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게 안전지대로 물러선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주변이 전부 얼어붙어 있었다.
피부에는 차가운 서리가 딱지처럼 붙어 있었고, 마력에 구현된 얼음은 갑옷처럼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어느덧 환영이 풀렸는지 그녀는 나 를 가만히 응시하며 한 발짝 움직였 다.
저저적!
그녀가 움직이자 다시 한번 그 주 변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속성화.”
한 속성의 숙련이 극에 달하면 사 용할 수 있는 마법.
이서준과 베르트가 자주 다루는 능 력이지만, 빙혼검제의 속성화는 위 력의 정도가 다르다.
“……이 능력까지 사용하게 하다 니.”
빙혼검제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마 력이 주변을 차갑게 얼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절로 떨릴 만큼 강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미 소를 지었다.
내가 동요하지 않자 그녀가 이상함 을 느낀 듯 먼저 말했다.
“……이상할 정도로 여유롭군. 아 니, 여유를 부리는 건가?”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불쾌했던 듯 그녀는 나 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파앗!
그녀는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 다. 주변이 얼어붙고, 나 역시 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능력을 발동했다.
[‘반전의 가호’를 발동합니다.]
능력을 발동하자 신비한 힘이 내 안에서 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듯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고는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다음 능력을 사용했다.
[사용 효과 ‘속성 반전’을 발동합니다.]
속성 반전.
상대의 가장 높은 속성 저항력만큼 모든 속성 저항력을 낮추는 마법이 었다.
‘경계의 대정령’을 한순간에 최약 체로 만들어 토벌할 수 있게 해주었 던 비장의 마법이었다.
내 손바닥 위로 신비한 기운이 뭉 쳐왔다.
나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 나가 그 녀를 향해 방출했다.
파앙!
마법은 순식간에 빙혼검제의 몸에 닿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의 눈이 번쩍였다.
“……이건?”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새하얗게 빛 나던 얼음이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녀는 처음 겪는 상황에 대한 당 황과, 찾아오는 고통에 공포감을 느 끼고 있었다.
“……크으윽!”
[얼음 속성 저항력의 수치만큼 모
든 속성 저항력이 하락합니다!]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얼음이 우두둑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한순간에 모든 힘을 잃자,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무력감에 담긴 눈빛. 그녀는 떨리 는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이건…… 반전의 마법……?”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경악이 담 겨 있었다.
역시 길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마법사답게 마법의 정체를 단번에
눈치챘다.
반전의 가호.
과거 영국 특무팀의 리더이자 ‘수 수께끼’라는 이명을 가진 자의 마법 이었다.
당연히 그녀처럼 뛰어난 마법사에 게는 그 정보가 알려져 있을 수밖에 없겠지.
떨리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케네스 경의 마법을?”
빙혼검제의 물음에 나는 어떠한 반 응도 보이지 않았다.
[반전의 가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와 내게 좋을 것도 없 었으니까.
나는 대답 대신 광검에 빛의 마력 을 주입했다.
강한 빛의 기둥이 작게 떨리고, 그 녀를 향해 빠르게 휘둘렀다.
사각!
[뛰어난 검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 두었습니다!]
『백천검법’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 합니다.]
[적응형 특성 ‘백천검법 (B)’의 등급 이 A로 상숭합니다!]
[천공 격투장의 승자가 결정되었습 니다!]
[위저드 게임 - 천공 격투장을 클 리어 했습니다!]
[소속 팀원들의 능력이 10% 상승 합니다!]
[보상 주머니를 획득합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 앞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백천검법의 등급이 어느덧 A에 오 르게 되었다.
S등급의 괴물을 제외하면 어디 가 서 검으로 밀리지 않은 수준까지 오 르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능력치빨이 있기에 어 디 가서 밀리지는 않지만.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 겼다.
순간순간 위기도 있었지만, 어떻게 거대한 산 하나를 넘었다.
상성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만약 상대가 ‘속성화’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승부를 알 수 없었을 테 니까.
다만 ‘반전의 마법’을 사용한 나를 보며, 외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그게 의문이다.
……뭐, 알아서 상상하겠지.
[반전의 가히는 소수 일족의 마법 도, 문파의 비기도 아니다.
‘멸마’와 같이 이유 없이 타고나는 ‘특성’이었다.
참고로 ‘특성’은 누군가의 전유물 이 아니다.
검객, 궁신, 육감, 가호…… 등.
한 시대에 동일한 특성을 가진 사 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말은 즉 [반전의 가히 역시 수 수께끼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강한 빛이 번쩍이더니 내 앞
에 포탈 하나가 생겨났다.
다음 스테이지로 향하는 문.
나는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 뎠다.
“……설계자의 능력에 이어서, 이 번에는 수수께끼의 능력을?”
유령의 전투가 끝나고.
위저드 게임을 지켜보던 ‘균형의 저울’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중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정희 님의 제자라고 생각했었는 데…… 정체가 수수께끼였나?”
수수께끼, 케네스.
과거 영국 특무팀의 리더로서 엄청 난 업적을 남긴 마법사였다.
지금은 은퇴 후 평화로운 삶을 만 끽하고 있지만, 그 이름은 아직까지 후대 마법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 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수수께끼는 아 니죠. 아! 혹시 그분의 제자가 아닐 까요?”
“반전의 마법은 특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자라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군가의 고유 특성은 배울 수 있 는 게 아니니까.
그러자 한 인물이 말했다.
“케네스 경의 제자는 몰라도 설계 자의 제자는 맞을 겁니다. 기본 전 투 스타일이 상당히 홉사하니까요.”
“그럼 반전의 마법은요? 어떻게 설 계자의 제자가 반전의 마법을 사용 할수있는 거죠?”
“......그건.”
반박에 말끝을 흐렸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설계자의 제자가 우연히 반전의 특성을 타고난 게 아닐까요……?”
가장 큰 산이라고 생각했던 빙혼검 제와의 전투 이후 남은 스테이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틀 동안 총 4개의 스테이지를 공략했으며, 간간이 팀원이 전해주 는 보급품을 받으며 속도를 올렸다.
[당신의 팀원이 스테이지에서 승리 했습니다.]
[당신의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당신의 팀원이 보급품을 전달합니다.]
[‘워프 스위치’를 획득했습니다.]
“오.”
그리고 오늘. 갑작스러운 보상을 획득했다.
[워프 스위치]
[히든 스테이지 ‘환영의 미로’에 입 장할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 시간 : 5시간]
“이게 나올 때가 됐었지.”
원작에서도 등장했던 것으로 꽤 비 중 있게 다뤄지는 아이템이었다.
위저드 게임 4일 차쯤을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명 그대로 ‘히든 스테이지’로 이 동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원작에서는 윤하영이 이 보상을 얻 고 이서준에게 보내줬었는데, 우리
팀에서도 누군가 얻은 모양이다.
참고로 환영의 미로는 꽤 중요한 스테이지이다.
자신의 스테이지 기준으로 3개의 스테이지를 건너뛸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
지금쯤이면 환영의 미로에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을 것이다.
이 미로를 통해 우승자가 갈릴지도 모르는 만큼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나는 스테이지 공략 보상으로 얻은 음식들을 치운 뒤 워프 스위치를 꺼 내 스위치를 눌렀다.
번쩍!
[히든 스테이지 ‘환영의 미로’에 입 장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깊은 어둠.
미로처럼 복잡한 길이 눈에 들어왔 다.
언뜻 보면 평범한 미로처럼 보이지 만 ‘환영의 미로’라는 그 이름답게 사람들에게 환영을 보여준다.
이전에 경험했던 ‘악몽의 안개’와 홉사한데, 환영에 홀려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 참고로 이곳에 나오는 환영은 실제한다.
전투를 통해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 다는 거다.
“......후우.”
그렇게 짧게 숨을 내쉬고 한 발짝 앞으로 걷던 그 순간, 어디선가 비 명이 들려왔다.
—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목소리. 이내 인기척 과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내 앞에서 멈췄다.
“......유령?”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 머리의 남 성이었다.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다.
아마 멸화의 검 소속의 마법사였 지?
혹시 ‘환영’이 아닐까 싶어 [인물 간파]를 사용하자 제대로 창이 떠올 랐다.
그 말은 놈은 ‘진짜’라는 거다.
내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놈이 뒤를 돌며 말했다.
“기, 기다려! 뒤에 괴물이……!”
녀석의 말에 나는 그의 뒤로 시선 을 돌렸다.
어느새 끔찍한 외형의 거대 거미 괴물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실제 거미가 아니다.
놈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이었다.
근데 마법사라는 놈이 고작 저거에 겁을 먹은 건가?
그때 녀석이 다시 뒤를 돌더니 얼 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아아악!”
이후 마법을 구현하고는 거미를 향 해 마법을 방출했다.
거미는 공격을 받더니 기괴한 울음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거미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포악해진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녀석은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도, 도와줘!”
공포에 질려 아군과 적군도 구분하 지 못하는 모습이다.
마력 광검을 꺼내 마력을 주입하자 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그래. 녀석을……
사각!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녀석의 몸에 기다란 상처가 그어졌다.
그의 몸은 서서히 먼지가 되어 소 멸되었고, 동시에 그의 뒤에 함께 있던 거미 환영도 함께 소멸되었다.
“......후우.”
나는 다시 앞으로 길을 걸었다.
우승을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움직 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분을 걸었지만 환영이라 고 할 만한 것들은 나타나지 않았 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던 그때.
가까운 어딘가에서 빛이 번쩍였다.
벽에 가로막혀 보이지는 않지만 방
금 누군가가 ‘환영의 미로’에 도착 한 모양이다.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잠시 뒤 ‘그것’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당신은……?”
나는 곧바로 마력을 거두었다.
예상외의 인물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의 여성.
최서윤이었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가만히 있자 그녀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아, 뭐야. 환영이었네. 놀래 라.”
«..2”
아무래도 나를 환영으로 착각한 모 양이다.
무슨 근거로 나를 환영이라고 확신 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내게 다가오더니 얼굴 앞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보다 진짜랑 똑같네. 자신 과 관련된 게 환영으로 나오는 건
가?”
다가오더니 킁킁 냄새까지 맡는다.
“냄새까지 똑같…… 응?”
최서윤이 이상함을 감지한 듯 움직 임을 멈추었다.
이후 조심스레 손을 뻗더니 내 가 슴에 손을 대었다.
두근두근.
심장의 고동을 느낀 듯 그녀가 소 스라치게 놀라며 떨어졌다.
“……지, 진짜?”
그녀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담긴 눈 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뒤늦게 마력
을 끌어올렸다.
가만히 당해줄 순 없었기에 나도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때.
“여기서 뭐 해?”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최서윤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 을 향했다.
“……선배님?”
모습을 드러낸 건 이서준이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나는 빠 르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행동을 본 이서준은 허리춤의 소백천을 뽑았다.
최서윤은 나와 이서준을 번갈아 바 라보더니 이서준에게 물었다.
“……선배님? 여긴 언제 오셨어 요‘?”
“환영이다. 조심해.”
“네?”
내 말에 최서윤이 눈을 찌푸렸다.
이서준은 바로 반박했다.
“서윤아. 설마 저 말에 속는 거 아 니지?”
“......그건.”
최서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잘 생각해. 네 적이 누구인지. 유 령은 우리의 적이야.”
“……그렇죠.”
최서윤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을 믿기로 한 것이다.
상대 팀인 내 말을 그녀가 믿을 이유가 없기는 하지.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지만 상 황 특성상 어쩔 수 없다.
결국 나는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곧바로 사슬을 구현해 이서준에게 방출했다.
사사사삭!
그러나 이서준은 빠르게 검을 휘두 르며 내 공격을 막아냈다.
움직임은 정확하고 빨랐다.
“하앗!”
그렇게 모든 사슬을 튕겨낸 이서준 은 나를 향해 돌진했다.
돌진에 대처하려는 그 순간, 내 옆 에서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최서윤의 머리 위로 거대한 얼음의 창이 구현되어 있었다.
최서윤은 굳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
며 창을 방출했다.
파아앙!
창이 빠르게 쏘아졌다.
찰나의 순간, 하지만 예상과 다르 게 창끝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 했다.
이서준의 머리였다.
파악!
“어,어떻게 알았지……?”
창에 찔린 이서준은 떨리는 목소리 로 중얼거리더니 검은 연기가 되어 소멸되었다.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최서윤 이 말했다.
“……진짜 환영이었네요.”
“용케 믿었군.”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녀가 내 게 시선을 돌리며 빙긋 웃었다.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았거든 요.”
분명 적일 텐데 무슨 근거로 내
말을 믿었던 걸까.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방금 보았던 환영은 나의 환영이었 을까. 아니면 최서윤의 환영이었을 까?
잠시 침묵이 감돌자 그녀가 내 눈 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방금 그 환영, 저의 환영이었 겠죠?”
나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순간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환영의 미로는 대상과 관련이 있는 환영이 떠오른다.
만약 이서준의 환영이 나로 인해 생겨났고 내 옆에 최서윤이 없었더 라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의문 을 느꼈을 것이다.
유령이 ‘이서준’과 관련이 있을지 도 모른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자 살짝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그때 최서윤이 정신을 차린 듯 내 게 경계의 시선올 보냈다.
“저 공격하실 거예요?”
내가 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반응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 를 저었다.
이곳에서 혼자 움직이다가, 어떤 환영이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
만약 ‘자운’, ‘진천우’와 같은 환영 이 내 앞에 떠오른다면 이 시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내 정체에 대해 이상함을 느낄 터.
……어쩔 수 없나.
“임시 동맹할 생각 있나?”
내 제안이 예상외였는지 최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동맹이요?”
그녀는 의심의 반응을 보냈다.
당연했다.
나와의 동행에서 얻을 이점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뒤통수 당할 가능성 만 커지는 거니까.
“동맹은 왜요? 당신이라면 환영은 혼자 파훼할 수 있을 텐데.”
그 말도 맞다.
그리고 나는 계속 머리를 굴렸다.
저 질문에 마땅한 핑계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무서워서.”
얼떨결에 임시 동맹(?)을 맺게 된 나와 최서윤은 ‘환영의 미로’의 출 구를 찾아 걷고 있었다.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디선가 짧은 비명이 들려오고, 또 다른 어딘가에선 강렬한 마력과 함께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환영의 미로 안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참가자들이 존재한다.
저 소리들은 아마 환영을 본 누군
가의 반응이겠지.
“으스스하네요.”
최서윤은 주변을 둘러보며 긴장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아 참. 무서운 건 조금 나아지셨 어요?”
«..2”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 봤다. 하지만 대답할 말이 없었다.
동행을 위해 무섭다는 핑계를 댄
것은 나였으니까.
최서윤은 그런 나를 보며 작게 웃 었다.
“대답도 못 할 만큼 겁먹으셨나 보 네. 단순한 환영이니까 무서워할 필 요 없어요.”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은근히 자 존심이 상하는데.
그렇게 미로를 걷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겨났다.
“근데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내 물음에 최서윤이 시선을 돌렸 다.
“네‘?”
“왜 워프 스위치를 이서준에게 전 하지 않고 네가 썼냐고 물은 거다.”
‘워프 스위치’는 팀의 에이스에게 전달하는 게 정상적인 흐름이다.
원작에서도 환영의 미로 공략을 시 도했던 건 이서준이었으니까.
나 역시 팀원에게 워프 스위치를 얻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고.
“아, 그게……
최서윤이 말끝을 흐렸다.
팀의 정보를 흘리는 건 아닐까 고 민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자연스레 어떻게 된 상황인지 눈치챘다.
“이서준이 이미 워프 스위치를 소 유하고 있어 보낼 수 없었던 거군.”
순간 그녀가 어깨를 움찔했다.
정곡에 찔렸다는 반응이었다.
이내 그녀는 대답 대신 어색한 웃 음을 홀렸다.
“하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서준은 이미 ‘환영의 미로’ 어딘가에 있을 가능 성이 높다.
이걸어떻게 해야 할까.
빙혼검제가 탈락한 시점에서 이서 준은 위저드 게임에 남은 가장 강력 한 경쟁자.
그에 맞는 대처를 생각해야 할 텐 데.
바로 그때.
우리 앞에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왔 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와 최서윤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은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로가 환영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을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완성된 환영 이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것을 본 최서윤이 멍하니 중얼거 렸다.
“……저건, 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최서윤’이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최서윤의 환영에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녀 역시 당황한 얼굴로 그것을 보곤 내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그쪽의 환영이에요?”
“......글쎄.”
시치미를 뗐지만 미로가 만들어내 는 환영은 보통 타인을 만들어내니 내가 만들어낸 환영이 맞을 것이다.
곤란한데.
환영의 미로가 만들어내는 환영은 참가자의 마음속에 숨은 것들을 꺼 내어 형상화한 것.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와 동행중이 었기에 핑계 댈 요소가 있다는 점이 기는 한데.
하지만 최서윤은 이상함을 느낀 듯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였다.
“최서윤.”
환영이 만들어낸 최서윤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최서윤의 얼굴이 바싹 굳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