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3화 (512/535)

“흐음. 그래?”

하긴, 전 세계가 마수 습격으로 난 리이긴 하니까.

아니면 진천우를 상대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제외한 걸지도 모르고.

“뭐냐. 먼저 와 있었냐?”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선생님도 오셨네요.”

최일현이었다.

그는 나를 따라 씨익 미소를 짓더 니 품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 었다.

“뭐, 진천우와 관련된 일이니까.”

이내 마법으로 불을 붙이더니 말했다.

“그래서, 자운이나 진천우의 흔적 은 찾았나?”

“아뇨. 이제 찾아봐야죠.”

최일현은 담배 연기를 쭉 빨아들이

더니 말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다. 어쩌면 진천우가 파놓 은 함정일 수도 있어.”

“네, 인지하고 있어요.”

서로 대놓고 미끼를 던지고 물어주 는 느낌이 강한 건 사실이니까.

“조급할 필요 없어요. 놈이 저주를 풀기 위해선 최소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 네 말대로 조급할 필요는 없지. 아 참. 저기 염제 노인네 말 고도 추가 파견팀이 올 것이다. 그 리고 영감은, 진천우의 위치가 확인

되는 대로 출발한다고 한다.”

그건 조금 아쉽게 됐다.

김진철이 있었다면 훨씬 안정감이 있었을 텐데 말이지.

최일현이 힐끔 나를 바라보더니 다 시 말했다.

“사실 영감도 바로 오고 싶어 하긴 했는데…… 저번에 잠깐 서울을 비 웠다가 2대 마인의 왕으로 인해 참 사가 일어나지 않았냐? 그래서 그렇 게 됐다.”

이내 최일현이 담뱃불을 껐다.

“그럼 슬슬 탐사나 해볼까.”

그는 뒤를 돌아 염제에게 말했다.

“저희는 따로 팀을 꾸려 탐사해 보 겠습니다.”

염제는 최일현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최일현과 나를 중심으로 이 서준 없는 이서준 일행(?)과 8()1이 한 팀이 되었다.

우리는 몇 번의 준비를 마치고는 숲 안으로 들어섰다.

끼에에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수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푸른 빛의 눈동자를 빛내는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아라와 릴리가 곧바로 놈들을 공 격하려 했지만 금세 달아났다.

그것을 보다가 문득 궁금중이 생겨 구미호에게 물었다.

“혹시 저 마수들. 진천우와 시야가 공유되는 거야?”

구미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러진 않을 거다. 내가 놈

에게 조종당했을 때 특별한 힘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세뇌당한 쪽에 가 가웠으니까.”

“……흐음. 그런가.”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마수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 다면 그건 진짜 인간의 영역을 벗어 난 거니까.

그때, 숲 전체에 바람이 불어오더 니 스산한 마력이 풍겨오기 시작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모두 조심해. 환영에 휩쓸릴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스으으으!

그 순간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우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동시에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

하늘을 올려보자 거대한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워 있었다.

최서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 었다.

“……재앙급 마수?”

재앙급 마수, 흑룡이 거대한 날개 를 펼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에 모두가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화, 환영인가?”

엘린이 다급하게 묻자 구미호가 고 개를 저었다.

“아니, 저건 진짜다.”

“모두 전투 준비해!”

최일현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가 마 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려는 그때.

숲 너머에서 또 다른 기운이 느껴 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나무 사이에서 화려 한 금발의 여인이 우리를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유아라는 그녀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베르트?”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베르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최일현 은 그 어떤 신호도 없이 녀석에게 마법을 방출했다.

파아아앙!

그렇게 마법 구체가 그녀의 몸에 닿으려는 그 순간.

흑룡의 육신에서 마력이 퍼져 나오 더니 장막이 구현되었다.

콰아아앙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베르트는 식 은땀을 홀렸다.

“……역시 최일현인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그녀는 긴장한 듯 짧게 숨을 내쉬 더니 말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나는 너희와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최일현이 묻자 베르트가 내게 시선 을 돌렸다.

“김선우. 너와 대화를 원한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나?”

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네 존재로 신께서 준비한 계획이 뒤틀려졌다. 거기다 네 악의로 인해

신의 영혼이 오염되었고 우리가 평 생 염원했던 신세계의 탄생도 미뤄 지게 되었지.”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네가 가진 세계를 바꾸는 힘…… 신께서 그 힘을 원하고 계신다.”

베르트가 말을 이었다.

“그분은 세계의 파멸을 원하는 게 아니다. 평화로운 방법이 있다면 언 제든 그것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 지. 김선우. 왕께 협력해라.”

순간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나 했는데 협력을 제안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평화? 너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 야?”

내 말에 윤하영이 고개를 끄덕였 다.

“선우야. 무시해 그냥.”

“맞아요. 들을 필요도 없어요.”

최서윤도 감정 섞인 목소리로 거들었다.

베르트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

“만약 네가 협력한다면 그분께서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원하는 건 너희의 파멸이 야.”

그러자 베르트가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내 두 눈이 잠시 떨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내 감정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는지 모두가 의문에 찬 표정으 로 나를 바라봤다.

“……선배님?”

직접 말을 꺼낸 베르트 역시 이들 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분의 말대로 정말로 반응이 있긴 하군.”

잠시 생각에 잠긴 베르트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뭐, 생각이 있으면 마수를 통해 찾아와라. 그분과 연결된 마수는 주 변에 널려 있으니 말이야.”

우우웅!

이내 베르트의 머리 위에 날갯짓하

던 흑룡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숲 전체에 검은 마력이 다시 피어 오르고, 그녀의 육신은 환각이었던 것처럼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흑색의 땅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탐사를 마친 최일현은 입구 로 돌아와 염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 었다.

“환각과 환영을 만들어내는 숲의 마력이 너무 짙어 돌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숲에 숨은 마수들도 생각 보다 강해 위험하기도 하고요.”

최일현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그 말에 염제는 심각성을 느꼈다.

비록 자신보다 한참 어리고 성격도 건방진 최일현이었지만 그는 전 세 계에서 김진철 다음가는 실력자였 다.

그런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정말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증거 였다.

“비행 소환수를 이용한 돌파는 어 떨 거 같나?”

“위험합니다. 용족과 같은 재앙급 마수에게 당할 가능성이 있어요.”

“재앙급 마수라…… 이거 골치 아 프군.”

역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진천우다운 대처였다.

자신의 위치를 협회에 노출했지만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염제는 입술을 깨물곤 다시 말했다.

“그래, 일단 알았다. 회장님껜 내가 보고하도록 하마. 그 외에 추가적으 로 보고할 건 없나?”

최일현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더 니 숲의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을 밝히는 작은 모닥불.

그 앞에 김선우가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최일현은 숲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베르트와의 만남. 그리 고 김선우에게 했던 협력 제안…….

잠깐이었지만 ‘고향’이라는 말에 김선우가 혼들렸었다.

염제는 그런 최일현의 시선을 따라 김선우를 바라보더니 의문에 찬 표 정을 지었다.

“김선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 나‘?”

최일현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 를 저었다.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같은 시각. 혹색의 땅 중심의 어딘 가.

짙은 어둠이 드리운 공간 속에서 고통에 잠긴 신음이 들려왔다.

이내 바닥에서 마법진이 빛을 발하 더니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윽.”

고통에 잠긴 얼굴로 침상에 누워 있는 잘생긴 외모의 남성.

몇 주 전만 해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육체가 손상되어 있었지만 수많은 신비를 통해 어느 정도 원래의 형태를 되찾은 상태였다.

그의 정체는 세계 최악의 마법사라 불리는 진천우.

그리고 그의 앞에는 자운이 납치한 마인 주술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저 주의 해주술을 발동하고 있었다.

“마인. 신께 걸린 저주를 풀어내려 면 얼마나 걸리지?”

뒤에서 지켜보던 나타샤가 주술사 에게 물었다.

주술사는 공포를 느끼며 대답했다.

“일족의 고대 저주이기에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주술 을 건 자가 다름 아닌 왕이기에 시 간이 더一”

“본론만 말해. 그래서, 얼마나 걸리 는 건데?”

“……하, 한 달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타샤가 눈을 찌푸리고는 마인 주 술사의 목에 낫을 가져다 대었다.

“한 달? 지금 장난하는 건가?”

순간 마인이 놀라며 진천우의 저주 를 풀던 해주술을 멈추었다.

그러자 불길한 마력이 퍼져 나오더 니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다.

“나타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시, 신이시여……!”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달은 나타샤 가 낫을 치우고는 무릎을 꿇었다.

“한 달의 시간은 이미 각오하고 있 었다. 놈이 어떤 주술을 걸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이건 쉽게 풀어 낼 수 있는 저주가 아니다.”

“……주제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천우는 주술사에게 눈치를 줬다. 그는 곧바로 해주술을 발동했다.

우우웅…….

해주술이 다시 발동하자 진천우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현 상황은 어떻지?”

“예상대로 협회에서 주술사를 추적 해 흑색의 땅 입구에 진을 쳤습니다.”

“그런가?”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쁜 상황도 아니다.

협회가 주술사를 추적해 찾아올 것 은 이미 예상했던 거니까.

문제는 협회를 상대로 과연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느냐였 다.

“현재 수많은 길드가 협회에 협력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 력이 늘어나는 만큼 과연 이곳에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저주로 육체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피에 흐르는 신 비의 힘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신비의 힘을 이용해 전 세계 의 수많은 재앙급 마수를 자신의 사 도로 만들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혹색의 땅’ 이 가진 환영 현상을 잘 이용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보다, 베르트는 아직 오지 않았 나?”

“베르트가 왔습니다. 신이시여.”

때마침 임무를 마친 베르트가 모습 을 드러냈다.

그녀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갖췄다.

진천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 혼돈에게 내 말을 전했나?”

베르트는 고개를 숙였다.

“네, 신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지만 놈 이 동요했습니다.”

진천우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면 됐다.”

흑색의 땅 숲의 입구에 수많은 막 사가 설치되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으로 분주하 게 움직였는데 뒤늦게 지원 온 협회 요원들이 2차 파견을 준비하는 것이 었다.

“으음……

그렇게 파견 준비로 바쁜 그때, 최 서윤은 모닥불 앞에 설치된 간이의 자에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숲에서 마주친 베르트의 한 마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것 같았던 선배님이, 저 한 마디에 크게 동요 했었다.

누군가의 말에 이렇게 큰 감정의 변화를 보인 건 처음이었기에 그녀 는 계속 의문에 빠진 상태였다.

“......고향.”

전부터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 던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 다.

바로 선배님의 과거.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배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가족 관계는 어 떻게 되는지.

진천우와 함께 다른 시간대에서 회 귀한 것은 분명한데, 회귀 전에 어 떤 삶을 살아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 었다.

……무엇보다 고향.

선배님을 동요하게 만든 ‘고향’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가끔이지만 그는 무언가를 그리워 하는 듯했으니까.

그리고 자연스레 그녀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법사관학교의 시험이었던 심연 탐험.

그곳에서 보았던 김선우의 무의식 세계는, 자신이 아는 현실과는 조금 달랐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마법사관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 었다.

거기다 누군지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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