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4화 (503/535)

최일현을 이곳에서 죽게 하는 건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 너무나도 큰 손해니까.

나는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아뇨.”

내 말에 최일현이 나를 바라봤다.

“제가 어떻게서든 막아볼게요. 선

생님이 모두를 대피시키세요/

“......뭐?”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조금 위험한 방법이라 쓰기는 꺼려 졌지만, 지금 내게 최선의 방법은 역시 이것뿐이다.

뭐, 크루아스 때도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괜찮다.

그리고 내가 나서자 과거의 일을 떠올리듯 모두가 두 눈을 떨었다.

“……김선우? 무슨 짓을 하려고?”

“선배님?”

우우웅!

강한 마력이 내 몸 안에 깃들었다.

이내 내 몸 전체에 복잡한 술식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술식은 내 몸을 넘어 내가 밟고 있는 땅에도 그려졌다.

허공에도 술식이 생성되기 시작했 으며 술식의 범위는 공기를 타고 흐 르듯 점차 넓어졌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진천우도 이 마법의 정체를 모르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술식은 점차 공간을 집어삼키더니 진천우의 주변도 삼켰다.

나는 멍하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를 바라보았다.

[‘술식의 세계’를 발동합니다.]

술식의 세계.

자운의 토벌을 위해 45만 포인트 를 사용해 얻은 SS 등급의 스킬이 었다.

주변 환경을 내 의지로 움직이는 술식으로 덮어씌우는 대마법으로 보 조계 마법의 궁극이라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술식의 세계는 150년 전 4 계통을 정립한 위대한 마법사, ‘태

휘’가 고안해낸 비전 마법이기에 지 금은 실전되어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

“신기한 마법이군. 어떤 구조로 이 루어진 거지?”

주변을 잠식하는 술식을 바라보며 진천우가 중얼거렸다.

나는 내 몸 전체에 그려진 술식을 바라보다가 하늘 위를 올려보았다.

진천우의 의지로 움직이는 수많은 가고일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 생겨난 술식에 의지를 불어 넣자 빛이 뿜어지더니 그들을 사슬로 묶으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그것을 본 진천우가 멍하니 말했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마법이다…… 현실 속에 새로운 세계를 덮어씌우 다니.”

단순한 감상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이 마법의 본질이 전부 담겨 있 었다.

그 짧은 시간에 [술식의 세계]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한 것이다.

“세계는 술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자신의 술식으로 덮어씌운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건 새로운 세 계를 만들어냈다는 의미.”

진천우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세계를 창조한 신이 됐구 나.”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홀렸다.

과장된 표현이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내게 유리한 환경을 구성했다.’가 정확한 표현일 테니까.

이 공간 안에서는 마법을 더 빠르 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최일현에 게 말했다.

“모두 데리고 어서 피하세요.”

“그럴 순一”

그때였다. 진천우의 전신에서 마력 이 뿜어지더니 이서준을 향해 돌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바닥에 깔린 술식을 발동했고, 동시에 나와 진천우를 제 외한 모두가 술식 밖으로 튕겨 나갔 다.

“……크윽! 김선우!”

분기에 찬 이서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술식을 발동했다.

우우웅!

동시에 바닥에 깔린 술식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결계가 진천우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리고 수많은 사슬이 튀어나오며 진천우를 향해 쏘아졌다.

“쳇.”

진천우는 빠르게 흑천을 휘둘러 쏘 아지는 사슬을 막아냈다. 이후 목표 를 바꾼 듯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이 공간 안에서 나도 쉽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나는 다시 바닥에 깔린 술식을 발 동했다. 다시 한번 수많은 사슬이 솟구치고 놈을 향해 쏘아졌다.

놈은 이번에도 흑천을 휘둘러 사슬 을 막아냈다.

정형화된 사슬 공격이 통하지 않는 다는 건 알았다. 그렇다면 새로운 패턴을 섞어 공격하면 그만.

우우우응!

앞으로 달리던 진천우의 발밑의 술 식에서 강한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술식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진 천우를 집어삼켰다.

X O O.

폭발로 생겨난 연기 속에서 작은

화상을 입은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쉽지 않군.”

후우. 진천우는 숨을 내쉬더니 잠 시 멈췄던 몸을 다시 움직였다.

파앗!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 임이 었다.

나는 놈■이 무엇을 노리는지 눈치챘 다.

[술식의 세계]의 영역 밖으로 빠져 나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볼 내가 아니다.

나는 다시 술식을 발동해 영역 전 체에 결계를 발동했다.

결국 진천우는 발걸음을 멈추곤 내 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런 놈에게 말했다.

“어딜 빠져나가려고. 얌전히 여기 에 있어.”

“……귀찮은 짓을 하는구나. 시간 을 끄는 게 의미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역시. 놈은 이 능력이 가진 문제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이런 시간 끌기는 사

실 무의미하다.

술식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하기에 오 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내 목적은 시간을 끄는 게 아 니니 상관은 없다.

애초에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으 면 크루아스를 토벌하고 얻은 능력 인 ‘균열 조작’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이었을 테니까.

물론 그것도 상당한 마나가 필요해 오래 유지하긴 힘들겠지만.

나는 그를 향해 작게 웃었다.

“시간을 끌려는 게 아니니까.”

진천우는 내 웃음을 보고는 무언가 느낀 듯 표정을 굳혔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마력을 술식 에 주입했다.

동시에 공간에 그려진 모든 술식의 형태가 서서히 변하더니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그것을 본 진천우는 표정을 굳혔 다.

“……혼돈. 지금 이게 무슨 짓이 지?”

변화한 술식의 형태를 통해 내 의

도를 눈치챈 모양이다.

그리고.

“김선우? 너 지금……

최일현 역시 그것을 눈치챈 듯 떨 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러자 이서준이 물었다.

“저 술식이 뭔데 그래요?”

최일현이 말했다.

“마력 폭탄이다.”

“……마력 폭탄이요?”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과 거의 경험으로 내 의도를 단번에 눈

치챈 모양이다.

“......설마. 또?”

“저, 저거 미친 거 아니야? 또 그 짓을 하겠다고? 야! 김선우!”

“서, 선배님?”

“선우야!”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 시하고는 술식의 세계에 가득한 폭 탄 술식을 바라봤다.

이 영역 전체에 깊은 마나가 담겨 있다. 내가 낼 수 있는 화력의 최대 치라 할 수 있었다.

이 술식들을 동시에 폭발시킨다면

아무리 놈이라도 성치는 않겠지.

피하는 게 불가능할 테니 말이야.

“미친 짓을 하는군. 목숨이 아깝지 않나?”

“물귀신 작전이 내 전문이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사이 술식의 빛은 점차 강해졌 다.

“이런 짓을 해봤자 죽는 건 너뿐이 다. 꽤 상당한 마력이기는 하나 고 작 이 정도로는 날 죽일 수 없어.”

“대신 꼼짝도 못 하는 반 불구로 만들 수는 있지. 너. 지금 불사 아

니잖아.”

진천우가 이루려 하는 ‘불사’는 단 순히 죽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게 아 니다.

어떤 외부의 공격도 통하지 않은 완전한 존재를 뜻한다.

내 말에 진천우가 표정을 굳혔다.

“……무시무시한 자를 이 세계에 불러들였군. 설마 이런 사악한 계획 을 준비했을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사악한 계획이라니. 희생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계획이라고.”

진천우는 고개를 돌리고는 자운에 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비상 탈출의 신비를 사용해 이곳에서 벗어나라.”

“……뭐? 아니, 네?”

베르트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 다.

그들은 현재의 진천우가 자신의 신 인지 아닌지에 대해 갈등하는 것 같 았다.

“혼돈이 사용한 술식에 의해 유적 지에 깔려 있던 이동 방해 술식이 풀렸다. 지금이라면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다.”

“……시, 신께서는 괜찮으신 겁니 까‘?”

“나는 괜찮다. 곧 뒤따라갈 테니 먼저 이곳을 떠나라.”

진천우에게는 1년에 한 번, 위기의 순간에 발동되는 ‘생환의 가호’가 있다.

아마 그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거겠 지.

자운은 한참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이시여……

베르트는 곧 품 안에서 투명한 빛 을 뿜어내는 돌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을 놔둘 최일현이 아니

었다.

그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자운 을 향해 방출했다.

파앙!

그 순간. 베르트를 중심으로 공간 이 일그러지더니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쳇.”

최일현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떠난 놈들의 자리를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운을 미리 처 치할 걸 그랬나.

진천우와의 1:1 상황에 집중하다가 실수를 범했다.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나는 점차 새하얗게 빛나는 공간을 바라보다가 놈에게 말했다.

“폭발에 휩쓸리고 완전히 회복하려 면 아무리 너라도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이 술식에는 저주와 비슷한 힘이 담겨 있거든. 아마 못 해도 반 년은 걸리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반드시 찾아내 죽여주마. 네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말이 야.”

순간 진천우의 두 눈에 새로운 감 정이 드리웠다.

그 감정은 ‘공포’였다.

“무슨 수로 날 찾아내겠다는 거지? 네 초재생능력으로도 살아남는 건 불가능할……

진천우가 순간 말을 멈추었다.

“……설마 죽지 않는 건가?”

아무래도 놈은 김창현의 기억을 갖 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한 번 죽음에서 되살아났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니.

스으으...

공간을 가득 채운 술식의 빛은 점 차 강해졌다.

나는 놈을 향해 다시 웃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동시에 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폭 발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

번쩍!

눈 부신 빛과 함께 유적지를 가득 채운 술식의 공간이 그대로 일그러 졌다.

거대한 폭발이 일었지만 그 어떤 소리도 울리지 않았으며, 김선우와 진천우가 있던 자리엔 거대한 웅덩 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빛이 점차 사라지자 그 안 에는 끔찍한 형태의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진천우였다.

“......쿨럭.”

진천우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 을 만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육체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 로 변형되었고, 당장 숨을 쉬는 것 도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김선우의 모습은 그 어 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 김선우.”

이서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김선우는 폭발에 휩쓸려 그대 로 소멸된 듯싶었다.

모두가 충격에 빠져있던 그때, 진 천우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 했다.

육체의 한계가 찾아올 때 발동되는 생환의 가호가 발동되는 것이었다.

잠시 뒤 강한 빛과 함께 그의 육 신은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주변의 공기가 떨리더니 유 적지 내부를 갈라놓았던 수많은 차 원 균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 안돼……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다.

진천우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김선

우는 폭발에 휩쓸려 그대로 소멸되 었다.

그가 남아 있던 자리에는 그가 사 용했던 무형의와 같은 아이템들만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폭발 직전, 진천우와 김선우가 무언가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 마력에 의해 들리지 않았기에 남은 이들은 둘 사이에 무 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겨우 다시 만났는데. 또 이렇 게 떠난다고?”

윤하영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서준은 주먹을 꽉 쥐고는 마음속 깊이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또다시 소중한 친구를 무력하게 떠 나보냈다.

그리고, 최서윤은 초점을 잃은 눈 으로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충격으로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 다. 꿈. 그녀는 이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꿈처럼 여겨졌던 모든 것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돼. 어째서, 어째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왜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 거야. 왜. 도대체 왜.

……그때.

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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