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 구미호, 한지원, 선화.
그렇게 가까운 관계라 생각하지 않 았는데, 막상 직접 만나니 꽤 반가 운 기분이 들었다.
“이야. 다들 조금씩 변했네. 잘들 지냈냐?”
엘린의 물음에 가장 먼저 답한 것 은 구미호였다.
“나야 잘 지냈다. 인간 세계의 삶 은 참 질리지 않더구나. 그보다 선 글라스 멋지지 않으냐? 깔깔깔.”
구미호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보이 며 크게 웃었다.
우아한 외모와는 상반된 경박한 웃 음소리에 몇몇 사람의 시선이 그녀 를 향했다.
왠지 재수 없다고 느낀 엘린은 구 미호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한 지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뭐, 근데 저희는 일주일 전에도 만나 뵙 지 않았습니까?”
엘린과 한지원은 같은 한성가 소속 의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부서는 다르더라도 꽤 자 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뭐, 그건 별로 안 궁금했고. 그보 다 선화. 너는 조금 의외네. 관심 없는 척하면서 은근 우리가 보고 싶 었던 거냐?”
엘린의 말에 선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착각하지 마라. 혹시 왕에 대 한 소식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 어서 온 거니까.”
“대장님이면 원래 세계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요? 소식을 어떻게 접해 요?”
한지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엘린이 당황한 듯 반응을
보였다.
“으응? 어, 뭐. 그렇지?”
엘린의 수상한 반응에 한지원이 눈 을 깜빡였다.
“뭐예요? 그 반응은?”
“뭐냐? 네놈 설마 혼돈과 연락이 닿는 것이냐?”
이번에는 구미호가 물었다.
엘린은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고개 를 저었다.
“아이참, 그런 거 아니야. 걔 자기 세계로 돌아간 거 몰라?”
“……수상한데.”
그때 한지원이 말했다.
“아 참. 근데 그쪽 휴가 오늘까지 아닙니까?”
“휴가? 뭐, 그렇지.”
엘린은 최근 2주 정도의 긴 휴가 를 가졌다. 물론 그전에도 몇 번의 휴가를 가지긴 했다.
그 기점이 3달 전이었다.
“한세연이 내일 2주의 휴가를 마치 고 돌아오거든.”
마법이 없는 세계의 대한민국.
황은현은 김선우의 자취방을 찾아 길을 걷고 있었다.
몇 달 연락이 거의 없다 싶더니 갑자기 연락이 잘되다가, 또다시 연 락이 끊겼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 까 하는 괜한 걱정이 생겨 결국 김선우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분명 이 근처라고 들었는데.”
골목길에 들어선 황은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빌라와 주택이 가득하다 보
니 통 길을 찾기가 힘들다.
“72번지가 대체 어디야?”
그러고 보니 임지현이 저번에 김선우 집에 찾아갔다 들었는데.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나?
“아니지. 주변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더 빠르겠네.”
황은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근처에 주민이 한 명쯤은 지나갈 터.
바로 그때.
...2”
그의 시야의 끝에서 검은 머리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주택단지의 풍경을 고급스 럽게 만들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다.
“와. 연예인인가?”
아니, 연예인을 몇 번 실물로 보긴 했지만 저렇게 감탄을 만들어 낸 사 람은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이내 그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저, 저기요!”
황은현의 부름에 검은 머리의 여인 이 고개를 돌렸다.
“..네?”
그때, 어디서 모습을 드러낸 건지 거대한 덩치의 노인이 그의 앞을 막 아섰다. 당황한 황은현은 놀라서 뒷 걸음질했다.
“수기 아저씨. 저는 괜찮아요.”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노인은 이내 뒤로 물러섰다. 여인 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아,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아! 길을 여쭤보고 싶어서요.”
“길이요? 저도 이 주변을一”
“72번지가 어딘지 혹시 아시나 요?”
“……72번지요?”
검은 머리의 여인이 눈을 깜빡였 다.
“혹시 선우 씨……?”
“어? 선우를 아세요?!”
검은 머리의 여인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오른쪽 골목으로 가시면 돼 요.”
“……아, 예.”
대답을 마친 여인은 도망치듯 순식 간에 노인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황은현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뭐야? 김선우를 어떻게 아는 거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김선우를 만 나 직접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72번지. 아. 저기네.”
그때 근처에서 또 다른 무리가 모 즙을 드러냈다.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의 남성 둘과 3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방금 만난 여인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외모였기에 황은현은 당혹감을 느꼈다.
“이 동네는 인물이 왜 이렇게 좋 아?”
다음 날 아침. 한세연은 2주의 긴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만난 엘린의 모습에 한세 연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2주 만이네요. 휴가 잘 지내셨어
간단한 안부 인사에 엘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나야 뭐…… 적당히 잘 지냈는데 너는 딱 봐도 잘 지낸 거 같네.”
한세연은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 다. 그 모습에 엘린은 말로 설명하 기 힘든 심술을 느꼈다.
왜 너만 행복해.
“그래서, 거긴 또 언제 가려고? 3 달 전부터 쉬는 날마다 거의 매번 찾아가지 않았어?”
“……어, 그렇죠? 생각보다 신기한 게 많더라고요. 봐도 봐도 끝이 없
다니까요?”
한세연은 그녀답지 않게 아이처럼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 녀석의 세계는 대체 어떤 곳이 길래 한세연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나도 한번 가보고 싶네.”
“갈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한번 말 씀드려볼게요.”
“오. 진짜?”
엘린이 신나서 물었다.
한세연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
엘린은 한세연을 향한 질투심을 모 두 비워내곤 그녀를 찬양했다.
그렇게 웃으며 기뻐하던 엘린이 생 각난 듯 물었다.
“아. 맞다. 그래서 김선우. 걔는 잘 지낸다냐?”
한세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아, 요즘 엄청 피곤하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최근 이래저래 바쁘게 살아갔더니
피곤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인은 역시 ‘그 녀석들’이라고 해 야 할까.
몇 달 전만 해도 정말 반가웠는데 이제는 슬슬 질린단 말이지.
“재회의 기쁨도 잠깐인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제 있었던 일
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황은현. 그놈은 왜
갑자기 찾아와 가지고.”
해명하느라 진짜 힘들었지.
어찌 됐든 지금 나는 양손에 온갖 음식이 포장된 봉지를 들고는 도로 를 걷고 있었다.
자취방에 온 손님. 아니, 손놈들에 게 대접할 음식들이었다.
끼이익.
그렇게 집 문을 열자 파바박! 하는 발소리와 함께 작은 무언가가 내게 달려왔다.
“응애!”
“앗! 그레텔!”
그리고 뒤를 이어 들려오는 소란스
러운 목소리.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온 그레텔을 보며 최서윤이 아쉬움을 느끼고 있 었다.
“선배님 오셨어요?”
이내 나를 발견한 최서윤이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내 다리에 달라붙은 그레텔의 등을 토닥여주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어. 그래.”
“오. 김선우. 왔냐?”
그리고 이번에는 거실 너머에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신영준과 윤하영, 유아라가 편한 자세로 앉아 드라마 를 보고 있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ott 드라마였다.
“야. 이거 진짜 재밌네. 조금 막장 이긴 한데. 벌써 시즌3 보는 중.”
“선우야. 과자 사 왔어?”
“……어.”
“아싸. 내가 맛있다고 한 거 사 왔 네?”
윤하영은 곧바로 내 손에 들린 봉
지에서 과자를 꺼내 먹었다.
잠시 황당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 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근데 이서준은 어딨어?”
“나 여기.”
방 안에서 이서준이 걸어 나왔다. 여태 자고 있던 듯 작게 하품하고 있다.
마치 자기 안방이라도 드나드는 듯 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근본적인 궁 금증이 생겼다.
“근데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너희 협회 일은 그만뒀냐?”
“아니, 휴가 냈는데.”
“나도.”
“나도.”
“저도요.”
곧바로 들려오는 무수한 칼답들.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이서준이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걱정 마. 슬슬 복귀할 생각이니까. 우리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다고.”
그렇게 말하던 이서준이 말을 이었다.
“아 참. 그래서 오늘은 어디 구경 시켜줄 거야? 겨우 재회하게 됐는데 추억을 더 쌓아야지.”
그 말에 순간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웃음을 본 모두는 내 눈치를 보더니 이내 민망한 듯 나를 따라 웃었다.
뭐, 생각해보면 그 말도 틀리진 않 다.
소중한 인연.. 우리에겐 앞으로
쌓아야 할 추억이 많으니까.
完오
〈완결 후기〉
안녕하세요. 텍골입니다.
회엑천이 536화를 끝으로 완결을 맺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 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을 드리고 싶습니다.
회엑천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독자님들 덕분이니까요.
그리고, 주인공 선우에게도 정말 고생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결말 부근에서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
어떻게 끝내야 좋은 걸까.
완결이라는 단어가 낯선 저에게는 모든 것이 혼란이었습니다.
약 다섯 가지 정도의 엔딩을 구상 했고,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 엔딩은 선우가 ‘가장’ 행복할 결말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엔딩들도 해피엔딩이었지만, 선우가 정말 많은 고생을 한 것을 알기에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본편은 완결됐지만 선우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전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전개를 위해 잠시 미뤄왔던 선우의 진짜 연애 이야기…… 선우의 세계 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일상.
그리고 IF 스토리.
그런 소소한 행복들을 담아볼 생각 중입니다.
다만 외전의 연재 일정은 조금 나중으로 미뤄질 예정입니다.
회엑천을 연재하면서 미뤄왔던 일들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재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회차나 장면들을 뒤늦게 고쳐볼 예정입니다. (아마 크게 바뀌진 않을 겁니다!)
너무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저는 여기서 물러서도록 하겠습니다.
선우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텍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