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0화 (529/535)

“그럼 어째서?”

나는 대답 대신 오두막 내부를 둘 러보았다.

바닥에 넓게 그려진 마법진. 그리 고 그 주변에는 각종 신비와 가루 같은 것이 뿌려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저거 설마 부활 마법진? 너네 진천우의 영혼이 소멸된 걸 모르는 거야?”

내 물음에 베르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정도는 우리도 알고 있어. 우리는 그분을 살려내려는 게 아니 야.”

“그럼?”

“……옛 동료들을 살릴 거야.”

그 말에 순간 웃음이 나왔다.

수많은 사람을 죽여온 테러리스트 주제에 우정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심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죽음으로 이별했음에도 이들 에게는 재회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거니까.

“동료를 되살려서 또 이상한 짓을 벌이려는 건 아니지?”

“그럴 일 없어. 이제 조용히 살 거 야.”

“……뭐, 그래. 마음대로 해라.”

나는 그렇게 말하면 오두막 내부를 걸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진천우의 기억을 통해 이곳에 숨겨진 어떤 물 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숨겨진 보 물 상자를 발견했다.

“오. 찾았다.”

나는 손에 들린 작은 꽃을 들었다.

[대자연의 근원(유물)]

설명 : 꽃이 심어진 땅을 중심으로 주변의 공기와 마나가 ‘숲’ 지형과 동일하게 변화합니다.

이 꽃은 진천우가 과거 ‘부활’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사용했던 신 비였다.

고향으로 떠나기 전, 그레텔을 위 한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어서 챙겼 다.

그레텔은 한세연이 맡아 줄 것이니 그녀에게 주면 되겠지.

“……대자연의 근원? 그걸어디에 사용하려고?”

베르트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 였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고생한 소환수에게 선물을 주려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가? 듣기로는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 다 들었는데.”

나는 의문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 라봤다.

쟤들이 그걸어떻게 알고 있는 거 지?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무시하 기로 했다.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이 것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고.”

베르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 다.

“뭐, 어쨌든 볼일 봤으니 난 이만 간다. 수고해라.”

그렇게 오두막 밖으로 떠나려는 그 때.

“김선우.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어.”

뒤에서 들려오는 베르트의 말에 나 는 발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자 베르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다. 내 말은 신경 쓰지 마. 그분께서도 실패한 계획이니까.”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진천우의 기억을 얻은 덕에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럼 간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

친구들과의 약속대로 우리는 마지 막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유럽 3국. 프랑스, 이탈 리아, 스위스.

순수한 여행 목적으로 해외로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프랑스 파리 출입국 게이트 에 도착했다.

예약한 차량을 타고 호텔로 향했으 며, 도착 후 차에서 내리자 우리를 알아본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김선우다.

—오. 진짜 왔네?

찰칵찰칵.

수많은 카메라 셔터가 속에서 유아 라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뭐야. 저 사람들. 우리 오는 거 어떻게 알았대?”

“그러게? 기사 뜬 건 없는데.”

“설마 호텔 측에서 유출했나? 하하 하. 안녕하세요〜”

신영준은 그렇게 대답하며 카메라 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누가 보면 레드 카펫을 걷는 유명 배우인 줄 알겠네.

그렇게 우리는 인파를 지나 호텔 룸 안에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

7일간 6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초대형 룸이었다.

“이야. 사진보다 더 좋은데?”

“그러게. 침대 엄청 푹신해!”

“자자. 먼저 짐부터 풀자. 얘들아.”

우리는 각자 방에서 짐을 풀었다.

방은 총 두 개로 3개의 침대가 나 뉘어 있었는데 남자 셋, 여자 셋으 로 나눠 사용하기로 했다.

“짐은 다 푼 거 같고. 그럼 어디 먼저 갈까?”

신영준의 물음에 윤하영이 외치듯 말했다.

“프랑스는 에펠탑이지!”

6일의 시간.

그동안 우리는 유럽의 수많은 관광 지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 다.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탐방했으며, 원래 나 의 세계에서도 절대 볼 수 없는 신 비와 마력이 섞인 특수한 관광지 역 시 수도 없이 둘러봤다.

사진도 엄청나게 찍었다.

일주일간 찍은 사진의 수만 천 장 은 족히 넘어가지 않을까?

물론 그중 절반 이상이 최서윤, 윤 하영과 함께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렇게 꿈처럼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오늘.

여행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호텔 방 안의 야경이 보이 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룸서비스를 통해 수많은 화려한 음 식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최고급 고기와 마력으로 구워진 스 테이크.

그리고 신비의 힘으로 제조된 마력 주까지.

“여행도 오늘로 끝이네.”

술잔을 가볍게 들이킨 유아라가 씁

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이서준이 공감하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여행이 끝인 거지 아직 선우와 시 간은 2주 정도 남았잖아. 침울해할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한 윤하영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선우야. 혹시 여기 남아서 더 하 고 싶은 건 없어?”

“음. 글쎄.”

나는 술잔을 들이켰다.

그날 이후 술맛이 이전처럼 달게 느껴지지 않는다.

괜히 기분만 뒤숭숭해진다고 해야 할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자 우뚝 솟아 오른 에펠탑이 보이는 화려한 야경 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던 세계에도 똑같은 에펠탑 이 있지만 저것만큼, 아름답고 화려 하지 않아서.

만약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풍경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김선우.”

이서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 다.

“그럼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같은 건 없어?”

“하고 싶은 말?”

“지금까지 말 못 한 속마음이라던 가. 그런 거 있잖아.”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기대 감에 찬 눈빛.

괜히 낯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이놈의 청춘들을 어떻게 해야 할 까.

나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으음. 고맙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서준은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어떤 부분이?”

“그냥, 이 여행 자체가 나 때문에 모인 거잖아. 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나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윤하영이 말했다.

“시간 내준 게 아니라, 우리가 너

랑 함께하고 싶어서 온 거야.”

“그건 맞지.”

신영준이 맞장구쳤다. 이어서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훈훈한 분위기가 흐른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낯간지 러운 분위기를 잘 버티지 못하기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쉽네. 또 이렇게 놀 수 있는 날 이 왔으면 좋겠는데.”

유아라의 말에 잠시 긴 침묵이 흘 렀다.

쓸쓸한 공기가 내려앉고, 이서준이 말했다.

“분명 다시 올 거야. 반드시.”

그의 말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 었다.

여행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인연을 만들었던 사람 들과 만남을 가지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역시 한세연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의 여행 이후, 시간을 따 로 내어 한세연과 겨울 바다에 놀러 갔기 때문이다.

그녀의 배려 덕에 나는 남은 시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녀도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마친 것인지 최대한 나에게 밝은 모 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끝까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들었던 이 세계에서의 마 지막 날이 찾아왔다.

경기도 어딘가에 위치한 깊은 마나

가 풍겨오는 들판.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 지만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이서준, 최서윤, 신영준, 윤하영, 유아라…….

한세연, 801, 최일현, 김진철, 협회 요원, 양태민, 유아연, 이현주, 릴 리…….

그 외에도 은월 가문과 최씨가문, 다리아처럼 나와 짧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도 모였다.

나는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몇몇 이들은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

리며 내게 안겼다.

특히 최서윤과 한세연. 그리고 윤 하영은 거의 오열하다시피 해서 위 로해 주느라 정말 고생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 는 넓은 평야의 중심에 섰다.

이서준은 씁쓸한 미소로 나를 바라 보더니 말했다.

“이제 시작하는 거야?”

“응. 그래야지.”

“......그래.”

이서준의 대답에 괜히 울적한 기분 이 들었다.

하지만 애써 미소를 지었다.

각오했던 일이니까.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고 맙다.”

내 말에 이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야…… 진짜 고마운 건 우리야.”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세계를 지키고, 수많은 사람을 구 원할 수 있던 건 전부 네 덕분이라 고. 너한테 모두가 빚을 진 거야.”

“아. 마지막까지 낯간지럽게 왜 그

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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