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층 (8/25)

5층

5층

회사에 들어오고 한 달이 흘렀다. 그래도 어디서 일 좀 하다가 온 중고 신입이라 회사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건 3일이면 충분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이 회사에 3년은 다닌 듯 여유롭게 사옥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지하로 5층 지상으로 11층, 도합 16층짜리 건물을 다 돌아보기엔 아직은 눈치가 보이는 새로 온 이방인이었다. 하긴 아직 이 건물에 건축가가 붙여준 이름인 ‘온 그라운드’도 입에 영 붙지 않는다.

회사를 옮기고 며칠 동안은 지난 회사에서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지 이따금 집에서 눈을 감았다 뜨면 사무실에 가 있고, 퇴근하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문을 열었더니 집일 때가 종종 있었다. 여전히 초능력이 발휘된다는 건 내가 힘들다는 뜻이니 그때마다 더 열심히 먹고, 잘 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좋은 컨디션으로 버스에 오르니 1시간씩 걸리는 통근길도 피곤하지 않았지만, 또 막상 초능력이 없어지니 아쉬운 마음도 분명 있었다.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뭐 하나 놓지 못하고, 하나 얻고 하나 놓치면 놓친 게 아쉬워서 또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아직 명확하게 전사 분위기를 읽진 못했지만, 이곳은 수직으로 표현된 설국열차 같았다. 높은 층에 있을수록 핵심 부서로 사내에 입김이 좀 더 세다고 들었다. 뭐 회장님이 11층에 있는 것만 봐도 뻔하잖아? 각 본부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회장님 가까운 층에 다가갈 수 있을지, 그것만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입사하던 해에는 새로 신설된 핀테크 사업 본부가 게임 사업 본부를 두 층이나 내려가게 하고 9층을 차지해서 사내가 뒤숭숭했다. 건물 어디를 가도 핀테크 본부의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더러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1층에서 다 같이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타도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몇 층에서 내릴지 대충 가늠이 되었다. 붙박이로 10층을 몇 년씩 차지하고 있다는 인사팀과 경영기획실 사람들은 늘 정돈된 모습이었다. 각양각색의 캐주얼 패션이어도 말끔하게 세팅된 머리와 옷, 친절하진 않지만 딱딱하지도 않은 표정,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분한 목소리. 반면 3층이나 4층을 내리 차지하고 있는 계열사나 테스트팀 사람들은 늘 피곤함에 절어 앓는 소리를 하며 다녔다. 후드 집업 하나 툭 걸치고는 죽지 못해 사는 표정으로 커피를 손에 들고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제일 위층과 1층 사이 딱 가운데 5층에 내가 속한 ‘유니온 앤 피플’ 사무실이 있었다. 이곳은 유니온 전사에 인력을 지원해 주는 파견 대행 계열사였다. 그래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이었다. 소속은 계열사지만, 계약은 본사와 1년마다 갱신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입사하고 나서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같은 회사 건물에, 같은 회사 이름을 쓰고 있으니 외부에서 채용 공고만 보고 이걸 알 턱이 있나.

본래 채용 시 예정되어 있던 인수인계가 엉키면서 한 달째, 5층에서 주변 사람들의 잡다한 일들을 도와주며 파견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인 즉,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강도는 전혀 과하지 않았다.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쁠 건 없었다. 이 회사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과분할 만큼 맛있는 식사를 제공했다.

“나정 님, 밥 먹으러 가요!”

옆 자리에 앉은 희영이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나와 입사일이 서너일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들어오고 나서 알았는데, 자기가 입사를 할 때는 같은 파트는커녕 다른 파트에도 입사자가 없어서 OJT를 받지 못했다가 며칠 뒤 내가 오면서 같이 교육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 덕에 그녀는 나를 동기처럼 여기고 처음부터 환히 반겨주었다. 나라고 먼저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벽을 칠 이유가 없으니,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입사하면서부터 마음 터놓은 사람이었다. 희영과 함께 점심을 먹는 건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아마 이전 기억이 정반대였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에 쓸데없이 생기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다. 먼저, 메뉴 고르기. 마지막에 들어온 막내여서 늘 점심 메뉴 선정은 내 담당이었다. 처음에는 사무실 동네도 익숙하지 않아서 식당도 잘 모르거니와, 사람들 취향을 단번에 익히지 못해 눈치를 보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분명 ‘다 괜찮다’, ‘알아서 고르라’고 해놓고는 돈가스를 먹자고 하면 ‘느끼하다’, 짬뽕을 고르면 ‘너무 맵다’, 쌀국수를 얘기하면 ‘시원한 게 땡긴다’나 뭐라나. 누구 하나 불만 없이 만족할 수 있는 식당과 메뉴를 고르는 건 하루 중 가장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였다. 오죽하면 점심시간 1시간 전부터 지도 어플을 켜놓고 온 동네를 뒤졌을까. 막상 그렇게 겨우 골라서 가도 제각기 한마디씩 말을 얹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그 밖에도 물 따르고, 수저 챙기느라 정말 말 그대로 엄한 데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낭비해야 했다.

그렇게 살다가 구내식당이라니! 심지어 메뉴가 네 가지에, 바쁜 사우들을 위한 도시락까지 있었다. 각자 먹고 싶은 줄에 서서 받아 오면 되니까 메뉴 고를 걱정도 없지, 물이나 휴지나 수저를 대신 챙겨줄 필요도 없지, 밥 먹으며 군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는 것까지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점심시간에 친한 사람들끼리 온전히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했다.

“오늘은 뭐 나와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희영에게 메뉴를 물으니 사내 앱으로 메뉴를 확인해 주었다.

“뚝배기불고기랑 김치치즈볶음밥이랑 삼선짬뽕탕, 그리고 채식 백반이요. 전 뚝불!”

“그럼 저도 뚝불 먹을래요. 혜인 님은 안 오세요?”

“아, 혜인 님은 오늘 8층 분들이랑 같이 먹는대요.”

모두 다 같은 파견 계약직이지만 나보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몇 년씩 먼저 입사한 동료들은 이미 8층과 5층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그중 유난히 혜인과 지아는 자리를 자주 비웠다.

혜인은 8층 데이터팀에 지원 가 있었다. 처음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명문대 석사씩이나 졸업한 사람이 왜 계약직으로 회사에 들어온 건지 의아했었다. 이과생에 석사까지 공부했으면 여기 말고도 ‘어서 와주세요’ 할 곳이 넘쳐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구직난이 이렇게까지 심한가 싶어 몹시 씁쓸했다. 혜인의 말로는 8층 데이터팀 사람들이 대부분 석, 박사 출신 전문가들이라 곁에 있는 것만으로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분석해야 할 데이터가 매일같이 줄줄줄 쏟아져 나오니, 데이터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라고 했다. 문과 출신인 내게 혜인이 다루는 데이터는 온통 낯선 문자들일 뿐,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어디서 일 못한다는 소리 안 듣고 살아왔는데 0과 1로 이뤄진 세상에서 전쟁을 치르는 IT 회사에 오니 모든 일이 참 많이 낯설었다. 그래서 꽤 자주 마주치는 혜인과 같은 사람들도 별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유니온 직원들은 온 그라운드 밖에 내놓아도 어디서든 ‘어서 옵쇼’ 하고 스카우트해 갈 것 같은 인재였다. 대부분 영어는 기본에 제2, 제3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일반적인 IT 서비스가 그렇지만 한국 마켓뿐 아니라 미주, 유럽, 동남아까지 세계 각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럴 수밖에. 능력이 떨어지면 업무에서 제외되기 딱 좋은 상황이니 층별 회의실에서는 외국어 스터디부터 업무별 케이스 스터디, 코딩 스터디, 데이터 분석 툴 스터디가 꽉꽉 채워져 있어서 근무 시간이든 근무 외 시간이든 예약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자신을 채근하고, 끊임없이 단련시켜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되는데 여기서 벌써 연장을 두 번이나 한 사람도 있다. 바로 지아였다. 오늘은 웬일로 5층에서 근무를 하기에 함께 밥을 먹으러 나왔다.

“혜인 님네 팀장님 바뀔 거라는 소문 있던데….”

여전히 싸늘한 늦겨울에도 하늘하늘 블라우스에 딱 떨어지는 회색 슬랙스를 입고 내가 그토록 바랐던 사원증을 걸고 있는 지아. 커리어우먼이라 하면 떠오르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차분한 사람이었다. 팔짱을 끼며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던 지아가 특유의 속삭이는 목소리로 회사 내부의 이야기를 읊조렸다.

“팀장님이 바뀌면 분위기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네요.”

“지아 님은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었어요?”

“아, 저희 팀장님이 워낙 소식통이잖아요. 워낙 여기저기 협업도 많이 하니까.”

지아가 말하는 팀장은 파견 나가 있는 8층 게임 운영 1팀의 팀장이었다.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자신의 본진이 5층이 아니라 8층이라고 하는 듯 느껴졌다. 같은 팀 파견 업무로 계약을 두 번이나 연장해서 같은 팀장과 3년째 일하고 있는 지아. 암묵적 규정상 지난번 연장을 마지막으로 슬슬 본사 발령 얘기도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오래 다닌 덕에 회사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서인지 지아에게는 다른 5층 동료들과 사뭇 다른 여유로움이 배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희영이나 나에 비하면 혜인이나 지아는 벌써 유니온 사람, 이곳에서 흔히 ‘온 피플’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다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분명 저 위층 온 피플과 아래쪽 앤 피플 사이에는 묘한 경계선 같은 게 있었다. 여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과연 저런 여유로움이 생길 수 있을까. 회사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아등바등 살아야 온 피플이 될 수 있으려나. 나 홀로 딴 생각에 빠져 있고, 희영과 지아는 이런저런 회사 얘기를 나누며 식당 줄에 맞춰 걸어가다 보니 금방 배식대 앞이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반갑게 하고는 식권 대신 사원증을 인식기에 가져다 대니 소속과 이름이 떴다.

유니온 앤 피플 | 마케팅 지원 파트 | 주임 이나정

볼 떄마다 왠지 모르게 남들은 다 선임, 전임, 책임인데 나만 주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5층은 일반적인 회사 직급 체계를 따르지만 온 피플의 직급 체계는 연구원 직급 체계를 따른다. 그런 의미로 어떤 면에선 사원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주임이라니! 선임 아래지만 묘하게 그들과 같은 소속인 것처럼 느껴지는 직급. 하지만 아직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아니니 직급이 뭐가 중요하겠어. 지금은 밥이 맛있는 게 제일 중요하지.

판교에 있는 회사들이 각자 구내식당 퀄리티로 은근히 경쟁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느 날 옆 건물 점심 메뉴로 킹크랩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자 그다음 주에는 여기 구내식당 메뉴로 랍스터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업계 사람들이 스카우트 제안을 주고받으며, 이 근처 회사를 돌고 도니 구내식당 메뉴조차 사내 복지에 들어가는 듯했다. 이전 회사에서는 구내식당 구경도 못 했는데, 여긴 구내식당에서 매일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메뉴들이 공짜로 나오니 ‘어이구, 감사합니다’ 하고 먹을 따름이다. 그런데 불만 없이 맛있게 밥을 먹다가도, 이따금 혜인과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내가 너무 아무렇지 않은 것에 감동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거 너무 시판 소스 맛이지 않아요? 아, 지난번에 데이터팀 전임님이 밥 사주셔서 앞에 새로 생긴 스시집 갔다 왔는데 샐러드 신선함이랑 소스 상큼함이 차원이 달라. 진짜! 어쩜 너무 맛있는 거 있죠? 감동 그 자체! 아, 그리고 이번에 팀 회식 판교역 앞에 시푸드 뷔페 생겨서 간다는데 먹어보고 맛있으면 우리 파트 회식은 거기서 하자고 파트장한테 말해볼까요?”

혜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1급수는커녕, 3급수쯤에 살아도 그저 그렇게 만족하면서 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입맛이 까다로운 혜인은 구내식당 메뉴에 늘 불만이 많았다. ‘짜다, 시다, 맵다’ 이런 단순한 표현으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조미료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 않은 거 같다’ 등 보통 단체 급식에서 기대하지 않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 유난스러움에 그녀를 흘겨보다가도, 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그 까다로움이 그녀를 온 피플처럼 보이게 하나 싶었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겪고, 맛보게 되면 일상 속 가치가 한두 단계 정도 달라질 수도 있잖아.

8층에 올라가서 일하면 나도 저렇게 달라질까. 사람의 눈높이라는 게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닐 텐데,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면 어서 8층에 올라가서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낫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 내가 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출 수 있을지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실상 5층 자리에 앉아 생각만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같이 위층에서 내려오는 오만 잡일을 쳐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에 쏟아부었다.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은데도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내 미래를 걱정하느라 온 정신을 다 쏟다 보니 신기하게도 사라졌던 초능력이 다시 찾아왔다.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니까 오히려 반가웠다. 게다가 이동하기 전에 느껴지는 오묘한 느낌을 이제는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드디어 8층으로 옮겨 가기 전날, 퇴근길에 사옥 회전문을 통과하다 말고 느낌이 와서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 마음을 편히 하고 두 손을 모아 눈을 감았다. 내 맘대로 이동할 수 있는 걸까 싶어 머릿속으로 지도를 펼쳐보았다. 어디로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 일평생 보았던 광경 중에 나를 가장 짜릿하게 만들었던 순간이 언제였지? 무수한 광경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눈을 떴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 러브 런던!”

템스강 강변에 걸터앉아 두 발이 허공에 동동 떠 있는 채로 눈을 뜨니 눈앞에 웅장한 타워브리지와 런던답지 않게 쾌청한 하늘이 보였다. 물론 겨울의 칼바람은 한국이나 런던이나 매한가지였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어. 눈만 감았다 떴는데 어학연수 시절 나를 가장 신나게 만들어주었던 그곳에 다시 와 있는 것을. 돌아갈 길도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니, 또 말도 안 되게 나를 집에 데려다주겠지. 아니면 오늘 밤새도록 런던 거리를 걷다 보면 피곤해서 또 초능력이 발휘되겠지. 황홀경의 순간이니 상념들을 던져버리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온 피플과 다른 평범하디평범한 계약직 주임이지만, 이렇게 눈 감았다 뜨면 런던을 만날 수 있는 주임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특별해. 비록 아직 그들과 가까워지기에 나는 너무 다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따금 힘든 날엔 이렇게 훌쩍 떠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 어떤 위로보다 더 안심이 됐다.

다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정말 오들오들 떨며 강변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야 할 줄은 몰랐지. 이런 식의 위로 여행이라면 웬만하면 하지 말아야겠다. 까딱하다간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될 수도 있고, 초능력이 먹혀들어 겨우 돌아간다고 해도 다크서클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채로 출근을 할 판이었다. 기분은 좋은데 몸은 천근만근. 가시지 않는 피곤함을 달고 이렇게 8층에 올라가도 정말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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