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6화 (525/535)

그 자리에는 기자만 있는 게 아니 었다.

김선우의 퇴원을 축하하는 수많은 시민도 함께 있었다.

[영웅 김선우의 퇴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김선우는 깨달았다.

잠든 1년 사이에, 영웅이 되었다는 것을.

오후 2시.

친구들과 간단한 식사를 마친 나는

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고급지 면서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오. 생각보다 되게 좋네.”

낯선 생활 공간.

이 집은 아직 완전한 회복을 하지 못한 나를 위해 협회에서 내어준 집 이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집이라나 뭐라 나.

순순히 마력 회복을 못 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준 집인지, 아니면 나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지 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세계에 정 착할 나를 위해 내어주었다고 하니

성의를 받아줄 생각이다.

“응애!”

그레텔도 이 집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는 적당히 넓은 방을 쭉 둘러보 다가 거실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 다.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네.”

진천우와의 마지막 대결 이후 눈 깜짝할 사이에 1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버렸다.

나는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 다.

내 마지막 일격에 당한 진천우가 서서히 힘을 잃던 그 순간 나에게 의지를 전했었다.

—……결국 세계를 바꾸기 위한 나 의 여정이 실패로 끝나는구나.

—혼돈. 비록 적이었지만 나는 네 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원하 지 않는다…… 너의 세계를 위해 네 게 마지막 조언을 남기겠다.

—……네 존재로 세계의 운명이 크게 뒤바뀌었다. 하지만 혼돈에 뒤덮 인 세계의 끝은 파멸…….

—내 기억을…….

진천우의 의지는 거기서 끊겼다.

그가 마지막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 는 무엇이지 많은 의문이 남는다.

“……파멸이라.”

기억을 되짚어보면 세계가 혼돈에 뒤덮이는 순간 파멸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수많은 신비가. 그리고 기록들이.

‘세계의 법칙’은 혼란과 파멸로부 터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 고 했었으니까.

“……진천우를 쓰러트렸는데 여기

서 끝이 아니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 하고 이 세계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제 이 세계는 낯선 세계가 아닌 나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런 세계가 파멸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워낙 정신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던

보상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평행 세계의 모략자’를 처치했습니다.]

[승전보 효과로 ‘기억 전송(SS)’을 획득합니다.]

[보상으로 200,000포인트를 획득합 니다.]

[당신의 영향력으로 세계가 급격하 게 바뀌었습니다.]

[‘세계의 구원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보상으로 200,000포인트를 획득합 니다.]

[인과율이 가득 찼습니다.]

[권능,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사 응 조건이 해금됩니다!]

“와.”

확실히 최종 보스라 그런지 단번에 40만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리고 나의 최종 목표였던 권능,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사용 조건 을 얻은 것은 덤.

나는 먼저 보유 포인트를 확인하려 다가 그만두었다.

“……당분간 쓸 일도 없으니까.”

더 이상의 싸움은 필요 없다.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고 적도 없으 니까.

이번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확 인했다.

[권능]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과율 100]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언제봐도 혹하게 만드는 설명이다.

바로 사용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다.

여기서 더 욕심부리고 싶지도 않고 괜히 이걸 발동했다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강제로 원래 세계로 되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괜히 신경 쓰이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진천우에게 들었던 ‘파멸’.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피코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렇게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려던 그때 였다.

부우우웅.

때마침 전화 알람이 크게 울렸다.

마법사 협회에서 온 전화였다.

나는 여러 의문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퇴원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몸은 괜찮나?]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김진철 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와의 통화에 놀라던 그때 그가 말했다.

[다름 아니라 혹시 협회로 와줄 수

있나 싶어서 전화했다. 네게 보여주 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보여주고 싶은 거요? 그게 뭔데 요‘?”

[진천우가 죽고 웬 이상한 돌을 남 기고 갔는데, 혹시 너라면 알 수 있 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협회에서 미리 준비해준 차를 타고 협회로 이동하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요원이 룸미러를 통 해 힐끔힐끔 내게 시선을 보내는데 괜히 신경 쓰여 그를 빤히 바라봤 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당황하며 시선 을 돌렸다.

“……그, 팬입니다.”

“아. 예……

보아하니 별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 다.

내가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신기해 서 연예인 보듯 구경한 것 같았다.

“혹시 끝나고 사진 한 장 괜찮을까 요?”

“네. 뭐, 상관없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 주변에 선 우 씨 팬이 많거든요.”

나는 대답 대신 작게 미소를 지어 주고는 스마트 폰을 켰다.

그리고 톡톡 화면을 터치하며 메시 지를 확인했다.

[나 : 야.]

[나 : 야야.]

[나 : 피코야??]

[나 : 뭐해?]

[나 : 사진]

[나 : 기프티콘]

“……얘는 대답이 없어.”

“네? 뭐라고 하셨죠?”

요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 지 않으셔도 돼요.”

“넵. 혹시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 든 말씀 부탁드립니다.”

과한 친절함에 괜히 불편하다.

마치 영화 속 권력자가 된 기분이 라고 해야 할까?

나는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 곤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관련해 피코 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려 했는데 답장이 없다.

인과율이 가득 차서 그런 걸까?

이럴 거면 사용한 포인트는 환불해 주던가 이게 뭔가 싶네.

……어휴 됐다.

나는 스마트 폰을 끄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리는 도로 너머로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고층 빌딩과 그사이에 보이는 최첨단 마공학 시설.

고향의 서울을 떠올리게 하지만 미 묘하게 다른 부분이 많다.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자 여러 복 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직도 의문이 든다.

이 세계에 남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

지금도 고향의 부모님. 그리고 친 구들이 너무나 그리운데.

그럼에도 내가 이 세계에 남기로 결정한 것은,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모든 게 끝이겠지만 이곳에서는 내 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생각보다 더 멀쩡해 보이는구나. 마력 대부분을 손실했다고 들었는데 하루 사이에 거의 회복한 거 같고.”

김진철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의사도 놀라더라고요. 엄청난

회복 속도라면서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눈에 보이는 의자에 편히 앉았다.

긴장감 없는 내 모습에 김진철은 수염을 매만지며 껄껄 웃었다.

“그래,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혹시 전하고 싶은 특이사항 같은 건 없나?”

“특이사항이요?”

“따로 내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던 가. 부탁하고 싶은 일. 이것저것 있 지 않으냐?”

전하고 싶은 말이라.

“딱히 없……

그때 내 머릿속에 신비가, 그리고 진천우가 경고했던 ‘파멸’이 떠올랐 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말했다.

“사실 진천우가 죽기 전에 제게 경 고를 했었어요.”

“경고?”

김진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계가 파멸할 것이라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말라고요.”

“……천우가 그런 말을 했다고?”

김진철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 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 ‘세 계의 법칙’은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한 보호 수단이라고.”

그렇게 말한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현이의 말에 따르면 천 우는 정해진 운명의 끝에도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했다.”

“정해진 운명의 끝에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눈 을 깜빡였다.

“아마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자유

가 없는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없다 는 뜻이겠지. 뭐 내 생각이 틀릴 수 도 있겠지만.”

“......흐음.”

이러나저러나 결국 파멸될 운명이 라는 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파멸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르지. 나는 신이 아니니 까.”

김진철은 천천히 넓은 창가로 걸어 갔다. 도심의 풍경을 내려본 그가 말했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변화

하는 흐름에 맞춰 움직일 뿐이야. 파멸의 원인이 밝혀진다면 그에 맞 춰 막을 방법을 찾아낼 거다. 천우 가 그랬듯, 네가 그랬듯.”

김진철이 말을 이었다.

“천우…… 내 위치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나는 그놈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의 눈에는 깊은 수심이 담겨 있 었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건 맞 다. 하지만 자유롭지 않은 삶에 과 연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는 풀어야 했을 인류의 숙제를 놈■이 대신 한

거다.”

그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녀석도 인간이니까. 인간 다운 선택을 한 거지. 물론 이 세계를 다 른 세계에 덮어씌우려 한 건 건방진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흐흐.”

어려운 말이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 개를 끄덕였다.

김진철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발걸 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슬슬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 눠보도록 하지.”

김진철은 테이블 위로 가볍게 마력 을 방사했다. 그러자 숨겨진 술식이 모습을 드러내며 작은 돌 하나가 떠 올랐다.

그는 그것을 집더니 내게 보였다.

“진천우가 죽은 자리에 남아 있었 던 돌이다.”

백색의 평범한 돌이었다.

하지만 워낙 새하앴기에 평범한 돌 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년. 협회는 이 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진행 해왔다. 하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 아내지 못했지.”

김진철이 말했다.

“이 돌의 정체를 알고 있나?”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 돌의 정보를 확인했다.

[???]

아쉽게도 아무런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떠 오르긴 했다.

물음표.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 는 증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모르겠네요.”

“……흐음. 그러냐?”

김진철의 얼굴에 실망이 담겼다. 나는 가만히 그 돌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거, 혹시 제가 가져가도 될까 요‘?”

“이 돌 말이냐?”

“네. 개인적인 흥미가 생겨서요.”

김진철은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라.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해 서 연구를 중단하자는 이야기가 슬 슬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너라 면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 르고 말이야.”

김진철은 내게 돌을 내밀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어디 가서 이 일올 발설하지 말라 는 의미였다.

나는 작게 웃으며 돌을 받았다.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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