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김선우의 말대로 진천우가 재 앙급 마수까지 조종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협회가 힘을 합쳐도 그를 막기 힘들 테니까.
김진철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마수 군단과의 전쟁을 준비해 야 할지도 모르겠군.”
나는 늦은 밤까지 요새에 남아 포 위한 추종자들을 심문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념으로 내 질문 에 대답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계속 괴롭히다 보니 그들도 버티기 힘들 었는지 끝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베르트가 이 안에서 마수 를 모아두라고 했다?”
“마, 맞습니다.”
“다른 지역의 요새에도 여기와 똑 같이 마수를 가두어 두고 있고?”
“……넵.”
“……하아.”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이 요새는 자운이 개입하 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요새가 지어진 목적은 진천우가 조 종하는 마수 군단을 관리할 용도였 고.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서준이 내 게 말했다.
“결국 다른 요새에도 마수들이 숨 겨져 있다는 거네.”
“그렇지.”
이번 요새 사건을 통해 어렴풋이 진천우의 계획이 드러났다.
그가 가진 마수 조종 능력.
놈은 그 능력을 이용해 협회에 대 항할 마수 군단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족쇄의 힘에 막히긴 했지만 구미호 도 조종했던 것을 생각하면 재앙급 마수 역시 조종할 수 있을 테고.
상황이 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흘러간다.
이서준은 이 상황이 답답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만약 진천우가 전 세계의 재앙급 마수들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면 심 각한 일이 벌어질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주도권을 얻게 되면 가장 먼 저 너를 노릴 거고.”
“매번 말하는 거지만 조심해. 네가 진천우에게 당하면 정말 모든 게 끝 이니까.”
순간 그의 눈빛에 깊은 씁쓸함이
담겼다.
이 상황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기운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의 등을 철썩 때렸다.
별로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엄살을 피우는 것인지 이서준의 눈썹이 살 짝 찌푸려졌다.
“아 참. 그거 잘 보관하고 있어?”
“뭐‘?”
“생명의 돌.”
생명의 돌.
마법사관학교 축제인 태휘제 이벤
트, ‘유령의 섬’에서 얻은 성유물이 다.
모든 질병과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적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는 데, 원작의 전개를 위해 이서준에게 맡겨두었었다.
이서준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보관하고 있지. 친구 중 누군가에게 필요해지면 쓰기로 했었 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품에 넣고 다녀.”
원작 속에서 중요한 역할이 되었던 생명의 돌.
진천우와의 최종 결전이 다가온 지 금, 그것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
“그 돌은 진천우로부터 널 지켜줄 거야.”
* * *
다음 날 아침.
창가의 햇빛이 스며드는 방 안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등에서는 푹신하면서도 딱딱한 감 촉이 느껴졌는데 침대가 아닌 소파 였다.
“……으. 머리야.”
나는 이마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변을 둘러보자 8()1의 사 무실이 다.
동시에 어제 밤늦게까지 추종자들 의 요새를 조사하다가 새벽이 되어 서야 돌아왔던 것이 떠올랐다.
띠링!
[수많은 사람이 당신의 행동에 반 발합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당신의 행동으로 세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인과율이 3 상승합니다.]
“……이건 또 뭐야.”
인과율이 3이나 증가했다고?
그럴 만한 일이 있었나?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다 가 그 정체를 깨달았다.
“아. 그건가 보네.”
나는 곧바로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에 접속했다. 예상대로 수많은 기사 가 올라왔다.
「협회 특무팀. 마인과 연합 작전 성공. 마인의 왕, ‘김선우’가 활약 해…….J
“기사 떴구나.”
다른 집단도 아니고 협회가 인류의 숙적이라 불리는 마인과 연합을 했 으니 난리가 날 만하다.
그야말로 역사가 뒤바뀔만한 사건
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인과율이 3이나 상승 한 건 조금 의외인데.
[댓글]
[eqoq : 요즘 마인 사건이 없다더 니 이제는 협회랑 연합도 하네 거거 거 이거 맞냐??]
[ttap : 김선우가 제안했다는데 이 건 좀..]
[egg52 : 진천우부터 막는 게 우선 이지. 마인이 문제가 아님.]
예상대로 댓글에는 긍정보단 부정 이 많다.
마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세계니 당 연한 반응이긴 하다만.
“그래도 포인트랑 인과율을 얻었으 니 이득이지.”
다른 사람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쓰 지 않는다.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포인 트와 인과율을 얻을 수 있다면 뭐든 하는 나니까.
“아. 이야기는 아니구나.”
이 세계는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개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령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아직 주술사들의 신변에 큰 문제 는 없습니다.]
“진천우.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자신의 몸에 걸린 저주를 풀기 위 해 주술사부터 찾을 거라 생각했는 데 예상과 다르게 놈은 별다른 움직 임을 보이지 않는다.
“마수를 이용한다른 꿍꿍이가 있 는 건가.”
진천우도 조심스러운 성격이니 이 해는 하지만 시간을 끌수록 놈에게 손해일 텐데.
“......흐음.”
여러 가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분명한 건 없다.
상황을 더 지켜보는 수밖에.
조금 초조함이 느껴졌지만 생각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후 적당히 씻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향한 곳은 서울 마법사 협회
였다. 새벽에 갑작스레 약속이 잡혔 기 때문이다.
그렇게 협회 1층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알아챈 몇몇 마법사들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김선우인가?
_마인이랑 자꾸 엮는 거 같던데.
전부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서려는 그때,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선배님?”
최서윤이었다. 그녀는 순간 반가워
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가왔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협회 안에서요?”
«으 »
O .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최서윤이 생 각난 듯 말했다.
“아, 이서준 선배님이라면 30분 전 에 임무 나가셨……
“이서준 아니야.”
당연히 자신 아니면 이서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그녀의 눈에 의문 이 담겼다.
“그럼 누군데요?”
“김진철 회장.”
내 말에 최서윤은 딱히 놀라지 않 았다. 내 신분상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녀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더니 웃 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응? 아냐. 바쁠 텐데.”
“아뇨. 저 오전 업무는 전부 마쳐 서 한가해요. 후후.”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어쩌다 보니 나는 최서윤의 안내를
받으며 협회 내부로 들어섰다.
외부인의 신분이었지만 김진철의 언질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협회 내 부를 드나들 수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복도를 걷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 너 언제까지 선배님이라고 부를 거냐?”
마법사관학교 시절이면 내가 그녀 의 선배는 맞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무 요원 선배 역시 아니고.
더이상 그녀가 나를 ‘선배’라고 부 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내 말에 최서윤은 힐끔 나를 보더 니 눈을 가늘게 떴다.
“평생 선배님이라고 부르라면서 요.”
“……응?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네. 기억 안 나요?”
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 러자 과거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럼 선배님 말고 다른 호칭은 요?
—무슨 호칭?
—어. 음. 오, 오빠라던가……?
-……그냥 선배님으로 불러.
—졸업 후에도?
_어. 평생.
……진짜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최서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나셨어요?”
“어. 약초학 수업 때 말하는 거 맞 지?”
그 말에 당황한 건 최서윤이었다.
“……어. 약초학 수업인 것까진 기
억 안 나는데. 설마 그것까지 기억 하는 거예요?”
“내가 기억력이 좋거든.”
물론 [기억력] 특성 빨이긴 하지 만.
최서윤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이제 호칭 바꿔도 되는 거예 요?”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딱히 상관은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 다.
“마음대로 해.”
여기까지 와서 선배님 소리 듣는 것도 나도 부담스러우니까.
최서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싸.”
이내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흠흠. 그럼 오, 옵......
옹알이하듯 작게 말하던 그녀의 얼 굴이 점차 빨개졌다.
“……그냥 당분간 선배님이라고 부 를게요.”
협회 최상층에 도착한 나는 회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보는 회장실의 풍경.
넓은 창가 앞에 김진철이 앉아 있 었고, 그의 옆에는 최일현이 삐딱한 자세로 서 있었다.
“어, 제자 왔냐?”
나를 발견한 최일현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김진
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몇 주 사이에 살이 좀 빠지셨네 요.”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한두 가 지여야지. 아주 죽을 맛이다. 쯧.”
김진철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 레 저었다.
그답지 않은 앓는 소리에 피식 웃 음이 나왔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 까?”
“너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 외에도 진천우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었고.”
김진철은 그렇게 말하더니 작게 웃 었다.
“그래, ‘김선우’의 삶은 잘 적응하 고 있나?”
“네, 뭐.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 습니다. 역시 가면보다는 맨얼굴로 다니는 게 편하더라고요.”
농담하듯 말했지만 사실 지금 생활 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은 기분이라 고 해야 할까.
자신의 이름, 자신의 얼굴로 당당 하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럼 이런 잡다한 인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김진철이 짧게 숨을 내쉬곤 말했다.
“네가 진천우에게 걸었다는 고대 주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 설 명해 줄 수 있나?”
“일종의 봉인술입니다. 다만 육체 가 아닌 영혼에 거는 봉인술이죠.”
“봉인술이라. 어떤 마법인지 대충 알 거 같군. 육체의 힘은 영혼에서 나오는 것…… 영혼을 오염시켜 회 복력을 낮춘 거구나.”
과연 모든 마법사의 정점에 오른 자인가. 김진철은 단순한 설명만으 로 마법의 종류를 눈치챘다.
그의 말대로 내가 놈에게 건 저주 는 영혼을 오염시켜 육체의 회복을 늦추는 저주이다.
마인의 재생력을 억제시키는 ‘멸 마’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회복을 늦추 는 마법이지 죽이는 마법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놈도 원래의 상 태로 회복하겠죠.”
김진철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
겼다.
“저번에 듣기로는 진천우가 저주를 풀기 위해 움직일 거라 했다. 그런 데 스스로 회복이 가능하다면 진천 우가 주술사를 찾을 이유가 없지 않 나?”
“아니죠. 놈이 완전히 회복에 성공 한다 하더라도 저주가 풀리는 건 아 니니까요.”
“그 말은?”
“진천우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재 생, 회복 능력과 신비를 활용하고 싶을 겁니다. 그걸 위해서는 반드시 저주를 풀어야 할 거고요. 거기다
영혼이 오염되어 본래의 힘을 전부 끌어낼 수도 없을 테니 더더욱 풀려 하겠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것 외에도 자신이 회복되기 전에 제가 찾아올 거라는 두려움 때 문에 빨리 주술을 풀어내려 할 겁니다.”
김진철이 피식 웃었다.
“진천우. 그놈이 너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이내 그는 낄낄 웃기 시작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 나 역시 네 녀석의 정체를 아직까지도 모르
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진철이 최일 현에게 시선을 줬다.
최일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류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의문을 가지며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북아프리카 1,000마리의 마수 군 단 습격.]
[재앙급 마수 ‘히드라’, 미국 서부 출현]
요..
서류에는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마수 피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양이 방대하 다.
“최근 한 달간 벌어졌던 마수 피해 사건들을 모은 거다.”
나는 서류 안에 담긴 마수의 사진 들을 보았다.
마수의 눈이 하나같이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천우에게 조종당하는 마수라는 증거였다.
“한 달 전부터 낌새가 있었네요.”
“그래. 이 마수 습격 사건들 모두 진천우가 개입되어 있었어.”
나는 심각성을 느꼈다.
마수 피해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 다는 건 진천우가 통제하는 마수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였 다.
“시간에 쫓기는 건 우리도 마찬가 지다. 놈에게 지배당하는 마수의 수 가 늘어날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