어 삼킨 셈이 되었으니.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지겨워서 타성에 젖을 법도 한데, 아무리 욕을 먹어도 늘 새로운 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건 기분 좋은 일보다 씁쓸한 일이 더 많았다. 그저 익숙해지면서 점차 뻔뻔스레 대처하게 되었을 뿐. 초능력보다는 어쩌면 저주에 가까운 이 능력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사내 정치에 유리하다는 정도였다. 그 덕에 대표 눈에 쏙 들어 팀장까지 올라왔으니 결과적으로 이 능력을 내게 줘버리고 떠난 이전 팀장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고마운 마음을 갖기에는 이제 너무 지치고, 피곤하다. 회사도, 사람도 다 지겹다. 차라리 오늘 본 애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면접 지원자였을 때가 더 나았던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 말고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가 무척 그리워지는 하루. 퇴근 전부터 마음먹었던 와인 한 병을 꺼내 잔을 채웠지만 오늘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던 탓일까, 겨우 한 잔도 다 못 마시고 결국 침대에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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