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8화 (507/535)

중요한 일일 수도 있긴 하지.

한세연에게 부탁한 일이 있기도 하 고.

“그럼 잠깐만.”

나는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일정 끝나면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소수 일족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찾아서요. 직접 전해드리고 싶어요.]

……정보를 찾았다고?

나도 모르게 굳어진 표정올 보았는 지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에요?”

그녀가 걱정된 말투로 물었다. 나 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으음.”

내 반응이 수상했었는지 그녀가 물 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동료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만나자고 하네.”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이런 걸 이해 못 할 사람도 아니고.

그러자 최서윤이 눈을 깜빡였다.

“……중요한 정보요? 누군데요?”

그 물음에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 했다.

“한세연.”

순간 그녀가 표정이 멍해졌다. 하 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술 마시고 같이 가면 되겠네 요.”

“선배님은…… 진짜 아무것도 몰라 요…… 내가 진짜 얼마나…… 하 아.”

최서윤과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약 1시간 30분이 흐른 시점.

한잔 한잔이 그녀의 목구멍을 넘어 갈 때마다 그녀의 혀가 조금씩 꼬이 기 시작했다.

눈은 진작에 풀렸고 언제나 착실한 그녀의 이미지는 완전히 무너진 상

태다.

그녀는 자신의 빈 잔에 술을 따르 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알 거 같아요. 선배님이 술을 마시는 이유…… 처음엔 좀 썼 는데, 계속 마시니 달아. 헤헤……

그렇게 술을 들이켜려는 그녀의 잔 을 황급히 빼앗았다.

“야야. 너 그만 마셔.”

“왜요……? 저 아직 더 마실 수 있는데……

최서윤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 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를 향해 빙긋 웃더니 양 손바닥으로 자

신의 뺨을 감쌌다.

“꽃받침〜”

“……얘 맛이 갔네.”

세잔 네잔 마실 때만 해도 멀쩡한 가 싶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 자기 훅 가버렸다.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굉장히 당혹스럽다.

“여기 술집 아니고 레스토랑이야. 민폐라고.”

“아닌데요……? 여기 레스토랑 느 낌의 술집인데요……?”

“뭔 소리야. 레스토랑인……

그때 내 시선 끝에 가게의 이름이 보였다.

레스토랑 브}.

……진짜 술집이었네.

잠시 할 말을 잃자 그녀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 라보았다.

“근데 선배님. 한세연 님이랑 무슨 관계예요……?”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발음은 여전히 뭉개진 상태지만.

“동료지. 그건 왜.”

“……아뇨. SNS 에서 사이좋다고

자꾸 티 내길래. 다른 특별한 무언 가가 있나 했죠.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렇고.”

최서윤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말 을 이었다.

“그런데 속 보인다. 오늘 나랑 약 속 있는 거 알면서.”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최서윤은 그렇게 말하며 물 한 모 금을 더 마셨다.

이후 몇 분의 대화를 더 이어나가 다가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 계산 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붉었던 저녁 하늘은 어느덧 시꺼멓 게 물들어 있었다.

시원한 밤공기를 쐬자 기분 좋게 만들던 술기운이 조금은 달아나는 기분이다.

하지만 반대로 최서윤의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숨을 푹푹 내쉬더니 소심하게 내 옷깃을 잡았다.

“너 괜찮아?”

“갑자기 어지러워서 그래요. 조금 만……

괜히 걱정돼서 그녀의 얼굴을 살폈

아까만 해도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 이 지금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술병 났나 보네.”

자신의 주량도 모르고 막 마셨으니 예정된 결과다.

처음 술을 마셔본 성인이라면 누구 나 겪는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혼돈마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최서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꿈 을 꾸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민폐 끼쳐서……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어졌

정신을 차리기 힘든지 이제는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녀에게 등을 내줬다.

“업혀.”

“……아뇨. 조금만 더.”

“여기서 잠들게?”

그제서야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내 등에 업혔다.

“..죄송해요. 다시는 술 안 마실

게요.”

“됐어. 신경 쓰지 마.”

나는 그녀를 등에 업은 채 밤길을

걸었다.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었 고, 나는 약속대로 한세연의 오피스 텔 방향으로 걸었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어디 사는지도 모르기도 하고, 이럴 거면 근처에 사는 한세연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길을 걷자 길 건너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한세 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전 투를 앞둔 사람처럼 심상치 않은 기 운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등에 업혀 잠든 최서윤을 발견하더니 그 기운 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안타까운 눈으로 최서윤을 바라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떡 이 된 거예요? 선우 씨가 잘 조절 했어야죠.”

한세연이 나를 혼내듯 말했다.

“그리 많이 마신 건 아니에요. 은 이슬 일곱 잔 정도?”

“……일곱 잔이면 한 병이잖아요. 그 정도면 많이 마신 거죠.”

하긴, 그 말도 맞긴 하다. 한세연 과 내 기준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한세연은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 쉬더니 뒤의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요.”

한세연의 오피스텔에 도착한 나는 최서윤을 침대에 눕혔다.

정신 못 차리는 그녀를 바라보자 한세연이 말했다.

“나머지는 제게 맡기고 거실에 계

세요.”

“......아, 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거실로 나왔 다.

얼마 안 가 한세연도 방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 지만 꽤나 힘을 썼는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자 그녀가 내 옆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이내 그녀 가 어색함을 깨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꿀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 가 생각 난 듯 몇 가지 서류를 찾 아 내밀었다.

“부탁하셨던 소수 일족의 정보가 담긴 서류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곧바로 내응을 살폈다.

언제나 그렇듯 알아보기 쉽게 소수 일족 명단과 능력이 잘 정리되어 있 었다.

“소수 일족들이 워낙 폐쇄적이라서 25개의 일족의 능력을 전부 찾진

못했어요. 서류상에는 몇백 년 전에 멸족됐다고 알려진 일족도 있었거든 요. 물론 조용히 숨어 지낸 거지만 요.”

“괜찮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큰 도 움이 돼요.”

서류에 담긴 소수 일족의 능력은 총 20개였다.

잘 알고 있는 룬의 일족부터 시작 해서 패호 일족의 능력도 보였다.

그렇게 쭉 둘러보는데 예상외로 ‘달의 일족’의 능력은 보이지 않았 다.

아마 밝혀내지 못한 5개의 일족

중 하나에 속한 모양이다.

뭐, 달의 일족의 능력인 [달의 가 히는 일반적인 소수 일족의 능력과 는 다르게 티가 잘 안 나기 때문에 이해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게 소수 일족의 능력인지는 몰랐으니까.

“속성 관련 능력이 많네요.”

“네. 속성 능력만 최소 8가지에 요.”

용암, 나무, 연기, 철…… 등등. 종 류가 많다.

그렇다고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 진 않는다.

가장 대중적인 속성인 불, 전기, 얼음, 빛이 그렇듯. 각 속성에는 장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천우의 주특기는 강화계.

발현계 마법사보다 속성 의존도가 떨어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흐음.”

나는 진천우와의 전투에서 위협적 일 만한 능력들부터 살폈다.

그리고 순간 놀라움을 느꼈다.

“중력 마법에 환술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특이한 능력이

몇 보였다.

나와 싸울 때는 왜 사용하지 않았 나 의문이 들 정도로.

예를 들면 술식안(術式眼).

술식을 담은 눈을 뜻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이미 발동했는데 눈치를 못 챈 건가.”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진천우가 이상할 정도로 회피 능력이 뛰어나 긴 했었다. 이미 발동된 상태였을 지도 모르겠네.

“......흐음.”

나는 서류를 살피며 나에게 위협될 만한 능력을 몇 가지 간추렸다.

속박, 중력, 환술, 술식안, 방벽, 무 효, 소환술, 봉인술, 육체 강화, 신 비 강화 정도일까.

최대한 줄여봤는데도 10가지가 넘 긴 하네.

문제는 나머지 5개. 아니, 4개의 능력이 뭐냐는 건데.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어요.”

남은 소수 일족의 능력은 외부자의 혜택을 뒤져서 추리해보던가, 아니 면 피코를 통해 알아내면 되겠지.

그때 한세연이 말했다.

“전해줄 게 더 있어요. 사실 이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 였거든요.”

요..2”

“소수 일족과 관련된 고대 설화에 요.”

그녀는 또 다른 서류를 내게 넘겼 다.

그녀의 말대로 서류 안에는 복잡한 술식 연구 기록과 함께 고대 설화가 담겨 있었다.

아니, 설화라기보다는 고대 신화라

고 해야 할까…….

이 신화는 ‘신비’와 관련된 신화였 다.

“소수 일족이, 신비와 형제다. 이런 내용이네요.”

“정확히는 소수 일족의 뿌리는 신 비와 같다는 내용이에요.”

소수 일족이 가진 신비의 친화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힘을 이용하여 진천우는 김창현 이라는 실험체를 만들어내 다른 시 간대의 차원으로 보낸 것이었고.

나는 다음 내용을 살폈다.

뒤에는 이야기가 아닌, 복잡한 술 식으로 만들어진 정보였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수많은 정보가 내 머리에 스며들었다.

“……읏.”

“ 괜찮아요?”

한세연이 내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인식했다.

“……불사를 너머 신이 되기 위한 조건.”

“네‘?”

나는 한세연이 준비한 서류를 더 살폈다.

이 술식의 출처들은 과거 협회에서 김창현의 실험을 진행했던 ‘선현 가 문’으로부터 얻어낸 정보들이었다.

“모든 소수 일족의 피를 합쳐서 이 룰 수 있는 건 다른 차원의 이동뿐 만이 아니에요.”

진천우의 또 다른 숨겨진 목적.

오래전부터 신이 되기 위해 갈망한 그의 노력.

불완전한 인간을 벗어나 완전한 인 간이 될 방법.

“소수 일족의 피는 불사와 함께 신 이 되기 위한 재료였어요.”

이 정보에 따르면 진천우는 이미 반쯤 신이 되기 위한 조건을 달성했다.

만약 그가 이서준의 육신을 빼앗게 되면 그는 ‘불사’가 아닌 곧바로 ‘신’의 권능을 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정보에 당황하 던 그때.

우우웅!

스마트 폰에서 비상 알람이 떠올랐 다.

나는 곧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안전 안내]

[20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폭동 발생. 안전에 유의하세요.]

짧은 경고 메시지. 그 밑에는 사진 이 하나 걸려있었다.

불타는 건물과 쓰러진 사람들.

그리고 벽에는 붉은 피로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신이 돌아왔다.’

……자운이 저지른 짓이 아니다.

전 세계에 홑어져 있던 진천우의 추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창가를 통해 스며들어오는 아침 바 람을 느끼며 최서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동시에 느껴지는 두통과 어지러움.

최서윤은 눈을 찌푸리며 관자놀이 에 손을 짚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 기억이 술을 마시고 선배님 과 함께 밖으로 나온 거였는데.

그 뒤로…….

“……기억이 안 나.”

최서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보는 낯선 방 안.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긴 어디야?”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낯선 방에 서 깨어난다니. 지금까지 살면서 이 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이것과 비슷한 상황 의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설마.”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놨다.

다행히 양말이 벗겨진 것 말고는 어제와는 큰 차이가 없다.

침대 옆을 돌아봐도 마찬가지.

다른 특별한 누군가(?)가 옆에 잠

들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최서윤은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을 느끼다가 당시 자신이 취해서 저지 른 만행들을 떠올렸다.

술의 마력에 정신이 오락가락해져 그에게 보여주지 못 할 짓들을 저질 렀다.

온갖 귀척, 애교부터 시작해서 질 질 끌려다니며 한 행동들…….

“질렸겠지……?”

그녀는 손바닥 위로 뾰족한 얼음의 송곳을 만들어냈다.

“……이대로 죽을까.”

아니다. 죽긴 죽더라도 최소한 내 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파악해 야 한다.

여긴 어디일까.

처음 보는 방이었다. 넓은 창가에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 이 상당한 고급 아파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선배님의 집에서 외박한 건가?”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을 때 이게 가능성이 가장 높기는 하다.

……이건 나쁘지 않을지도.

물론 사과는 꼭 해야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천천히 침대 밖으로 나왔다.

문으로 걸어가자 도마 위로 칼질하 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뭐야…….

설마 날 위해서?

최서윤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선배님?”

문 너머에서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소리가 멈추고는

그가 뒤를 돌았다.

“일어났어요? 몸은 어때요?”

순간 최서윤의 동공이 크게 떨렸 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으니까.

“……한세연님?”

그 정체는 한성가의 주인, 한세연 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다가 어 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한세연은 그런 그녀를 향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어제 선우 씨가 서 윤 씨 덕에 고생 많이 한 거.”

“최서윤. 너 뭐 하다가 이제 와?”

토요일 오전.

갑작스러운 특무팀의 호출로 최서 윤은 바쁜 발걸음으로 협회로 출근 했다.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 그녀는 억울함을 느꼈다. 오늘은 그녀의 휴 일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아냐. 너 원래 오늘 쉬는 날

이잖아. 출근한 것만으로도 잘한 거 지.”

요원 중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윤하영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그녀를 위아래로 살폈다.

“서윤아. 너 어제랑 옷차림이 같은 거 같은데. 설마 외박했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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