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1화 (520/535)

나는 변화하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 보았다.

시간이 지나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 고, 나무가 가득한 숲이 모습을 드 러냈다.

주변을 둘러본 이서준이 말했다.

“흑색의 땅 숲인가?”

“그런 거 같아.”

갑작스러운 풍경의 변화에 공간이 동이라도 한 기분이다.

바로 그때.

끼에에에에엑!

강렬한 마력과 함께 거대 마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 끝에 거대한 흑룡이 비명을 내지르며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거대 히드라가 검은 피 를 뿌리고 있었는데 그 위에 화려한 마법진을 펼치는 김진철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모두의 동공이 떨렸다.

“……야야. 너네 할아버지. 아니, 회장님. 설마 여태 저 괴물들이랑 싸우고 있던 거냐?”

신영준의 물음에 이서준이 굳은 얼 굴로 말했다.

“……어, 그런 거 같은데?”

“미쳤네……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지 6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말은 즉, 김진철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재앙급 마수 다섯과 전투를 벌 이고 있었단 것이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괴랄한 전투 능력이었다.

“대단하다 진짜…… 심지어 다른 3 마리는 이미 토벌된 거 같은데.”

“……그러게.”

“재앙급 마수는 회장님께 맡기고 진천우를 찾을 방법부터 생각하죠.”

최서윤의 말에 유아라가 말했다.

“지원 요청은? 우리끼리 가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아?”

“놈의 위치를 찾으면 바로 신호를 보내야지. 안개도 사라졌으니 금방 지원이 올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동쪽으로 시선

을 돌렸다.

우우우우웅!

그때 동쪽 어딘가에서 마력의 떨림 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거대한 빛의 기둥이 밤의 어둠을 환하게 비추며 솟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곳 어 딘가에 진천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깊은 어둠이 드리운 공간에서 눈 부신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외부에 위치를 알리기 위한 신호 마법이 었다.

진천우는 굳은 얼굴로 그것을 올려 보더니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무

언가 일이 잘못돼가고 있었다.

“안개가 사라지다니. 어째서?”

협회의 접근을 늦추던 마력의 안개 가 갑작스레 소멸되었다.

최일현은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곧 바로 신호 마법을 사용했고 덕분에 자신의 위치가 외부에 밝혀지게 되 었다.

진천우는 맞은편에 선 최일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랜 전투로 온몸이 상처로 가득한 그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미소 를 짓고 있었다.

“최일현. 무슨 방법으로 안개를 지

운 거지?”

“천우야. 감 떨어졌냐? 안개를 지

운 건 내가 아니야.”

«..2”

진천우의 얼굴에 의문이 담겼다.

그가 아니면 누가 안개를 지운단

말인가.

안개를 풀기 위해서는 해석 술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건 자

운과 자신뿐.

“잘 생각해봐. 네가 아니면 이 안

개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

겠어?”

“……설마 베르트가?”

“정답.”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충신이라 생각했던 베르트가 자신 을 배신했다.

“베르트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 지?”

“별말 하지 않았어. 우연히 기회가 생겨서 어떤 이야기의 가능성을 귀 띔해준 것 빼고는 말이야.”

최일현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더니 말했다.

“오랜 시간 의문이었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네가 사랑했던 윤경 이까지 죽이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 였던 걸까.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은 걸까.”

최일현은 담배를 다시 입에 물더니 연기를 뱉었다.

“제자 놈을 통해 이 세계가 세 번 째 세계라는 걸 알게 되니 그제서야 알겠더라고. 네 진짜 목적이 무엇이 었는지 말이야.”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죽인 최초의 세계의 사람들

을, 이 세계에서 되살릴 생각이었 지? 네 손으로 죽인 윤경이를 포함 해서 말이야.”

“세계의 허점 속에 숨은 채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러도 죄책감을 느 끼지 않았던 건, 신이 되고 나면 모 두 되살릴 수 있을 거라는 신념 때 문이었어.”

진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신비의 영향력이 없는 신세계에서 그들을 되살린다면, 저지른 모든 악

행을 면죄 받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으니까.”

잠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고, 진천우가 작게 실소했다.

“……역시 나를 이해하는 건 너밖 에 없구나.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친구다워.”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혼돈에 의해 자유를 되찾은 이 세계에, 원 래 나의 세계를 덮어씨울 생각이 야.”

최일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진천우가 말했다.

“정해진 운명 따위 없는 인간의 무 한한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너는 모를 거야. 정해진 운명의 끝에 어떤 파멸이 있는지를.”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최일현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네 광신도가 생기는지 알 겠네. 자운이 어째서 너를 신으로 모셨는지도 말이야. 네 신념, 네 주 장을 들으면 확실히 혹할만해.”

최일현은 담배를 다시 입에 물더니

연기를 내뱉었다.

“그런데 어쩌냐? 아무래도 그 계획 은 실패한 거 같은데.”

최일현은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리 고는 발로 밟았다.

“네 세계를 위해서, 이 세계 사람 들을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나 본데 우리 세계는 너의 세계를 위해서 희 생될 생각이 없거든.”

그때 어디선가 짙은 마력이 풍겨오 기 시작했다.

이내 들려오는 다수의 발소리.

최일현의 뒤로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천우는 모습을 드러낸 남성을 바 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김선우.”

뒤를 이어 이서준이,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몇 초의 시간이 흘러 수십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최일현이 방출한 신호 마법 을 보고 찾아온 협회의 요원들이었다.

최일현이 말했다.

“진천우. 넌 이제 끝이야.”

수많은 사람의 마력이 피어오르고 공간을 가득 채우던 짙은 어둠이 쫓 기듯 사라졌다.

최일현과 이서준. 그리고 협회의 요원들은 진천우를 포위하듯 천천히 둘러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진천우는 탄식하듯 조용히 중얼거 렸다.

상황의 불리함을 체감한 듯,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놈은 절망하지 않았다.

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놈은 호 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내 눈에는 보였다. 그의 눈빛 속에 숨은 야망과 희망의 빛을.

“최일현. 넌 항상 나를 놀라게 하 는구나. 설마 이렇게 큰 그림을 그 리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진천우의 말에 최일현이 고개를 저 었다.

“순전히 내 계획은 아니야. 결정적 인 순간에 제자 놈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그 말에 진천우의 시선이 나를 향 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말했잖아. 네 몸이 회복되기 전에 반드시 찾아주겠다고丁

진천우가 작게 웃었다.

“그래. 정말 네 말대로 됐군. 두려 움마저 느껴지는 집념이야…… 하지 만.”

진천우가 우리를 둘러보았다.

“고작 너희들만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까?”

우우우웅!

진천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 한 마력이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트 리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마력에 숨이 막힌듯 모두 의 표정이 굳었다.

“크으윽!”

뒤의 한 요원은 단순한 기운만으로 질식됐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제서야 놈의 왜 이 많은 숫자를

보고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강하다.

비록 저주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는 신비와 소수 일족의 힘에 적응하며 더욱 강한 힘을 손에 얻었다.

최일현은 식은땀을 홀리더니 내게 말했다.

“제자야. 영감은 어디서 뭐 하길래 안 보이는 거냐?”

“지금 혼자서 재앙급 마수들과 전 투하고 있어요.”

인류 최강의 전력인 김진철은 홀로

마수들을 상대하는 중이다.

그가 함께 있었다면 상황이 훨씬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덕에 최대한 힘을 보전한 채 진천우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건 아쉽게 됐군. 어쩔 수 없지. 우리끼리 놈을 상대하는 수밖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철이 없다고 해서 진천우를 쓰 러트릴 수 없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물론 상대가 상대인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겠지만.

나는 전투에 앞서 이날을 위해 아 껴두었던 성배를 꺼냈다.

진천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황금 성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가 진 모든 걸 사용해야 될 거 같아서 말이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우우우웅!

내 손에 올려진 성배에 마력이 주 입되자 엄청난 힘이 주변에 크게 번 지기 시작했다.

성배의 사용 효과는 세계의 가능성 을 끌어올려 기적을 일으키는 것.

내가 가진 권능인 [가능성 조작]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 신비였다.

물론 1회 용 아이템인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지만.

그리고.

“......읏?”

진천우의 압도적인 마력에 고통을

느끼던 사람들의 얼굴이 평온해졌 다.

옆에서 괴로움을 느끼던 동료들 역 시 마찬가지.

성배에서 홀러나오는 따뜻한 기운 이 그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뭐, 뭐야? 몸의 활력이?”

요원들 역시 이 기운을 느낀 듯 놀란 반응을 보였다.

오랜 전투로 지친 모두의 육체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반대로 진천우의 낯빛은 점점 어두 워졌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자연의 마력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그의

숨통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때, 진천우의 옆의 자연 마력이 뭉쳐지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콰아아앙!

폭발의 파편은 진천우의 뺨에 작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드드득.

놈이 서 있던 바닥이 갑작스레 꺼 지듯 내려앉았다.

진천우는 겨우 균형을 잡았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군.”

놈의 시선이 성배를 향했다.

성배는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며 하 늘 위로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성배를 통해 환경…… 아니. 운을 뒤바꾼 건가.”

“눈치가 빠르네. 맞아.”

성배는 가능성을 조작해 기적을 일 으키는 신비.

성배를 통해 녀석의 불행을 극한으 로 올리고, 우리들의 행운을 극한으 로 높였다.

그 증거로 놈의 중심에 흐르는 자

연의 마력은 놈에게 나쁘게 작용되 고 있었고, 우리 주변에 흐르는 자 연의 마나는 빠르게 피로를 회복시 켜주었다.

실제로 바닥났었던 내 마나는 어느 덧 완전히 회복되었다.

대자연의 심장에 버금가는 재생 효 과였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성배가 조작한 ‘운’은, 앞으로 우리 에게 더 많은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다.

“성가시군.”

놈은 하늘에 떠오른 성배를 올려보

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미 성배가 발동된 이상 놈도 어 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마력으로 파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이서준이 내 옆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저거 얼마나 유지돼?”

“아마 30분 정도.”

지금은 티가 나지 않지만, 성배의 일부분이 조금씩 소멸하고 있었다.

1회 용 유물인 만큼 제약이 있다.

“30분이면 충분하네.”

유아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공감하듯 최서 윤과 윤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

나는 성배를 통해 느껴지는 무한한 마나를 잠시 느끼다가 마법 구체를 구현했다.

순식간에 구현되는 황금빛의 마나.

정순한 자연의 마나가 담겨 있어 평소보다 더욱 강한 힘이 느껴졌다.

다른 요원들도 마나를 느끼며 각자

자신의 마법을 구현했다.

낯빛이 어두워진 진천우는 굳은 표 정으로 자신의 흑천에 마나를 주입 했다.

그리고. 진천우는 곧 우리를 향해 흑천을 크게 휘둘렀다.

후우우웅!

극한의 환경이라 마법을 제대로 사 용할 수 없음에도 엄청난 검기가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나는 빠르게 마법 구체를 방출해

놈의 검기를 막아냈다.

서로의 마법이 허공에 부딪히자 거 대한 폭발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이후 최일현의 공격이 이어졌다.

최일현은 빠르게 진천우에게 접근 했고, 놈은 몸을 회전해 반격을 시 도하려 했다.

그 순간.

파직.

그가 서 있던 바닥이 다시 한번 꺼지듯 무너졌다.

짧은 순간 생겨난 변수에 진천우는 균형을 잃었다. 최일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에 펼쳐진 마법진이 그 대로 진천우의 배에 닿으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r

진천우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 다.

이어서 거대한 화염이 놈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다시 폭발을 일으켰 다.

콰아아앙!

그렇게 일어난 거대한 연기.

잠시 뒤 섬뜩한 기운과 함께 연기 속에서 반월의 검기가 빠르게 쏘아 졌다.

검기는 순식간에 협회의 요원들을 베어냈다.

“으아아악!”

이후 연기 속에서 진천우가 앞으로 뛰쳐나오며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빠르게 회전하며 흑천을 둥글 게 휘둘렀고, 그가 한번 검을 휘두 를 때마다 다수의 요원이 피를 뿜으 며 쓰러져 나갔다.

그때, 이서준이 진천우의 빈틈을 노렸다.

살기를 감지한 진천우는 빠르게 뒤 를 돌아 방어했다.

카앙

백천과 흑천이 부딪히자 거대한 마 력의 파동이 크게 울렸다.

두 검이 파르르 떨리고, 이서준은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 었다.

그렇게 둘이 검을 맞닿으며 힘 싸 움을 하는 순간 나는 놈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 마법을 방출했다.

파앙!

하지만 둘 사이에서 퍼져나오는 거

대한 파동에 의해 내 공격이 소멸되 었다.

“......으윽!”

이서준이 힘에서 밀리는 듯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흑천이 백천의 마력을 홈수하며 점 차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자연의 마력 기류가 다시 한번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백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증폭된 백천의 힘에 진천 우의 표정이 굳었다.

혹천이 흡수하는 마력 양보다, 자 연에 의해 증폭되는 마력의 양이 더

욱 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