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0화 (519/535)

“내가 널 일부러 피했어. 너뿐만 아니라, 이서준도. 유아라도. 윤하영 도. 그 외에 다른 이들 모두.”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닌, ‘회 귀’에 대한 이야기 때문인지 ‘발설’ 의 제약이 걸리거나 하진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왠지 비밀을 이야기하는 기분이라 속이 시원하다.

“자세히는 말할 순 없지만 나, 꽤 오래전부터 너희를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더욱 다가갈 수 없었지.”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외부인이니까.”

내 상황을 모르는 그녀 입장에서는 이 말이 조금 난해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변명하듯 한 마디를 덧붙였 다.

“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특별 하게 어울린 건 아니야. 거의 혼자 다녔으니까.”

최서윤은 한참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쓸쓸했겠다.”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연민을 받을 줄 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내 최서윤이 위로하듯 작게 웃으 며 말했다.

“그럼 ‘최서윤’과의 추억은 제가 처음인 거네요?”

“……뭐, 그렇지 않을까?”

“흐으음〜”

최서윤은 콧소리를 흥얼거리듯 고 개를 끄덕였다.

씁쓸해하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내 심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걷던 그때, 시야를 가리던 안개의 일부분이 서 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 특정한 부분 만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옅어진 안개 안으로 들어서 자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선우?!”

“김선우?”

윤하영과 유아라였다. 두 사람은 반가운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와〜 여기서 다 만나네. 서윤이도 있고.”

윤하영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 했다.

최서윤도 밝은 얼굴로 이들을 맞이 했다.

“혹시 안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 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응. 우린 마수를 몇 번 마주친 거 말곤 별일 없었어. 너흰?”

“우린 자운이랑 만났어.”

내 말에 순간 유아라가 표정을 굳 혔다.

“......자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은성이랑 진을 만났거든.”

둘의 얼굴에 순간 당황이 어렸다.

그러더니 다친 곳이 없는지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친 곳은 없어?”

“이겼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 회복력 좋은 거 알잖아.”

“……역시 선우네.”

크게 놀라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게 있으니

바로 믿는 모양이다. 이제는 적응했 다 이거지.

이후 유아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은 안개를 없애거나 길을 찾 을 방법을 찾아야겠지.”

“서준 선배님도 찾아야 하고요.”

최서윤이 끼어들며 말했다.

“맞아. 이서준이 이번 진천우 토벌 의 핵심이기도 하니一”

그 순간.

우우우응!

느리게 흘러가던 안개의 마력이 파 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디선가 강한 마력이 퍼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이 마력은……r

익숙한 마력이었다.

“가자!”

우리는 빠르게 마력이 느껴진 방향 으로 달려갔다.

목적지로 달려 나가자 눈앞의 안개 가 서서히 흩어지며 누군가의 뒷모 습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내 내 손바닥 위로 금빛의 구체 가 구현되더니 빠르게 방출됐다.

파앙!

구체는 아슬아슬하게 놈의 옆구리 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황한 놈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

서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김선우?”

“서준아!”

그때 윤하영이 이서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놈의 맞은편에 서 있던 이서준이 빠르게 뒤를 돌았다.

“너희……?”

그의 옆에는 신영준이 있었는데 의 외로 둘의 모습이 멀쩡했다.

아직 제대로 전투가 벌이기 전이었 던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맞은편에 선 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베르트, 나타샤.”

그들의 정체는 자운의 베르트와 나 타샤였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주특기인 전기 의 마력과 거대한 낫을 꺼내 들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멀쩡한 걸 보아 하니 둘의 만남이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김선우? 어째서 여기에?”

베르트가 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나타샤의 표정 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잠깐, 김선우가 여기에 있다는 건……?”

“맞아.”

베르트 역시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백은성과 진이 실패했다는 이야기 야.”

“큭!”

나타샤는 분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 었다. 베르트는 굳은 눈으로 내게 말했다.

“김선우. 백은성과 진이 널 찾았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됐지?”

그들의 물음에 이서준이 의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도 자운을 만났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둘 다 죽었어.”

“뭐? 너 지금 뭐라......

나타샤가 분통을 터트렸다.

자운 특유의 동료애가 드러나는 모 습이었다.

베르트는 씁쓸한 얼굴로 멍하니 말했다.

“……그런가. 역시 그렇게 된 건

가.”

그녀는 의외로 빠르게 수긍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그저 조 용히 슬픈 감정만 내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타샤가 낫을 쥐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 애들의 복수를 해야 해.”

우우우웅!

나타샤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낫에서 는 살벌한 붉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마치 하나의 붉은 사신을 보는 듯 했다.

나타샤의 마력에 모두가 당황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두 마력이 충돌하려던 그 때. 베르트가 난입하며 그녀의 어깨 를 잡았다.

“나타샤.”

갑작스러운 개입에 나타샤는 그녀 를 돌아보았다.

“왜?”

“그만하자.”

우..2”

예상치 못한 베르트의 반응에 나타 샤의 두 눈이 떨렸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진과 백은성의 복수는 해야지!”

“승산이 없어.”

베르트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내 주변의 동료들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나타샤도 우리 를 바라보았다.

2:6의 상황.

예전이라면 숫자에 밀려도 지지 않 을 자운이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성 장하며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 무력

을 갖게 되었다.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의 불리함을 깨달은 나 타샤가 천천히 낫을 내려놓았다.

자신들이 패배했음을 짐작한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망치려는 건 아니겠지?”

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아.”

베르트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동 자로 말을 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김선우 너에게 도 망칠 수 없는 거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대신 거래를 제안하지.”

“......거래?”

이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 옆에 선 신영준이 창을 쥐곤 앞으로 걸어왔다.

“거래 같은 소리 하네. 너흰 이제 끝이야.”

베르트가 말했다.

“안개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줄게. 그리고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도

말이야.”

“..I”

베르트의 예상치 못한 제안에 모두 가 크게 놀랐다.

이서준은 의심의 눈으로 그녀를 노 려보며 말했다.

“진천우를 배신하겠다고? 그 말을 어떻게 믿지?”

“그분은 우리의 신이 아니니까. 따 를 이유도 없지.”

«.2”

베르트의 뜬금없는 말에 모두가 당 황했다.

나타샤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베르트?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베르트가 나타샤를 돌아봤다.

“정신 차려. 우리의 신은 죽음의 섬에서 죽었어.”

“……하지만.”

베르트는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이 안개 속이라면 그분에게 감시 당할 일은 없겠지.”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분, 아니…… 최초의 세계

에서 온 진천우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어.”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나타샤 역시 얼굴에 깊은 당혹이 담겨 있었다.

설마 베르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 다.

“우리가 목숨을 다해 그분에게 충 성을 다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베르트의 말에 나는 의문을 느꼈 다.

생각해보면 이들이 목숨을 바쳐서 까지 진천우를 따르는 이유를 제대 로 모르고 있었다.

“그분이 신세계의 신이 되면 우리 를 되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 기 때문이야. 우리의 희생이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 야.”

나타샤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베르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분은 아니야.”

나타샤가 베르트를 바라보았다.

“베르트. 그게 무슨 말이야?”

베르트는 나타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은 우릴 되살릴 생각이 없어. 백은성과 진…… 그리고 다른 동료 모두의 희생이 의미 없게 되어버린 거라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그때 나타샤가 눈을 찌푸렸다.

“설마......

나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번째 일지를 보면 예상 할 수 있어. 지금이야 감시당하고

있으니 충성을 흉내 내고 있지 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리들은 당황 하고 있었다.

설마 베르트가 우리에게 이런 이야 기를 폭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진천우가 만들려는 신세계 는 우리를 위한 신세계가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지금의 진천우가 온 세계, 그러니 까 ‘최초의 세계’를 위한 신세계야.”

베르트가 말했다.

“진천우는 이 세계에 최초의 세계 를 덮어씌울 거야.”

이어지는 베르트의 고백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같은 편인 나타샤 역시 진 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괴로운 표정 을 지었다.

“……그러니까, 신께서는 우리가 아닌 최초의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 른 우리를 되살릴 거라는 말이야?”

“맞아. 다른 세계의 너는 너지만, 네가 아니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너도 알 거야.”

확실히 놀랄 만한 이야기이긴 했다.

진천우가 꿈꿔온 ‘신세계’가 이 세 계에 최초의 세계를 덮어씌우는 거 라니.

그 말은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진천우의 계획을 위해 만들어진 도 구나 다름없었다.

이서준은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만약 네 말대로 세계가 덮어 쓰인 다면, 이 세계 사람들은 최초의 세 계의 사람들로 교체되는 거야?”

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실제로 그분의 영혼도 이미 최초의 세계에서 온 진천우로 교체 가 되었지. 그리고 ‘신’의 권능을 얻 게 된다면 세계를 덮어씌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던 베르트가 괴로운 얼 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최초의 세계’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미래의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2 상승합니다.]

인과율이 2나 상승했다.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 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진천우가 김창현을 두려워했 던 건 이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던 건가.”

이서준이 중얼거리자 신영준이 말했다.

“잠깐 기다려봐. 저놈들 피의 맹세 가 걸려 있어서 배신할 수 없는 거 아니야? 저 말을 믿는다고?”

그러자 베르트가 대답했다.

다른 고.”

“방금 내 말은 자운을 위해서 한 말이라 상관없어. 그리고 내가 충성 을 맹세한 건 이 세계의 그분이야. 세계에서 온 진천우가 아니라

“선우야. 저 말 믿을 수 있어?”

이번에는 윤하영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나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

이서준 역시 베르트의 진심을 느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래.”

“......하아.”

나타샤는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미 간을 좁혔다.

당장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 굴이었다.

분통과 슬픔.

평생을 바친 헌신이 물거품이 됐으 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를 위한 신세계는 없던 거였나?”

“그래, ‘우리’를 위한 신세계는 애 초에 존재하지 않았어.”

이후 베르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래서,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 어?”

나에게 결정을 맡기려는 듯 다시 한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좋아. 제안을 받아들일게.”

베르트와 나타샤를 놓치는 건 아쉽 게 됐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최우선 목표는 ‘진천우’를 처치하는 것이다.

“그럼 안개를 없애는 방법과 진천

우의 위치를 알려줘.”

“……너흴 믿어도 되는 거겠지?”

“못 믿겠으면 피의 맹세라도 해 줘‘?”

내 말에 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됐어. 우선 이걸 받아.”

베르트가 품 안에서 돌 하나를 꺼 내 내게 던졌다.

돌을 받자 거대한 마력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안개를 구현할 때 사용됐던 마나 의 핵이야. 이것과 해석 술식을 동 시에 발동하면 안개가 사라질 거

야.”

이내 그녀는 해석 술식을 구현해 내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해석 술식의 형태가 머릿속에 각인 됐다.

제대로 된 안개의 해석 정보가 담 겨 있었다. 베르트가 우리를 속인 게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의 핵을 품에 넣었다.

“다 외웠어. 그럼 진천우의 위치를 알려줘.”

“......그건.”

베르트는 말끝을 흐렸다.

이미 모든 것을 폭로했음에도 자신 의 행동이 정말 옳은 것인가 갈등하 는 것이었다.

이내 그녀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흑색의 땅 동쪽으로 쭉 걷다 보면 유적지가 하나 있어.”

“유적지?”

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우는 그곳에 숨어 몸을 회복 하고 있어. 문제는 신비의 힘에 의 해 공간을 왜곡시켰다는 거야.”

“일반적인 방법으론 찾아내기 힘들 다는 말이군.”

신영준의 말에 베르트가 고개를 끄 덕였다.

“그에 대한 방법은 우리도 몰라. 진천우의 허락이 있을 때만 우리도 안에 들어설 수 있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개의 동쪽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곳 어딘가에 진천우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

베르트와 나타샤는 진과 백은성의 시체를 찾는다며 어딘가로 떠나갔 다.

우리는 그 자리에 남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베르 트가 알려준 대로 안개 제거 작업을 준비했다.

“이 술식에 마력을 주입하면 되는 거야?”

윤하영이 내가 만든 해석 술식을 내려보며 물었다.

“응. 아마 그럴 거야.”

“왠지 긴장되네.”

나는 술식 위에 올라서서 마나의 핵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천천히 마력을 불어넣자 마나의 핵 과 술식이 내 의지에 반응하듯 강한 빛을 내뿜었다.

우우우웅!

마나의 핵은 곧 허공에 크게 떠올 랐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이 넓

게 퍼져나갔고, 이내 안개는 천천히 녹아내리며 주변을 맑게 만들었다.

“ 오.”

“사라진다.”

어느덧 답답했던 시야가 맑아지고 짙은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틀려 있던 공간 역시 흐물흐물 움직이며 천천히 원래의 상태로 돌 아왔다.

[‘자연의 마력 현상 제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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