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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7/25)

면접

면접

이렇게 거대한 회사의 일원이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사람들 사이에 혼자 서서 1층에 도착할 때까지 층수에 따라 바뀌는 숫자판만 멍하니 보다 겨우 내렸다.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이 회사는 내 회사가 아니다. 그런데 평생 한 번은, 딱 한 번쯤은 누구나 알아주는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붙잡았다. 이 건물이 내 회사였으면 좋겠고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 간절한 마음에 목에 걸린 방문증을 벗어 곧바로 반납하지 못하고 꼭 쥐었다가 손을 펴고 한 번 더 바라봤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하나씩 목에 걸고 있는 이놈의 사원증. 나도 내 이름 세 글자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학 시절, 나의 로망은 나 빼고 세상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이 사원증이었다. 작가 지망생도 아닌데, 신춘문예 등단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하루에도 몇 천 자씩 무탈한 내 인생을 더 가치 있어 보이도록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으로 연신 연마질을 해댔다. 그 과정을 통과해도 몇 단계의 면접을 더 거쳤다. 면접은 늘 만점이 몇 점인지, 시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진지, 하다못해 무슨 과목인지조차 모르고 치르는 시험 같았다. 대체 정답이란 게 있긴 한 건지, 수없이 받았던 탈락 메시지들 속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는 작은 배려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늘 방황뿐이었다.

딱 한 번, 이 지독한 방황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딱히 그 회사에 꼭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내 학교와 학점, 자격증이라면 이 정도의 회사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간 부지런히 살았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걸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정갈하게 한 자씩 이력서에 채웠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이력서가 증명하는 만큼 좋은 직장이길 바랐다. 그 기준에 적당히 맞아떨어졌던 기업의 최종 면접 날. 그간 면접 경험도 꽤 쌓였고, 경쟁률이 유난히 낮은 곳이어서 마음 한구석에는 안일함이 자리했다. 더욱이 옆자리에 앉은 지원자의 구두가 유난히 내 것보다 지저분해 보여서 ‘얘보다는 내가 되겠지’란 오만함까지 있었다. 그게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나정 씨.”

“네.”

“사과 폰 써본 적 있어요?”

“아, 아니요.”

“왜요?”

우리 아빠는 사과 폰 경쟁사에서 30년을 근무했다. 내 핸드폰보다 늘 아빠의 핸드폰이 신식이었다. 심지어 테스트 폰을 쓰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 우리 집엔 낡지 않은 안드로이드 폰이 넘쳐났다. 그러니 내가 미국산 핸드폰을 쓸 일은 없었지. 그런데 이걸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배경을 드러내는 말은 하지 말아야 유리한 것인지, 생각지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혀 눈만 굴리는 동안 나에게 왔던 질문이 옆자리 사람에게 넘어가 버렸다.

“김현정 씨는 써본 적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 사람이 대답하자, 마주 보고 있던 면접관도 미소를 띠며 함께 끄덕했다. 그게 그날 나에게 온 마지막 질문이었다. 해명할 기회도 없이 면접이 끝나버렸고, 나는 또 탈락 문자를 받아야 했다. 대체 어떤 핸드폰을 사용하는지와 내 업무 능력에는 무슨 인과관계가 있었던 걸까. 한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결국 현실과 타협했다. 부모님의 기다림을 등지는 게 버겁고, 어차피 그해 공채 시즌은 끝나버린 셈이었다. 다음 시즌까지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야 어디에서든 경력을 쌓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느 큰 포털 기업의 계열사의 실행사쯤 되는 회사. 그래도 어떻게든 대기업에 연결 고리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선택한 곳이었다. 소박한 사무실에서는 몇 안 되는 직원이 그보다 몇 배나 되는 인원이 내려주는 일을 매일같이 치러냈다. 여기서 한 명의 몫을 해내려면 아마추어 같은 태도는 금방 떨쳐버려야 했다. 나는 한 달 새 닳고 닳은 회사원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자정을 훌쩍 넘겨 바닥난 체력으로 야근하던 어느 날, 간절히 퇴근을 상상하며 화장실에 가다가 픽 쓰러져 버렸다. 신기하게도 눈을 떴더니 아무도 모르게 내 방 침대에 와 있었다. 그날부터 이 근본 없는 초능력이 시작되었다. 야근에 지쳐 집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이 말도 안 되는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발현되었다. 설명도 안 되고, 믿기는 더 힘든 순간이동 능력. 이 빌어먹을 초능력은 기운이 펄펄 넘치는 날보다, 죽기 일보 직전인 날에만 발현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 생활은 죽을 것 같을 때가 훨씬 많았고, 덕분에 나는 3초 컷의 출퇴근길을 얻었다. 아침에 눈을 딱 떴을 때, ‘아 잘 잤다!’란 생각보다는 ‘이대로 딱 죽고 싶네’ 싶은 그런 날에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뜨면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지하철에 오르지 않아도 되고, 자리 쟁탈전을 위해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사냥감 쫓듯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출근길.

초능력이라곤 해도 삶이 대단히 바뀌진 않았고, 회사원으로 겨우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기분이었다. 내게 큰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도 않았고, 정작 내가 살 만하다고 느끼는 날엔 전혀 통하지 않으니 그저 조금 덜 아등바등하며 살았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정신력이든, 체력이든 한 번씩 바닥을 쳐서 ‘여기서 그만 다 내려놓을까?’ 싶을 때마다 죽지도 못하게 했다. 초능력이 없던 삶이 너무 피곤했던 탓에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을 때쯤 대학 시절 꽤 붙어 다녔던 친구들의 단체 톡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김보라| 야 이거 봐봐.

뒤이어 온 건 대학 시절 내내 붙어 다니다 졸업 즈음부터 모임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던 같은 과 동기 슬기의 사진. 그리고 그 아래로 몇 글자 안 되는 해시태그가 보였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올해도_수고_많았어 #신입들어오면_잘해주자

하나같이 딱 떨어지는 정장을 주르륵 입고는 환하게 웃는 사람들. 사진 속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해시태그를 대충 읽었던 탓에 슬기한테 내가 아는 동기 말고 다른 동기생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이 대학 동기가 아니라 회사 동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 회사 동기도 동기지. 묘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회사원이어도 누구는 동기가 있고, 누구는 동기가 없고.

김보라| 이 기집애 스터디 단톡방에서 내가 최종 떨어졌다고 우울해할 때도 아무 말 없더니, 지는 붙어서 회사 다니고 있었나 봐. 진짜 어이가 없네.

보라가 느끼는 시기와 질투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보라는 슬기와 취업 스터디를 오래 함께했는데, 슬기로부터 합격에 대해 아무 말도 듣지 못했으니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수 있는데, 문제는 나였다. 보라의 메시지를 보면서도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흘러갔다. 어이없어할 게 뭐 있어. 떨어진 사람은 떨어진 사람이고, 붙은 사람은 붙은 사람이니 다녀야지. 떨어진 사람은 떨어질 만했고, 붙은 사람은 붙을 만했나 보지.

내가 이토록 담담한 사람이었나. 담담하다 못해 어딘가 자조적인 문장으로 답장을 쓰려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생각을 그대로 적어 내려갔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미운털이 박혔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조용하게 살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슬기의 모습이 이 카톡방에서 자기 위로를 하고 있는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슬기는 오늘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 허탈한 감정을 나누지는 않을 테니까. 보라가 가져온 사진으로 끊임없이 울려대는 저 톡방 안에도 분명 나름대로 적당한 회사를 잘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잘되는 다른 친구를 보고 저렇게 펄쩍펄쩍 뛰며 왈가왈부하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스스로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별다른 큰 계기도 아니고 딱 그 정도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몇 달 다닌 이 회사보다 더 나은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머릿속을 채웠다.

힘들 때면 겨우 내 몸뚱이 하나 집으로 옮겨주는 초능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의 행복에 마음 깊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더 필요했다. 누군가 나에게 질투심을 뿜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의 단단한 안정감을 얻고 싶었다.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 가면 다르지 않을까. 이렇게 매일 건강을 내어주고 월급 받는 삶 말고, 남들처럼 휴가도 누릴 수 있는 회사. 저녁이 있는 삶 좀 살아보자.

아직 공채 시즌이 오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때만 사람을 찾는 건 아니었다. 온갖 회사의 자사 구인 페이지를 전전하다 한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부서도 괜찮고, 기한이 없어 채용 전환도 노려볼 수 있는 계약직. 어딘가 어폐가 있는 듯싶지만 공고를 읽은 그날 자정 마감이었기에, 생각 난 김에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더 고민할 새도 없이 일단 서류부터 써 내려갔다. 급하게 결정한 이 선택이 과연 옳았을지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야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나 답을 내리기도 전에 나는 면접장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말씀을 디게 잘하시네요?”

컨테이너처럼 생긴 특이한 인테리어의 회의실이었다. 나보다 족히 열 살 아니, 스무 살은 많을 것 같은 두 남자를 마주하고 대화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한들 여태까지 만났던 면접관들에 비하면 꽤나 젊은 편이라, 오히려 또래라고 느껴졌다. 최근 몇 달 사이 작은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사회성의 정점을 찍고 있었기에 낯선 이와 대화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남자들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자 그런 나를 보고 오른편에 앉은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칭찬을 건넸다.

“긴장을 한 개도 안 하신 것 같아요.”

“아, 그런가요?”

칭찬에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코딱지만 한 회사에서 배운 건 어떤 사람과 마주해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깡다구였구나. 그 덕에 앞뒤 면접자들보다 한참 더 이야기하다 나왔다. 면접이 끝나고 산뜻한 기분으로 돌아가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이토록 깔끔한 면접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계약직 면접이라 쉬웠던 걸까. 이렇게 멀쩡한 회사가 대체 뭘 원하는지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더 놀랍게도 집에 도착하기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유니온입니다. 이나정 님 되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오늘 보신 면접에 최종 합격하여 연락드렸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말에 기쁨은 사실 30퍼센트 정도였고, 놀라움이 70퍼센트였다. 지금 면접 끝난 지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전화가 온다고?

“인사 등록 절차와 사내 교육을 위해 다음 주 월요일 9시까지 1층 프런트로 오시면 됩니다. 입사 절차를 위해 필요한 서류는 메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담당자의 안내에는 막힘이 없었다. 대기업이란 게 이런 걸까. 인사팀이 인사팀의 역할을 하고, 사내 교육이 있다니. OJT 같은 OJT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회사원 흉내만 내다가 진짜 회사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상사 입맛에 맞춰서 보고서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지. 딱 정해진 양식에 따라 내용을 적으면 되니까 불필요한 시간 낭비 따위는 안녕이다. 여태 구직 활동으로 치이고, 코딱지만 한 사무실에 다니면서 다 사라졌던 회사에 대한 설렘이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살짝 피어나는 것도 같았다.

수도권 저 끄트머리 구석에 박혀 있는 IT 회사의 성지, 판교. 출퇴근을 위해 좌석 버스를 타고 다닐 일이 아찔하지만, 그마저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건 닥치고 난 뒤에 생각하자. 어차피 이 거대한 기업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무슨 사건 사고를 마주할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이제부터가 진짜야. 어떻게든 여기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버티어보자. 그러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뭐든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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