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1화 (530/535)

괜히 원망을 담아 말하자 이서준이 말했다.

“모두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서준. 마지막까지 사람을 낯간지 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는 숨을 내쉬고는 한세연의 품에 안긴 그레텔을 바라봤다.

오늘 종일 울던 그레텔은, 지금 지 쳐서 잠들어 있었다.

“그레텔을 잘 부탁해요.”

“……걱정 마요.”

한세연이 울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나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연의 마나가 내 육신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하고, 거대한 파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선배님!”

그때 최서윤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마력을 느끼다가 그녀에게 시 선을 돌렸다.

“……다시 만나요.”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흔한 마지막 인사라는 생각 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시 만나자. 언젠간 꼭.”

그렇게 대답하며 권능을 발동했다.

[모든 인과율을 소모합니다.]

[권능,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발 동합니다.]

우우우웅!

권능을 사용하자 새로운 힘이 내

안에서 펴져 나왔다.

이전 권능을 사용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나는 신비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어느새 주변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마치 하늘 위에서 지상을 내려보는 듯한 풍경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풍경이 내 눈에는 전부 술식의 형태로 보였다.

“……이게 신의 힘인가?”

한 이론이 떠올랐다.

세계는 술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세계의 술식을 수정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신의 권능이라 했다.

나는 천천히 술식을 구현해보았다.

작은 보석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 자, 손바닥 위로 다이아가 완성되었다.

호기심에 세계에 흩어진 모든 마력 을 내 손바닥으로 모은다는 의지를 담자,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내게 모이기 시작했다.

순간 세계가 크게 위험해질 수 있 다는 것을 깨닫곤 모든 마력을 원상

복귀시켰다.

지금의 나는, 자연의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자연의 법 칙을 멋대로 수정하고.

마치 ‘신’이라고 불릴 만한 엄청난 권능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이게 진천우가 원하던 ‘신’의 힘인가.”

아니, 진천우의 기억 속에 있던 ‘신’의 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가진 힘은, 그보다 위에 있었다.

나는 먼저 세계를 구성하는 술식의 형태를 보았다.

세계를 구성하는 술식은 이전, ‘가 상 세계’를 만들어낸 술식과 비슷하 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 달랐다.

가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해야 할 까?

현실 세계의 술식이 훨씬 심오하고 복잡했다.

그 술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름 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시작하자.”

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발동한 건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함.

이제 세계의 수정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우웅!

나는 권능의 힘으로 세계에 잠식된 ‘파멸의 미래’를 수정해나갔다.

어렵지는 않았다.

내게 주어진 신의 권능에 의해 술 식이 내 의지대로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세계의 수정 술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세계는 파멸되지 않는 완 전한 형태의 세계로 변화할 것이다.

일종의 백신을 설치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수정 술식이 정상적으로 발동되기 위해서는 ‘외부자’인 내가 사라져야 하겠지만.

“……이쯤이면 됐겠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드디어, 가족과 재회할 날이 다가 왔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술식을 발동했다.

차원 이동 술식은 상당히 복잡하 다. 다른 차원에서 나를 ‘소환’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크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고향’에 대한 지식이 있 으니까.

고향에 내 의지의 일부를 분리해 이동시킨 뒤, 나를 소환하면 되는 것이다.

우우우웅!

그렇게 강한 빛이 뿜어지고, 눈앞 이 크게 번쩍였다.

눈 부신 빛과 함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고요한 바람이 내 피부를 스치고, 서서히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 며 눈을 떴다.

따스한 햇살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낯익으면서도 그

리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신호등을 걸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 정차한 수많은 차 량과 빌딩.

이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었다.

하지만 매일 내가 다녀온 서울의 풍경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그 어떤 마공학 기술도 보이지 않 았으며, 길가에 흔히 보이던 무구를 착용한 마법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 았다.

잠시 혼란감을 느낀 나는 눈을 찌 푸리고는 내 몸을 내려보았다.

과거, 내가 다른 세계에 떨어지기 전에 입고 있던 옷을 입고 있었다.

육체를 움직이자 예전과 달리 몸이 무겁다는 느낌도 들었다.

탄탄했던 근육이 조금 사라진 게 원인이었다.

“……돌아온 건가?”

돌아왔다. 고향으로.

긴 여행 끝에, 나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이제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그 리움이 섞여서 마음이 너무 복잡했 기 때문이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지난 시 간 내가 겪은 일들을 다시 떠올렸 다.

마치 그날의 일들이 길게 꾸었던 꿈처럼,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이, 마치 꿈이 아니었을까 착각이 들 정도로.

나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고운 손가락. 그 어떤 고생의 혼적 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손바닥 위로 내 의지를 불 어 넣었다.

그러자, 푸른 빛이 서서히 피어오 르며 손바닥 위로 작게 구현되었다.

비록 이전처럼 강한 힘이 담기진 않았지만, 그건 분명 ‘마나’였다.

나는 마나를 소멸시키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겪은 이 모든 기억은, 꿈이 아니었다.

“후우. 이거로 끝인가?”

마지막 이삿짐을 내려놓은 나는 이 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주변을 둘러보자 아늑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부터 생활하게 될 자취방.

이전에 살던 집과 비교하면 조금 작아지기는 했지만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넓이다.

나는 후련한 감정을 느끼다가 침대

에 벌러덩 누웠다.

“좋네......

침대의 푹신함이 온몸에 감겨 온 다.

눈을 감자 대낮임에도 당장 잠에 빠져들 것만 같다.

하지만 금세 눈을 떴다.

다른 세계에서의 추억들이 새록새 록 떠오르며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 기 때문이다.

“다들 뭐 하고 지내려나……

역시 출근했으려나? 요즘 한가해 보이기는 하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은 포인트로 아이템을 사서 선물이라도 해줄걸.

그런 여러 복잡한 생각에 잠기다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잠시 뒤 푸른 마나가 피어오르더니 서서히 구체의 형태로 변화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마나의 밀도가 낮 아지기는 했다.

내 능력이 약해졌다기보다는 이 세 계에 흐르는 마나가 턱없이 부족한 게 원인이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 마나면 웬만한 현대 병기보다는 훨씬 위협적일 테 지만.

“……그보다 외부자의 혜택은 완전 히 사라진 건가? 발동이 전혀 안 되네.”

그때.

우우웅…….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서 전화 알람 이 울렸다.

황급히 손 위의 마나를 소멸시키고 는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선우야. 짐은 다 풀었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날 오랜만에 재회했던 어머니 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 었다.

“예. 방금 다 풀었어요.”

[이사하는 거 도와주고 싶었는데 못 가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짐도 거의 없는데요. 괜 찮아요.”

[……그래. 끼니 거르지 말고. 반찬 챙겨 놓은 거 다 먹고. 알았지?]

“아, 진짜.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마세요.”

[후후. 그래. 이따 다시 전화할게.]

“넵.”

뚝. 전화가 끊겼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멍하

니 자취방 천장을 올려봤다.

평범한 삶. 가족의 존재가 가져다 주는 안정감…….

오랜 시간 잊고 지내왔던 것이라 그런지 왠지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서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

옷장에서 두꺼운 코트를 꺼내 입고 는 밖으로 외출했다.

하늘에서는 새하얀 눈이 떨어지고, 그 사이에서 곧 다가올 성탄절을 기 념하듯 설치된 트리들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멍하니 그 풍경을 구경하며 길을 걸었다.

이전 세계의 풍경과 비교하며, 마 치 음미 하듯 느긋하게.

—눈이다〜!

—윤지야. 트리 앞에서 사진 찍자.

시내로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사람 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얼굴에는 모두 행복의 꽃이 피어오 르고 있었다.

가족, 친구, 연인.

다양한 인연으로 묶인 사람들.

그 모습을 보자 씁쓸함과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길을 걷던 나는 신호등 앞 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길 건너에서 어떤 무리가 나를 향 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마법사관학교 시절, 내 무의식에서 도 등장했던 놈들이기도 하다.

신호등의 불이 바뀌고 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무리 중 한 명 이 입을 열었다.

“김선우. 이사는 잘했냐? 집들이 한번 해야지?”

가장 오래된 친구, 황은현이었다.

이어서 또 다른 친구 백민석이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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