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 발언에 모두가 큰 충격에 빠 졌다.
“스카가 죽었다고……? 누구한테?”
“그건 나도 몰라.”
백은성은 눈을 찌푸리더니 진의 멱 살을 잡았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걸 왜 몰라?”
“백은성. 진정해.”
나타샤가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그러더니 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상황을 설명해.”
“런던 임무 중에 스카에게 연락이 끊겼어. 그리고 잠시 후 마력이 사
라졌지. 보조계 마법사의 짓으로 예 상하고 있기는 한데,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 꽤 지능적인 놈이야.”
“……지능적.”
나타샤는 입을 다물더니 베르트에 게 시선을 돌렸다.
베르트는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놈의 짓일 거야.”
베르트의 뜬금없는 말에 진이 의문 에 찬 표정을 지었다.
“놈의 짓? 그게 무슨 말이야?”
베르트는 대답 대신 품 안에서 작
은 책을 그에게 내밀었다.
“……설마 그분이 남기신 네 번째 일지야?”
“맞아.”
진은 여러 의문을 품은 채 일지를 받았다.
갈색 가죽으로 된 낡은 책이었다.
진은 책을 내려보다가 베르트를 바 라보았다. 베르트는 읽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펼쳤 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많은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각인 되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강한 두통이 느껴져 진은 저 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약 3초의 시간이 홀러……. 식은땀이 진의 뺨을 타고 흘렀다.
이 일지에는 믿기 힘든 정보가 담
겨 있었다.
정해진 운명의 흐름. 세계의 이면. 그것을 부수려 했던 ‘그분’의 노
력....
그리고 자운에게 숨겨진 최악의 적.
“……설마 스카를 죽인 게, 김창현 이야?”
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 였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해상열차에도 우리를 죽이 기 위해 김창현이 따라올 거야.”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렀다. 아지트에서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는 스마트 폰의 날짜를 확인했다.
2037년 6월 21일.
해상열차의 출항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
했다.
[포인트 상점에 입장합니다.]
이 날을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포 인트를 모았다.
오늘, 나는 이 모든 포인트를 사용 할 것이다.
“시간 다 됐는데 언제 나오는 거 야?”
801의 아지트.
엘린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유령 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중요한 할 일이 있다면서 방 안에 들어가더니 3시간째 나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해상열차의 출항일.
더 늦기 전에 승강장으로 이동해야
되는데.
“아까 방 안에서 뭔가 신비한 기운 이 느껴지긴 하던데. 중요한 일을 하시는 건가?”
한지원이 중얼거리던 그때.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 니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一”
엘린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유령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전 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건 엘린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뭐야. 안에 무슨 일 있었어?”
“잠깐 혼자서 통찰의 시간을 가졌 어.”
유령의 반응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별일 없었다는 듯 시니컬한 말투였 다.
“……웬 통찰의 시간?”
엘린이 고개를 갸웃하자 뒤에서 지 켜보던 구미호가 후후 웃었다.
“뭔지는 몰라도 특별한 힘을 얻었
나 보군.”
유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구미호를 바라보더니 장난 스러운 말투로 뒤늦게 대답했다.
“뭐, 479,500만큼의 특별한 힘을 얻긴 했지.”
“479,500?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엘린이 묻자 유령은 어깨를 으쓱였 다.
“그건 알 필요 없고. 자 이제 출발 하자. 해상열차 승강장으로.”
특무팀 임무 수행을 위한 모든 준 비를 마친 이서준은 거실 밖으로 나 왔다.
“준비됐냐?”
거실의 현관 앞에는 신영준이 마중 나와 피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이서준과 인사 를 위해 나온 이현주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이서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얼굴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
는 거 같아. 남극에, 위저드 게임에, 훈련에…… 이번에는 해상열차까 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이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부터 쭉 함께한 소꿉친구였 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이전처럼 자 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야 주변에 동료들이 있어 괜 찮았지만 혼자인 그녀는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몰랐기에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었다.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나도 은근 바빠. 너도 알잖아. 연구 일 쌓인
거.”
이현주의 말에 이서준은 피식 웃었다. 그렇긴 하다.
그녀는 소환계의 촉망받는 유망주.
협회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소환 마 법 연구의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이번 일 끝나면 밥이나 먹자.”
“그래, 조심히 다녀와.”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 린 백색의 검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막강한 신비의 힘에 아직은 다룰 자격이 없다 생각해 봉인해두었던 검, ‘백천’이었다.
이서준을 포함한 특무팀의 유망주 들은 동해의 섬에 위치한 ‘해상열차 승강장’에 도착했다.
승강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도 역과 비슷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 고, 수많은 사람이 열차를 타기 위 해 모여 있었다.
그 사이로 각종 언론사에서 찾아온 기자들도 쉽게 보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
았던 죽음의 섬의 첫 원정인 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 문이다.
“와아. 열차 많다아.”
윤하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함 을 느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여러 대의 해상열차.
철도가 없음에도 신비의 힘으로 부 양하고 있었다.
그 여러 대의 해상열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죽음의 섬으로 향할 ‘오션테일’이라는 이름의 열차 였다.
“우리가 타는 게 이거 맞지?”
“응. 진짜 크고 길다야.”
열차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일반 열차를 위아래 옆으로 5개씩 합친 크기라고 해야 할까?
열차의 길이 역시 끝이 보이지 않 을 정도로 길었다.
“머리 칸이 제일 크네.”
머리 칸은 SS 클래스 티켓을 가진 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특별 구역이 다.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다
른 구역과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뒤로 이어서 2등 칸은 S클래스.
3둥 칸부터 4등 칸은 A클래스.
그 뒤로 5등 칸부터 20등 칸까지 는 B 클래스와 C클래스, 그리고 ‘특 별칸’。] 나눠어져 있다.
이서준은 A클래스였기에 4등 칸을 이용하게 되었다.
“어? 저기 8이이다!”
그때 어디선가 커다란 외침이 들려 왔다.
동시에 내부 모든 사람의 시선이
머리 칸을 향했다.
유령을 선두로 가면을 쓴 8명의 사람이 입장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빠르게 그 모습을 카메라 에 담았다.
—와. 저게 소문의 유령이구나.
—분위기 장난 아니네. 근데 뒤에 2명은 누구지? 위저드 게임에서는 못 봤었는데.
이서준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 다.
지금까지 공개된 8()1의 멤버는 6 명.
소문으로만 들리던 2명의 숨겨진 멤버가 오늘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조용히 유령을 바라보던 최서윤이 입을 열었다.
“뒤에 저 두 명은 누굴까요?”
“한 명은 여자고 한 명은 남자 같 은데.”
유아라의 말에 이서준은 고개를 끄 덕였다. 확실히 체격만 보았을 땐 남성과 여성으로 보였다.
그 순간.
801 뉴페이스 두 명의 시선이 이 서준 일행을 향했다.
잠시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그들 은 고개를 돌리곤 머리 칸 안으로 들어섰다.
소란의 중심이었던 8()1의 멤버 모 두가 안으로 들어서자 승강장 내부 에 침묵이 감돌았다.
“우리도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타자.”
“그래. 좀 쉬고 싶네.”
그때 였다.
“앗!”
이서준은 낯선 얼굴의 누군가와 어 깨를 부딪쳤다.
처음 보는 얼굴의 검은 머리 남성 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으십 니까?”
남성은 해맑게 웃으며 사과를 건네 자 이서준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하하. 넵. 그럼 지나가겠습니다.”
남성은 고개를 숙이곤 이서준을 지
나 C 클래스 칸으로 이동했다.
이후 그는 동료로 보이는 5명의 무리에게 다가갔다.
—너 뭐하냐?
—과자 사 왔어. 받아.
이서준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 가 뒤늦게 이상함을 깨달았다.
방금 몸이 부딪혔던 남성…….
몸이 닿기 직전까지 그 어떤 기운 도 느끼지 못했다.
“이 과자 진짜 맛있네.”
백은성이 사 온 과자를 삼키며 이 청이 작게 감탄했다.
과자에 뭐가 들어간 것인지 중독된 것처럼 손이 멋대로 과자를 입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근데 너 아까 이서준한테 일부러 부딪혔지?”
C 클래스 칸에 입장한 나타샤가 백은성에게 물었다.
백은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순간 반가워서 말이지. 엄청 오랜 만이잖냐.”
“부탁이니까 제발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백은성이 다시 말했다.
“근데 이서준. 못 본 사이에 엄청 성장했더라. 깜짝 놀랐어.”
“그분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당연 한 거지. 그리고 걔도 이제 23살이
야. 프로라고.”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김창현이 정말로 이 안 에 숨어들었을까?”
김창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분’이 남긴 네 번째 일지에 따 르면 김창현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미래에서 온 회귀자.
그분의 모든 계획을 꿰뚫고 있으 며, 자운이 이뤄낸 모든 결과를 통 째로 가로챌 것이라 적혀 있었기 때 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모든 것을 가로 챌 시기가 바로 ‘죽음의 섬’에서 그 분이 부활하는 때.
“분명 열차 어딘가에 있겠지.”
“……어디에 숨었으려나. 설마 유 령 아니야?”
백은성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유령?”
“그 있잖아. 801의.”
“아. 그 가면?”
“어어.”
모두가 짧은 시간 보았던 유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가면을 왜 썼겠어. 이유가 있으니 까 쓴 거겠지. 거기다 엄청 강하다 며?”
“유령은 아니야.”
그때 베르트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그녀 는 입을 열었다.
“801은 한성가 소속이야. 가능성은 없어.”
“……흐음.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 네.”
모두가 순식간에 수긍했다.
“뭐, 우선 김창현부터 찾아보자. 분 명 열차 어딘가에 있을 거야.”
머리 칸의 내부는 화려하고 넓었다.
마치 고급 호텔의 홀을 보는 듯하 다고 해야 할까.
열차 안의 풍경이라고는 믿기 힘들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