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2화 (531/535)

“이사하면 이사한다고 말하지 그랬 냐. 도와주는데.”

나는 그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감상하듯, 가만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김선우. 또 이상한 컨셉 잡았네.”

이어지는 녀석들의 말을 들으며 나 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

시내 어딘가의 브랜드 커피숍.

내 앞에 모인 5명의 친구들이 가 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은현은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너 요즘 힘든 일 있냐?”

“뭐가?”

“아니,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뜬금없이 오랜만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의 말에 공감한 듯 다른 친구들 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평소랑 분위기가 다르긴 해. 묘하게 차분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너 설마 여친이랑 헤어졌냐?”

“어? 선우야. 너 여친 있었어?!”

친구 무리 중 유일한 여자(사람)친 구, 임지현이 소리쳤다.

그러자 황은현이 눈을 가늘게 떴 다.

“야. 임지현. 왜 이렇게 오바해?”

“……아니이, 전혀 눈치 못 챘어서

놀란 거지.”

임지현이 입술을 삐죽이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얘들은 여전하네.

“여친은 무슨. 그런 거 없어.”

“아. 뭐야. 황은현이 거짓말한 거 야‘?”

“어휴. 또 속냐?”

황은현의 말에 임지현이 찌릿 그를 노려보았다.

황은현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곤 자칫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 뭔데. 혹시 너…… 무슨 나 쁜 생각 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목소리에 묘하게 진심이 담겨있다.

내 분위기가 그렇게 달라졌나?

“그런 거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 진짜로?”

“어.”

단호한 대답에도 친구들은 쉽게 믿 지 못하는 눈치였다.

“……흠흠. 그래서, 왜 갑자기 만나 자고 한 거냐?”

“별거 없는데. 그냥 얼굴 보고 싶

어서 만나자고 한 거지.”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고 생각하니 이 말도 나답지는 않았던 것 같긴 하다.

과거의 나는 얼굴이나 보자는 이유 로 이렇게 모두를 불러내진 않았으 니까.

“됐고, 모인 김에 뭐 할래? 커피 마시고 헤어질 건 아니잖아.”

황은현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주말인데 뭐라도 해야지. 뭐, 볼링이나 스크린 야구 칠까?”

백민석의 제안에 흥미가 생긴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남는데 둘 다 흐}자. 점심 소고기 걸고. 콜?”

“소고기 좋지.”

황은현이 그렇게 말하며 내게 시선 을 돌렸다.

“김선우. 어때? 자신 있어?”

귀여운 도발에 나는 옅게 웃었다.

“너네 나 절대 못 이길 텐데.”

이후 커피숍에서 나온 나는 친구들 과 각종 스포츠 놀이 시설을 즐겼 다.

볼링, 스크린 야구, 탁구…….

소고기라는 비싼 음식이 걸린 만큼 모두가 전력을 다해 임했다.

다들 주머니 사정이 좋은 편은 아 니었기에 이 많은 인원의 저녁을 사 주기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깡!

아무리 운이 따라 준다고 한들, 그 들이 나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스크린 야구에선 모든 공을 홈런 쳤으며, 볼링에선 모든 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를.

탁구에서는 단 하나의 점수도 주지 않고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당연하겠지만 내 실력에 모두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미친. 이게 말이 돼?”

“김선우. 쟤 뭐냐……?”

“우연인가? 아니 저 정도면 프로보

다 더 잘하는 거 아니야?”

덕분에 나는 모든 내기에서 압도적 인 승리를 거두었고, 결국 친구들에 게서 고기를 얻어먹게 되었다.

마력이라는 꼼수를 사용해서 숭리 했기에 조금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나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가 않아 어 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중에 돈 벌어서 더 비싼 거 사 주면 되겠지.

어찌 됐든 친구들에게서 소고기를 얻어먹은 나는 그들과 헤어지게 되 었다.

다들 저녁에 따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은현은 여자친구와 약속이 있다 며 떠났고, 백민석은 공부하러 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들을 보내니 결국 한가한 임지현과 나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보다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 야?”

그렇게 모두와 헤어지고, 함께 귀 갓길을 걷던 중 임지현이 내게 물었다.

“뭐가?”

“내기 말이야. 갑자기 엄청 늘었던 데 따로 연습한 거야?”

“뭐, 그렇지?”

마력을 사용했다. 라고 대답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니 이게 최선의 대답 이다.

설령 믿는다고 해도 귀찮은 일만 생길 거고.

“……연습으로 되는 수준이 아니던 데.”

“그럼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날이 라고 하자.”

“그게 뭐야. 누가 봐도 핑계잖아.”

“네가 다른 쪽으로 의심하니까 생 각하니까 그.러는 거지.”

“……아닌데. 분명 뭔가 있는데.”

임지현이 턱을 매만지며 나를 흘겨 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피식 웃 었다.

“마음대로 생각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우리는 시내의 시청 인근 가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꽤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 행사를 하는 듯싶었다.

“선우야. 여기서 무슨 행사 하나 봐.”

“응. 그러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충 보 아하니 미술, 예술과 관련된 작은 축제를 하는 모양이다.

크게 흥미는 없었다.

그때 내 시선 끝에 어떤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국립 서울 유적 전시관]

[12/22 ~ 12/27]

“선우야. 그, 혹시 오늘 시간 있으 면 나랑……

“여기서 헤어지자.”

“웅?”

내 말에 임지현이 눈을 깜빡였다.

“잠깐 할 일이 생각났거든. 미안한 데 너 먼저 가.”

“으응? 자, 잠깐. 선우야?”

임지현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무시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내가 도착한 곳은 서 울 유적 전시관이었다.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는 잘 모르 겠다.

내 직감이, 내 본능이. 나를 이곳 으로 이끌었으니까.

나는 전시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관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수많은 사람이 전시된 유적들을 구 경했고, 나는 그것들을 지나치며 전 시관 내부를 계속 걸었다.

이곳에 전시된 것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과거의 미술품들이었다.

그런 것들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 에 나는 빠르게 지나쳤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점차 가까워졌고, 나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어느덧 나는 전시관 내부의 거대한 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구경하는 그 앞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전시되어 있었다.

내 두 눈이 크게 떨렸다.

복잡한 언어로 적혀 있는 수많은 글귀.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기운.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술식.”

그것의 정체는 바로 술식이 그려진 석판이 었다.

다른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술식 말이다.

심지어 외부자의 혜택을 사용할 수 없는 나였지만 그 술식에 담긴 정보 를 이전과 같이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술식이 여기에?”

이 세계에는 술식의 개념이 존재하 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저 석판은 다른 세계 에서 넘어왔다는 것.

깊은 혼란을 느꼈지만 이내 술식에

담긴 정보를 읽어 냈다.

“차원 간의 통로 연결……

이 술식에 담긴 내용은 ‘진천우의 기억’에서 본 차원 이동의 이론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부족한 이론을, 이 석판이 채워주 고 있었으니까.

“……불가능한 게 아니었어.”

차원 간 통로를 연결하는 건 불가 능한 일이 아니었다.

소환식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그리고 의지를, 분리할 방법이 있

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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