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6화 (515/535)

*생성된 세계가 없습니다.

*경고 : 가상세계에 갇힐 수도 있 습니다.

“......됐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최씨 가문에서 보았던 설명과 같다.

정말 피코의 말대로 신비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나는 구슬을 톡톡 건드렸다.

“야야. 일어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어쭈. 대답 안 해?”

나는 구슬을 쥔 손에 마력을 주입 했다.

그러자 구슬에서 강한 빛이 뿜어지 더니 검은 기운이 퍼지며 내 주변을 감쌌다.

[야야야! 그만! 부수지 마!]

이내 머릿속에 울리는 신비의 의 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야.”

[……너 기어코 나를 깨웠구나?]

어둠 속에는 어린 인간의 몸에 양 의 얼굴을 가진 기괴한 존재가 서 있었다.

과거 가상의 ‘경계의 세계’에서 보 았던 그 모습과 완전히 같았다.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신비답게 세 계를 구현하여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깨웠어.”

[뭐가 궁금한 건데.]

양이 나를 삐딱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세계의 마수들의 진천우의 의지대 로 움직이고 있어. 혹시 이걸 막을 방법이 있어?”

피코는 진천우와 관련된 대답을 전 부 피하기에 신비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물어보고 싶었 던 것이었다.

[진천우? 아…… 그 녀석?]

양은 턱을 매만지더니 눈을 감았 다.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신비의 기운이 퍼져 나왔다.

[으음. 내가 잠든 몇 년 사이에 세 상이 이렇게 변해버린 건가……』

잠시 뒤 양이 웃기 시작했다.

[후후. 재밌게 홀러가네. 혼돈과 신 비가 되어버린 인간의 싸움이라.]

놈이 말했다.

[본론으로 말할게. 놈이 지배한 마 수를 막을 방법은 없어.]

“……쳇.”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마수를 지배를 풀고 손쉽게 놈을 처치할 방법이 있지 않나 싶었 는데.

[놈의 몸에는 수많은 힘이 담겨 있 어. 소수 일족, 신비…… 그리고 차 원을 넘으며 생겨난 미약한 혼돈의 힘까지. 지금의 놈은 인간올 초월한 반신이나 마찬가지라고.]

[뭐, 그렇다 해도 놈을 처치하려면 지금이 적기인 건 사실이지. 아직 놈의 힘은 완전하지 않으니까.]

“역시 그런가. 그럼 다음 질문.”

내 말에 신비가 눈을 찌푸렸다.

[야야. 잠깐. 나도 질문의 대답을 위해서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나는 구슬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 러자 양이 황급히 놀라며 두 손을 펼쳤다.

[……자자, 진정해. 심호흡하고. 그 손의 마력 좀 치워줄래?]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변종 신비답게 곧바로 꼬리를 내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술식에 대해 알고 싶어.”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술식?]

놈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 를 갸웃했다.

이 물음은 놈이 깨어난다면 한 번 쯤 묻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술식으로 이 루어져 있잖아. 그럼 가상세계도 술 식으로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야?”

내 물음에 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말대로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술식은 존재해.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인간인 네가…….]

이내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 긴 하지…… 더군다나 ‘혜택’을 받 은 혼돈이라면 더더욱…….]

그러던 놈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걸어디다 쓰려고?]

“다음 질문.”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가상세계의 술식을 이용해 현실에 덮어씌우는 것도 가능해?”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근데 그 걸 왜 묻냐니까?]

“중요한 순간에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고 싶거든. 마침 그것과 관련된 능력을 얻기도 했고.”

바로 술식의 세계. 진천우와의 첫 전투에서 사용했던 능력이다.

나는 술식의 세계에 가상세계를 구 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두 마법을 합칠 수 있다면 가능성 이 무궁무진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신비는 의심 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어쨌든,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술 식을 알려줘. 아. 또 하나. 소수 일 족에게 어떤 능력들이 있는 지도.”

나는 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큰 차원끼리 통로를 연결 하는 게 가능한지도 말이야.”

일주일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마수 군단의 수는 점차 늘어나 세 계를 위협했고, 협회와 길드의 마법 사들은 힘을 합쳐 그들의 침공을 막 아냈다.

하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마수의 힘은 강했고, 끝없이 늘어 나는 놈들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진천우를 처치해 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천우는 ‘흑색의 땅’의 환 영에 숨어 회복에 집중하는 상황.

협회는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 하고 있었다.

“숲의 환영만 억제할 수 있으면 전 부 해결되는데……

그렇게 전 세계가 진천우와 마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간을 보내던 어 느 날.

협회는 진천우가 숨은 ‘흑색의 땅’ 의 숲의 환영을 억제할 방법을 찾아 냈다.

아니, 찾아냈다기보다는 환영을 억 제할 방법을 아는 자가 흑색의 땅을

스스로 찾아왔다.

“저, 정말로 숲의 환영을 억제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

그 정체는 환영 마법의 정점에 올 랐다고 알려진 은월 가문의 가주, 은혜수였다.

예상치 못한 거물의 등장에 협회는 발칵 뒤집혔다.

대부분의 명문 가문이 그렇듯, 은 월 가문 역시 협회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 현장에 나온 염제가 그녀를 직접 맞이했다.

“……은혜수. 외부의 일에 관심 없 던 네가 웬일로 나서는 거지?”

“오랜만이구나. 염제. 그 오만한 말 투와 표정도 여전하고.”

이들의 만남은 20년 만이었다. 은 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착각하지 마라. 내가 협회를 돕는 건 은월가의 은인이 나를 찾아와 부 탁했기 때문이다.”

“……은월가의 은인?”

염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짐작되는 게 없었다. 은월가의 은

인이 대체 누구길래 그런 부탁을?

“당장 시작해야 하니 방해하지 말 고 비켜라.”

은혜수는 염제를 지나 숲의 입구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요원 하나가 염제에게 슬그머니 다가갔 다.

“……염제 님, 쫓아낼까요?”

염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다. 환영과 관련해서 그녀보다 뛰어난 전문가는 없으니.”

은혜수는 숲의 마력을 느끼다가 말

했다.

“설아야.”

“네!”

뒤에서 모두가 혹할만한 은발의 아 름다운 여인이 튀어나왔다.

은설아. 은혜수의 손녀딸로 은월가 의 차기 가주였다.

“내가 해석 진을 펼칠 테니 뒤에서 보조하거라.”

“넵!”

“회, 회장님!”

마법사 협회 최상층, 회장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정보팀 팀장, 양지태가 안 으로 들어섰다.

김진철은 눈을 찌푸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혹색의 땅의 숲에 펼쳐진 환영이 풀렸다고 합니다!”

“......뭐?”

갑작스러운 전개에 김진철은 눈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환영이 풀리다 니‘?”

“아, 정확히는 환영이 풀린 게 아 니라 환영의 마법을 해석해서 내성 을 키울 수 있는 약을 제조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 쳐 지나갔다.

짧은 시간 내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마법사는 전 세계에 단 한 명밖에 없으니까.

“설마, 은혜수냐?”

“네, 맞습니다!”

은혜수. 환영 마법의 정점에 오른 마법사였다.

그런 그녀가 나섰다면 숲의 환영을 풀어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어째서 그녀가 나서게 된 거지?”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은인 의 부탁을 받았다고……

은인.

김진철은 미소를 지었다.

누구를 말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 았다.

“김선우군.”

김선우라는 이름이 들려오자 양지 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김선우요? 김선우가 은월가의 은인 입니까?”

“뭐, 그런 일이 있다.”

김진철은 그녀의 손녀인 은설아의 불치병을, 김선우가 고쳐주었다는 것을 이서준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보다 서준이는?”

“영혼 소멸의 술식을 검에 이식하 고 현재 흑색의 땅으로 향하고 있다 고 합니다.”

그렇다면 됐다. 흑색의 땅의 환영

도 풀리고, 영혼 소멸의 술식 역시 완성이 되었다.

‘진천우’를 토벌할 최소한의 준비 가 완료됐다는 것이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 다.

김진철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모든 요원을 흑색의 땅에 집결시 켜라. 나도 바로 그곳으로 향하겠 다.”

*

이틀 뒤 흑색의 땅.

하늘에서 거대한 떨림이 울렸다.

마수 특유의 불길한 마력이 퍼져 나오고, 넓은 들판에 선 이서준은 짧게 심호흡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네요.”

긴장이 담긴 최서윤의 말에 이서준 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땅 앞에 모인 수많은 마법사. 그리 고 그들을 막으려 모습을 드러낸 수 많은 마수 군단들…….

진천우를 토벌하기 위한 대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보다 선우는 어디에 있는 거지?”

윤하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의문에 빠졌다.

흑색의 땅 첫날 이후, 2주라는 시 간이 지났지만 김선우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마 자운에 붙은 거 아니야? 아 니면 너네가 부담스럽게 해서 도망 쳤다거나.”

그때 뒤에서 듣던 릴리가 장난식으 로 말했다.

눈치 없는 그녀의 말에 모두가 그

녀를 찌릿 노려보았다.

“……얘들은 김선우랑 관련된 건 진짜 예민하네. 알아! 그런 애 아닌 거.”

릴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다시 말했다.

“뭔가 바쁜가 보지. 그리고 환영 결계를 푼 은혜수 마법사도 김선우 가 데려온 거라며?”

릴리의 말에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런 거 같더라.”

이틀 전 이서준은 은혜수와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 김선우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은월가를 찾아왔고, 환영을 풀 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떠났다고

그리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김선우 는 어떤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우는 금방 돌아올 거야.”

이서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때 였다.

끼에에에에엑!

귀를 찢는듯한 거대한 울음소리가 공간 전체에 크게 울렸다.

눈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 을 올려보았다.

하늘 위로 거대한 흑룡 두 마리가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뒤를 이어 여러 개의 뱀 머리를 가진 히드라와 거대한 도마뱀 바실 리스크도 모습을 드러냈다.

“……재앙급 마수.”

재앙급 마수 하나에 길드 하나와

맞먹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진천우를 지키기 위해 재앙 급 마수가 무려 5마리나 모습을 드 러낸 것이다.

그들의 등장에 모인 마법사들은 긴 장의 표정을 지었다.

—야야…… 이거 맞아?

—다섯 마리는 선 넘었잖아.

문제는 재앙급 마수뿐만이 아니었다. 지상에는 수백 수천의 마수 군 단도 함께 있었다.

염제는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천우. 설마 이렇게 많은 마 수를 숨겨놨을 줄이야.”

상황이 좋지 않다.

진천우에게 도달하기 위해선, 수많 은 이들의 희생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공포에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맞아?”

“누가 봐도 개죽음이잖아.”

그 순간.

주변이 어두워지고 짙은 불길한 마 력이 주변에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마력은?”

인간과 다른 낯선 마력.

하지만 마수의 마력이 아니다. 이 건, 마기였다.

이내 어디선가 검은 연기가 피어오 르더니 수백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 러 냈다.

“......마인.”

그들의 정체는 마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그들의 왕 김선우가 서 있었다.

“선우야!”

윤하영이 반갑게 그를 불렀다.

김선우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염제 에게 다가갔다.

“지원 왔습니다.”

흑색의 땅에 모인 수많은 마법사가 각자 다른 감정을 담아 나와 마인 군단을 바라보았다.

적의감과 두려움…… 그리고 나를 향한 몇몇 사람들의 반가움.

주목받는 일은 이제 익숙하기에 모 두의 시선에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 다.

염제는 황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 더니 내 뒤에 선 마인 군단에게 시

선을 돌렸다.

“……여기서 이런 지원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지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마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염제답게, 순간 얕은 경계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일 을 망칠 순 없지. 아주 마음에 드는 구나.”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염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꽉 막힌 인물이라 생각했던 그가, 어째서 수많은 마법사의 존경 을 받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류를 위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는 진짜니까.

“하지만 상황이 암담한 건 여전하 군.”

염제가 흑색의 땅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5마리의 재앙급 마수가 불길한 마력을 퍼트리며 우리를 노 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협회와 길드. 그리고 마인 이 합세하여 엄청난 대군을 이루어 냈다고 한들, 저 괴물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큰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