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어때?”
이서준의 물음에 김선우가 작게 미 소를 지었다.
“아까 의사도 말했잖아. 멀쩡하다 니까?”
그렇게 말하던 김선우가 품에 안긴 그레텔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
했다.
“그나저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 르겠네. 생명의 돌을 사용한 거야?”
“응. 조금만 더 늦었으면 영영 못 일어났을 수도 있었어.”
“……그런가.”
김선우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는 여전히 이 상황에 여러 의문 을 품는 듯했다.
“그럼 진천우는?”
“확실하게 영혼이 소멸되었어. 그 것도 1년 전에.”
“1년 전?”
김선우가 눈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살 피며 이상함의 정체를 눈치챘다.
잠든 사이에 모두의 스타일이 미묘 하게 바뀌었다.
김선우는 깊은 황당함을 느꼈다.
“나 1년이나 잠들어 있던 거야?”
“응. 오늘이 딱 1년째 되는 날이 야.”
“허……
진천우와의 결투가 마치 어제 일처 럼 생생한데, 1년이 지났다고?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남기는 했
네. 이번엔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는 데 말이야.”
김선우가 장난식으로 말하자 모두 가 표정을 굳혔다.
“선배님. 왜 그렇게 무모한 거예요. 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최서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세 연도 마찬가지였다.
김선우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더 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
그때. 파바바박!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벌컥, 병실의 문이 활짝 열리 더니 윤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선우를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서, 선우야아아!”
윤하영이 앞으로 달리더니 그대로 김선우에게 푹 안겼다.
“진짜 김선우우! 너…… 진짜 언제 까지 걱정하게 만들어야…… 흐으 윽!”
윤하영은 김선우의 품에 안겨 한참 을 서럽게 울었다.
김선우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품
에 안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어느덧 진정된 듯 그녀가 떨어지 고, 이후 소식을 들은 유아라와 신 영준도 바쁜 발걸음으로 찾아왔다.
“김선우!”
“너 정말……
오랜만에 김선우의 친구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간단한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는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전 했다.
김선우는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들으며 신기함을 느꼈다.
“그래서 베르트랑 나타샤는 쫓기고 있고, 협회랑 마인은 협약을 맺어서 일시적으로 협력하고 있어. 앞으로 쭉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재앙급 마수들은?”
“다들 숨어버렸어. 신비의 영향력 이 약해진 게 원인이라나 뭐라나?”
“흐음…… 그렇게 된 건가.”
김선우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 겼다.
그때 이서준이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알려줄 수 있지 않아? 모든 게 끝나면 말해주기로
했었잖아.”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네 이야기 말이야.”
김선우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 를 전했다.
진천우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고 향에 대한 이야기.
과거에는 ‘발설’의 제약이 걸려 있 어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가 아는 모든 이야기를 해도 그 어떤 제약도 발동되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아마 진천우를 쓰러트리고 얻은 일종의 보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모두 의 얼굴에는 큰 충격이 담겼다.
지난 시간 그가 겪어온 경험은, 그 들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으 니까.
“……단순한 회귀자는 아닐 거 같 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다른 세 계에서 왔다니.”
신영준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공감
했다.
“……그러니까. 선우 네 정체가 진 천우가 소환한 외계인이라는 거야?”
윤하영의 조심스러운 말에 김선우 가 눈을 깜빡였다.
외계인.
어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 니긴 하다.
“어, 아마 그렇지 않을까……
라고 말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정정 했다.
“아니지. 나도 너희랑 같은 사람이
야.”
“외계인(外界人)의 인(人)도 사람 을 뜻하는데?”
이상하게 논리적인(?) 윤하영의 반 박에 김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너희가 생각하는 이상한 외계인은 아니라는 거야. 같은 지구 출신이고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는 것 도 같으니까.”
“……일종의 평행 세계에서 넘어왔 다는 건가?”
유아라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세 계에는 마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 는다는 거지만.”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신영준이 손뼉을 쳤다.
“심연 탐험 시험에서 봤던 세계! 그게 네 고향이구나!?”
“맞아.”
“아〜 뭐야. 그럼 같은 사람 맞 네〜.”
모두가 이해했다는 듯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혼자 김선우의 무의식을 보지
못한 한세연은 의문을 느낄 뿐이었다.
“다른 세계라. 진짜 멀리서 오기는 했네.”
“뭐, 그런 셈이지.”
김선우는 후련함을 느꼈다.
언제나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 것에 죄책감 비슷한 것 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대화가 이어지던 그 때.
김선우는 우연히 최서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는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기로 돌아올 순 없는 거예요?”
“아마 그럴 거야.”
신비의 말에 의하면 세계와 세계를 자유롭게 넘어 드는 통로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지며 침묵이 감돌았다.
“흠흠.”
신영준은 괜한 헛기침을 했다.
“이거 곤란하구만.”
“가족과 관련된 일이니까…… 해줄 말이 없네.”
섣불리 조언할 수 없다.
그 조언의 끝이 이별이 될 수 있 으니.
그러자 김선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 없으니까.”
오..2”
김선우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마주 하며 말했다.
“나 여기에 남으려고.”
다음 날 아침.
퇴원을 위해 병실에서 옷을 걸친 김선우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하루 사이에 상당량의 마나가 돌아 와 있었다.
완전한 회복까지 일주일 정도 걸릴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는 다르게 상 당히 빠른 속도였다.
“왕이시여.”
그때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선 화와 하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도 찾아왔었는데 친구들과 대 화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간 것을 봤 었다.
김선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 들었어. 왕 대행으로 1년 간 꽤 고생했다며?”
김선우는 하령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령은 고개를 다시 한번 숙였다.
“……왕께서 지난 시간 노력한 것 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히 머쓱해지는 말에 김선우는 멋 쩍게 웃었다.
이후 김선우는 병실 밖 복도로 나 왔다.
동시에 어제 찾아왔던 그의 친구들 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퇴원 마중 나왔어.”
“고생했다야.”
“선배님. 퇴원 축하드려요!”
“선우 씨 축하해요.”
화사한 복장의 한세연이 내게 꽃다
발을 건네주었다.
김선우는 꽃을 받고는 머쓱한 미소 를 지었다.
다들 일이 바쁠 텐데 시간을 내주 어 와줬다.
괜한 고마움에 김선우는 가볍게 고 개를 숙였다.
“모두 고맙습니다.”
김선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 서준이 말했다.
“아 참. 나갈 때 조금 놀랄 수도 있어.”
“……나갈 때?”
뜬금없는 말에 김선우가 멍하니 그 를 바라봤다.
이서준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 소를 보였다.
“알아서 알게 될 거야.”
«..2”
그렇게 퇴원 절차를 마치고 한성 의료원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선우는 천천히 맑은 하늘을 바라 보다가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바로 그때.
찰칵찰칵.
수많은 기자 무리가 카메라를 들고 김선우의 앞에 서 있었다.
—김선우다!
—와. 진짜 깨어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