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4화 (523/535)

심지어 그의 숨겨진 능력인 ‘부활’ 또한 사용할 수 없는 상태.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로 김선우와 의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김선우.”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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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그는 다급하게 자신의 품 안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홀러나오는 돌을 꺼냈다.

“……생명의 돌.”

어떤 피해도 회복시켜주는 기적의 돌.

이서준은 떨리는 눈으로 그 돌을 바라보다가 김선우에게 시선을 돌렸

지금, 그의 생명이 끊어지기 직전 이었다.

그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달리며 크게 외쳤다.

“모두 비키세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테 러리스트, 진천우가 사망한 지 1년 이 흘렀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완 전히 활동을 멈추었으며, 자취를 감 춘 자운의 핵심 멤버, 베르트와 나 타샤의 행방은 여전히——J

마법사 협회 최상층.

김진철은 뉴스가 홀러나오던 홀로 그램 영상을 종료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자 그는 혼잣 말하듯 입을 열었다.

“시간 참 빠르군. 그날로부터 벌써 1년이 지났다니.”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그런 시간이죠.”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평소와 달리 깔끔하 게 차려입은 최일현이 창밖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길을 걷는 사람 들의 모습이 보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몇몇 이들이

팩에 담긴 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인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엔 1년은 짧 은 시간이죠. 그렇지만 지난 1년간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그 말의 뜻을 이해한 김진철이 코 웃음 쳤다.

“크루아스 사건과 진천우 토벌 사 건…… 그리고 김선우의 공로를 인 정해서 잠시 이렇게 된 거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그렇게 말하던 김진철이 다시 말했다.

“……뭐, 김선우 그놈이 큰 역할을 한 건 맞다. 신비가 말하는 혼돈이 란,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자가 아 니더냐?”

김선우의 이름이 나오자 최일현이 잠시 표정을 굳혔다.

김진철은 그런 그의 반응을 살피더 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애가 없었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

1년 전 ‘그 사건’이 끝나고 진천우 의 은신처에서 정체불명의 거대 술 식이 발견되었다.

비록 미완성된 술식이었지만 그 술

식의 정체는 ‘첫 번째 세계’를 이 세계에 덮는 술식이었다.

“김창현이 연구했던 ‘차원 통로’는 단순히 진천우 한 명만을 부르기 위 한 것이 아니었어. 만약 놈을 찾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상황은 완 전히 뒤바뀌었겠지.”

최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진천우를 빠르게 찾은 것. 그것이 바로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에 가장 크게 기여 한 것이 김선우였고.

김선우가 이 세계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김진철이 팔짱을 끼며 최일현 을 위아래로 살폈다.

“그보다, 매번 지저분하게 다니던 놈이 웬일로 깔끔하게 차려입었냐?”

“세상이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저 도 그에 따라서 바뀌어야죠.”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혀왔 던 숙제들도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자신 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최일현이 창밖에 서 시선을 떼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진천우가 남긴 ‘돌’의 정 체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겁니 까?”

북유럽에 위치한 노르웨이 숲 어딘 가.

“……후우. 겨우 따돌렸네.”

3일 내내 특무 요원들에게 쫓기던 베르트가 추적 인원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시간 잠도, 밥도 먹지 못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계였 다.

그녀의 유일한 동료인 나타샤는 깊 은 탄식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 았다.

“벌써 1년째야. 우리 언제까지 이 러고 살아야 해?”

“조금만 참아.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잖아. 억울하게 죽은 백은성이랑 진이랑 스카…… 그리고 다른 애들 모두 살려야지.”

진천우가 죽고 1년.

베르트는 죽은 자를 되살리는 주문 을 찾고 있었다.

바로 죽은 동료들을 되살리기 위해 서였다.

험난한 계획이었지만 이미 한 번 ‘진천우’를 되살린 경험이 있었기에 느리지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그렇다 쳐도 ‘그분’ 은 무슨 수를 써도 되살릴 순 없는 거 겠지?”

“응. 영혼이 소멸되었으니까. 방법 이 없어.”

베르트도 이제는 포기한 상황이었

자운. 그리고 진천우는 실패했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으며 ‘신세 계’를 위한 노력 역시 물거품이 되 었다.

“……에휴.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된 거냐.”

나타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 었다.

“마인과는 멀쩡히 교류하고 있고. 마수들은 죄다 숨어버렸고. 정작 우리는 쫓기고 있고. 대체 이게 뭐냐 고.”

“세계가 바뀌고 있는 거지.”

베르트가 멍하니 푸른 하늘을 올려 보았다.

“우리가 원하던 신세계는 아니지만 이런 세계도 나쁘진 않은 거 같아.”

그러면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 다.

“자. 일어나. 하루라도 빨리 그 애 들을 살려야지?”

서울 마법사 협회.

파견 임무를 모두 마친 이서준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앳된 얼굴의 무리 가 다가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서준 선배님! 오늘도 수고하셨 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래. 너희들도 수고했어.”

이서준은 어느덧 특무 요원 4년 차가 되었다.

아직 베테랑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 었지만 그를 존경하는 특무팀 후배 가 제법 생겼다.

“그보다 선배님. 오늘 회식도 안 오실 겁니까?”

“응? 어…… 그렇지.”

그 말에 이서준을 몰래 흠모하던 여성 후배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같이 가요. 선배님!”

“미안. 오늘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거든.”

단호한 거절에 후배들은 입을 다물 었다.

약속과 관련해서 칼 같은 성격인 이서준이었기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실망한 얼굴들을 보자 괜히 마음이 약해진 이서준이 말을 덧붙였다.

“다음에 같이 가줄게.”

“어? 정말요?”

“응.”

“아싸!”

후배들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약속한 겁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 니다!”

그렇게 후배들이 떠나고 이서준은 작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협회 건물 밖으로 나오자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주변에는 자신과 같이 퇴근하기 위 해 도로를 걷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서준은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 다가 빌딩의 한 전광판을 올려보았 다.

[인류의 영웅.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몇몇 요원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 다.

마수와의 대전쟁 1주년을 맞이해

만든 영상인 모양이다.

그때 전광판에서 김선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소를 유지하던 이서준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선배님!”

그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외침이 들려왔다.

“서윤아.”

외침의 정체는 최서윤이었다. 그녀 는 반가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밥은 먹었 어요?”

“아니. 별로 생각이 안 나서. 너 는?”

“저는 이따 먹으려고요.”

둘은 자연스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걸었다.

스타 마법사이자 선남선녀인 둘이 함께 길을 걷자 몇몇 사람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최서윤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정면 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아 참. 이번에 옮긴 새 팀은 요즘 어때요?”

“뭐, 다른 팀과 똑같이 한가롭지.

너희는?”

“저희도 그래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1년이라고들 하잖아요. 하 영 언니랑 아라 언니는 조금 바빠 보이기는 하던데.”

최서윤의 말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하영 언니, 아라 언니.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달고 살던 그 녀가 어느새 그 둘을 그렇게 부르기 로 했나 보다.

“확실히 마법사관학교 시절이랑 비 교하면 말이 안 되게 평화롭기는 하 지.”

“그렇죠. 마인 사건도 없고, 테러 사건도 없고. 거기다 신비의 영향력 이 사라지면서 마수들도 잠잠해졌잖 아요.”

“맞아. 이 모든 걸 선우가 바꾼 거 지.”

순간 미소를 유지하던 최서윤의 얼 굴이 잠시 굳었다.

이내 화제전환을 하려는 듯 그녀가 다시 말했다.

“아 참. 진천우가 죽고 남긴 그 돌 은 아직 뭔지 안 밝혀졌대요?”

“응. 할아버지 말로는 계속 조사해 보고 있기는 한데 통 알 수가 없다

고 하더라고. 딱히 신비의 힘이 감 지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요? 으음. 분명 뭔가 숨겨진 게 있을 거 같은데……

최서윤이 턱을 매만지며 심각한 목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서준은 그런 그녀를 흘겨보더니 피식 웃었다.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물건 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지도 모르 지.”

*

바쁜 업무를 모두 마친 한세연은 서류를 정리하고는 겉옷을 걸쳤다.

퇴근하기에는 꽤 이른 시간이었지만 집에서 틈틈이 일을 진행해왔기 에 예상보다 빠르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소파에 앉아 있던 엘린이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이어서 그녀의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검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여러분들이 더 수고했죠. 오 늘도 고마워요.”

한세연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엘린은 그런 감사의 인사가 낯부끄 러운지 볼을 긁적였다.

“그보다, 오늘이 진천우 사후 1년 이라는 거 들었어?”

“알고 있어요.”

전 세계의 모든 매체가 이 이야기 로 떠들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이 세계가, 다른 세계에 집어 삼.켜 질 뻔한 대위기를 막아낸 사건이었 으니까.

“그래서인지 SBK에서 오늘 10시에 김선우 특집 방송한다더라. 궁금해 서 볼까 생각했는데 그냥 안 보려 고.”

엘린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이후 쓸쓸한 눈빛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1년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어. 김선우가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네. 아마 그럴 거예요.”

한세연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만 가죠.”

“그래. 아. 이따 801 애들 만나기

로 했는데 잠깐 시간 괜찮지?”

“801.”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에 그녀가 작게 웃었다.

진천우 사후 1년. 그리고 8()1이 해체된 지도 1년이 되었다.

차를 타고 이동한 한세연이 목적지 에 도착했다.

그녀의 호위인 엘린과 검귀와 함께 내리자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게 되

었다.

“……이서준 씨‘?”

“한세연 님?”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서준과 최서윤이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조금 놀랐지만 예상하지 못한 건 또 아니었다.

한세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오랜만은 또 아니죠?”

“네. 뭐, 그렇죠. 2주 전에도 여기 서 뵀었으니까요.”

한세연은 최서윤과 시선을 마주쳤 다.

약 3초간 응시하던 그 둘은 서로 를 마주 보며 작게 웃었다.

이후 그들은 자신이 도착한 거대한 건물을 올려보았다.

한성 의료원.

한성가가 소유한 세계 최고의 병원 이었다.

한성 의료원 최상층에는 김선우가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그 앞에는 작아진 그레텔이 잠들어 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화분이 올 려져 있었다.

“오늘도 편안해 보이네.”

이서준은 김선우를 내려보며 그렇 게 중얼거렸다.

1년 전.

진천우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 한 김선우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목숨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다행히 한순간 [생명의 돌]이라는 수단을 떠올렸기에 김선우는 기적적 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

하지만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생명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신과 연결되어있는 ‘마력의 근원’ 이 완전히 멈추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선우는 1년이라는 긴 시간 을 잠들게 되었다.

그를 깨우기 위해서는 마력의 근원 이 다시 작동되어야 하지만, 아직 마땅한 방법을 찾아내진 못했다.

“전부 이 애 덕분 아니겠어?”

이서준이 그레텔에게 시선을 돌렸 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그레 텔이 고개를 갸웃했다.

“생명의 힘. 맞지?”

요 O ”

흐.

김선우는 1년이나 잠들었지만 마치 과거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평온했다.

그레텔이 가진 생명의 힘이, 식사 하지 않아도. 어떠한 생리 활동을 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응애.”

그레텔이 작게 울자 한세연이 그를 안았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흐르고, 모두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최서윤은 가만히 김선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1년간 잠든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 들 만큼 그의 손은 아직도 따뜻했다.

“선배님……

그렇게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 던 그때.

스 O O O

어디선가 미약한 마나의 떨림이 느 껴 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의 눈동자 에 당혹이 깃들었다.

“......방금.”

“……김선우?”

미약하지만 모두가 분명 똑똑히 느 꼈다.

방금 느껴진 희미한 마력.

김선우의 마력이 분명했다.

1년간 잠들어 있던 그의 ‘마력의 근원’이 미세한 활동을 보인 것이었다.

당황한 최서윤이 다급하게 자리에 서 일어섰다.

“제, 제가 선생님을一”

그렇게 맞잡던 김선우의 손을 놓으 려던 그때.

따뜻한 무언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 다.

최서윤의 몸이 굳고, 모두가 떨리 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김선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모두의 두 눈이 크게 떨리고, 한세 연이 자신의 입을 가렸다.

“선우 씨……

김선우가 1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 다.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마력의 근 원도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신 체도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선우의 몸 상태를 확인하던 의사 가 그렇게 말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의사가 다시 말했다.

“혹시 따로 불편한 건 없습니까?”

“네. 딱히 불편한 곳은 없습니다.”

김선우는 손바닥을 펼치더니 마력 을 끌어올렸다.

미약한 마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 더니 구체의 형태가 되었다.

이전처럼 강한 힘이 담기진 않았으 나 정교한 제어 능력은 여전했다.

“마력의 근원이 오랜 시간 잠들어 서 지금 당장 마나가 부족하게 느껴 지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주 일 안에 완전히 회복될 겁니다.”

김선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럼 이만.”

의사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사라 졌다.

김선우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눈동자가 다양한 감정을 품 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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