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6화 (485/535)

이 목소리는 설마……?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새로운 누군

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앳된 얼굴.

어두운 갈색 머리의 남성.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저건, 죽기 전의 ‘나’였다.

어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최서윤은 서로의 환영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멍하니 내 환영을 바라보다가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서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두 눈이 크게 떨리고 있었고, 얼굴 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최서윤.”

대답이 없다. 패닉이 온 듯 내 말 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의 어깨를 잡고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최서윤.”

“……아.”

최서윤은 끝내 정신을 차렸다.

식은땀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 다.

“……괜찮아요. 환영인 거 알고 있

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놓아주 었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환영을 바라 보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 다.

“서윤아.”

그때, ‘김선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서윤이 표정이 다시 굳고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찌푸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쾌감이 느껴졌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그리고 나는 그 불쾌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말투가 느끼하다.

눈빛은 또 왜 저렇게 다정하고 따 뜻한 건데?

슬쩍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 녀는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내 환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겉모습은 나와 같지만 내가 아니

저건…… 최서윤의 심리가 반영된 ‘왜곡된 나’였다.

“저것.”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김선우’의 환영은 내가 맡겠 다. 너는 너를 맡아.”

“아뇨. 제 환영인데 제가 상대一.”

“내가 상대한다.”

그녀는 현재 불안한 상태다.

그리고 미로가 만들어낸 환영은 ‘실제의 힘’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김선우의 환영’을 상대하는 건 위험할 지도 모른다.

……라는 건 사실 핑계고 그냥 말 투와 표정을 보니 내 손으로 직접 처치하고 싶다.

최서윤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과거 도플갱어를 상대하던 때가 떠 오르지만 도플갱어와는 조금 다르 다.

내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최서윤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놈■이 어떤 능력을 사 용할지 알 수 없다.

……당장 말투와 눈빛부터가 다르 니까.

그때.

우우웅!

놈의 손바닥 위에서 푸른 빛의 구 체가 구현되더니 나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엄청난 속도.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그 공격을 피했다.

이후 사슬을 구현하여 녀석에게 방 출했다.

사르르륵!

사슬은 놈의 팔을 빠르게 묶었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당황한 모습 을 보였지만 이내 나를 향해 마법을 방출했다.

파앙!

나는 장막으로 가볍게 그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며 슬쩍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그녀도 전투를 시작한 모양 이었다.

환영은 본체의 능력을 그대로 반영 하지 못한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지.

나는 다시 ‘김선우’에게 시선을 돌

리고는 사슬을 방출했다.

팔이 잡힌 상태였기에 이후 공격은 수월했다.

순식간에 사슬로 놈의 목을 조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 숨통을 끊으면一

“……크으윽!”

그때 놈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상한 기운이 퍼지고, 나는 눈을 찌푸리며 놈을 바라봤다.

놈의 두 눈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검은 마력이 피어오르고, 놈의 힘

이 순식간에 강화되며 나를 압박했다.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함을 느꼈다.

……폭주화까지 사용한다고?

……약 10분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끝내 환영과의 전투에서 승 리 했다.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버거운 싸움이었다.

폭주화한 김선우는 계속해서 육신 을 재생시켰고, 놈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는 마력이 다 할 때까지 공격 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서윤은 천천히 소멸되는 ‘김선우’를 바라보았다.

비록 환영임을 알지만 사라져가는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꽤 고통스러 운 듯했다.

“신경 쓰지 마라. 저건 가짜다.”

“……알고 있어요.”

최서윤이 내게 시선을 돌리며 쓴웃 음을 지었다.

어느덧 ‘김선우’는 완전히 소멸되 었다. 그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최 서윤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수고하셨어요.”

“ 괜찮나?”

“아, 네. 전 괜찮아요.”

최서윤은 씩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왠지 그 모습이 쓸쓸해 보였 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미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로도 우리는 몇 번의 환영을

마주쳤다.

그중에는 자운 같은 빌런도 있었 고, 마법사관학교의 학생들도 있었 으며, 8()1의 동료도 있었다.

하나하나 쉬운 상대가 아니었지만 실제 인물의 힘을 그대로 담은 건 아니었기에, 우리는 나름 잘 헤쳐나 갔다.

물론, 위기의 상황도 있긴 했다.

“……대체 무슨 삶을 살아오신 거 예요?”

천천히 소멸되어가는 거대한 토끼 환영을 바라보며 최서윤이 중얼거렸 다.

놈의 정체는 경계의 지배자라 불리 는 ‘설산의 대정령’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환영을 상대했지 만 놈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강함 을 자랑했다.

다행히 ‘정령 실체화 술식’을 발동 하기도 했고, 또 실제보다 많이 약 한 환영이었기에 비교적 쉽게 처치 하기는 했다.

이러다 크루아스의 환영까지 나오 는 건 아닐까 몰라.

“과거에 마주쳤었던 대정령이다.”

“저런 대정령을 마주쳤다고요? 어 디서요?”

최서윤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비밀이다.”

“쳇.”

그때 눈앞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이 당신의 과거에 깊 은 궁금증을 느낍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 니다.]

[미래에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5 상승합니다.]

설산의 대정령과의 전투가 외부에 중계되며 많은 관심을 부른 모양이 다.

신분을 숨기고 있다 보니, 너무 많 은 관심은 부담이 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포인트를 버는 건 좋다.

그렇게 메시지가 사라지고, 천장에 서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10개의 환영을 극복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특별 보상?”

강한 빛이 번쩍이더니 우리 앞에 작은 나침반이 생겨났다.

[출구를 찾는 나침반 : 미로의 길 을 알려줍니다.]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인 것 같 다.”

“오.”

원작에서도 등장한 적 없는 보상이 었다.

이런 것까지 숨어 있을 줄은 꿈에 도 몰랐는데.

“10개의 환영을 마주친 보상이니 까 저희가 동행하지 않았으면 못 얻 었겠네요.”

“아마 그렇겠지.”

덕분에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그녀와 동행을 한 건 꽤 좋은 선 택이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나침반의 바늘을 따라 이동 했다.

복잡한 미로였지만 나침반이 길을 알려주기에 막힘없이 움직일 수 있 었다.

그리고 나침반의 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로 환영을 보지 않았다.

나침반을 따라 우리는 어떤 장소에 도착했다.

미로 속. 그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 지 않는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두 눈에 마력을 주입해 보아도 어

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 다.

그 말은 즉, 저건 어둠이 아닌 어 둠으로 보이는 다른 무언가라는 증 거다.

“포탈이다.”

“포탈이 요?”

“저 어둠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

“아.”

최서윤은 수긍한듯했다.

그러면서 힐끔 내게 시선을 돌렸 다.

“그나저나 판단력이랑 관찰력이 엄 청 빠르시네요.”

뜬금없는 말에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최서윤은 그런 나를 보며 의미심장 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그렇다고요.”

그러면서 어둠을 가리켰다.

“그래서, 저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는 거죠?”

“아마 그럴 거다.”

저 어둠을 지나면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환영의 미로 2스테이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위저드 게임의 우 승자가 거의 가려지겠지.

저 안에 각 팀의 우승 후보들이 모여 있을 테니까.

“가지.”

“네.”

나는 천천히 어둠 속으로 발을 내 디뎠다.

깊은 어둠의 마력이 내 몸을 감싸 고, 눈앞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히든 스테이지 - 환영의 미로2에 입장했습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네요?”

환영의 미로2에 입장한 최서윤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새로운 스테이지에 입장했지만, 이전과 큰 차이 없었다.

시꺼먼 어둠과 복잡한 길…….

바뀐 게 있다면 미로가 보여주는 환영의 방식이겠지.

나는 원작에 있었던 2 스테이지의 상황들을 떠올렸다.

환영의 미로 2는 위저드 게임의 우승자를 가리는 분기점이자, 가장 중요한 스테이지였다.

다양한 보상이 존재하는 여러 개의 출구.

그중 3개의 스테이지를 단번에 건 너뛸 수 있는 ‘특별한 출구’를 통과 하는 팀이 단번에 우승에 가까워지 는 구조였다.

참고로 각 출구는 한 팀만이 이용 할 수 있기에 상당한 경쟁이 벌어진 다.

원작에서는 이 ‘특별한 출구’를 놓 고 이서준과 빙혼검제가 경쟁하다가 이서준이 한 끗 차이로 탈락했었지.

“이건 이제 쓸모가 없어졌군.”

특별 보상인 나침반이 2 스테이지 입장 후 작동하지 않는다.

앞으로 스스로 헤쳐나가라는 미로 의 의지였다.

최서윤은 작동하지 않는 나침반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허공에 떠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그녀의 시선 끝에는 둥둥 떠다니는

문구가 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대는 원하 는 것을 얻을 것이다.]

“……이거 환영으로 만들어진 글자 맞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미로가 우리에게 주는 탈출구 의 힌트다.

앞으로도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주 어질 것이다.

최서윤은 멍하니 글자를 바라보더

니 말했다.

“갑자기 스테이지 탈출 시험 느낌 처럼 바뀌었네요.”

“애초에 위저드 게임이 스테이지 탈출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음. 그렇긴 하죠.”

최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이동하죠. 아. 저기에 길이 있네요.”

이후 나는 전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미로를 걸었다.

각 출구를 이용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

유력 우승 후보인 빙혼검제가 없다 한들, 나보다 앞선 이들이 많을 것 이기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최서윤 역시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나와 발을 맞추며 빠 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나와 최서윤은 거의 질주하 듯 미로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환영이 우리에게 혼란을 주 었지만, 그때마다 최서윤이 얼음으 로 환영을 지워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2 스테이지의 첫

분기점에 도착했다.

3갈래의 길. 그리고 각 길 앞에는 환영으로 만들어진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힘] [지혜] [시간]

“……힘, 지혜, 시간?”

최서윤이 단어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알쏭달쏭한 내용이지만 나는 저 단 어의 숨겨진 의미를 알고 있다.

저것은 [환영의 미로]의 보상에 대 한 스포일러다.

‘힘’을 선택하면 능력치를, ‘지혜’를 선택하면 앞으로 있을 스테이지의 공략과 정보를, ‘시간’을 선택하면 3 개의 스테이지를 건너뛸 보상을 얻 게 된다.

“각 길의 보상을 말하는 것 같다.”

“저도 그런 거 같아요. 그쪽은 뭐 가 마음에 드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혜가 끌리기는 하는데.”

“시간.”

“그럼 시간으로 가죠.”

유.2바

최서윤은 쿨하게 내 선택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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