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차원 술식을 발동시킬 거대한 마나였다.
나는 곧바로 손끝에 마력을 담아 바닥에 작은 술식을 그렸다.
푸른 빛이 뿜어지며 작은 술식의 형태가 생겨났다.
자연의 마나를 흡수하는 술식이었다.
술식은 곧 푸르게 빛나더니 석판에 담긴 마나를 서서히 흡수하기 시작 했다.
그 순간 내 옆의 어린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와. 빛이다.”
동시에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 람이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놀란 표 정을 지었다.
“……무슨 쇼 같은 건가?”
주변의 시선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저 석판에 담긴 마나를 끌어 올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필요했으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론 부족해.”
외부에서 마나를 더 끌어 올릴 수 있다면…….
나는 그려놓은 작은 술식을 소멸시 키고는 전시장 밖으로 나갔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넓 은 도화지를 펼쳤다.
이후 거대한 원을 그리고, 그 안에 기억 속 술식 정보들을 하나씩 담아 냈다.
지금 내가 만들려는 이 술식은 두 개의 큰 차원을 연결하는 ‘차원 통 로 술식’이었다.
이전까지 불가능의 영역이라 치부 했지만, 석판의 존재로 이론상 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술식이 있는 고대 석판이 발견됐다 는 건, 이 세계 어딘가에 다른 차원 과 이어진 미세한 틈이 있다는 증거 니까.
나는 천천히 술식을 그리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차원의 통로를 만드는 게 불가능했던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 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연결하려는 두 차원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혼돈에 뒤덮인 열린 세
계.
그리고 이서준이 속한 세계는 세계 의 법칙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 닫힌 세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데우스 엑 스 마키나]를 통해 닫혀있던 그들의 세계를 열었다.
즉, 지금 두 차원의 성질은 비슷하 다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한 차원에 서 일방적으로 연결하는 게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통로 연결을 위해선 ‘차원 통로 연
결’ 마법을 아는 두 존재가 각 차원 에서 같은 타이밍에 마법을 발동해 야 하지만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이다.
내가 사는 세계는 ‘마법’이란 개념 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진천우는 나를 부르기 위 해서 통로 연결이 아닌 ‘소환 계약’ 형태의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있지.”
마법이 없는 세계. 하지만 나는 마 법을 사용할 수 있다.
차원의 통로를 연결하는 것이 불가 능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저쪽 세계와의 소통 방법 과 대용량의 마나인데.”
차원의 연결을 위해서는 같은 타이 밍에 술식을 발동해야 한다.
그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험난한 여정이 되겠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
그리운 사람들과의 재회.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 결 말…….
나는 술식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는 도화지를 꾸겼다.
“이게 아니야. 아직 부족해.”
고작 이 정도의 술식으로는 안전한 차원 통로를 만들어낼 수 없다.
더 정교하고 꼼꼼하게....
나는 새 도화지 위에 새로운 술식 을 그려나갔다.
대한민국을 새하얗게 뒤덮었던 겨 울도 순식간에 지나 따뜻한 봄이 피 어오르는 4월이 찾아왔다.
수많은 사람이 등교, 출근으로 바
쁜 그 시기.
곱게 차려입은 임지현은 김선우의 자취방 앞에 서서 긴장된 숨을 내쉬 었다.
“괜히 민폐 끼치는 건 아니겠지?”
그녀가 김선우의 자취방에 찾아온 것은 약속된 방문이 아니었다.
최근 5개월. 그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달라졌던 분위기에 괜히 몹쓸 걱정이 든 그녀는 결국 그의 집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그래, 걱정돼서 온 거니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을지도 모 르는 거니까.
예를 들면 아프다거나 말이야.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띵 동.
벨이 울렸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 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눌러 보 았지만 반응은 여전하다.
“……집에 없는 건가?”
어디로 나간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야하나 생 각하던 그때.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뒤 벌컥 문이 열리더니 김선우 가 모습을 드러냈다.
“……임지현? 여긴 웬일이야?”
“웅? 아, 아니. 요즘 통 연락이 안 되길래 걱정돼서 찾아왔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임지현이 김선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못 본 사이에 머리가 꽤 길어졌다.
머리 자를 정신이 없을 만큼 그에
게 힘든 일이 있었다는 것일까? 순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심적으로 몰린 상황이라면 방 청소도 제대로 돼 있지 않겠지.
“……야.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지 말하라고 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냐 너?”
“들어가도 되지?”
“웅? 야야. 잠깐.”
김선우가 당황하며 앞길을 막았다. 임지현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 라보았다.
“……도와줄게.”
“그니까 뭘 도와준다는 건데.”
이내 그녀는 김선우를 비집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외로 퀴퀴한 냄새는 나지 않았 다. 아니, 오히려 환기가 잘 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방 상태도…….
깨끗하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고, 심지어 바 닥에는 웬 고급스러운 로봇 청소기 하나가 자신을 반기며 메시지를 띄 었다.
[반갑습니다.]
“……이거 UU사 로봇 청소기 아니 야?”
“어, 맞아.”
임지현은 깜짝 놀랐다.
UU사 로봇 청소기라면 바닥 청소 는 물론 공기 청정 등 각종 기능이 있어 최소 천만 원은 하는 거로 알 고 있는데.
“설마 이거, 네 돈으로 산 거야?”
“뭐, 그렇지?”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초 고가 제품들로 가득했다.
에어컨부터 시작해서 냉장고, 소파, 의자까지.
전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명품이었다.
……선우. 못 본 사이에 성공했구 나.
설마 저 지저분한 머리도 최신 트 렌드인가?
그때 그녀의 시선 끝에 수상한 무 언가가 들어왔다.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정체불명
의 문양이 그려진 종이였다.
“이건 뭐야?”
“아, 저건......
이상함을 느낀 임지현이 종이가 있 는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 위에는 벽에 걸린 것과 비슷한 문양이 그려진 도화지가 수백 장 넘 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웬 고대 석판에 관한 각종 기사와 작은 책자 하나가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고대 석판. 정체가 무엇 일까?]
[지구의 허파 아마존, 대량의 고대 석판 발견……]
[사하라 사막, 정체불명의 석판 또 다시 발견]
[세계 유적지 탐방 가이드]
“……세계 유적지 탐방?”
임지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 자 김선우가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조만간 세계 여행 가려고.”
“세계 여행? 설마 저기 적힌 지역
들을 가볼 생각이야?”
김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사막도 가고 아마존도 가고, 북극도 가볼 생각이야.”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선우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 미쳤어?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데? 갈려면 치안 좋은 곳 가던가! 여행객 노리는 강도가 얼마나 많은 지 몰라?”
그 말에 김선우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나보다 강도를 걱정해야 할걸?”
……그렇게 또다시 반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크게 외쳤 다.
“됐다......!”
1년의 세월. 그리고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수정의 과정.
나는 끝내 ‘차원 통로 술식’을 완 성할 수 있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바닥 에 깔린 술식을 내려보았다.
완전하다 못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술식의 형태.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보아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 다.
이것으로 차원과 차원 간의 통로를 잇기 위한 나의 꿈에, 한 발짝 다가 선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이 술식을 발동시킬 거대한 마력과 외부와의 소통인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방법은 분명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어진, 술식을
담은 고대 석판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대량의 마력이 매장된 지역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나는 곧바로 짐을 꾸렸다.
세계 여행을 위해 필요한 돈은 이 미 모았으니 바로 떠나기만 하면 될 터.
나는 벽에 붙여 놓은 신문 기사로 시선을 돌렸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고대 석판. 정체가 무엇 일까?]
“아 참.”
나는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정리하지 않아 지저분한 헤어 스타 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덮는 앞머리를 매만졌 다.
“머리부터 정리해야겠네.”
예정대로 나는 마력 스팟을 찾기
위해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대도시가 있는 선진국부터 시작해 서 넓은 모래가 펼쳐진 사하라 사 막, 그리고 북극까지 방문했다.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임현주가 경고했던 대로 치안이 좋 지 않은 지역이 대다수였기 때문이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