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물어보고 싶은 거라. 이야기해보
아라.]
“너희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걸 알고 있나?”
[물론이다. 깊은 혼돈을 품고 있다 는 건 아주 먼 차원에서 왔다는 증 거…….]
역시 녀석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쉽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다른 차원 에서 넘어왔지.”
나는 짧게 심호흡하고는 물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거야. 내가 원 래의 차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 해?”
최근 내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만약 내 계획이 성공하고 자운이 말살된다면 원작 속 중요 빌런은 남 지 않게 된다.
‘죽음의 섬’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나는 궁금했다.
[…….]
그리고 내 질문에 신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녀석이 말했다.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 과 자기 자신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 가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인 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지.]
그 말은?”
[자신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겠 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울 뿐 불가능 한 건 아니다.]
“돌아갈 수 있다는 거야?”
[그래, 가능하다.]
“..I”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돌아갈 수 있다. 원래 세계로 돌아 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곳으로는 다시 못 오는 거야?”
[그렇다.]
기쁜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씁 쓸한 감정만이 남았다.
역시 돌아가지 못하는 건가.
[그런데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가 뭐지?]
이후 녀석이 말을 이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길래 내 게 그 질문을 했는지 묻는 거다.]
“끝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끝‘?]
놈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무슨 끝을 말하는 거지?]
“진천우가 나를 이 세계로 소환한 걸 알고 있어. 그리고 나는 곧 놈과 그 부하들을 전부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거야. 그렇게 되면 모든 여정 이 끝이 나겠지.”
[……후후. 그대가 세계의 기록을 통해 본 흐름이 그것인가?]
신비는 작게 웃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라…… 혼돈이 여. 자신감이 흘러넘치는구나.]
신비의 말투는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나는 놈을 바라봤다.
[한 가지 조언을 해주지. 네 계획 이 무엇이든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 다…….]
놈의 눈을 중심으로 신비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그 기운은 내 몸을 불쾌하게 감쌌 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계획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건 대답해줄 수 없다.]
나는 순간 심각함을 느꼈다. 다른 인물도 아닌 신비가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 지?”
[대답할 수 없다.]
이후 녀석이 낮게 웃었다.
[후후. 정 궁금하면 아껴두었던 혼 돈의 권능을 사용해보는 것도 하나 의 방법이지.]
아껴두었던 혼돈의 권능.
그건 인과율 30의 능력인 [차원 여 행]을 말하는 것이었다.
차원 여행.
인과율 30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던 권능이 었다.
이 권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거 라고는 고작해야 이전 차원에 대한 정보였으니까.
물론 정보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 니지만, 인과율 30만큼의 가치가 있 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신비가 이렇게 경고하자 고 민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계획이 실패할 수 있다.’
신비의 경고는 무시할 수 없다.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해본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물었다.
“이번에도 나한테 업보라는 게 쌓 여서 그렇게 된 거야?”
[……업보? 후후. 아니다. 지금 네 게 상당한 업보가 쌓여 있기는 하나
그것이 원인은 아니다.]
업보가 원인이 아니다.
“그럼 내가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 뭔데?”
[실패한다고 하지 않았다. 쉽지 않 을 것이라 했지.]
그렇게 말하던 신비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흘러가는 것도 재미없 으니 최소한의 조언을 해주지.]
스으으..
신비에게서 수상한 기운이 퍼져 나 오더니 녀석이 음성이 들려왔다.
[혼돈이여…… 지금까지 너는 세계 의 정해진 흐름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꿔왔을 것이다. 모든 흐름을 알고 있으니 세계는 너의 무대나 마찬가 지였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으......
[일시적으로 무대의 주인이 바뀌었다.]
“무대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내 권한으로 조언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남은 건 스스로 생각해 보아라.]
그렇게 말하던 신비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뭐, 네가 실패하든 실패하지 않든. 네 여정이 많이 남지 않은 거 같기 는 하군…… 끝이 다가오고 있어. 앞으로의 네 선택이 궁금해지는구 나…… 흐흐…….]
더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이것과 관련해서 녀석은 더 이야기할 것 같 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
“일단 알았어. 그보다 따로 부탁하 고 싶은 게 하나 있어.”
[부탁? 그게 무엇이지?]
“성배의 제작 설계도를 원해.”
신비를 만나기로 한 본래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반드시 얻어야 한다.
그러자 신비가 다시 웃었다.
[후후. 내가 얕봤군. 역시 미래를 개척하는 자답게 끌려다니지만은 않 는구나. 치열한 수 싸움…… 역시
혼돈은 혼돈이라는 건가?]
녀석의 목소리는 즐거워 보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좋다. 원한다면 성배의 제작 설계 도를 주마. 대가는 특별히 받지 않 겠다.]
대가를 받지 않는다고?
성배의 가치를 아는 녀석인 만큼 엄청난 요구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
었는데.
[대가는 충분하다. 따분한 일상에 혼돈이 선사하는 즐거움…… 이것만 큼 값진 건 없지. 흐흐흐.]
[‘성배 제작 설계도’를 습득했습니다.]
[‘신비의 선물’ 업적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 상승합니다.]
신비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현실 로 돌아왔다.
포인트와 인과율을 얻었으며 첫 목 표였던 성배 제작 설계도까지 얻었다.
물론 성배 제작 설계도는 지식의 형태로만 존재하기에 내 머릿속에
각인된 상태였다.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눈앞에 새겨진 벽화를 발견했다.
몇몇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신’이 라고 불리는 벽화였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외부자 의 혜택을 발동했다.
[인과율 : 90.5]
“진짜 거의 다 모았네.”
정말 끝이 다가오긴 한 것인지 ‘데 우스 엑스 마키나’까지 이제 9.5의
인과율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 참 많은 일 이 있었다.
마인의 왕이 되고, 크루아스를 토 벌하고…… 그 외의 수많은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차원 여행을 꼭 사용해야 하나?”
이제 남은 인과율은 9.5.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30의 인과율을 사용하는 건 너무나 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모르겠다.”
‘죽음의 섬’ 에피소드까지 아직 1 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차원 관측] 때도 그랬지 만,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엄청 난 양의 마나가 필요하다.
성배의 제작 역시 마찬가지고.
엄청난 양의 마나.
그 해결 방법부터 찾는 게 우선이 겠지.
“선우 씨!”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오자 한세연
이 나를 반겼다.
“일은 잘 해결됐어요?”
“네. 덕분에 성배의 제작 설계도를 얻었습니다.”
“……휴. 다행이네요.”
한세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원래 세계도 돌아가게 된다면, 남은 사람 들은 어떻게 지낼까.
나를 계속 기억할까? 아니면 잊고 잘 살까?
작별 인사는 어떻게 해야 흐}지.
……그 전에, 정든 사람들을 두고 내가 떠날 수 있기는 할까?
그때 한세연과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을 살피는가 싶더니 무언가 의문을 느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작게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만 돌아가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약 두 달이 빠르게 지나갔다.
801의 활동은 잠시 중단되었다.
지금까지 계속 쉬지 않고 달려왔던 만큼 각자 휴식 시간을 갖게 한 것이다.
뭐 하고 지내는지는 몰라도 소식을 들어보면 다들 즐겁게 지내는 모양 이다.
물론 나는 휴가를 즐길 틈이 없었다.
다가오는 결전의 날을 위해 매일 훈련을 강행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보상이 바로 이것이다.
[‘마력의 구’ 안에 사용자의 정보가 가득 찼습니다.]
위저드 게임의 우승 상품인 ‘마력 의 구’에 내 정보가 가득 찬 것이다.
나는 곧바로 양태민을 찾았다.
“이게 위저드 게임의 우승 상품이 군요.”
양태민은 파란색의 마나로 가득 찬 구슬을 바라보며 놀란 반응을 보였
다.
“이것도 받으시죠.”
오늘을 위해 준비한다른 재료들을 그에게 내밀었다.
[마법 부여서 : 증폭(S)]
[신비한 인내의 강철(유물)]
이 모든 것이 위저드 게임의 우승 상품이었다.
양태민은 감탄한 얼굴로 그것들을 살피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하나가 세계를 뒤져봐도 찾기 힘든 최고급 재료들이네요. 잘하면 백천에 이어 두 번째 SS 둥급의 무 기를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SS 등급의 무기라는 말에 순간 설 렘을 느꼈다.
“혹시 원하시는 무기 형태가 있나 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백천과 같은 나만의 SS 등급 의 검을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검은 나에 게는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의 섬 이후 모든 사건을 마무 리하게 된다면 앞으로 검을 사용할 일도 없을 테니까.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오브입니다.”
오브.
구슬 형태의 무기로, 소수의 마법 사가 사용하는 보조용 무기였다.
오브는 사용자의 마력과 의지에 반 응하여 움직이는데, 마법의 효율을 올려주거나 스스로 움직여 사용자를 보호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소환수인 ‘정령’ 혹은 ‘요정’과 비
슷하기에 몇몇 마법사 사이에서는 ‘위습’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오브는 무결점의 아이 템처럼 보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쉽게 망가진다는 것이다.
구슬의 형태이기에 충격에 쉽게 파 괴되고, 또 마력에 의해 과부하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양태민은 ‘백천’이라는 SS 등급의 검을 만든 유일무이한 제작사.
그라면 단점을 해결한 오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태민은 물끄러미 마력의 구를 바 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 마력의 구에는 선우 님만의 특 수한 마력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이 마력의 구를 이용해 오브를 제작 하게 된다면 특별한 무기가 탄생하 게 되겠죠.”
이내 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 고 사악한 위습을 만들어보죠.”
나는 그를 따라 피식 웃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번에 부탁한 대마수용 신비 폭탄 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죽음의 섬에는 수많은 대마수가 살 고 있다.
크루아스 토벌 후에도 대마수용 신 비 폭탄의 제작을 부탁한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제 슬슬 폭탄이 필요해지는 시기 가 왔다.
“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량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황 이고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신비의 말대로 판이 바뀌어 계획대 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 다.
하지만.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근 두 달간 테러도, 마수 사건도 없는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3대 마인의 왕, ‘김선우’ 이후로 마 인 사건도 거의 사라졌기에 한가로 운 매일의 연속이었다.
“해상열차 탑승자 명단 확보에 힘 을 쓰고 있지만 3대 길드가 협조하 지 않아 파악이 안 되는 상황입니
다.”
특무팀에서는 인력이 남아돌게 되 자 자연스레 ‘해상열차’에 관심이 쏠렸다.
진천우의 부활 장소 후보에 죽음의 섬이 포함된 것도 있지만, 3대 길드 에서 어떤 비리를 저지를지 견제하 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일단 그놈들 요즘 움직임이 수상 하니까 집중적으로 감시해.”
“넵.”
그렇게 요원들이 떠나고 김덕현의 앞에 6명의 요원이 남았다.
위저드 게임에 참가하여 해상열차
의 티켓을 확보한 ‘루키6’이었다.
“아무래도 너희들의 역할이 중요해 질 것 같다.”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해상열차에는 8()1이 탑승하고, 그 안에는 ‘김선우’로 거의 확신하고 있는 유령이 탑승한다.
만약 그 확신이 사실이라면, 해상 열차 안에서 어떤 사건이 터질 가능 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정보는 이서준을 통해 김진철의 귀에도 흘려들어 갔다.
김진철 역시 이상함을 느꼈기에 해 상열차 조사에 인력을 더 투입하는 것을 명령했다.
“회장님께서 너희는 당분간 임무에 서 배제하고 개인 훈련에 집중하라 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런 이유로 내년 해상열차까지 최고의 상태를 완성하도록 해라.”
“넵!”
힘찬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김덕현 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럼 해산이다.”
김덕현이 사라지고 모두가 모였다.
“으음. 당분간 임무는 못 하겠네. 그래서, 바로 훈련하러 갈 거?”
“난 그러려고.”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너희는?”
“나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훈련광인 유아라가 작게 웃으며 대 답했다.
그렇게 이들은 훈련장을 향해 이동 했다.
최서윤은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자 신의 앞에 서서 무언가를 들여다보
는 릴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표정이 심각했다.
“무슨 일 있어요?”
“어떤 놈이 내 SNS에 악플 달았 어.”
“아.”
마법사관학교 시절부터 유명했지만 그녀는 SNS 중독자다.
SNS를 통해 수십 번 김선우를 저 격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고, 그로 인해 몰리는 관심을 그녀는 즐겼었다.
“……이놈 말하는 거 보니까 현역
마법사 같은데. 아. 누구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릴리가 최 서윤을 휙 돌아봤다.
“근데 너 요즘 SNS 안 해? 예전에는 나만큼 자주 했던 거 같은데.”
최서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그런 시절도 있었다.
남들의 관심을 즐겼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항상 미 소를 달고 살았었다.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아서요.”
“……너 나보고 의미 없는 짓 한다 고 돌려 까는 거지?”
최서윤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릴리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 을 푹 내쉬다가 앞을 걸었다.
뒤떨어진 최서윤은 그 뒷모습을 바 라보다가 문득 오랜만에 자신의 SNS 계정이 궁금해졌다.
스마트폰을 켜고 확인하자 여러 알 림창이 떠올랐다.
[2년 만의 접속!]
“벌써 2년이 지났구나.”
최서윤은 멍하니 자신의 SNS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