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나오지 않았다.
놈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 놈에게서 뿜어져 나오 는 저 기운은, 마력조차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건…….
신비?”
신비 였다.
마치 신비의 세계에서 신비를 마주 한 것처럼, 놈의 육신에서 강렬한 신비의 힘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최일현은 굳은 눈으로 놈을 노려보 더니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그때 푸른 빛으로 빛나던 진천우의 눈동자가 서서히 새하얀 백안으로
변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자신의 몸을 내려볼 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한 요원이 놈을 향해 마법을 방출했다.
그 순간 새하얀 장막이 펼쳐지더니 마력이 그대로 소멸되었다.
그리고 놈이 손을 뻗자 이질적인 새하얀 에너지가 요원의 가슴을 꿰 뚫었다.
“..으 ”
한순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마력이 아닌, 다른 기운에 의해 벌 어진 일이었기에 모두의 눈에 충격 이 담겼다.
이어서 그의 육신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새하얀 에너지가 피어오르더니 여기저기 쏘아지기 시작했다.
“끄아악!”
그 공격에 요원들은 제대로 방어조 차 하지 못한 채 쓰러지기 시작했다.
최일현은 원반격을 발동해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저 힘의 근원은, ‘마력’이 아니었으 니까.
“크으윽!”
결국 이질적인 기운이 최일현의 온 몸을 관통하며 바닥에 피를 적셨다.
이서준은 백천을 통해 최대한 놈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었다.
최서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 급하게 내 앞으로 달려가 얼음의 방 벽을 구현했다.
그러나, 방벽은 오래가지 않았다.
놈의 기운이 순식간에 방벽을 박살 내고는 그녀의 어깨를 꿰뚫었기 때 문이었다.
“꺄아악!”
그렇게 나를 보호하려던 그녀의 육 신에 새하얀 에너지가 박히며 바닥 에 쓰러졌다.
그녀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나를 돌아보았다.
“서,선배님……
나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렸 다.
[……놀랍군. 이게 순수한 신비의 힘인가.]
그것은 입으로 뱉는 목소리가 아 닌, 의지였다.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왔 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진천우가 죽음을 겪으며 그의 육신 에 잠들어 있던 신비가 깨어나 진천 우의 영혼과 섞인 것을.
나는 이를 악물었다.
“2 페이즈라는 건가……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끝이 아니었다.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뼈와 근육이 박살 난 상태였기에 일어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서, 선배님?”
“선우야……
여기저기서 불안감에 담긴 목소리 가 들려왔다.
그들도 알고 있던 것이다.
마력 폭주로 내 육체가 한계라는 것을. 여기서 더 마력을 사용했다가 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이대로 지켜볼 순 없었다.
놈을 놔두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으니까.
“……진짜 개 같네.”
온갖 욕이 입 밖으로 다 튀어나온 다.
여기서 무리하게 더 힘을 사용하다 간, 나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내 육신 위로 검은 기 운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야가 검게 물들고, 내 몸에 거대
한 마력이 다시 한번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박살났던 뼈와 근육은 순식간에 원 래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목숨을 걸 일은 평생 없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필사즉생’이 발동됩니다.]
“그래, 어디 같이 죽어 보자.”
우우우우우웅!
천지가 떨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온다.
김선우의 마력으로 구현된 가상 세 계는, 그의 심상을 대변하듯 서서히 말라비틀어졌다.
그 중심에서 폭주하는 검은 마기는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패악 적으로 휘몰아쳤다.
이서준은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
라보았다.
마력 폭주로 한시라도 빨리 안정을 취해야 할 김선우가 다시 마력을 사 용했다.
심지어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 력은, 그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패악적이고 위험했다.
“……야. 김선우. 너 미쳤어?”
“선배님. 마력을 거둬요!”
뒤에서 김선우를 향한다급한 목소 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선우의 육신이 진작 한계에 다다
랐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몸 상태에서 마력을 더 사용했다가는 정말로 죽을 수 있다 는 것을.
“……김선우.”
김선우는 가만히 폭주하는 자신의 힘을 느끼다가 검게 물든 두 눈으로 진천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와 대비되는 백색의 두 눈을 가 진 진천우가 그 시선을 마주하곤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가 다시 말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김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손바닥 위로 검은 마 기를 웅축할 뿐이었다.
그는 이미 폭주화에 잠식되어 이성 을 잃은 상태였다.
진천우의 눈썹이 좁혀졌다.
잠재된 신비의 힘을 각성하며 이전 보다 훨씬 강한 힘을 얻게 되었지만, 김선우에게 뿜어지는 저 마기는 분명 자신에게도 위협적이었다.
진천우는 곧바로 새하얀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그 순간.
파아아앙!
검은 마기가 진천우를 향해 빠르게 방출되었다.
진천우는 곧바로 신비의 힘을 방출
하여 그 공격을 맞받아쳤다.
검고 새하얀 두 힘이 허공에 부딪 히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떨었다.
단순한 힘의 교차.
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파동은, 인 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때 김선우의 육신이 번쩍이며 사 라졌다.
진천우는 새하얀 기운을 이용해 검 을 만들어 허공에 휘둘렀다.
그 순간 새하얀 빛이 퍼져나오며
검은 기운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어느새 가까워진 김선우의 육신을 진천우가 베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김선우는 갈라진 자신의 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바닥 위로 구현한 검은 마기 덩어리를 진천우의 배에 쑤셔 박을 뿐이었다.
[……!]
콰아아아앙!
놈의 육신이 뒤로 크게 물러나고, 김선우는 순식간에 갈라진 자신의 육신을 회복시켜 손바닥을 펼쳤다.
다시 한번 검은 기운이 모이고.
쩌적, 쩌저적.
뒤로 밀려난 진천우의 공간 뒤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차원 균열?]
신비와 용족의 권능이라 할 수 있 는 차원 균열이었다.
김선우가 재앙급 마수, 크루아스를 토벌하고 얻어낸 권능이었다.
진천우는 그대로 차원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자 그의 육신이 김선우 의 앞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김선우가 차원 균열을 이용하여 진 천우를 끌어당긴 것이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검은 마기가 다시 뭉치고, 진천우의 가슴을 적중했다.
[……!]
콰아아앙!
진천우가 새하얀 피를 토해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끔찍한 고통 에 뒤로 물러서려 했겠지만 그는 아 니었다.
역으로 김선우의 팔을 꽉 잡았다.
이건 기회였다.
그가 벗어나지 못하게 하여 공격할 기회.
진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비의 기운을 이용해 김선우를 공 격했다.
푸우욱!
순식간에 그의 육신 이것 저곳 구 멍이 생겨났다.
반응이 있었는지 김선우의 눈썹이 좁혀졌고, 진천우는 계속해서 김선우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 여파로 김선우의 육체를 보호하 던 무형의는 어느덧 재생 효과를 잃 으려 걸레짝이 되었다.
푸우욱! 푸우욱! 푸우욱!
그렇게 얼마나 긴 공격이 이어졌을 까.
김선우의 육신은 어느덧 형체를 알 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온몸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수많은 구멍에 의해 고깃덩어리가 되어 재 생도 하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충격에 빠 졌다.
김선우 역시 의식을 잃기라도 한
것인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 다.
진천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이 혼돈으로부터 승리했음을.
그렇게 꽉 잡고 있던 김선우의 팔 을 놓고 물러서려는 때였다.
[……?]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김선우의 팔 이 갑작스레 움직이더니 진천우의 팔을 꽉 잡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천우의 두 눈
이 크게 떨렸다.
김선우의 팔을 중심으로 그의 육신 이 순식간에 재생되고 있었다.
진천우는 빠르게 벗어나려 했지만 자신의 팔을 움켜쥔 손의 악력이 너 무나 거세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우우우웅!
완전히 재생된 김선우의 육신을 중 심으로 검은 마기가 다시 폭발하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마기는 곧 갈고리처럼 진천우 의 온몸을 사방으로 꿰뚫었다.
[……!]
진천우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공수가 완전히 뒤 바뀌어 있었다.
[……큭.]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진
천우는 서서히 한계를 느끼기 시작 했다.
각성한 신비의 힘이 서서히 사그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비마저 넘어서는 힘…… 이게 신에 가까워진 혼돈의 힘……!]
저적, 저저적!
진천우와 김선우를 중심으로 주변 의 공간이 갈라졌다.
김선우가 차원 균열을 발동해 도망 칠 수 없도록 가두어버린 것이다.
이후 검은 마기가 다시 크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진천우는 당장 벗어나려 했지만 꽉 잡힌 팔에 의해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우우우우웅!
검은 마기는 김선우의 손바닥 위로 다시 크게 뭉쳐왔다.
지금까지 구현했던 구체와는 조금 달랐다.
그 안에는 그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모든 힘의 정수가 담겨 있었으니까.
이 전투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한 번 궁극의 구체를 구현하려는 것이 었다.
그때 차오르는 마기 틈 사이로 김선우의 시선이 동료들을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모두의 눈이 크게 떨렸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시선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김선우의 작 별 인사였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폭주화로
잃어버렸던 그의 이성이 돌아온 것이다.
“……아, 안돼.”
지금의 김선우는 ‘부활’을 할 수 없다.
이 전투의 끝에는 끝없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우우웅!
어느덧 김선우가 구현한 구체가 완 전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것 같은 무한한 마기가 그 안에 담긴 것이었다.
진천우는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
라보았다.
김선우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진천 우에게 말했다.
“진천우. 이거로 끝이야.”
우우우웅!
마기의 구체가 크게 회오리치고, 김선우는 그대로 놈의 가슴을 향해 구체를 방출했다.
우우우웅一!
콰아아아아앙
눈 부신 빛이 퍼져나갔다.
공간 전체를 휩쓸어버릴 거대한 힘 의 폭발.
하지만 차원 균열로 인해 공간이 분리된 상태였기에 외부의 사람들에 게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아.”
최서윤이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서준은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
라보다가 손에 쥐어진 백천을 꽉 쥐 었다.
두 눈을 뜨고 보기 괴로운 광경이 었지만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김선우가 자신에게 했던 부탁이 있 었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렇게 갈라진 공간 속의 파동이
점차 사라지고, 균열도 소멸되기 시 작했다.
김선우가 구현한 가상 세계 역시 서서히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급격하게 사라진 마력에 공간의 마 력이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끔찍한 형태로 서 있는 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천우와 김선우였다.
그 둘은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진천우 는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혼돈이여…… 너의 승리다…….]
진천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진천우가, 김선우와의 전투에서 끝 내 패배한 것이다.
김선우는 미약한 숨을 내쉬더니 진 천우를 따라 그대로 쓰러졌다.
최서윤과 윤하영을 포함한 그의 친 구들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김선우에 게 달려갔다.
“……아.”
순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몸 구석구석 불안하게 떨리는 마 력.
강한 생명의 힘에 의해 간신히 숨 어 붙어 있을 뿐, 당장 죽어도 이상 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마력 과부화가 된 육체로 무리하게 마력을 사용했으니 당연한 결과였 다.
“......안돼.”
“선우야. 선우야.”
그리고 이어서 뒤에서 다급한 수많 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도착한 김진철과 수백 명의
마법사가 마수와의 전투를 마치고 도착한 것이었다.
그들 역시 바닥에 쓰러진 진천우와 김선우를 발견하곤 충격에 빠진 눈 이 되었다.
“……저게 뭐야?”
“……진천우랑 김선우?”
김진철은 괴로운 눈으로 그것을 바 라보았다.
자신을 희생하며 싸운 김선우.
그리고 괴물이 되어버린 제자, 진 천우.
비록 범죄자의 길을 걸었지만 어릴
적부터 아들처럼 키워온 제자였기에 그는 슬픔을 느꼈다.
“……못난 놈.”
그때 누군가가 이서준의 어깨에 손 을 얹었다.
“……이서준. 마무리해라.”
목소리의 주인은 최일현이었다. 이 서준은 괴로움에 찬 눈으로 김선우 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괴롭지만 김선우가 자신에게 부탁 했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백천의 마력이 이서준의 감정에 담 기며 크게 떨렸다.
이서준은 진천우의 앞에 다가섰다.
진천우의 미약한 숨이 흘러나오고, 그의 시선이 이서준을 향했다.
그는 이서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작 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이서준.’
이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백천의 마력이 크게 퍼져나가고 그 는 검을 역수로 잡아 진천우의 가슴 을 찔렀다.
푸우욱!
그의 육신에 새하얀 연기가 하늘 위로 피어올랐다.
그의 생명이. 그의 영혼이. 백천에 의해 서서히 소멸되고 있던 것이다.
진천우는 영혼이 소멸되는 과정 속 에서 이서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 았다.
그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편 안해 보였다.
비록 실패했지만, 후회보다는 후련 한 감정이 커 보였다.
그는 가만히 영혼의 소멸을 느끼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서준아……
진천우의 영혼이 어느덧 완전히 소 멸되 었다.
편안하게 눈을 감았으며, 그의 육 신은 서서히 먼지가 되어 홑어졌다.
이서준의 눈은 어느덧 붉게 충혈되 어 있었다.
진천우의 마지막 한 마디 때문이 아니었다.
김선우의 희생에 대한 슬픔. 그리 고, 진천우와 이어진 모든 악연이 끝난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섞였 기 때문이다.
진천우의 육신이 서서히 소멸되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색의 돌이 하나 남아 있었다.
이서준은 그 돌의 정체가 궁금했지 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김선우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요원들은 꺼져가는 그의 생명을 살 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친구들은 괴로운 얼굴로, 슬픈 얼 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제발.
—안돼, 안돼
이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방법이 없다.
김선우는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했고, 인류는 또다시 그에게 빚 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