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8화 (497/535)

전성기에 가까운 나이이기 때문인 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심상 치 않았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 히 뒤를 따랐다.

김창현은 어느덧 계단의 끝에 올랐 다.

마력을 사용해 빛을 번쩍이자 주변 이 밝아졌다.

돌로 만들어진 긴 통로였다.

눈앞에는 거대한 쥐 몬스터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김창현은 마법을 이용하여 간단히 처치했다.

“……여기 설마 탑인가?”

아무래도 이곳은 탑인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풍경은 탑이 분명했다.

……근데 왜 탑을 공략하는 거지?

이후로도 김창현은 계속해서 탑의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함정이 그의 앞 길을 가로막았으며, 심지어 퍼즐까 지 등장하며 그의 탑 공략을 방해했다.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퍼즐과 각종 함정을 풀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주변에 분명 있을 텐데.”

그렇게 어느 지점에 도착한 김창현 은 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 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무엇을 찾는 지 알 것 같았다.

외부자의 혜택을 통해 그의 앞에 숨겨진 술식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외부자의 혜택이 없는 그였 기에 오랜 시간 주변을 탐사하다가 겨우 숨겨진 술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 있었군.”

그가 마력을 주입하자 벽은 순식간 에 허물어졌다.

벽 너머에 다시 생겨난 계단.

김창현은 계단을 타고 오르기 시작

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심장 이 뛰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상황이, 과거 내가 겪었던 일과 완전히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이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두통을 참아 내고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자 환한 야 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잔디와 하늘에 떠오른 아름

다운 별.

나는 이 풍경을 알고 있었다.

이내 탑의 의지가 들려왔다.

[증명의 탑의 숨겨진 층, ‘우주의 들판’에 입장했습니다.]

[증명의 탑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이 탑의 정체는 ‘증명의 탑’이었다.

이번 생에서 내가 최초로 공략했던 그 탑 말이다.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참고로 증명의 탑은 원작의 본편에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증명의 탑을 공략할 수 있던 이유는 현대 마법사의 엔딩 이후를 다루는 ‘외전’ 덕분이었으니까.

“……외전이 김창현의 시점으로 다 뤄진 거였어?”

—꺄아아아.......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정령의 형상 이 서서히 사라졌다.

전투에서 승리한 김창현은 짧게 숨 을 내쉬었고, 잠시 뒤 탑의 의지가 들려왔다.

[숨겨진 층, ‘우주의 들판’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증명의 탑의 숨겨진 층이 공략됐 다.

밤하늘에서는 이것을 축하하듯 아 름다운 별빛들을 반짝였으며,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깊은 혼란을 느꼈 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원작, 현대 마법사는 무엇이며, 엔 딩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 가.

외전은 대체 뭐고…….

그때 그의 앞에 검은빛의 돌덩어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우주의 파편(유물)]

분류 : 재료

설명 : 신비한 힘을 품은 조각

우주의 파편.

숨겨진 층의 보상으로 나도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일부 특수한 마공학 시설을 작동하 기 위한 원료인데 몇몇 신비 연구소

에서 사용되는 귀품이다.

“……돌아갈까.”

보상을 챙긴 김창현은 증명의 탑 밖으로 나왔다.

“저기요.”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탑을 지키던 협회의 요원이 김창현을 불렀다.

확인되지 않은 수상한 자인 것을 깨닫고 신분 검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김창현은 다가온 요원을 가만히 내 려보더니 마력을 방출했다.

“……컥.”

털썩.

요원은 한순간에 싸늘한 시체가 되 었다.

김창현은 무감정한 눈으로 그를 내 려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 었다.

저 녀석, 사람을 죽여놓고 그 어떤 죄책감의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자운과 같은 악인이라는 중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김창현은 포탈을 이용해 남해 어딘 가의 작은 무인도에 도착했다.

신비함이 느껴지는 섬이다.

밤하늘을 밝히던 달과 별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고, 자연의 마력도 거 의 느껴지지 않는다.

김창현은 섬의 중앙으로 걸어가 마 력을 방사했다.

동시에 섬에 펼쳐져 있던 환영 결 계가 무너지더니 지하로 향하는 계 단이 생겨났다.

나는 그의 뒤를 따르며 이곳이 어 디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이곳은 연구소였다.

그것도 미래의 마공학 기술로 만들

어진 최첨단 연구소.

“오셨습니까?”

연구소 안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김 창현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를 보며 조금 놀랐다.

그의 정체는 자운의 나타샤였다.

“그분은 어디 계시지?”

“B 게이트 3연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다.”

김창현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베르트, 진과 같은 자운의 멤

버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내 손에 사망한 스카와 같은 멤버들도 등장 해 김창현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외에 처음 보는 얼굴의 흰 가 운을 입은 연구자들도 발견할 수 있 었다.

나는 그 상황을 바라보며 혼란을 느꼈다.

생각지 못한 미래의 모습을 보며 불편한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 다.

김창현은 계속 길을 걸었고, 어느 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3 연구실]

자동문이 열리고 김창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느껴지는 불길한 공기…….

잘생긴 외모의 한 남성이 안에 있 었다. 그는 김창현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왔나?”

김창현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의 이름을 말했다.

“……진천우.”

진천우는 김창현이 얻은 우주의 파 편을 거대한 원형 기계 장치에 집어 넣었다.

우우웅!

동시에 기계 겉면에 그려진 수많은 술식이 빛을 발하더니 작동되기 시 작했다.

저건 무슨 기계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속에

보이는 수많은 신비와 마력이, 과거 에 보았던 ‘관측의 악마’ 이상의 기 계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예언의 흐름대로 모든 상황이 최 악으로 홀러가고 있지만, 계획에는 차질이 없다.”

진천우가 기계를 올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김창현은 대답하지 않았고, 진천우 는 말을 이었다.

“혈육의 죽음으로 불사는 이룰 수 없게 되었고, 세계의 감시까지 받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됐지만, 이 건 분명 나에게 있어 최고의 상황이

다. 최초의 죽음을 경험하기 전에 남겼던 네 번째 일지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으니 말이다.”

진천우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혼 자 중얼거렸다.

……최악의 상황인데 최고의 상황 이라니.

“……물론 뒤에 있을 계획을 잘 마 무리 해야겠지. 그리고 계획에 가장 중요한 혼돈을 소환할 방법도 찾아 봐야 할 테고.”

진천우는 김창현에게 시선을 돌렸 다.

“그보다 몸은 괜찮나?”

“괜찮습니다.”

김창현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대 답했다.

진천우의 사도답게 그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모습이었다.

“네 몸에 흐르는 소수 일족의 피가 지금은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먼 미래에 시공간과 혼돈에 저항할 힘 을 안겨줄 거다.”

그때 였다.

한참 빛을 내던 기계 속 술식의 빛이 서서히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 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천우는 빠르 게 기계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뒤 기계 중앙의 구체를 중심 으로 강한 마력의 파동이 퍼져 나왔 다.

“......됐다.”

진천우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격이 담겨 있었다.

저 기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리고.

파아앙!

기계를 중심으로 짙은 암흑이 피어

오르더니 주변을 까맣게 물들였다.

이후 아름다운 술식의 빛이 떠오르 더니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풍경은 마치 ‘세계의 기록소’를 보는 듯했다.

진천우는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세계의 기록소를 이 용한 회귀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이 제 남은 건 큰 차원 너머의 혼돈을 불러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저저저적!

최일현은 밤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 낸 차원의 균열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세계의 수많은 비밀과 지식을 알고 있는 그조차,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차원 균열이 생겨나는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깊은 마력이 담긴 지역에서 자연

발생하는 현상과, 누군가가 차원을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

이곳 역시 깊은 마력이 담긴 장소 인 만큼 자연 현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보랏 빛 마력 기둥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저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균열이 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설마 김창현이?”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놈이라면

역시 그놈밖에 없다.

자운이 한 짓이라기에는 토벌 우선 권에 밀려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까.

“저 균열, 대체 뭐야……?”

엘린이 중얼거리자 그 옆에 서 있 던 8()1의 또 다른 숨겨진 여성 멤 버가 멍하니 말했다.

“……차원의 통로.”

같은 시각.

섬 중앙에 나타난 거대한 차원 균 열을 보며 이서준 일행은 깊은 당혹 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늘은 점차 갈라지고, 불길한 기 운이 유적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야야. 무슨 일이냐? 아니, 저 거 뭐냐고!”

“차원의 통로에요.”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중얼거림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최서윤이 떨리는 눈으로 밤하늘의

균열을 올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난 3년간 김창현의 흔적을 쫓으면서 발견됐던 술식들 기억해 요?”

기억하고 있다.

김창현이 다녀갔던 유적지에서 발 견됐던 술식의 조각들.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차원의 통로 에 대한 내용을 품고 있었다.

다만 김창현이 이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저게 차원의 통로라는 건…… 김 창현이 저걸 만들어냈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이서준의 표정이 자칫 심각해졌다.

자운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김 창현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이곳에 있는 멤버들로 해결하기엔 사건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어떻게 할 거야?”

유아라의 물음에 이서준은 잠시 생 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균열을 만드는 기둥 쪽으로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적어도 무 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확인해야 하 니까.”

그의 말에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렇게 빛의 기둥 방향으로 달려가 려는 그때.

저저저적!

허공에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깨진 유리 조각처럼, 공간의 금이 커지더니 쾅! 하며 박살 났다.

릴리는 눈앞에 생겨난 금이 자신들 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

았다.

“차원에 갇혔어!”

“이게 무슨……

그때 였다.

저적, 저저적!

그들의 뒤에 새로운 균열이 생겨나 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서준은 뒤를 돌아 균열 너머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길이 있다. 아마 유적지 내 부의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겠지.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지만 희망이 생겼다.

“저기로 이동하자!”

이후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 던 나는 ‘시공간 도약’을 통해 1년 뒤로 이동했다.

연구소의 풍경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작동되는 기계 앞에 선 진 천우의 얼굴에는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세계의 기록소에 접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혼돈을 불러낼

방법을 찾을 수가 없군.”

진천우가 깊은 고뇌를 담아 중얼거 렸다.

아마 놈들은 다른 차원의 존재인 ‘나’를 소환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하기 위 해서는 먼저 소환되는 세계를 이해 시켜야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보 전달에 한계가 있어.”

그때 그의 앞에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너.

성무제의 배경이었던 ‘국제 마법

연구소 위젠’ 소속의 연구자로 활동 했던 자운의 스파이였다.

그는 진천우에게 고개를 조아리곤 입을 열었다.

“혼돈을 불러내는 데에 가장 큰 걸 림돌은 큰 차원을 넘을 수 있는 정 보 전송 용량의 한계…… 혹시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베르너의 말에 진천우가 그에게 시 선을 돌렸다.

“문자를 전송하는 겁니다.”

“..문자?”

“문자는 적은 용량을 지니고 있어 혼돈을 낚아낼 미끼로 유용할 겁니

다.”

진천우는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문자의 전송. 전에도 말했지만 한 계가 있다. 무엇보다 다른 차원의 존재가 과연 그 방대한 정보를 관심 있게 읽으려 할까?”

죽음의 섬 유적지에 담긴 기록을 읽은 나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 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시 키느냐였다.

그때 베르너가 눈을 빛내며 말했

“문자를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야기?”

“예를 들면 ‘소설’ 같은 형식으로 말이죠. 이 방법이라면 다수의 혼돈 을 끌어들이기에도 용이합니다.”

“……소설이라.”

진천우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베르너는 말을 이었다.

“세계의 기록소에 담긴 정보로 인 공 지능을 이용하면 큰 차원의 혼돈 이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서준을 주인공으로 만든다면 소환된 혼돈에게 목적을 부여하기도 쉽겠죠.”

그때 김창현이 끼어들었다.

“……참신한 방법이지만 한계가 있 습니다.”

그의 말에 진천우와 베르너가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 세계의 많 은 시간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서준의 죽음 이후의 시 간 역시 다뤄야 하죠. 하지만 불행 한 최후를 맞이한 이서준의 이야기 를 끝까지 보려 할까요?”

김창현은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소환은 계약 마법. 상대 방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을 겁니다.”

베르너는 차마 반박할 수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진천우가 말했다.

“……아니, 괜찮아 보이는군. 이것 이라면 수많은 혼돈에게 세계를 인 식시킬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실 패 확률도 낮고 선별 과정도 쉬워.”

“……하지만.”

진천우는 김창현의 말을 잘랐다.

“편법을 사용하면 된다. 혼돈의 관 심을 끌 수 있게 희망찬 이야기로 고치는 거야.”

진천우는 말을 이었다.

“물론 세계를 속이는 일인 만큼 쉽 지 않을 거다. 여차하면 계획한 모 든 것이 무너질 수 있겠지. 하지만 충분히 시도할 만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