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짓들을 벌여 놓고선, 염 치도 없이 되살아났구나.”
최일현의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매일 밤 생각해. 네가 저지른 행 동. 소중한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자 의 심정…… 너, 윤경이에게 미안한
감정은 있냐?”
그 말에 이서준은 표정을 굳혔다.
……이윤경.
진천우에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이 름이 었다.
진천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 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쓰레기가.”
최일현을 중심으로 강한 마력의 기 운이 퍼져 나왔다.
그 압도적인 기운에 마력의 파동이
크게 퍼지고, 이내 마력을 발끝에 담아 진천우를 향해 돌진했다.
진천우는 빠르게 흑천을 휘둘렀지 만, 최일현은 가볍게 그 공격을 피 해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마력을 가 득 담아 그의 배에 쑤셔 박았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진천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최일현은 그런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인간도 아니게 됐구나.”
최일현의 말에 진천우는 자신의 상 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많이 강해졌구나. 이전과는 비교 도 안 될 만큼.”
“……네가 죽고 18년이라는 세월 이 흘렀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너 에게 절대 지지 않아.”
“……18년.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 군.”
진천우가 말을 이었다.
“인정하겠다. ‘현재’의 너는 ‘과거’ 의 나보다 강하다.”
그렇게 말한 진천우가 하늘의 균열 을 다시 올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의미가 없어. 주도권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 로 넘어갔으니까.”
«.C꼬
뜬금없는 진천우의 말에 최일현은 의문을 느꼈다.
진천우는 여전히 하늘의 균열에 시
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나는 실패했다. 오랜 시간 꿈꿔왔 던 모든 것을 잃었으며, 지금 내게 는 그 어떤 목적도 남아있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지?”
“미래가 바뀌었다. 이런 상황을 대 비해 네 번째 일지를 작성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바보 같은 짓이었지.”
진천우는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말 을 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알아. ‘나’는 이 거 대한 계획의 주도권을 절대 넘겨주 지 않을 거야.”
“거대한 계획의 주도권?”
“……나의 세계가 최초가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최일현이 눈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최초라니? 저 차원의 통로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 어지고 있는 건데?”
그때 였다.
우우우우웅!
천지가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늘 위의 균열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지더니, 허공에 수많은 균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진천우는 담담 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작됐나?”
곧 허공에 떠오른 균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차원이 움직이고, 공간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최일현은 당혹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지닌 그 어떤 마법 지식조차
이 현상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공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모두가 서 있던 장소의 풍경이 바 뀌어 있었다.
계단 위의 거대한 제단.
그 위에는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보랏빛의 마력 기둥이 있었고, 하늘 에 생겨난 거대한 균열에서는 신비 한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제단에 선 남성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보랏빛의 기둥은 하늘의 균열과 소
멸 되더니 하늘 전체에 거대한 술식 을 만들어냈다.
제단 위의 남성이 말했다.
—……세계에 흐르는 무질서가 느 껴진다. 혼돈에 뒤덮인 세계란 이런 것이었나?
“..… ‘크윽!”
그때 진천우의 짧은 신음이 들려왔 다.
모두의 시선이 진천우를 향하고, 베르트가 그를 불렀다.
“……신이시여?”
진천우의 영혼이 그의 육신에서 연 기처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곧 육신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남아있던 육신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이후 진천우의 영혼은 제단 아래의 남성에게 빨려 들어갔다.
“읏!”
진천우의 영혼이 담기자 남성이 짧 게 신음을 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모두가 제단 위의 남성을 다시 올
려보았다.
그리고 베르트가 멍하니 그의 이름 을 불렀다.
“……김창현?”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창현이었다.
그는 어지러운 듯 여러 번 고개를 흔들더니, 잠시 뒤 천천히 눈을 떴 다.
이내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보 더니 말했다.
“……대단하군. 이게 모든 소수 일 족의 피가 섞인 육체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창현이 지상 을 내려보았다.
그들을 쭉 둘러보던 그는 제단의 계단을 내려왔다.
느릿느릿하면서 차분한 발걸음.
그의 행동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최일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이상 함을 느꼈다.
과거에 김창현과 한번 겨루었지만, 지금 그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은 이 전과 달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인격이 바뀌었다.
“……넌 누구지?”
김창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최일현을 바라보고는 자운에 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베르트가 물었다.
“……너. 신께 무슨 짓을 한 거 야‘?”
“내가 너희의 신이다.”
김창현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진천우의 손에 쥐어져 있던 흑천이 허공에 떠오르며 김창현의 손에 쥐어졌다.
그것을 본 베르트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혹천은 주인 ‘진천우’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무기.
흑천이 그를 주인으로 인식한 것이다.
“넌 누구냐? 김창현의 인격은 어떻 게 됐지?”
최일현은 깊은 긴장감을 느끼며 김 창현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내 그의 피부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의 얼굴은 ‘진천우’의 얼굴로 바뀌었다.
“......r
“그는 사도로서 임무를 다했다. 내 안에 잠들었지.”
그러더니 그는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서준. 살아있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서준은 끝없 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김창현은 이상 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혼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어디에 숨은 거지?”
그때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구미 호가 말했다.
“저 녀석, 위험하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구미호의 몸에 서 강한 빛이 뿜어지더니 거대한 여 우가 되었다.
구미호는 곧바로 놈을 향해 달려들 었고, 그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바닥에서 빛의 줄기가 솟아 오르더니 구미호의 몸을 순식간에 묶어 냈다.
그것을 본 엘린은 큰 충격을 받았 다.
“……루, 룬의 속박?”
구미호의 몸이 완전히 묶이자, 김 창현은 그를 향해 혹천올 휘둘렀다.
[끄아아아악!]
검에서 쏘아진 검기에 의해 구미호 의 몸에 기다란 검상이 그어졌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재앙급 마 수를 제압한 것이었다.
그 압도적인 힘에 모두가 공포를 느꼈다.
이후 그는 손바닥 위로 혼탁한 마
력을 구현하더니 하늘 전체에 구현 된 거대한 술식을 향해 방출했다.
파앙!
술식은 곧 하늘 전체에 강한 빛을 뿜어내더니 작동되기 시작했다.
“……저건 무슨 술식이지?”
그때 였다.
“으으읏!”
엄청난 기운이 지상 전체를 짓눌리 고, 지상의 모두가 영혼이 빠져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김창현은 괴로움에 몸을 웅크린 이 서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서준. 나의 불사를 위해 희생하 거라.”
그렇게 이서준을 향해 손을 뻗으려 는 그 순간.
파아아앙!
어디선가 쏘아진 마법의 원기둥이 하늘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기둥은 곧 하늘의 술식에 닿더니 새로운 빛을 자아냈다.
그리고, 지상을 짓누르던 힘이 서 서히 사라지더니 하늘 위의 거대한 술식이 형태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천우는 당황 하며 제단의 위를 올려보았다.
한 남성이 제단 위에서 마력을 주 입하고 있었다.
이내 술식 해체에 성공한 듯, 그는 가면을 벗으며 이마의 땀을 흠쳤다.
—……후우. 아슬아슬했네.
그 모습을 본 지상의 모두의 눈이 크게 떨렸다.
누군가는 경악했고, 또 다른 누군 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진천우는 그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 얼거렸다.
“......혼돈.”
거대한 제단 위에서 나는 지상을 내려 보았다.
801과 이서준 일행. 그들의 맞은편 에 선 자운.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모든 사 건의 흑막인 최초의 세계의 진천우.
이번 에피소드의 주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며 한 명 한 명 얼굴을 확인했다.
하나 같이 놀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왔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다만.
“기, 김선우……?”
그중 자운은 충격을 넘어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퍽 웃 기다.
나는 이서준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 다.
그들은 여러 복잡한 감정에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가움, 기쁨. 그리고 지난 시간
마음고생 하며 쌓인 서러움…….
“……김선우.”
그때 이서준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가만히 그의 시선을 마주하다 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얼굴을 드러내고 재회하는 순간이 온다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있 었으니까.
“잘 지냈냐?”
그 순간 이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w..너 진짜.w
그렇게 웃음을 흘리던 이서준이 나 를 올려보며 대답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가 그렇게 떠났는데 잘 지냈겠어?”
장난기가 담긴 대답이었지만 일부 진심이 담겨 있어 괜히 미안한 기분 이 느껴졌다.
이후 나는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아라, 신영준, 릴리…….
재회의 감동도 잠깐이었는지 그들 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
“그럴 줄 알았어. 유령. 저거 김선우가 맞았다니까.”
“……역시는 역시네.”
“뭐야? 기, 김선우야?”
이후 잠시 윤하영과 눈을 마주치다 가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 고 있었다. 눈에 고인 물기가 당장 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선배님.”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씁쓸한 미 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진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미안.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었 어.”
내 말에 최서윤은 눈가를 쓱 닦더 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재회를 나누던 그때.
“……어떻게 영혼 전이의 술식을 풀어낸 거지?”
진천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진천우가 의문에 잠 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혼돈이라 할지라도 술식의
해독법을 얻어내는 건 불가능할 터. 최초의 세계에 다녀온 것이 아닌 이 상에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진천우가 눈을 찌푸렸다.
“설마?”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굳이 나서서 놈의 의문을 해소시켜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최초의 차원을 관측한 건가?”
아무런 설명이 없었음에도 그는 단 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최초의 세계를 관측했으며 그 곳에서 진천우와 김창현의 대화를 통해 ‘영혼 전이의 술식’과 그 해독 법을 알게 되었다.
이 술식은 이름 그대로 영혼을 전 이시키는 술식이다.
진천우가 김창현의 육체를 차지하 기 위해 사용된 술식이며, ‘불사’를 이루기 위해 이서준을 홉수할 용도 로도 사용될 예정이기도 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놈의 계획을 방해할 수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진천우 는 불사를 이루었을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겠지.
신비의 조언대로 [차원 여행]을 사 용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귀찮은 짓을 저지르는군. 덕 분에 계획이 조금 미뤄지게 되었 어.”
진천우의 몸을 중심으로 엄청난 마 력의 파동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숨이 조일 듯 불길한 마력에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렇게나 불길한 마력은, 크루아스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으니 까.
“......크윽.”
나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천우를 저지하기 위해 남은 마력 을 모조리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숫자에서는 우리 쪽이 분명한 우위 에 있다.
전 세계에서 손꼽힐 만한 S등급 마법사들이 모여있으며, 그중에는 최일현 같은 최고의 마법사도 끼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마냥 좋은 상황이라고는 할 순 없었다.
‘3번째 세계’의 진천우라면 모를까, ‘최초의 세계’의 진천우는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디 혼돈의 실력을 볼까?”
놈의 말과 동시에 나는 곧바로 장 막을 펼쳤다.
아찔한 살기에 의한 본능적인 움직 임이 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장막에서 거대한 울림이 퍼져 나왔 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이 검기를 날려 나를 공격한 것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본능이 아닌 마력을 읽어내고 장막을 펼쳤더라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일지도 모른다.
“......쓰읍.”
최초의 진천우.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한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