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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과 헤어지고 나는 협회 건물 을 걷고 있다.
나를 발견한 요원들의 인사가 이어 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한 어 색함을 느꼈다.
협회는 평화로웠다.
역대 최고로 평화로운 1년이라더니 그 말이 틀리지는 않는 듯, 휴식실 에는 어디서 본 스타 마법사들이 낮 잠을 자고 있다.
“되게 편해 보이네.”
사건이 줄어 출동할 일도 사라지 고, 출근 시간에 매일 저렇게 쉴 수 있다면 특무팀 요원도 꽤 괜찮은 직 업이 아닐까 싶다.
나도 요원이나 할까?
사실 모아둔 돈이 많아 딱히 일하 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선배님‘?”
뒤에서 최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약속되지 않은 만남에 놀란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뭐야. 여기서 다 만나네.”
“협회에 왔으면 말해주시지. 협회 는 어쩐 일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회장실이 있는 천장을 올려봤다.
“잠깐 회장님이랑 나눌 얘기가 있 어서.”
“아〜.”
최서윤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 다.
“아 참. 선배님. 혹시 다음 달에 시간 있어요?”
“다음 달?”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여행 어때요? 하영 언니가 다 같 이 놀러 가자고 하던데. 휴가 시즌 이거든요.”
여행이라.
문득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 올랐다.
그러고 보니 모든 일이 끝나면 한 세연이랑 같이 세계 일주하기로 했 었는데.
듣기로는 한세연도 곧 휴가라고 그 랬던가?
“……선약이 있어서 확답을 줄 수 가 없겠는데.”
“선약이요?”
최서윤의 눈이 가늘어진다. 왠지 싸하면서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 은 예감이 든다.
“누군데요?”
“회장님. 어떤 일을 부탁받았거든. 그래서 시간 조율을 해봐야 해.”
김진철 회장님이 아닌 한세연 회장 님이지만.
하지만 그걸 모르는 최서윤이 안심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부탁이면 어쩔 수 없네요. 중요한 일일 테니까요.”
“역시 그렇겠지?”
“네. 그래도 시간은 많으니까. 다음 에 다 같이 얘기해 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레텔이 아 장아장 걸어오며 나를 반겼다.
“응애!”
“그레텔. 간식 사 왔어.”
나는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을 내 려놓았다.
나무 주제에 육식만 하는 그레텔이 지만 사실 단맛만 나면 뭐든 좋아하 는 초딩 입맛이기에 이번에는 특별 히 케이크를 사 왔다.
“응애!”
달콤한 향기를 느끼기라도 한 건지 그레텔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 다.
나는 피식 옷으며 녀석의 등을 쓰
다듬었다.
“많이 먹어〜”
그레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음식 을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로 걸어가 몸을 던지듯 누웠다.
“ 흐아암.
별다른 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잠이 솔솔 온다.
잠든 사이에 체력이 약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하품이 절로 나온다.
능력치는 그대로인데 말이지.
그러다가 문득 오늘 김진철과 있었
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품 안에서 그에게서 받은 정 체불명의 돌을 꺼냈다.
“……이게 뭘까.”
신비와 마력. 그 어떤 힘도 느껴지 지 않는다.
무게도 그렇고 겉면도 그렇고. 그 냥 평범한 돌처럼 생겼다.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긴 한데.”
그러다가 그레텔에게 시선을 돌렸 다.
“그레텔. 이 돌. 혹시 뭔지 알아?”
“......웅애?”
나무줄기를 이용해 순식간에 케이 크 절반을 삼킨 그레텔이 돌을 바라 봤다.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손바 닥을 펼치고는 돌멩이를 올려놓은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이내 그레텔이 손바닥 위로 마력을 주입했다.
“돌에 마력을 주입하라는 거야?”
“응애.”
“……음. 협회에서 이미 시도해봤 을 텐데. 의미가 있으려나?”
그레텔의 조언대로 일단 돌에 마력
을 주입해보기로 했다.
혹시 돌이 망가질 수 있으니 아주 소량의 마력을 돌에 주입했다.
스으으...
이내 돌에서 작은 빛이 담기기 시 작했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마력에 봉인이 풀립니다.]
“……뭐야? 진짜 효과가 있다고?”
A o o
돌에 담기던 빛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멍하니 그 돌을 바라보다가 본능적 으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 았다.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 새 롭게 얻었던 특성을 확인했다.
[기억 전송(SS)]
분류 : 특성
[사용 효과]
►기억 저장
물체에 기억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저장된 물체에 마력을 주입 하면 다른 사람이 당신의 기억을 읽 을 수 있습니다.
►기억 봉인
기억이 저장된 물체에 봉인술을 겁 니다. 지정된 인물의 마력으로 봉인 술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진천우와의 대결을 통해 얻은 특성 이었다. 기억전송. 이름 그대로 자신 의 기억을 전송하는 소수 일족의 힘 이었다.
나는 멍하니 손에 들린 돌을 바라 보았다.
동시에 보이지 않던 돌의 숨겨진 효과가 드러났다.
[기억이 담긴 돌]
—기억 봉인이 풀렸습니다. 마력을
주입하면 돌에 담긴 기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돌의 정체는, 진천우가 내게 남 긴 그의 기억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진천우의 기 억이 담긴 돌을 내려보았다.
봉인이 풀림과 동시에 돌에서 신비 한 기운이 홀러나오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다시 한번 마력을 주 입한다면 진천우의 기억이 그대로 내 머릿속에 홀려 들어오겠지.
그의 과거, 지식. 그리고 그가 내 게 경고했던 파멸의 의미까지도.
“……괜히 긴장되네.”
알 수 없는 불안감.
마치 신화 속 판도라 상자를 여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확인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 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해야 할 까?
“……그래도 확인해야겠지?”
정들어버린 세계.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세계.
그 끝에 파멸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야 할 테니까.
“그래, 확인하자.”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
었지만 전부 극복했다.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든 늘 그랬 던 것처럼 헤쳐나가면 그만이다.
“후우.”
천천히 심호흡하고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천우의 기 억’에 마력을 주입했다.
이서준은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왔 다.
그의 스승이자 유일한 가족인 김진 철과의 식사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 다.
화려한 음식들이 모두 식탁 위로 올라가자, 김진철이 입을 열었다.
“간간이 네 소식이 들려오더구나. 최근 북아프리카 임무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고?”
“아니에요. 팀원들이 잘 서포트 해 준 덕이죠.”
이서준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겸손 함올 보였다.
그런 그의 반응이 썩 나쁘진 않은 지 김진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입에 삼켰다.
“그보다 요즘 그 애는 안 만나냐? 그 있잖냐. 너 어릴 때 맨날 같이 다니던 여자애 말이다.”
“아~ 현주요?”
“그래. 걘 요즘 뭐 하고 지낸다 냐?”
“매일 논문 쓰느라 바빠 보이더라 고요. 소환협에서 엄청 굴리는 거 같던데…… 담당 교수가 잘못 걸렸 다나 뭐라나.”
“흐흐. 소환계가 그런 쪽으로 악명 이 높긴 하지. 고생 좀 하겠구만.”
김진철이 끌끌 웃었다. 이서준은
그를 따라 작게 웃었다.
“아 참. 오늘 선우 만났다면서요?”
“김선우? 얼굴 한번 보자고 부르긴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